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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8일 오전 8시에 택시를 타고 호텔을 출발하여, 20분 후 국경 출입국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줄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외국 여행객이라는 편의를 봐주면서 우리를 먼저 입장시켰다. 먼저 입장을 하면서 뙤약볕에 서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그지 없었다.
오랫동안 독재자가 집권을 하여, 관료들이 부패하고 경찰들의 불법적인 행위가 많으므로 특히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므로, 조금이라도 책잡히지 않도록 특히 조심했다. 우선 함부로 사진을 찍지 말고, 경찰관과 쓸 데 없는 말 하지 말고, 조용히 지내한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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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출입국 사물실에서 멀지 않은 어떤 도시>
오쉬에서 타쉬켄트까지는 자동차로 거의 하루가 걸리는 일정으로 약 400키로 정도되는 듯 하다. 문제는 몇 번의 검문이 있는데, 그때마다 모든 차를 막고 조사를 하니 차들이 검문소 전방에서 얽히고 설켜서 운전수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짜증을 내고 말다툼을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어떻든 우리도 이런 시스템을 잘 알고 있어서, 입다 물고 시키는대로 따르면서 여러 번의 검문을 피하기도 하고, 당하면서 타쉬켄트로 향했다. |
<어느 검문소 바로 지나서 벌거벗은 산 위에 있는 광고판이 좀 생뚱맞게 느껴진다.>
<길 옆에 있는 상점에서 농산물을 판매한다.>
<중간에 몇 개의 도시를 통과한다.>
<길옆에 농산물을 말린다.>
<큰 검문소 지나서의 장면이다.>
중간에 볼 만한 곳은 별로 없었으며, 그저 타슈켄트로 내달릴 뿐이었다. 우리가 타쉬켄트 로하트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문 시간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곧장 시내 중심에 있는 어떤 한국식당으로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다른 중앙 아시와 국가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아무 자가용이나 택시와 같이 영업을 할 수 있다. 길 옆에서 손을 들고 있으면 지나가는 자가용이 서게 되고 흥정을 하여 가면된다. 그날 시내에서 자가용을 타고 2-3키로 정도 갔을 것이다. 한국돈으로 약 1,000원되는 돈을 지불하니, 그는 대단히 고마워하였다. 아마 그 곳 주민들은 500원 정도 내고 다니는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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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삼겹살 식사>
그날 저녁 여러 사람이 며칠 동안 쓸 돈을 그 나라 돈으로 바꿨다. 화폐의 단위가 "숨"이다. 숨을 한국돈으로 계산하려면 5로 나누면 된다. 즉 5000숨은 한국돈 1000원이다. 문제는 이 나라의 최고 고액권이 5,000숨이다. 그러니 한국돈 백만원을 최고의 고액권으로 바꾸면 지폐가 1,000장이다. 문제는 모두다 5,000숨짜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하짜리도 섞여있으니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한국돈 100만원을 세려면 4천장 정도를 세어서 쟁여 놓아야 한다. 어떻든 부피가 많아서 듬직하여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저 돈을 다 센다는 것은 참으로 사람 죽는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곳의 물가가 싸서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는 것이다. 식당 주인이, 우리가 먹은 저녁식대로 지불한 돈을 "돈 세는 기계"에 넣어 세면서 하는 말이, "여기서는 이 기계 없으면 장사 못해 먹어요."였다. 또 한 가지 여기서 환전을 할 때, 은행에서 환전을 하면 일반 사람들로부터 환전하는 것의 거의 1/2정도밖에 쳐주지 않는다. 따라서 은행에 가지 말고 사설 환전소에서 바꿔야 한다. 걸어가는 사람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누군가가 와서 환전하라고 달려드니, 사설 환전소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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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돈 100만원의 우즈베키스탄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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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호텔 근처의 호수에서 낚시질을 한다.>
<우주베키스탄 축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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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타쉬켄트 버스 시티 투어: 기억에 의해 작성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음. >
다음 날 아침 시티버스를 타고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2층 버스에는 8개국어로 안내를 들을 수 있는 장치가 있었으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어 방송이 없어서,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관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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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 버스>
<우즈베키스탄 호텔>
출발은 우즈베키스탄 호텔에서 출발했다. 오쉬에서 우즈베키스탄 시내에 들어올 때 인상과는 반대로 막상, 시내는 많은 공원과 나무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서 상쾌하고 싱그런 느낌을 주었다. 누군가가 계획을 잘 세워서 짜임새 있는 수도임을 한눈으로 알 수 있었다. |
<TV 탑>
처음에 간 곳은 멀리 TV 탑이 보이는 추모공원이었다. 375미터가 된다는 TV 탑은 시내 어디에나 잘 보이는 이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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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공원 탑>
추모공원은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에 우즈베키스탄 민족주의자들이 처형당한 곳인데, 당시는 갈대밭이었다고 한다. 이 장소에서 처형된 대표적인 인물로는 '압둘라 코드리 Abdullah Qodiriy'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우즈베키스탄 최초의 현대 소설 작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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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공원>
<추모 공원 옆에 흐르는 물>
<미노르 모스크>
<미노르 모스크>
<버스를 타고 가는 중 보이는 "이영희 한복 패션 쇼 광고">
<시티 버스 앞에서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버스에 탄 아기>
<버스 차장. 우즈벡 미인이다. 모델감이다. >
<지진 기념물>
1966년 4월 26일 대지진이 발생하여 총 8명의 사망자와 1만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35만여명이 집을 잃고 거리에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상의 제목은 ‘용기’이며, "지진이 아이와 여자 쪽으로 다가오자 건장한 우즈벡 남자가 용기있게 손으로 지진을 억누르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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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기념물>
<카스트 이맘 모스크 단지>
<카스트 이맘 모스크 단지>
<시내는 강물이 흐르고, 공원이 많았다.>
<알 수 없는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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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광장의 티무르 상>
시티 버스 관광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도보 시내 관광을 시작하였다. 우선 간 곳이 티무르 공원. 전에는 이곳에 칼 막스의 동상이 서 있었고, 그 이전에는 스탈린, 레닌의 동상이 서 있었다고 한다. 까리모프 대통령은 티무르를 통해 우즈벡의 민족정신을 부활시켜 국가재건의 정신적 토대로 삼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우즈벡에 갔을 때, 까리모프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슬픔에 잠겨있는 듯 했다. |
<티무르 동상에서 계속되는 공원을 통해 걷다보면 만나는 야외 전시장>
<점심 때가 되어서 들어간 한국 음식점>
<이곳에 싸이가 와서 공연을 했던 것 같다.>
<국회 의사당 앞인 듯하다.>
<경찰이 삼엄하게 경비를 선 건물. 경찰은 이 건물은 사진 촬영이 가능하나, 맞은 편쪽 건물은 불가라고 말함.>
<날이 더워 분수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식>
<분수대 앞 건물이 물속에 비쳐 보인다.>
<Crying mother(우는 어머니) 상으로 가는 입구>
"우는 어머니 기념비"는 2차 세계 대전에서 죽은 40만명의 우즈베키스탄인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1999년에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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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어머니상>
<바로 근처에 백말을 타고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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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을 꽂은 여자>
그날 저녁 호텔 근처의 식당 겸 나이트클럽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보통 양식당이라고 생각되었는데, 갑자기 앞에 있는 빈 공간에서 사람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 옆에 젊은 남녀 10명 정도가 있어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들은 간단한 음식을 먹은 후, 술은 마시지 않고, 앞에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 젊은이들처럼 현란한 춤이 아니라, 아무나 대충 몸을 움직여 추는 약간 심심한 춤이었다.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보면 "이것도 노는 건가?"라고 말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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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뚱뚱한 여자가 무대를 사로 잡았다. 온몸을 흔들어 절규하듯이 몸을 흔들어 댔다. 그녀보다 관심을 끄는 여자가 또 하나 있었는데, 가슴에 장미꽃을 꽂고, 술이 취해 몽롱한 듯이 몸을 비틀거렸다. 이 여자는 여기저기 휘저으며 자신의 춤 솜씨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녀는 주로 거울 앞에서 혼자 춤을 추면서 자신의 춤 솜씨에 흠뻑 빠져있었다. 사람들이 내가 나가서 그녀의 춤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시험삼아 나가봤다. 내가 앞으로 나가 그녀 앞에서 손을 내밀어 한번 추자고 했는데, 마치 진공 청소기처럼 내게 다가왔다. 나는 겁이 나서 그녀로부터 벗어나 내가 앉은 자리로 냉큼 돌아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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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춤추는 사람 중에는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도 있었는데, 자기가 교수라고 했다. 그도 우리와 어울리며 같이 춤을 추었고, 나중에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진사를 시켜 사진을 찍어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우리 팀에 합류하여 춤도 추고, 술 취한 사람이 흔히 하는 그런 행동을 하다가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자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와 흥이 절정에 달했다. 그 노래가 끝나 모두 너무 아쉬워했다. 그 노래를 다시 한번 틀어 달라고 하니, 돈을 내야한다고 했다. 얼마냐고 물었다. 나는 10,000원쯤 되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놀랍게도 한국 돈으로 1,000원이라고 해서 모두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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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팔기도 한다.>
<동영상 약 5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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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못가본 생소한 나라 여행기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돈의 단위와 부피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예, 많은 돈을 만져보려면 이곳에 가야할 듯 하네요.
환전한 돈보고 빵 터졌습니다^^~
가보고 싶네요~..~
여기서 뇌물을 주는 것은 불가능할 듯. 아니면 트럭떼기를 해야할 듯.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티투어 버스는 참 좋았었지요.
식당에서 콜라, 사이다 먹고 클럽처럼 춤추고 노는 문화도 독특했고요.
예, 여행은 늘 즐겁습니다.
역시 돈은 뭉칫돈이죠~~~~ 기본 두세덩이는 펑펑 써줘요함!!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