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림님, 안녕하세요?
코로나로 인해 뜻하지 않게 은퇴한 후 친구의 시골 빈집으로 귀농했다가 여의치 않아 지금은 잠시 쉬며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귀농 희망자입니다. 며칠전 카페 글들을 보다가 오림님의 사연이 마음에 닿아 글을 드립니다.
오래 전, 지리산둘레길조성사업과 전라남도 한옥행복마을 컨설팅 업무 차 지리산 일대를 답사하던 길에 오림님의 양촌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위성지도를 통해 둘러보니 발전된 모습에 다행스럽고 반가웠습니다.
저를 소개하자면, 61년생으로 시골출신입니다. 직업은 광고 카피라이터와 문화기획자였습니다. 시군 지자체나 기업의 정부지원사업기획서, 용역 입찰제안서, 사업계획서 등을 작성하고 디자인 도움을 받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ppt작업을 주로 했습니다. 마을만들기와 마을기업, 브랜드개발, 6차산업, 소도읍가꾸기, 전시, 축제기획 등의 일들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주말이면 조경과 농업에 종사하신 아버지를 도와 사과, 멜론 , 수박, 참외, 오이, 고구마 등 다양한 특용작물 재배 경험이 있고, 과수 전지나 삽목도 해보았고, 평소 산야초에도 관심이 많아 귀농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또한 기후위기와 농촌고령화, 식량자원의 무기화라는 문제 앞에서 농촌과 농업은 지켜져야 하고 기회가 있는 분야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소멸위기에 처한 농촌. 그래서 도시민의 귀농귀촌을 통한 농촌마을활성화는 지자체마다 추진하는 방안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는 어려운 난제들이 앞을 가로막아 성과는 크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저는 여기서 귀농만 놓고 얘기해보겠습니다. 귀농과 귀촌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귀촌은 단순히 거주지를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가는 개인적인 일로 이사를 왔다가 싫으면 다시 되돌아 가면 그만이지만 귀농은 도시인이 농촌에 정착하여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전문직업이고 생업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시작할 수도 그만둘 수도 없는 게 귀농입니다.
쉽게 몸담을 수 없는 귀농, 무엇때문일까요? 도시민이 귀농귀촌을 망설이는 이유에 대한 전라북도의 설문조사에는 경제소득, 주거, 문화생활, 의료, 지역민 텃새, 경험부족, 가치관 등 많은 이유들이 들어있지만 저는 모든 것은 경제에 있다고 봅니다. 부자는 못되더라도 먹고 살만큼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게 우리 농업의 현실입니다. 농약, 농기계, 비료 등 가격이 정해진 농자재를 소모해 농산품을 생산해도 그만한 댓가를 얻을 수 없습니다. 농산물 가격은 항상 불안정하고 판로도 어렵습니다. 소득이 불확실한데 평생 마련한 아파트 팔아서 땅 사고 집짓고 기술도 경험도 없는, 더구나 노동을 해야하는 농사에 뛰어들 바보는 없습니다. 이 바보들을 똑똑하게 해줄 수 있는 농촌마을이 있을까요?
아직 한참 더 일할 수 있고 벌어야 하는 5~60대 은퇴 남자들, 도시에서 할 일이라곤 아파트 경비원이나 공사장 1일 근로자지만 자리도 없고 육체적으로도 쉽지 않습니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놀기에도 지칩니다. 취미활동이나 친구들을 만나려 해도 조금 남은 통장이 자꾸 줄어들어 더 늙어가는 내일이 걱정됩니다. 이런 분들이 왜 농촌으로 가지 않을까요? 아니 왜 못오는 걸까요? 농촌은 일손이 부족해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못짔겠다는데....
양촌마을이 추구하는 공동체라는 방향은 옳습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어떠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목표와 비전과 내용이 확실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경제적인 문제 -땅 사고 집짓지 않아도 어느정도 소득이 보장되는- 를 해소해주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향촌마을 공동체가 귀농자들의 직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대부분의 귀농희망자들은 도시경쟁력을 잃은 은퇴자면서 저축이나 연금 등 노후 소득이 낮고 시골출신의 소자본가가 많습니다. 아내와 가족들의 반대에도 부딪쳐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소득 걱정 없이 모여 일할 수 있는 양촌리 은퇴자 생산공동체 시범마을은 좋은 대안입니다.
양촌리 은퇴자 생산공동체 시범마을에는 옷가방만 들고 가도 됩니다. 약간의 자본을 가진 사람은 양촌농업법인에 지분투자를 하고 배당금을 받습니다. 내 땅을 갖고 싶은 사람은 땅을 살 수 있고 직접 농사를 짓거나 법인 공동농장에 임대 지분투자를 할 수도 있습니다. 집을 지을 재력이 있는 사람은 지을 수는 있지만 당분간은 굳이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귀농인에게는 집을 빌려줍니다. 빈집을 고치거나 숙소를 지어 무료로 제공합니다. 단독주택은 아내와 함께 귀농하는 사람에게 우선 배정됩니다. 모든 귀농인은 자기에게 맞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농사지을 땅이 없는 사람은 농산물가공작업장이나 공동농장에서 일하고 임금을 받습니다. 자기 땅을 기진 사람은 직접 농사를 지어도 되고 다른 귀농인을 인력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단 모든 귀농인은 최소 1년간 농사교육과 실습을 받아야 하며 이수 후에야 독자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농작물은 양촌농업법인이 판매, 가공하기 위해 지정한 품목을 지어야 하며 양촌마을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품은 전량 법인이 수매 후 가공 판매합니다. 수매가격은 무조건 공판장이나 시중 판매가보다 높습니다. 귀농교육비와 실습비는 국가가 정한 법령에 따라 지원을 받으며 교육, 실습 외 제공하는 근로에는 최저시급이 지급됩니다. 주말과 평일에도 언제든 자유로이 도시의 가족들에게 다녀 올 수 있지만 양촌리 시범마을엔 누구도 놀아도 급여를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한 만큼 받습니다. 모든 구성원에게는 4대보험이 가입됩니다. 공동주거는 아니지만 공동취사시설과 식당이 있습니다. 119 , 보건소, 의료기관과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
양촌리 은퇴자 생산공동체 시범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첫째, 농림수산식품부, 전라북도, 남원시, 남원농협 등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지원정책 검토와 치밀한 계획이 선행돼야 합니다. 둘째, 기존 양촌마을 농업법인 구성원은 물론 양촌마을 주민의 공감대와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귀농인들에게 소득을 보장해줄 수 있는 소득사업을 발굴(양촌마을에 적용하면 좋겠다 싶은 아이템이 두어개 있지만 여기서 공개하는 건 시기상조라 생략) 해야 합니다.
양촌마을은 어느정도 기반이 조성돼 있고 마을이 보유한 자연자원과 입지여건으로 볼 때 은퇴자 생산공동체 시범마을을 만들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 생각됩니다.
사족: 흙과 자연이 좋고 건강한 노동생활을 하고 싶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온다면 최고이지만 극히 드뭅니다. 그런 분들은 가난해도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걱정되는 건 한적하게 시골에서 유유자적하고 싶은 분들이거나 나 아니면 안되는 장군이거나 땅을 돈으로 보는 자본가입니다. 오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차피 누구나 오실 수는 없습니다. 함께 하고픈 좋은 사람은 첫눈에 보이니까요.
첫댓글 꼭 가고 싶은데 집사람과 의견 조율이 남아 있어서 3-4년정도 있어야 될것 같아서 아쉽네요.
양촌마을과
뜻이 잘 이루어져서
뜻깊은 결실이 맺어지길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