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선배인 솔로몬에게 심히 크게 하시고 왕의 위엄을 주시며 이스라엘 모든 왕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승리와 형통 등의 실제와 누림들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크게 하시고 위엄을 주셔야 하며 뛰어나게 해 주셔야 하는 것이고, 실제로 그래야 가능한 것이며, 게다가 진정 그렇게만 된다면 그 어떤 형편과 상황들에서도, 그 어떤 위기와 불가능과 같아 보이는 현실과 실상들 가운데 있는 때에서 조차도 그 어떤 일이든지 선하고 복되며 기적적으로 얼마든지 나타나고 경험되며 성취되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아무나에게, 아무렇게나 일수는 없는 것으로 아래 본문의 솔로몬만 하더라도 역대하 1장 11~12절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게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라고 증거된 것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아래 본문의 시기에 솔로몬은 그 인생에 있어 가장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의 때라고 볼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일천번제까지 드리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공의로운 재판과 통치를 위한 지혜와 지식을 갈망함과 함께 천지만물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간구했을 정도의 믿음, 곧 그 어느 누구보다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대로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던 것이며..
바로 그 정도까지의 믿음 가운데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근원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온갖 은사와 응답들, 형통과 복들 등으로 채우시고 또 채워 주셨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찬미하고, 여러 모양의 경배와 예배들로 나아가며, 다양한 섬김과 헌신과 봉사들에도 참 열심을 내고, 더 나아가 특별한 헌신과 작정들을 하면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늘의 힘과 역사들을 사모하곤 하는데 그에 있어서의 모든 열납과 역사와 영광들에 있어서도 모든 전제와 기준은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참으로 어느 정도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가 생각 이상으로 깊이 직결되는 것이며, 심지어는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도 그러한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모든 전제와 기준, 관건과 통로 등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각 가정과 자녀, 일터와 학업, 교회와 직분, 건강과 평안, 진로와 목표, 이웃과 지역, 사회 각 영역과 나라 전체, 열방과 이 세대에 있어서의 샬롬과 형통들, 응답과 예비들, 부흥과 천국잔치와 같은 역사들 등에 있어서도 본질적으로는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의 신앙, 곧 어느 정도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가 전적으로 중요하고 완전히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은 다른 그 누구보다 오늘 이 시간 바로 나에게 있어서야 말로, 다시 말해 오늘 내가 그토록 사모하고 애쓰며 몸부림치고 있는 성공과 형통들, 평안과 행복들에 있어서도, 사실상 오늘 내가 올려 드리는 모든 종류의 예배와 작정들의 열납 뿐 아니라 기도 응답 한 번에 있어서도 조금도 다를 수 없는 이치와 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다름 아닌 말씀의 신앙, 곧 그 무엇보다 내가 오늘 얼마나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인가가 중요하고 또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 인류 역사의 모든 상황들 속에서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죄와 세속과 정욕과 원망과 우상과 자기 소견들 등으로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아니라, 또한 나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 등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필사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것이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인 것일 뿐 아니라 가면 갈수록 더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생생하고 충만하게 하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을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복과 흥왕들로 차고 넘치게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바로 그러한 하늘의 힘과 복과 역사들의 충만함과 강렬함과 풍성함들은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울 수 있게 하고 더더욱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되는데 있어 결코 작을 수 없는 역할과 통로가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비록 뒤에 돌이킨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기는 했지만 노년의 솔로몬에 있어 열왕기상 11장 9절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또한 11장 14절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등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솔로몬일지라도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인간인 이상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것이고, 진정 그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이상 단 한 시도 하늘의 힘과 은혜가 없이는 언제든 걸려 넘어질 수도 있는 것이며, 특히 자신의 힘이나 세상적 능으로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볼 수 있으며, 게다가 아무리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고 하늘의 힘과 복과 역사들을 생생하고 풍성하게 경험했다고 하나 심각한 죄악들 가운데에서도 변함없이 그렇게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는 것임을,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비의 심정으로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그 자녀들이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설 수 있게 되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은혜와 응답과 복들은 막으시곤 하고, 반대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심히 크게 하시고 또 왕의 위엄을 그에게 주사 그전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뛰어나게 하셨더라"
(역대상29:2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9월 12일(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