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꽃
우주연
무가 없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 언뜻 보니 나의 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중에 잘 돌아보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내 사랑을 그렇게나 받던 그것이 아무 조짐도 보여주지 않다가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리다니. 고이 키운 딸이 말 한마디 안 남기고 야반도주라도 해버린 것 같았다.
제주농원 아저씨는 꽃값은 절대로 안 깎아 주는데 뭔가 그에게 시시해 보이는 것들은 인심을 좀 쓰는 편이다. 예를 들면 다육식물이나 선인장에서 잘라낸 가지, 팔기에는 말라버린 모종, 꽃이 다 져버린 화분 같은 것 말이다. 아무거나 주어도 내가 너무 기뻐하니까 재미가 생긴 듯하다. 가게 문을 나서는데 손바닥만 한 무 한 덩이가 땅바닥에 던져진 듯 떨어져 있었다. 윗부분에 짧은 초록색 잎이 보글보글 올라온 모양이 귀여웠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왜 무가 여기서 구르냐고 물어보니까 얼른 가져가란다. 나는 언제나처럼 기뻐하며 어린 아기를 보에 싸서 오듯 검정 봉지에 넣어서 집에 데리고 왔다.
무는 고생을 좀 한 듯 거칠고 색이 곱지는 않았으나 동그란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작은 텃밭에 무를 잘 심어놓고 물도 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면서 보살폈다. 과연 얼마나 큰 무로 클지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 후 얼만가 지났는데 무 줄기 끝에 무언가 하얀 것이 보였다. 꽃, 무꽃이었다! 초록색 줄기에 하얀 꽃 한 송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꽃핀을 머리에 꽃은 예쁜 어린 딸 같았다.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고 난리가 났다.
“세상 이쁘네.”
“백치미? 동치미?”
“백치미, 고거이 진짜 예쁘다는 거잖아.”
“하하.”
꽃말이 궁금했다. ‘계절이 주는 풍요’. 아, 얼마나 멋진 꽃말인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의 아름다운 딸, ‘페르세포네’가 떠올랐다. 조금 있으니 여러 송이가 쉴 새 없이 피어올라 왔다. 꽃을 잘라서 작은 꽃병에 꽂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소박하기 그지없고 다정한 꽃을 보며 나는 이것이 바로 계절이 주는 풍요로구나 생각하면서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었다. 언젠가 큰 무로 자라서 캐내야 할 때가 되면, 나는 과연 나의 무를 먹을 수 있을까? 그래도 아마 내가 먹어주는 게 무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많았다. 깍두기 동치미 무생채 무나물…. 그래도 펄펄 끓는 물에 무를 던져넣어야 하는 뭇국은 안 되겠다 싶었다. 잘 썰어서 햇살에 말려서 무말랭이를 만들어 조금씩 반찬으로 먹는 게 가장 오래 그녀를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봄이 지나가면서 꽃을 자른 줄기가 이리저리 휘면서 꽃이 정신없고 얌전하지 않게 퍼지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이제 좀 자제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러고는 꽃을 식탁에 꽂지 않았다. 여름이 왔다. 곧 장마도 시작되었다. 나는 안 좋은 날씨를 핑계로 텃밭에 잘 나가지 않았고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도대체 그사이에 무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 집에 어슬렁대는 줄무늬 고양이가 떠올랐다. 그러나 내가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흙에다 박아놓은 것도 아닌데 고양이가 그런 짓을 했을 리는 없다. 아니면 뒷마당에 떨어진 밤을 먹으러 가끔 왔다 갔다, 하는 청설모? 밤을 까먹으니, 무도 먹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무를 뽑아서 들고 가기에 청설모는 너무 작았다.
요새는 인터넷에 치면 웬만한 답은 다 나온다. 검색창에 ‘꽃피는 무’라고 쳐보았다. ‘추대 피해’, ‘농가 시름’ 이런 말들이 떴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나는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무에 꽃이 피는 것을 두고 마치 가축 농가에 돼지열병이 돌던 때처럼 난리들을 치고 있었다. 기자들이 너도나도 나와서 국가비상사태라도 되는 듯 열띤 보도를 하고 있었다. 무에 꽃이 좀 피었는데 이 난리란 말인가? 알고 봤더니 꽃이 피어 버리면 꽃에 영양을 빼앗겨서 땅속의 무가 못 자라고 질겨져서 팔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품종이었는데 모두 다 꽃이 피어버려 생산자에게 고소하려 한다니. 아니, 나의 무가 화란에서 왔다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무의 잎이 꼬불꼬불 보슬보슬하였구나. 화란에서 예전 남편이 애들에게 사다 준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온몸을 바쳐 꽃을 피우느라 땅속에서 녹으며 쏟아지는 장맛비와 함께 흔적도 없이 나의 무가 사라졌다는 스토리다. 문뜩 어느 책에선가 감자꽃을 똑똑 따 주어야 감자가 동글동글 실해진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여지껏 이 세상에 살면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나 감자뿐일까,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다. 자손이 어디 스스로 꽃을 피울 것인가, 어머니가 통째로 자기 자신을 바쳐야 할 거다.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자식 셋 키우느라 나 자신을 못 찾고 허둥지둥 바쁘게 살았는데 과연 자식 꽃은 잘 피운 것일까. 요즘은 애들이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하면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러다가 나도 조금 있으면 없어지는 게 아닌지, 살짝 팔다리를 만져본다.
겨울이 되었다. 동치미를 먹다가 보니 다소곳이 묻혀있던 나의 무가 떠오른다. 나를 그리도 행복하게 해주고 아름다웠던 너를 쉽게 잊지는 못하리. 네가 있던 그 자리는 다른 풀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며, 또 다른 무도 심기 싫다. 나는 그냥 그대로 비워놓고 그 빈자리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한다.
시간을 보내는 가장 멋있는 방법
작은 마음의 이야기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여기저기 이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문학을 제대로 공부도 못해본 나에게 이런 축복이 오다니,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고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재능과 특별함, 고뇌와 슬픔이 뒤범벅되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작정하고 조용히 앉아서 쓰기 시작하니 의외로 머릿속에서 글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살면서 굽이굽이 생의 여러 순간에 나만이 느꼈던 감정이 어디로 사라졌던 것이 아니고 그대로 내 안에서 잠자고 있다가 깨어나는 모양입니다. 한동안 막혀 있던 머리의 송과샘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행복의 호르몬을 살살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글쓰기란 나 스스로 나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작업인 듯합니다. 행복하지만 때로는 고통스러우며, 자기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과정인 것도 같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입니다. 조선 후기의 시인 이덕무李德懋는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눈 오는 새벽, 비 내리는 저녁에 좋은 벗이 오질 않으니 누구와 얘기를 나눌까? 시험 삼아 내 입으로 글을 읽으니, 듣는 것은 나의 귀였다. 내 팔로 글씨를 쓰니, 감상하는 것은 내 눈이었다. 내가 나를 벗으로 삼았거늘, 다시 무슨 원망이 있으랴!
진정으로 글쓰기는 내가 나를 벗 삼는, 나와 시간을 보내는 가장 멋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가족들이 행복한 것이 바로 나의 행복이라고 여겼습니다. 무대 뒤편의 스태프처럼 가족이라는 배우들이 멋진 연기를 펼쳐내도록 도와주는 게 현명한 주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요즘의 나는 조심스럽게 객석이 다 빈 무대에 살살 나와 보기도 합니다. 이리저리 앉아도 봤다가 주연이 되어 한 번 그 앞에 서보는 시늉을 하기도 합니다. 내 마음속의 어디선가부터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합니다. “우주연, 우주연. 너도 할 수 있어…, 아직 그렇게 안 늦었다고….”
끝으로 이런 의미 있는 상을 주신 계간 『시와산문』 발행인 장병환 이사장님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시와산문』을 창간하신 이충이 시인의 아름다운 문학정신을 생각해 봅니다. 제가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다가 눈을 부비고 긴 동면에서 깨어난 것은 전적으로 스승들 덕분입니다. 주수자 소설가, 박금아 수필가 그리고 서안나 시인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