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계의 이견이 분분한 가운데 17일 처음 시행된 성분명처방 시범사업. 의·약사들은 환자 눈치 보느라 조심스러웠고 환자들은 용어조차 몰라 어리둥절, 결국 종전대로 제품명 처방을 원했다.
이에 대해 성분명처방을 강하게 반대해온 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환자들에게 폐혜만 잘 설명하면 사업을 저지할 수 있다"며 내심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시행 이틀을 맞은 날, 성분명처방이 시행되고 있는 국립의료원과 의료원 인근 약국을 돌며 환자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대다수 환자, "성분명처방이 뭐야?"= 18일 오전, 만성적인 위염으로 외래진료를 받았다는 김모(38세·자영업) 환자는 '성분명처방을 원하냐, 그렇지 않냐'는 의사의 처방에 "설명을 들었는대도 무슨 말인지 몰라, 이전대로 처방전 발급을 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의사가 성분명처방 대상 환자라고 주지하고, 기존처럼 상품명처방을 받을 지 성분명처방 여부를 물었으나 이전이 문제가 없을 것 같아 그대로 처방해 달라고 했다고.
실제로 국립의료원 의료진들도 "성분명처방 시범사벙에 사용되는 약들은 큰 부작용이 없고 위험성이 없는 약들로 안심해도 된다. 상품명이 달라도 약의 효능이 동일하다"며 성분명처방을 설명하고 있지만 환자들의 반응은 무관심했다는 평이다.
환자들이 성분명처방이라는 말 자체도 모르는 데다, 의사들이 반대하고 나선다는 것으로 인한 막연한 불안감도 적지 않은 듯 했다.
아스피린을 성분명으로 처방받았다는 이모 환자(44세)는 "아스피린 하면 바이엘 아니냐"며 "뭐 다른 게 특별한 게 있겠냐 싶었고, 괜히 먹던 약 안 먹으면 불안할 것 같아 약사에 그렇게 요구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 환자는 "성분명처방이라는 말을 오늘 의사에게서 처음 들어봤다"면서도 "약사 말 들어보니 같은 효과약을 더 싼 약으로 살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됐다"며 자주 아픈 환자에게는 이득이지 않냐고 반문했다.
국립의료원 측에 따르면 시행 첫날인 17일 하루동안 성분명처방에 해당되는 외래환자 158명 가운데 성분명 처방을 선택한 환자는 23명(14.6%)에 그쳤다.
결국 나머지 135명의 환자들은 종전대로 제품명의 처방을 원한 것으로 분석돼, 약 85%의 환자가 성분명처방을 기피한 것으로 분석됐다.
◇의료진, 약사도 환자눈치 급급= 이처럼 환자들이 성분명처방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는 경우가 드물자, 국립의료원 의료진과 인근 약국 약사들도 모두들 환자들에게 우선 성분명처방을 설명하기 바빴다.
성분명처방이 의사와 약사가 강하게 주장할 수 없고 환자에게 선택권을 준 만큼, 환자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
국립의료원 측 한 내과 스탭은 "환자들이 성분명처방을 제대로 인지하기 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며 "환자에게 일단 제대로 설명하고 인지토록 해야지 의사가 성분명처방을 권할 수는 없지 않냐"고 전했다.
이어 이 스탭은 "환자들이 생각보다 성분명처방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환자의 증상보다 성분명처방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 길었다"며 "환자 한명 볼 시간이 배로 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의료진은 의료진대로 성분명처방 자체를 설명하느라 바빴고 약사들은 같은 성분명 가운데 가격 별 제품을 설명하느라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였다.
국립의료원 인근 약국 약사는 "성분명처방을 받은 환자는 극소수로 그렇게 조제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아니다"면서도 "같은 효과를 보이는 데 가격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을 보고 환자들이 놀라는 경우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약사는 "현재는 성분명처방에 대해 의사도 조심스러워하고, 환자들도 몰라서 피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동일성분 제품명 따라 가격 차이를 설명하느라 더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의료계, 환자설득으로 성분명 저지=이처럼 환자들이 성분명처방 자체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분명처방의 위해성 등을 강조하는 방안이 사업 저지에 효과적이라는 것이 의료계의 분석이다.
이에 극단적인 휴업 투쟁 대신 환자들을 설득해, 환자들 스스로 성분명처방을 거부토록 하겠다는 것.
의협의 한 관계자는 "시행 첫날 85%의 환자들이 종전대로 제품명 처방을 받은 것만 봐도 환자들이 성분명처방을 기피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의료원 측도 이런 참담한 결과를 거울 삼아 조속히 시범사업을 중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이제 남은 것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성분명처방 문제를 꾸준히 알리는 것"이라며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대국민 홍보전을 쉬지 말고 알려야 조기에 시범사업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국립의료원 측은 시행 첫날은 시범사업에 대해 궁금해 하는 여론이 많다고 판단 처방 결과 건수를 공개했으나, 당분간 성분명처방결과는 공개하지 않기로 잠정 결정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