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서야 맛의 깊이를 제대로 알게 되는 음식들이 있다. 삭힌 홍어 같은 음식이다. 처음 입에 댔을 때는 냄새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사람도 자꾸 먹다 보면 묘하게 끌린다고 한다. 이런 음식을 두고 어떤 이들은 “인이 박혀야 제 맛을 안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발효음식은 중독성이 강해서 그렇다”고도 한다. 경상도에서 홍어에 비교할 만한 음식을 고르라면 바닷바람에 꾸덕꾸덕 말린 과메기를 꼽을 만하다. 10년 전만해도 경상도를 제외하곤 과메기의 이름조차 생소했다. 하지만 요즘은 서울서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 옛 방식 그대로 ‘원조 과메기’
‘원조 과메기’를 맛보기 위해 경북 영덕 창포마을에 다녀왔다. 과메기 하면 포항 구룡포인데 왜 영덕이 원조냐고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과메기의 고장은 포항이 맞긴 맞다. 하지만 요즘 과메기는 옛날 과메기와는 다르다. 요즘 과메기는 꽁치로 만들지만 원래는 청어로 만들었다. 청어가 잘 잡히지 않자 청어 대신 꽁치를 쓰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 말. 창포마을에는 반세기 전 방식대로 청어로 과메기를 만드는 집이 네 가구나 된단다.
강구항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영해면으로 달리다 만난 영덕읍 창포리 창포마을은 작았다. 해안에 집이 두어채씩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마을엔 대형 과메기 건조장이 따로 없다. 마을 해안도로 앞에 2~3가구가 4~5m 길이의 건조대를 세우고 청어를 널어놓았는데 양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마을 주민들이 업(業)으로 과메기를 ‘대량 생산’하는 곳은 아니었다.
“한 10여년 전부터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었는데 올해는 서너 집이 더 만들기 시작했지. 옛날엔 청어를 포항 가서 사왔는데 올해는 청어가 많이 나오는 모양이라.”
유외종씨(67)는 청어 과메기 맛이 꽁치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청어는 꽁치보다 몸집이 더 크고 기름진 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과메기 건조대 바닥엔 과메기에서 흘러내린 기름 자국이 뚜렷했다. 청어는 지방 함유 비율이 최고 20%에 이른다. 건조대에 말려놓으면 저절로 기름기가 배어나온다고 한다. 3~4일이면 마치 기름에 담갔다 빼낸 것처럼 반지르르해진다. 유씨는 배추쌈을 내놓으며 맛을 보라고 권했다. 고기 맛도 약간 차이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청어과메기가 꽁치과메기보다 더 고소했다.
# 꽁치보다 기름지고 몸집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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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과메기는 기름기가 많이 고소하다. | 바람도 중요하다. 과메기는 겨울 한철 찬바람에 1주일 정도 말린다. 창포마을은 바람이 거센 곳이다. 바로 뒷산에는 풍력발전단지가 있다.
길가에 놓인 청어과메기를 알아보고 사가는 사람들도 꽤 된다고 했다.
유씨와 창포마을 사람들이 청어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청어에 대한 향수와 어려서부터 맛봤던 과메기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60년대 이전에는 영덕 앞바다는 청어가 넘쳐났다.
“기자 양반은 그거 모르제. 일제 때만해도 청어기름으로 불을 켰어. 호롱불도 아이고, 그릇에 기름을 받은 뒤 거기에 명주실 박아 불을 키고 산기라. 자고 일어나면 콧속이 꼬실라져 새까매진다. 그만큼 흔하던 생선이었는데….”
유씨는 어릴 때 추억과 예전에 만들어 먹었던 청어과메기의 기억 때문에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몇 해 전만해도 포항 가서 청어를 구해왔는데 올해엔 구계항에서 잡은 것을 쓴다고 한다.
올해는 청어가 풍년. 아이러니하게도 청어가 돌아오자 값은 폭락, 사료로 쓴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청어는 돈 안되니 어부들이 누가 잡을라카나. 영덕게는 한 마리에도 10만원이 훌쩍 넘는데 청어과메기 한 두름 스무마리에 1만원이다. 누가 청어잡을라고 하겠나….”
# 여행지로도 손색 없는 마을
실제로 구계항에서 만난 어부들은 청어바리(청어잡이)는 돈 안된다고 했다. 꽁치에 밀려 이제 원조자리를 내논 청어는 찬밥 신세다. 그렇다고 꽁치가 예전처럼 잘 잡히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과메기 원료인 꽁치도 근해에서 나는 게 아니라 원양어선이 잡아온 것이다. 포항시는 “지난해 11월 과메기 원료로 부산 냉동창고에서 원양산 꽁치 101만 상자를 들여왔는데 2006년에 비하면 36% 정도 많은 것”이라고 했다. 해마다 20~30%씩 소비량이 늘어온 과메기는 지난해엔 4000t이 생산됐다. 원양산이 아니면 물량 대기도 힘들다고 한다.
과메기뿐 아니라 영덕엔 요즘 대게도 한창이다. 원래 대게는 11월부터 5월까지만 잡을 수 있다. 11~12월에 잡히는 대게는 살이 덜 찬 것이 많다. 설 전·후에 살이 단단하게 박힌다고 한다.
대게거리인 강구항에서 과메기 마을 창포마을까지는 해안도로도 아름답다. 동해안에서 바다와 가장 가깝다. 바로 도로 건너편이 출렁거리는 바다다. 태풍이라도 불면 길을 덮칠 것처럼 가깝다. 이런 길이 영덕 영해면 고래불 해수욕장앞까지 이어진다. 승용차로 20분 정도다. 강구항을 제외하고 청포마을엔 나이트클럽은커녕 왁자한 술집조차 없다. 굳이 과메기가 아니어도 여행지로서도 가볼 만한 곳이다.
길잡이 영덕까지 서울서 5시간 정도 걸린다.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안동IC를 거쳐 청송 영덕까지 가는 방법이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시간상으로는 중앙고속도로 대구에서 빠져 대구~포항고속도로를 탄 뒤 영덕으로 올라가는 게 더 빠르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 대구까지 간 다음 대구에서 대구~포항고속도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청어과메기는 설 이전까지만 나온다. 유외종씨는 풍차횟집(054-732-8539)을 운영한다. 일손이 달려 과메기는 메뉴에 없다. 대신 과메기는 사갈 수 있다. 한 두름 20마리에 1만원. 대신 껍질을 벗기거나 다듬어주지는 않는다. 택배로도 배달해준다. 다섯 두름까지는 택배비 4000원. 미역이나 상추, 파 등 쌈거리는 따로 싸주지 않는다. 옆집 부성수산(054-732-8798) 역시 청어 과메기를 판다. 강구항은 대게 거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대게집이 많다. 강구항에서 좌판을 하고 있는 조정애씨(010-6216-7962)는 대게를 거리에서 사서 ‘찜집’에서 쪄먹으면 더 싸다고 했다. 맛을 비교하기 위해 러시아산 킹크랩 2마리, 대게 4마리를 5만원에 샀다. 자세히 보니 다리가 일부 떨어진 것도 있다. 그래서 싸다. 골목에 있는 찜집의 찜값은 대게 값의 10분의 1. 자릿세는 1인당 2000원이다. 강구의 황포식당(054-732-8342)은 곰치해장국을 잘했다. 1인분에 1만원. 도루묵찌개도 잘한다고.
영덕 삼사해상공원 진입로 바로 옆에 동해해상호텔(054-733-2222)이 있다. 숙박비는 평일 2만9000원(2인 기준). 3명은 3만5000원이었다. 주말에는 5만~6만원 정도 한다고. 호텔 시설은 뛰어난 편이 아니다. 하지만 러브호텔에 들어가기 민망한 가족여행객들이라면 추천할 만한 곳이다. 다행히 TV에서 성인 방송도 안 나왔다. 인근에 모텔이 많다.
〈영덕|글 최병준·사진 박재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