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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자락 필운대 언덕 찿아가봅니다..오성과 한음의 백사 이항복 선생의 옛집터 필운대랍니다...비록 바위에 새겨진 흔적뿐이지만 이곳에서 느낌으로 선조님들 만나뵙게 되지요..암튼 이곳 필운대도 그렇게 이해하고 보아야될듯합니다.. 4 월 꽃피고 아름다운 따뜻한 며칠전 어느 봄날 카메라에 몇장 담았답니다..필운대 언덕에 꽃이랍니다..
아래 그림은 겸재 정선의 필운대에서 서울 장안을 내려다보고 그린 필운대에서 꽃구경이라는 작품이랍니다..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모든게 다 보이는군요..인왕산 자락 이곳 필운대 바위 언덕에서 꽃피는 봄날에 한양땅을 내려다 봅니다~~~~왼쪽 저 뒤편에 서울 남산이 보이네요..남산을 이곳에서 보면 왼쪽이 낮고 오른쪽으로 봉우리 그대로이고 중턱쯤 바위 묘사까지 정확히 묘사되어 있네요..애국가 가사에도 있듯이 남산위에 저소나무~~~뚜렷이 보이는군요..남산 뒤편으로 멀리 우면산 그리고 뒤편 중앙쪽으로 관악산이 보이는군요..활활 불타오르는듯한 산의 모습에서 옛 선조님들은 저곳 불의 기가 드세어서 경복궁을 세우면서 광화문 앞에 저 관악산의 불기운을 잡아먹으라고 해태상 조각하여 세워놓기도했듯이 정말 불타오르는듯한 관악산 모습 보이고 바로 관악산 앞쪽으로 남대문이 그려져 있지요..
오른쪽으로는 인왕산 자락이 지나고 인왕산 소나무 노송의 우직함이 돋보입니다..그리고 또 자세히 보시면 왼쪽 중간쯤에 검게 색칠한 부분이 경복궁인데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전 약 270년간 우리의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이 저렇게 황폐해져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불타 모두 없어진 이후로 270 년간이나 저렇게 방치되어오다가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복원하긴 했지만 얼마나 많은 반대가 있었는지도 주지할 대목이지요..당연히 궁핍한 재정에 너무 많이 돈이 들어가고 백성들이 많이 반대한다는 이유에서죠..결과적으로 경복궁 복원은 잘된 일이지만 그 옛날 200 여동의 크고 작은 전각들이 즐비했던 경복궁 지금 고작 경회루를 비롯 근정전 사정전 향원정 등등 20 여동정도밖에 복원하지 못하고 있지요..고증을 통해 더욱 완벽한 그옛날 정궁 경복궁이 태어나기를 염원합니다..이그림을 그렸을 겸재 정선이 그 당시에 본 경복궁 모습보고 얼마나 통곡하고 안스러워했을지 그림에서 그대로 나타나 가슴 찡하답니다...
서울 장안에 초가집 보이고 초가집이었지만 집집마다 예쁜 꽃들을 가꾸는 아름다움에 선조들의 미적 감각이 대단하구요..언덕위 도포 입고 통영갓쓴 선비들 보이고 바로 우리네 조상님들이십니다..가운데 2 분이 주빈으로 터잡고 계시고 주변에 풍경에 넋을잃고 아래를 바라다보는 선비님들~~~어린 동자를 데리고 언덕위로 오르는 2 사람 모습에 율동감 있구요..앞쪽 우측으로도 한무리의 사람 보이지요..소나무에 말고삐 메어놓고 휴식중인듯합니다..먹을것 짊어지고 왔을 저 말들 보니 다시한번 아름다운 봄날에 이곳 필운대 언덕 아련히 스쳐 지나가는 그옛날 풍경이네요.....
꽃놀이 나온 옛 선비님들께서 인왕산 필운대 언덕에서 한양을 내려다 보며 시를 읊고 있는 상상이 갑니다..여기 이 계단을 올라가서 바라다 보면 위의 그림의 그 느낌 아련히 떠오르지요..
만물이 생동하는 봄 꽃구경하며 놀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네요..요즈음 서울에서는 남산 벚꽃놀이 여의도 벚꽃놀이 또는 고궁의 뜰에서 꽃구경들하지만 그 옛날 조선시대 한양성 사람들이 즐겨 갔던 봄 놀이 명소 당연히 바로 이곳이었네요..필운대 바위언덕
배화 여자 대학교.고등학교 .중학교..배화 이름하여 아름다운 꽃동산 옛님들의 꽃놀이 동산 필운대 언덕이네요..
오래된 옛 건물도 보이구요..꽃들은 가득하고 산새 소리 아름다운 ...햐~~풍류객이 시한수씩 읊었다지요..
암벽 가운데 새겨진 한시 이항복의 후손 이유원이 고종 10년 이곳에 들러 조상의 자취를 둘러 보고 느낌을 적은 것으로
우리 조상 옛집에 후손이 찾으니.... 我祖舊居後裔尋 // 푸른 솔과 돌 벽에 흰 구름 깊네 .... 蒼松石壁白雲深 // 남기신 풍모 백년 넘게 오래이니 .... 遺風不盡百年久 // 노인장의 의관은 예나 지금이나 ..... 父老衣冠古亦今 // 계유년 월성 이유원이 백사선생의 필운대에 제하다...癸酉月城李裕元 題白沙先生弼雲臺 //
그리고 또하나 조선후기 가곡원류라는 가곡에 보면 다음과같이 노래하고 있지요..상상으로 느껴 보십시다.... 복숭아꽃 흩날리고 녹음은 퍼져온다 // 안개비 흩뿌리고 꾀꼬리가 우는구나 // 서로 술잔 권할 제 때마침 // 단장한 미인이 술병 들고 오는구나... 어떠하세요 ? 느낌이 조금이라도 느껴지시나요 ??? 그대께서도 아주 조금은 기분이 느껴지셨겠지요...
지금도 서울에 도로명에는 필운대길이라는 도로 이정표가 있는데 요즈음 보아도 느낌이 조금은 와닿지요..필운대라는 글씨는 백사 이항복 선생의 친필이라하는데 정확한것인지는 모르겠네요..이곳 바위 언덕에서 술에 취하고 꽃향기에 취하고 복사꽃향기 진동하는 무릉도원이었을테지요..
그랬던 이곳이 지금은 자동차 소리에 복잡한 회색도시 건물에 꽉막혀 숨막혀오네요..상전벽해랍니다...이곳 언덕에서 봄바람 소나무향기 진달래꽃 계곡에 맑은 물소리 저 아래로 펼쳐지는 서울장안의 모습 경복궁이 내려다 보이고 북악산 인왕산 낙산 그리고 남산 저 멀리로는 용마산 우면산과 관악산이 빙 둘러져 있는 절경인것을 ~~~~~아아~~다시 돌아갈수 없는 볼수없는 그 풍경 꿈에서나 만나야겠네요~~~~
그리고 또하나 이집 이항복 옛집은 원래 행주대첩의 명장 권율장군의 집이었지요..그런데 권율장군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이항복 선생에 시집을 왔으니 권율장군이 장인이 된것이고 장인은 이집을 사위인 이항복과 딸에게 그냥 넘겨주면서 잘살라고하셨답니다...뭐 이런집 장만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겠지요..
필운대는 지금 아아~~이 일을 어째 배화 여고 교실뒤편 청소 도구함 옆에 이렇게 사진보다 실제로 가 보시면 더 안스러워 못봐 주겠습니다..실망스러웠지요..그 아름다웠던 옛날 풍경 다 어디 사라지고 초라한 지금의 모습에서 안타까움만이 가득했답니다..이곳 필운대 바위 예전에는 아름다운 봄놀이 장소였었는데..서울장안의 최고의 봄꽃놀이 명소~~~
배화의 설립자이신 조세핀 여사님의 흉상도 자리하고 있는 필운대 언덕입니다..
이 건물 뒤에 조금전 저 위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답니다..관심이 없다면 전혀 볼수 없는 위치에 있어서 좀 뭐하긴 하네요..
저위 옛그림 겸재 정선의 그림이 바로 이곳 어디쯤에서 그렸답니다..남산 관악산 서울 장안이 내려다 보이는 하지만 지금은 빌딩으로 가득하네요..날씨가 흐려 사진이 좀 흐려 시내가 잘 안보이는군요..
필운대 암벽 이항복 선생의 집 뒤안이었죠..지금 이곳에는 글씨 새겨진 바로앞 집터에는 배화여고 교정이 자리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배움터로 변해 있지요..그옛날 사대부 선비들이 봄꽃놀이를 즐겨왔던곳이어서 저 들녘에서도 그당시를 살다가신 옛님들의 느낌과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리라 마음먹고 찿아왔지만~~~
저멀리 북한산 보현봉 문수봉 등등 고봉들이 병풍 두른듯이 서 있고 바로 앞 북악산도 우뚝 서 있네요..
필운대 언덕의 꽃들은 가득하고 배화 여고 교정이 그 옛날에는 이항복 선생의 옛집이요..또한 권율 장군 집이기도 했던 이곳이랍니다..
조선시대 유득공 선비의 시한수입니다.. 살구꽃이 피어 한껏 바빠졌으니 ...... 육각봉 어구에서 또 한차례 술잔을 잡네...... 날이 맑아 아지랑이 산등성이에 아른대고...... 새벽바람 불자 버들꽃이 궁궐 담에 자욱하구나....... 새해 들어 시 짓는 일을 필운대에서 시작하니........ 이곳의 번화함이 장안에서 으뜸이라. .......... 아스라한 봄날 도성 사람바다 속에서........... 희끗한 흰머리로 반악을 흉내내네. ......
필운대 언덕에서 바라보니 북악산이 우뚝이 솟아 있고 지금의 청와대 푸른 기와집이 가까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보여집니다..
필운대 꽃구경이 서울 장안에서 가장 이름난 명소였기에. 정조 임금께서도 시한수 지었는데 음미해 볼까요 ? 백단령 차려 입은 사람은 모두 시 짓는 친구들이고 /// 푸른 깃발 비스듬히 걸린 집은 바로 술집일세 /// 혼자 주렴 내리고 글 읽는 이는 누구 아들인가 /// 동궁에서 내일 아침에 또 조서를 내려야겠네 ///
한세대 앞선 시인 신광수는 도화동에서 복사꽃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필운대에 올라 살구꽃을 구경하고서 필운대 꽃구경이 장안의 으뜸이라 /// 雲臺花事壓城中 하고는 삼십년 전 봄 구경하던 곳을 /// 다시 찾은 오늘은 백발 노인일세 三十年前春望處,再來今是白頭翁 /// 라구요...
필운대는 성안 인왕산 밑에 필운대 밑에 있는 도원수 권율 장군의 집이 오성부원군 이항복의 처갓집이므로 그는 그곳에 살면서 스스로 별호를 필운 弼雲 이라고 지금 바위벽에 새겨져 있는 ‘필운대 弼雲臺 석자가 바로 오성부원군의 글씨랍니다... 필운대 옆에 꽃나무를 많이 심어서 성안 사람들이 봄날 꽃구경하는 곳으로는 먼저 여기를 꼽는데 시중 사람들이 술병을 차고 와서 시를 짓느라고 날마다 모여들어 흔히 여기서 짓는 시를 필운대 풍월 이라고 한다. 거의 비슷 비슷한 시가 나올수밖에요..
그 옛날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이며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했을 풍수 사상가며 이성계 정도전 태종 임금이신 이방원과 그의 책사 하륜 등등 대원군 이하응도 이곳 인왕산에 올라 경복궁 내려다보며 눈물과 통곡소리 울음을 그치지 않았구요..아픔의 역사가 너무 많아서랍니다.. 아아~~역사의 몇백년을 거슬러 시간 여행을 하고있는 이시간~~~
황학정 활쏘기 연습하던곳이지요..
필운대 언덕 인왕산 아래 이렇게 감투바위도 있답니다 ..벼슬 자리에서 밀려나 그 서러움을 이곳 바위에 앉아 항양 서울 내려다 보고 많은 눈물 흘렸다고 하네요..예나 지금이나 벼슬자리는 좋긴 좋은가보네요..
청와대도 보이고 그 앞으로 경복궁도 희미하지만 보여집니다..
인왕산 정상 치마바위도 올려다 보구요..
아름다운 우리의 수도 서울 새삼 느껴지네요..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닐런지요 ?
인왕산 청풍길 주변이지요..조만간 청풍계 자료 준비해 올려보겠습니다..겸재 정선의 청풍계 그 그림의 무대를 직접 찿아가 보고 지금은 또 어떻게 변했는지 제 자신도 놀라고 또 놀라웠답니다..
인왕산 저 바위는 모든걸 다 알고 있을테지요..지나간 모든 역사의 진실을요..
청풍계..백세청풍 글씨가 지금도 남아 있는 청풍계가 보여지네요..아름다운 봄날들 되세요..들녘에서 씀..
시 짓고 술잔 기울이던 옛님들 생각 저절로 떠 올랐답니다..그림 그렸던 겸재님의 숨결도 물론 느껴 보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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