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순조롭게 준비되어갔다. 동현은 담배한개피를 꺼내물고 시계를 보았다. 이제 20분정도만있으면 그녀가
올것이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동현은 생각해보았다. 과연 일이 제대로될것인지와 자신이 정말 이렇게까지해야
하는것인지.. 모든 준비가 다된 이 시점에서 동현은 크게 갈등하고있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갑자기 울려대는 핸드폰소리에 정신을 차린 동현은 발신자를 확인하고 담배를 끄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동현씨.어떻게 됐어?"
"준비는 다 됐어.다만 조금.."
"조금..? 조금 뭐? 동현씨 지금 망설이는거야?"
"아니... 그런건 아니고 내가 전화할께. 끊자"
애타게 동현을 부르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동현은 말없이 핸드폰을 끊어버렸다.담배피는걸 무척이나 싫어하는그녀.
분명 동현은 지수를 사랑했지만 지금와서 계획을 실천하려니 좋아하는 감정조차없었던 아내에게 약간의 미련이
남고있었다. 선천적으로 약했던 아내는 동현이 다니던 회사회장의 외동딸이였다.하나밖에 없는 딸이기에 무척
애지중지 키워진 그녀는 불행하게도 약간의 정신질환을 앓고있었다. 물론 결혼전에는 다만 그냥 몸이 조금안좋은
그런정도라고만 알고있었는데 결혼을 불과1주일앞둔 어느날 동현은 회장과의 식사도중 뜻하지않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자네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네."
"예?"
"친구도하나없이 집안에만 갇혀지내던 녀석이 어느날 자넬 보고나서 처음으로 나에게 부탁이란것을하더군..
자네를 만나고싶다는.. "
"예.."
"미연이는 자네가 알다시피 약한 아이일세.난 항상 미연이에게 죄를 진기분이야..그래서 미연이가 해달라는건
무엇이든 해주고싶었네. 자네역시.. 자네가 미연이와 결혼하는이유에 나의 재산이라든가 배경이 빠지진않을거라
생각하네만..
"아.아닙니다.장인어른.."
"아니.. 설령그렇다해도 상관없네. 난 자네가 미연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요치않게 여기네.다만 미연이가
행복하면 그만인걸세."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내 오늘 자네를 부른것은 이 사실은 알고있어야할것같아서.. 내가 자네를 속였다고생각하면 미안하네만 어쩔수
없었다고 생각해주게나.. 미연이는 단순히 몸이약한것이아니라.. 간혹 정신적으로 문제가 온다네.아!그렇게
놀라지는 말게나.흔히생각하는 그런 정신병자처럼 생활에 지장을 주는것은아니니까.. 다만 간혹간혹 본인이 무얼
했는지 어딜 다녀왔는지.. 기억을 못하는경우가 많지.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큰 문제는 없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를 믿어도되겠지?"
동현은 그 순간 적지않게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설령 그녀가 심한정신병을 앓고있는 미친년이라해도
동현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미 결혼은 1주일뒤로 다가왔고 무엇보다 동현에게 미연의 배경은 놓칠수없는
큰 행운이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까지도 아주좋았다. 몸이약한 그녀때문에 7박8일의 신혼여행동안 아름다운 해변을거닐수
있었던건 고작 하루에 불과했지만 동현에게는 파라다이스와 나름없었다.
매일같이 걸려오던 카드회사의 독촉전화도 이젠 해방이였다.지긋지긋하던 고시원의 생활도 이젠 끝이였고
다달이 박봉을 쪼개고 쪼개 부모님께 보내드리던 돈도 이젠 걱정하지않아도 되었다.미연은 실로 그의 인생에 다시
오지않을 행운이였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동현을 맞이한건 깨끗한 사무실과 김동현 상무 라는 직함이 찍힌 명함이였다.
회사내에서 들려오는 수근거림도 동현에겐 아무렇지않았다.다만.. 그 신혼생활이 한달도 채되기전에 아내의
문제가 드러나기전까지..동현은 행복했다.
가정부아주머니로부터 미연이 사라졌단 소리를 들은후 동현은 경찰서에도 신고를 하고 사방팔방 그녀를 찾아
헤메었다. 그 소식을 들은 장인어른은 그냥 씁쓸한 표정만 지을뿐이였고 너무 걱정하지말라는 말을 할뿐이였다.
그렇게 사라진 미연은 정확히 12일만에 서울역의 노숙자집합소에서 말그대로 거지같은모습을 하고 발견되었다.
동현은 그 일이후로 큰 충격을 받아야만했다.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알지못하는 아내는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그곳에 있더라는 말만을 했고 그 사이에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못했다.
그 후로 미연은 짧게는 삼사일 길게는 일주일이넘는 시간을 기억하지못한채 길거리를 방황하다 발견되어지곤했다
경찰서에서조차 회장의 재력이아니였으면 이렇게까지해주지는 않을거란말들이 등뒤에서 들려오곤했다.
찾아놓으면 또 사라지고 또 사라지는 미친여자따위에 할애할 시간같은건 없다는식이였다.동현은 미연의8번째
실종아닌 실종후에 장인을 앞에놓고 다시 경찰에 연락하는일은 하지말잔 얘길 꺼내었다. 실제로 경찰서에서
미연을 찾아오는 경우는 없었다. 미연자신이 문득 정신을 차려 집으로 연락을 하는경우가 대부분이였다.
처음엔 불안해하던 장인도 수긍했고 9번째부터는 신고를 하지않게되었다. 내심 걱정도들었지만 아니나다를까
미연은 2주만에 강원도의 한 식당에서 전화를 해왔다. 도대체 기억하지못하는동안 그녀는 어떻게 그 먼곳까지
가는것이며 어떤 생활을 하는것인지.. 경호원을 부쳐봐도 소용이없었다.그냥 갑자기 한순간 사라졌다는 말만을
해대는 경호원이 그렇게 무능해보일수가없었다.
그렇게 안정되지않은 가정은 동현에겐 점점 짐으로 다가왔고 결혼기념일을 얼마간 앞둔 어느날 다녀간거래처에서
동현은 첫사랑이였던 지수를 만났다.
가난한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이겨내지못해 이혼한지 얼마되지않았다는 지수는 변함없이 예전처럼 아름다웠고
그렇게 지수와의 만남이 잦아지고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아내의 알수없는 실종은 이어지고있었다.
"동현씨.그여자 사랑해?"
"누구?우리 집사람?"
"응.그럼 그여자말고 누가있어?"
"너라면 그런 여자를 사랑할수있겠냐? 이건 인형이나 시체도아니고 도대체 맨정신에 집에서 밥차리면서 기다리는
모습을 결혼 3년동안 내가 두세달이나봤는지 모르겠다."
"근데 그여자 왜그런거야?"
"글쎄. 특별히 왜그렇다고 얘기해주는사람이없었어.장인어른말로는 어릴때 장모님이 돌아가시면서부터 갑자기
그랬다는거같은데"
"동현씨.. 나랑 결혼하고싶지않아..?"
"무슨소리야.?난 아내가 있는데 어떻게 결혼을 해..나보고 이혼이라도 하란소리야?"
"아니. 왜 당신이 그 재산을 놔두고 이혼을 해.. 다만 나는........있잖아.."
처음 지수의 말을 들은 동현은 어쩌면 미친게 아내가아니라 지수일지도모른다는 생각을했다. 아무리 그렇기로
어떻게 아내를..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불가능한 일도아니였다.
원래 그렇게 잘사라지는아내였으니.. 몇일씩 사라진다해도 아무도 의심하지않을것이다.
저 멀리서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상아색원피스를 하늘거리며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그녀는 연신 웃고만
있었다.
"오늘 어디가는거에요?오랫만에 당신하고 외출하는거같아 기분이 너무 좋은거있죠."
동현은 결혼후 그녀와 그럴듯한 저녁식사한번 해본적이없음을 기억하고 여자의 웃음의 이유를 알수있었다.
"응.. 당신기분좋은 모습 보니까 좋으네.."
동현은 미연을 태운후 말없이 차를 몰았다. 미연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곧잘 따라부르기도했고
어디선가 보았다며 우스개소리도 해주었지만 동현의 귓가에는 들어오질않았다. 지금까지도 동현은 망설여졌다.
얼마간인가 차를 달렸나 미연이 엉덩이가 아프다며 얼굴을 찌푸릴 즈음 드디어 생각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사람하나없는 도로를 꽤 달린탓인지 미연은 조금 불안한 눈치였다.
"여기가 어디에요?"
"응.. 이 근처에서 무척 맛있는 식당을 알았었는데 오랫만에 와서 그런지 좀 헷갈리네."
"아. 그렇구나. 그럼 어떻하죠?"
"여기있어봐.지도를 한번 확인해볼께. 멀미날텐데 바람이라도 좀쐬고있어"
미연을 도로에 세운 동현은 차로 돌아와 발밑에 두었던 상자를 꺼내들었다.상자안에는 작은 약병하나와 주사기가
들어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동현은 아주 잠시간 망설여졌다.
[그 약은 체내 흡수후에 독성으로 변해.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자연 소멸된다고. 그러니까 당신아내를
발견할 시점에는 몸안에 독은 남아있지않을거야. 걱정하지말라고. 그여잔 말그대로 그냥 나갔다가 죽은게
되는거라고.]
지수의 얘기가 떠올랐다. 정말 문제가 없을까? 혹시라도 문제가 되면 어쩌지? 동현은 문득 사람을 죽이는사람은
왠만한 강심장이거나 정말 제정신이아닌놈들일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동현은 선택을 했다....
==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재미도없이 한평생을 살고싶지는않았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지수가있고 동현에겐 재산이
있었다. 그래 일은 잘될것이다. 동현은 주사기를 꺼내 약병에 꽂았다. ............... 1번
== 할수없었다..아무리 동현이 인생의 끝에 와있다고해도 사람을 죽이는 짓은 못할것만같았다.동현은 상자를다시
발밑에 놓고 대신 담배를 하나 꺼내물었다. 그래.. 좀 미친아내면 어떤가.그녀가 잘못을 한것도아닌데......2번
첫댓글 오오... 이런.. 두가지의 선택이 있군요... 과연...
tv에서 보던 당신의 선택이네요.^^ 재밌네요.님...이번엔 계속해서 올려주실꺄죠?또 갑자기 사라지시면 안되요^^
독특해여~~예전 이휘재의 인생극장이 떠오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