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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누구세요?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 계시된 것 이상은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상고해 보면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고유한 성품을 가지신 반면 인간과 공유하는 성품도 갖고 계십니다.
전자를 하나님의 신격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하나님의 인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신격
사람에게는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생각이나 행동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유한한 인간의 분량 안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상고할 때에도 사람의 분량 한도 내에서밖에 생각 할 수 없으므로 이해의 폭이 제한을 받게 됩니다. 이해되지 않는 사항은 모두 부정하는 태도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지는 합당한 태도는 아닙니다.
만일 사람의 두뇌로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창안해낸 하나님이지 참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관한 문제는 사람의 이해 한계를 넘어서는 사항이므로 사람이 궁구하여 깨닫거나 힐문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닙니다.
시편 139편 6절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로마서 9장 20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⑴ 스스로 계시는 분 (자존성)
사람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족보를 만들었지만, 성경은 최초의 조상은 아담이고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출발점이 있지만 사람을 만든 하나님의 시작은 언제 누구로부터이겠습니까?
이 궁금증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논리는 이해나 증명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입니다.
하루살이에게 내일 또 만나자고 한다거나 베짱이에게 내년 봄에 다시 만나자고 하는 것이 의미가 없듯이 유한한 인간의 머리로 무한하신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것은 의미 없는 힐문에 불과합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⑵ 언제나 계시는 분(영원성)
만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며, 생물은 한정된 생을 누리고 사라져 버리며, 인생도 예외일 수 없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전제로 한 찰나를 이 땅에서 수고로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영원 무궁하신 분이시며 이는 하나님만 소유하신 그 분의 고유한 성품입니다.
시편 90편 2절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 느헤미야 9:5; 신명기 33:27
⑶ 모든 것을 아시는 분(전지성)
20세기는 과학주도의 시대입니다. 특히 정보처리 체계는 놀라운 발달을 거듭하여 이제는 전세계가 한 정보망으로 연결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모르는 것이 거의 없다할 정도로 고도의 문명을 이룩해 놓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어린 아이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셔서 모르는 것이 전혀 없으십니다.
그분은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 되십니다.
사람들의 가장 뛰어난 것도 하나님의 가장 못한 것보다 못합니다.
로마서 11장 33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역대상 28:9; 요한복음 16:30; 요한일서 3:20; 골로새서 2:3
⑷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신 분(전능성)
현대의 수학적, 물리·화학적 논리는 생산적인 업적으로 화하여 불편한 생활 환경을 개량한다던가, 천체의 운행 원리들을 밝혀 우주시대를 열었으며, 최첨단 의료 장비들은 인체의 구석구석을 해부하여 질병의 근원을 찾아 치료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없어도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을 듯 과학의 우산 아래서 평안한 내일을 꿈꾸고 있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잠시 동안만 중지하신다면 인간이 쌓아올린 업적은 산산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우주 만물이 공연히 운행되는 줄 알아도 그것을 붙들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만물은 1분 1초도 정상적으로 유지 운행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십니다. 그분은 원하시기만 하면 못하실 것이 전혀 없으십니다. 다만 비정상적인 것들이나 무익한 것들이나 악한 것들은 그것을 행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분의 특이한 성품상 영원히 행치 않으십니다.
시편 50편 1절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마가복음 10장 27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 히브리서 1:3; 시편 91:1; 요한계시록 1:8
⑸ 동시에 어디에나 계시는 분(편재성)
시공을 초월한다는 말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함입니다. 사람은 두 곳 이상의 장소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어디에나 계셔서 그 장소의 상황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는 파멸이 있을 뿐입니다.
예레미야 23장 2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 잠언 15:3; 열왕기상 8:7; 시편 139:7∼10
⑹ 변함이 없으신 분(불변성)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는 게 순리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이나 가치관, 법, 사상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란 없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변화무쌍한 세상의 운행원리를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날씨가 변하듯 사람의 마음도 변하는 것이 세상이치이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여상하시어 변함이 없으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7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시편 102편 27절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 사무엘상 15:29; 히브리서 13:8; 말라기 3:6
⑺ 실수가 없으신 분(무흠성)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삶을 살아간 성인 군자라 할지라도 무흠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면 허물투성이요 오류와 편견과 자존과 실수라는 원치 않는 굴레 속에서 고민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물며 범인들이야 사소한 시비로부터 중대한 과실에 이르기까지 악하고 추한 본성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근본 자체가 악하기 때문에 시편 기자는 "내가 죄악 중에서 태어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사실 완전이라는 빛으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비춰본다면 그가 외부적으로 노출된 범법함이 없다 할지라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수 만가지 죄성은 끊임없이 활동하여 기회를 엿보아 뛰쳐나오려고 안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 요한일서 1장 8절에는 "스스로 죄가 없다고 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범죄는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죄로부터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사람과 다르므로 범죄함이 없다 할지라도 죄 자체를 미워하시며, 또 사람의 기준으로 죄라 일컫지 않는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단죄를 받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죄인 아닌 자가 없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홀로 완전하시고 흠이 없으십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허물로 책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거룩하시므로 그분의 특성상 죄를 지을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 가운데 거하는 자는 하나님을 찾아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할 수 없듯이 빛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신명기 32장 4절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민수기 23장 19절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니시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리로다."
* 요한복음 8:46; 고린도후서 5:21; 히브리서 4:15
2.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인격적인 성품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신이 완전하시니 사람들도 완전하기를 요구하시는 성품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죄를 드러내는 성품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의로운 기준에 사실상 이를 수 없으므로 은혜를 베풀어 구원의 통로를 마련하는 용서하는 성품입니다.
⑴ 인간의 죄를 드러내시는 성품
하나님은 빛이시므로 그분에게는 어두움이란 조금도 없으십니다. 완전하다, 완벽하다, 티나 주름잡힘이 없다. 무흠하다는 것은 깨끗하여 조금도 더러움이 없는 속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불완전하고 때가 낀 인간의 심성과 거룩하고 고결한 하나님의 성품과는 근본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지고한 하나님의 완전성 앞에서는 인간의 허물은 자연적으로 드러나고 맙니다.
① 거룩(성결)하심 : 성스럽고 깨끗하며 속되지 아니하고 모든 불의에서 떠난 상태를 거룩이라 합니다. 인간은 그 근본이 죄악으로 물들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거룩성에는 사실상 도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성에 도달해 보려는 최선의 노력 가운데, 그 자체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도록 하려는데 있으며 하나님만이 홀로 무궁하고 완전한 거룩성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사무엘상 2장 2절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욥기 4장 17절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 레위기 19:2; 여호수아 24:19; 시편 111:9; 이사야 5:16
② 의로우심 : 굽거나 휘거나 불투명하지 않으며 바르고 의젓하여 틀림이 없이 옳은 것을 의롭다고 합니다. 사람의 행실이야 일부러 가장하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속은 얼마나 굽고 바르지 못하며 정직하지 못한지요?
힘써 자기 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자존심을 세우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운 빛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누리에 비취시며 불의한 자로 부끄럽게 하시며 의롭지 못한 자들은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물리치고 계십니다.
시편 7편 11절
"하나님은의로우신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시편 98편 9절
"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 저가 의로 세상을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
* 스바냐 3:5; 이사야 45:24
③ 진실하심 : 하나님은 진실무망하신 분이시므로 참되시고 진리가 되시며 그분에게는 거짓 됨이란 조금도 없으십니다.
권모술수를 써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한다던가, 뇌물을 들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성사시키는 부정한 행위, 인면수심의 비도덕적 처세술, 언행 불일치의 기만적 사상들은 진실된 것이 아닙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한 것은 꼭 지킨다던가, 힘들더라도 법에 저촉되는 것은 하지 않는 것, 자신의 마음을 가식 없이 나타내고 실천하는 것, 잔뜩 부푼 허풍을 빼버리고 참된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진실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은 상황에 흔들리지 않으며, 모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진실은 맑은 물소리와 같아서 가까이 하는 이들의 기분을 유쾌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망령되게 행치 않으시므로 그분의 모든 것은 진실 그 자체입니다.
로마서 3장 4절
"사람은 다 거짓되대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시편 33편 4절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 느헤미야 9:33; 신명기 32:4; 다니엘 4:37
④ 정직하심 : 진실과 정직은 진리나 윤리 도덕적 면에서 거짓됨이 없이 충실하고 견고한 품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사에 있어서도 진정한 지혜의 처세술은 정직에 그 바탕을 둡니다. 부정한 방법, 거짓말, 허위, 과장 등은 정직한 행동이 아닙니다. 거짓으로 성사된 일들은 탄로가 나지 않았다 해도 그 일을 행한 자의 가슴을 계속 짓누르고 옥죄이며 두근거리게 합니다.
사면초가처럼 양심은 사방에서 그를 향해 손가락질합니다.
그는 죄의 포로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황폐의 늪을 헤매게 되며, 양심의 자유를 박탈당한 속박의 삶 속에서 작은 소리에도 크게 놀라게 됩니다. 이처럼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자 같고, 건강한 자 같으나 병든 자로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시므로, 어두운 곳에서 은밀히 말씀치도 않으시고, 헛된 경배를 받기도 원치 않으시며 정직하게 행치 않는 자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물리치고 계시지만 하나님의 정직의 저울에 달려 합격할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으므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지 않고는 그분께 가까이 나아갈 자는 아무도 없게 됩니다.
이사야 45장 19절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
* 호세아 14:9; 시편 25:8; 예레미야 9:24
⑤ 공의로우심 : 공의라는 말은 주로 심판과 관련해서 사용되어지는 말입니다. 심판, 재판, 판단, 분별 등은 모두 시시비비를 가리는 말들입니다.
재판관이 법대로 재판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국가를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시고 진실하시므로 불의를 행치 않으십니다. 선악간의 판단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제재를 가하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정직한 마음으로 재판하려고 마음먹어도 능력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공평치 못한 판결을 내릴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만물을 꿰뚫어 보시고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므로 절대로 실수가 없으십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분의 공의로운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지 못한 티끌만한 죄도 낱낱이 드러나는 그 날은 불신자들에게는 유구무언의 참담한 심판장이 될 것입니다.
시편 9편 7,8절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였도다.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 신명기 32:4; 욥기 34:12; 데살로니가후서 1:5
⑵ 관용을 베푸시는 성품
인간 스스로는 어느 누구도 어떠한 방법으로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인생들의 불쌍한 모습에 대한 대책으로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선하심을 베푸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관대한 용서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용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치 못할 죄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 하나 용서되지 않는 죄가 있다면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믿지 않는 불신의 죄 뿐입니다. 아무리 사랑과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이시라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속수무책임을 아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9절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① 사랑하심 : 사랑에는 조건적인 사랑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웃을 위하여 진실된 마음으로 넉넉한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도 많지만, 인간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고 때로는 조건적인 사랑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푸셨습니까?
사단이 옭아맨 죄의 오랏줄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예리한 칼날로 끊어버리시고 사랑의 밧줄을 드리워, 잡는 자마다 한결 같은 구원의 혜택을 부여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눈 한번 좌우로 돌리지 아니하고 곧은 길만 걸어간 착한 행실의 사람으로부터, 세상에 죄라고 이름지어진 크고 작은 모든 악한 일을 자행한 무법자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 생명을 부여받아 태어난 모든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원의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이 사랑은 사람으로서는 감히 모양도 낼 수 없는 무조건적이고 지고지순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일서 4장 10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한복음 15:13, 예레미야 31:3, 고린도후서 5:14, 갈라디아서 2:20
② 은혜로우심 : 은혜는 무상으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값을 지불하고 받는 것은 거래이지 은혜라 할 수 없습니다. 죽을 죄에 해당하는 인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서해 준 하나님의 마음은 은혜를 베푸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죄 없는 아들을 희생시키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사람들이야 은혜를 베푼 후에, 은혜 받은 사람이 보답하지 않으면 배은망덕한 자라고 힐난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기만 하시고 보은치 않는데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십니다. 단지 그 은혜를 받아 누리기만 하는 것으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로마서 3장 23,24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출애굽기 15:13, 33:19; 시편 84:11; 에베소서 2:8,9; 디도서 3:7; 디모데후서 1:9
③ 긍휼히 여기심 :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불쌍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주린 자, 목마른 자, 병든 자는 가엽고 불쌍한 자들입니다. 죄의 쇠사슬에 매여 영원한 멸망의 고통을 당하는 자는 비길 데 없이 딱하고 불쌍한 자들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도 하고, 자기 자신에게 몹쓸 짓을 행한 자들에게까지 관대한 용서를 베풀기도 하지만 지속적인 적대행위 앞에서는 긍휼의 한계를 드러내고 맙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고는 긍휼은 일과성으로 끝나기 십상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말할 수 없는 패역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들을 보호하시는 긍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치르고 죄의 형벌을 모두 담당한 무한대의 긍휼.
하나님의 가슴은 너무도 넓고 넓어 품지 못할 악한 죄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사람 사랑하심의 극치입니다.
에베소서 2장 4,5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호세아 11:8; 느헤미야 9:31; 시편 25:6, 145:9; 예레미야애가 3:22; 로마서 9:14∼16; 야고보서 5:11
④ 자비하심 : 자비라는 말은 불쌍히 여기는 측은함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자비를 베푸는 동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긍휼히 보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자비롭다는 말 속에는 아무리 딱딱하고 거친 가슴도 녹이지 못할 일이 없다는 포근함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인간의 가슴에 굳게 박혀있는 죄의 응어리를 녹여 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디도서 3장 4,5절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시편 78:38; 신명기 4:31; 출애굽기 34:6
⑤ 선하심 : 인간에게는 선악이 공존하지만 하나님은 선 그 자체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선행의 사다리로 하나님의 수준에 도달해 보려고 하지만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시기와 질투와 분냄과 그로 인한 범죄들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자비의 선물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죄로부터 완전하게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기초는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역대상 16:34; 요한복음 10:11; 나훔 1:7; 시편 100:5
⑶ 그 외의 인격적인 성품
① 인자하심 : 로마서 11장 22절
② 온유하심 : 사무엘하 22장 36절
③ 겸손하심 : 마태복음 11장 29절
④ 염려하심 : 신명기 32장 26,27절
⑤ 근심하심 : 창세기 6장 5,6절
⑥ 한탄하심 : 창세기 6장 5,6절
⑦ 질투하심 : 출애굽기 34장 14절
⑧ 인내하심 : 로마서 3장 25절
⑨ 기뻐하심 : 예레미야 32장 41절
⑩ 분노하심 : 신명기 9장 19절
⑪ 맹세하심 : 이사야 45장 23절
⑫ 칭찬하심 : 고린도전서 4장 5절
3) 하나님의 인체적인 표현들
⑴ 등 : 출애굽기 33장 23절
⑵ 손 : 민수기 11장 23절
⑶ 발 : 시편 8편 6절
⑷ 눈 : 욥기 25장 5절
⑸ 코 : 시편 18편 8절
⑹ 입 : 신명기 8장 3절
⑺ 귀 : 시편 5편 1절
⑻ 얼굴 : 시편 4편 6절
4)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
사람의 일생은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의식주의 다양함이나 기호에 맞는 물건의 선택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엿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선택의 자유로 인해 얻어진 결과의 열매를 수용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인생 여정이 순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지만 어떤 상황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출생에 관한 문제는 전혀 자신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일상 생활 가운데서도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을 허다하게 겪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비추어 보아서 어떤 불만스러운 것이나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길 때,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따질 수 있는 말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9장 1∼3절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은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이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 허리를 낮추고 겸손히 엎드려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왜 이렇게 지었느냐고 불평한다든지 차원 낮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을 향해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게 되리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진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욥 4:8,9).
로마서 9장 20,21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욥기 35장 6∼8절
"네가 범죄한들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뿐이니라."
* 이사야 10:15, 29:16, 40:15∼17; 예레미야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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