장의심승(藏義尋僧)
절 아래엔 맑은 시내 벽옥처럼 흐르는데 / 寺下淸川流碧玉
절 안에서 사는 중은 수백 명도 더 되누나 / 寺裏居僧指千百
이따금씩 종소리가 우레인 양 울릴 때면 / 有時鍾鳴作雷吼
높은 봉은 무너지고 절벽 쪼개지려 하네 / 危峯欲倒蒼崖裂
한가로운 틈을 타서 성문 나와 중 찾아가 / 乘閑出郭尋僧去
시험 삼아 전삼 후삼 뭔 뜻인가 물어보네 / 試問前三後三語
골짝 문이 깊이 잠겨 안개 노을 자욱하매 / 洞門深鎖煙霞老
망연해져 이내 몸이 어디 있는 줄 모르네 / 茫然不悟身何處
제천완월(濟川翫月)
가을 강에 달이 들어 강 물결은 고요한데 / 月入秋江江水靜
백 척 돌탑 그림자가 한가로이 누웠구나 / 百尺寒臥浮圖影
달 마주해 모름지기 십천두주 마실지니 / 對月須傾斗十千
어찌 월단 삼백 병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 何用月團三百餠
맑은 달빛 서늘 기운 위아래로 통하거니 / 淸輝冷氣上下徹
나의 양쪽 귀밑머리 빳빳하게 곤두서네 / 森然豎我兩鬢髮
단지 달빛 술잔 길이 비추기만 바라나니 / 但願長照樽中酒
달 둥글고 이운 거울을 알 필요 뭐 있으랴 / 何知鏡圓與鉤曲
반송송객(盤松送客)
우정에서 만리 먼 길 떠나는 객 위로하며 / 郵亭相送萬里遊
술 마신 뒤 옥술병을 두드리며 노래하네 / 酒後長歌擊玉甌
이 세상의 인생살이 전봉처럼 떠돌거니 / 人生於世如轉蓬
한 백년간 애쓰느라 편안히 쉴 때가 없네 / 百年役役無時休
예쁜 오희 비파를 타 슬픈 곡조 울려 대니 / 吳姬促瑟奏淸商
좌중이 다 마음 상해 수심 생각 애를 끊네 / 四座黯然愁中腸
이별하긴 쉬운 반면 만나기는 어렵거니 / 別多會少知奈何
내일 아침 아득히 먼 길서 서로 생각하리 / 明朝相憶路茫茫
양화답설(楊花踏雪)
쌓인 눈은 새하얗고 북녘 바람 몰아치니 / 積雪皚皚北風響
한궁 안의 선인장은 버쩍 얼어 꺾어지리 / 漢宮凍拆仙人掌
나귀 타고 강변에서 술에 취해 시 읊으며 / 騎驢江上醉吟詩
가슴속의 기 토하니 무지개가 천길일세 / 胸中氣吐虹千丈
우습구나 저 원안이 백옥 속에 누운 꼴이 / 笑殺袁安臥白屋
또 우습네 저 희만이 〈황죽가〉를 노래한 게 / 笑殺姬滿歌黃竹
곧장 시율 가지고서 몹시 엄히 다투었던 / 直將詩律鬪深嚴
설당 지닌 높은 풍모 탄식 속에 우러르네 / 雪堂高風仰歎息
목멱상화(木覓賞花)
남산에서 앉아 보니 층진 성이 드높은데 / 南山坐對層城高
어구 가의 수양버들 홍교 위를 스치누나 / 御溝楊柳拂虹橋
상원 속에 핀 꽃에는 붉은 노을 무르녹고 / 上苑花發蒸紅霞
태액지의 물 따뜻해 포도주가 넘실대네 / 太液波暖漲葡萄
큰 집들은 구름 닿고 봄은 언덕 가득한데 / 甲第連雲春滿塢
동풍은 또 부드러운 비를 불어 보내누나 / 東風吹送如酥雨
천만 가지 꽃들 모두 고운 자태 머금어서 / 千紅萬紫總含姿
어서 오라 마루의 북 칠 필요가 전혀 없네 / 相催不用臨軒鼓
전관심방(箭串尋芳)
꽃다운 풀 비단 방석 깐 것보다 훨씬 나아 / 芳草全勝錦作茵
붉은 꽃과 푸른 풀이 정히 시름 자아내네 / 紛紅駭綠正愁人
사녀 서로 어울려서 봄 경치를 쫓아가매 / 士女相將競光陰
수를 놓은 비단 장막 봄 햇살이 비치누나 / 羅緯繡幕照靑春
누런 닭과 하얀 해의 영롱 노래 울리거니 / 黃雞白日玲瓏曲
가는 세월 정히 한 번 숨을 쉬는 것과 같네 / 流年正似一呼吸
맛 좋은 술 재촉하여 봄놀이를 하고 난 뒤 / 急喚美酒酬佳節
말 거꾸로 타고 오자 오사모가 떨어지네 / 倒載歸來烏帽落
마포범주(麻浦泛舟)
호량에서 놀며 하필 혜시처럼 할 게 뭐며 / 游濠何必如惠施
박달나무 베어 하필 하수 가에 놓아두랴 / 伐檀何必置漣漪
서호 향해 술을 싣고 가서 맘껏 놀다가는 / 且向西湖載酒遊
술 취해선 화정 심은 매화 가지 꺾으리라 / 醉折和靖梅花枝
푸른 산은 수도 없이 강 머리로 다가오고 / 靑山無數到江頭
나무숲의 색은 멀리 두약주와 잇닿았네 / 樹色遙連杜若洲
생황 소리 울리는데 날은 저물려고 하니 / 笙歌未歇天欲暮
돌아올 땐 한가로이 조는 새가 더 부럽네 / 歸來却羨閑眠鷗
흥덕상련(興德賞蓮)
연꽃 송이 누각 아래 무수하게 피어 있고 / 藕花無數滿樓底
연실은 또 고운 이가 씻을 필요 전혀 없네 / 藕絲不用佳人洗
맑은 향기 끝이 없고 바람 산들거리는데 / 淸香陣陣風細細
한 조각의 갈바람에 모시 적삼 차갑구나 / 一片秋涼欺白紵
취한 속에 술잔의 수 어찌 셀 수 있으리오 / 醉裏觥籌那可數
손잡고서 글 논하매 휘주조차 사양하네 / 把臂論文謝揮麈
연꽃잎이 지기 전엔 정말 보기 좋지마는 / 紅衣未落眞堪賞
내일 아침 미친 듯한 비바람을 못 견디리 / 明朝不耐狂風雨
종가관등(鍾街觀燈)
끝이 없는 연등에다 끝이 없는 집이거니 / 無盡燈燃無盡家
붉은 빛이 서로 쏘아 빛 흐르는 노을 같네 / 紅光相射如流霞
옥 끈에는 밝은 달의 구슬 낮게 드리웠고 / 玉繩低垂明月珠
옥 가지는 영롱한 빛 꽃 만들어 내는구나 / 瓊枝幻出玲瓏花
어둔 거리 환히 비춰 대낮처럼 밝게 하자 / 照破昏衢作明晝
구경꾼들 원숭이와 같이 뛰며 좋아하네 / 觀者喜躍如躁狖
도성 거리 악대 가며 태평곡을 울려 대매 / 九街歌吹樂昇平
오경임을 알려주는 종소리도 못 듣누나 / 不覺鍾傳五更漏
입석조어(立石釣魚)
큰 바윗돌 우뚝하게 물을 보며 서 있는데 / 巨石亭亭俯水立
백 경 넓은 맑은 못은 유리처럼 푸르구나 / 澄潭百頃玻瓈碧
한가로이 낚시 들고 바윗돌에 앉아 있자 / 閑把漁竿坐苔磯
물고기들 미끼 쪼며 제멋대로 희롱하네 / 游魚弄餌潛且躍
금제옥회 맛은 옥삼죽보다도 더 좋으며 / 金虀膾勝玉糝羹
향기론 술 철철대며 은 술병서 쏟아지네 / 美酒滿滿傾銀甁
잔뜩 취해 강가에서 달빛 속에 누워서는 / 爛醉江頭臥明月
저 유령이 술로 이름 삼았던 데 견주누나 / 準擬劉伶酒爲名
註: 한도 십영(漢都十詠)은 이승소가 서울의 경치 좋은 곳 열 곳을 읊은 시이다. 이 시들은 《속동문선(續東文選)》 권4 칠언고시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