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이 全國七大學柔道優勝大會라는
이름도 긴 대회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일본의 무수한 국립대학교들 중에서 구제국대학이었던 7개의 대학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이런저런 스포츠를 통하여 교류를 하는데
이를 '전국칠대학종합테육대회(全国七大学総合体育大会)'라고 한다.
참고로 7개의 대학은 북쪽에서부터 나열하여 홋카이도대학, 토호쿠대학,
도쿄대학, 나고야대학, 쿄토대학, 오사카대학, 큐슈대학이다.
이 대회는 1951년 홋카도대학의 체육위원장이었던 사람이 '세미프로화 되어가는
학생체육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학생자신이 운영하는 종합체육대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여 그때까지 클럽별로 이루어지던 대회를 종합하여 全国七大学総合体育大会
(줄여서 七大戰)라는 대회가 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체육특기생들이 시합을 벌이고 일반 학생들은 응원만 죽어라하는
우리나라의 고연전과는 전혀 다르게, 순수 아마추어 학생들이 시합에 나가
1년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서로 경쟁하는 것이다.
종목도 무수히 많아서 농구, 야구, 테니스와 같이 당연히 있을 법한 스포츠는 물론이고
(글을 쓰다가 찾아보니 놀랍게도 종목 중에 축구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유가 참 궁금하다)
요트, 라크로스, 골프, 승마와 같이 부루주아틱하면서도 돈이 많이 들 것 같은 운동,
유도, 소림사권법, 핸드볼과 같이 제정신이라면 대학에 와서까지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운동,
자동차, 항공, 아이스하키와 같이 도대체 대학에서 어떻게 저런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운동까지 총 27개의 종목(종목에 따라 남녀부로 나뉘는 것도 있음)을 펼쳐 종목별 순위를
점수로 환산하여 그 해의 우승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올해로 46회째를 맞이하는 이 대회는 7개의 대학이 매년 번갈아 가며 대회를 개최한다.
개최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홋카이도대학, 큐슈대학, 오사카대학, 쿄토대학,
토호쿠대학, 도쿄대학, 나고야대학의 순번으로 정해진다.
올해 시합의 주관교는 쿄토대학이다.
매년 주관교에서 마스코트를 만드는데 올해 쿄토대의 마스코트 '나나(七)'
2006년 주관교인 오사카대학의 마스코트 '헤프탄'
그리스어의 '헵타'에서 이름을 따왔단다
이 시합은 홈그라운드의 이점때문인지 주관교가 우승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큐슈대학은 매년 도쿄대학과 치열하게 6위 싸움을 벌이는데
2005년 큐슈대학에서 주관했을 때 큰 점수차로 우승을 차지한 적이있다.
하지만 누가 우승했냐보다 더욱 놀랄만한 사실은 그 누구도
누가 우승했는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순위는 아마도 체육위원회 학생들만 관심이 있지 않을까 싶다.
부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들은 대회 자체에 그렇게 큰 관심이 있는 듯 하지 않고
부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느낀 것은 전체적인 맥락의 七大戰과 유도부의 七大戰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사실 이 대회 자체가 원래 각 클럽별로 이루어지던 것을 모았을 뿐이니까...
그래서 대회 이후 다른 유학생들이 유도 시합의 결과와 전체적인 대회의
결과를 결부시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약간 당황스럽다.
어쨌든 내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全国七大学総合体育大会가 아니라
全國七大學柔道優勝大會라는 유도대회에 대한 것이었다.
올해로 56회째를 맞이한 이 全國七大學柔道優勝大會(이하 : 七大戰)는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있는 대회이다.
현재 우리가 가끔씩 테레비젼을 통해 볼 수 있는 유도대회의 룰은
유도의 산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강도관(講道館 : 코도칸)의 룰을 기본으로 하여
좀 더 빠르고 공격적인 유도로 만들기 위하여 국제유도연맹에서 제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시합은 모두 국제시합 룰로 진행된다.
하지만 내가 일본에 와서 놀란 것은 아직도 일본에서는 여러가지 룰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우선 일본인들이 유도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으로 생각하는 강도관 룰.
그리고 국제시합에서 사용하는 국제시합 룰.
마지막으로 소수이긴 하지만 대표적으로 七大戰에서 사용되는 고전유도 룰.
국제시합과 강도관의 룰은 대부분 비슷하나 눈에 띄는 차이라고 한다면
강도관 룰로 진행되는 일본 국내 시합에서는 청색도복을 입지 않으며
기술 중 효과를 인정하지 않아 최소 포인트가 유효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반칙 중 '지도'가 없으며 포인트가 없는 '교육적 지도' 이후 '주의', '경고'가 부과된다.
그리고 국제시합 룰에서는 굳히기의 한판이 25초로 줄어들었지만
아직 강도관 룰에서는 30초가 한판이다.
이 두개의 룰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 위에서 말한 것과 몇몇 반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큰 차이가 없어 어느 룰로 시합을 펼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七大戰에서 사용되는 룰은 위에서 설명한 2개의 룰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선 가장 큰 차이로는 고전유도 룰은 굳히기 중심의 유도라는 것이다.
현재의 유도는 관중들의 보는 즐거움을 위하여 빠른 진행이 필수적이라
굳히기가 진행되더라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면 금세 '그쳐'가 선언된다.
따라서 선수들도 최소한의 굳히기를 통하여 방어를 하고 대부분 선기술을 통하여 승부를 본다.
그러나 고전유도의 룰에서는 서로 누운 상태가 되어 굳히기가 진행되면 그냥 끝까지 내버려 둔다.
시간이 종료되던지 누군가 한판을 얻을 때까지 멈추는 법이 없다.
물론 둘 중의 한 명이 상대에게서 떨어지거나 누워있는 상대를 들어 두 어깨가 땅에서
떨어지면 그쳐가 선언되기는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갈 때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굳히기 중심의 유도이므로 현대 유도에서는 완전히 반칙인 引き込み(우리나라
말로 번역하자면 끌어들이기 정도일까나)가 가능하다.
즉 현대유도에서는 굳히기를 위하여 아무런 공격을 하지 않고 땅바닥에 누워 상대를
굳히기로 유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고전유도에서는 그야말로 대환영이다.
이종격투기에서 선상태에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 처음부터 발라당 뒤로 누워
상대가 공격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종격투기와는 다르게 혼자 발라당 누우면 당연히 반칙이고 반드시 두 손이
상대방의 띠 이상의 부분을 잡은 상태에서 누워야 반칙이 되지 않는다.
이종격투기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고전유도에서는 가능하다
관계자들조차 치를 떨게 만든 문제의 장면
두 선수 모두 상대를 잡자마자 동시에 발라당 누워버려 둘 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런 경우를 대비한 새로운 룰이 정해졌다고 한다
예전에 한국에서 시합이 있었는데 어느 고등학생 선수가 시합을 바라보며
'굳히기는 지저분하고 지루해서 싫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나 또한 굳히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잘 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사실 굳히기는 지저분하고 지루하다.
솔직히 남들이 저렇게 땅바닥에서 6분정도 죽네사네하고 있어도
우리 팀 경기가 아니고서는 하품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굳히기만이 정말 '유능제강'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굳히기도 사실 절반 이상은 힘으로 승부가 나는 것이지만 신장 차이가 20cm가 나고
체중이 20kg 넘게 차이가 나도 꽤나 대등하게 경기를 펼칠 수 있기도 하다.
선상태에서는 쉽게 이길 수 있지만 처음부터 상대가 굳히기를 유도하며
잘 피해다녀 결국엔 무승부로 이끈 경기가 몇몇 있었다.
처음부터 너무 도망 다니는 것 같아 비열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저런 상대를 상대로 저렇게 도망다니는 것도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선수가 굳히기가 강했으면 상대가 처음부터 굳히기를
유도했어도 결국에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룰에서는 처음부터 누워버리는 것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아마 그 선수는 굳히기의 비열함에 치를 떨고 1년 동안 굳히기를 죽어라 연습하지 않을까 싶었다.
쿄토의 부도쿠덴에서 벌어진 올해 시합.
가끔씩 외국인 관광객이 구경을 하러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정작 관광객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7년만에 한 번씩 벌어지는, 그것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고전유도 대회를 그렇게 손쉽게 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너무 오래전에 읽은 만화책이라 정확한 수치는 생각이 안나지만 '야와라'에 이런 장면이 있다.
야와라의 아버지가 야와라의 라이벌인 사야카에게 굳히기를 연습하라고 하며
서서 야와라를 이길 확률은 1/163 이지만,
누워서 야와라를 이길 확률은 1/16 로 올라간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들이 이 고전유도 룰로 시합을 했으면 그는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서서 야와라를 이길 확률은 1/163 이지만,
누워서 야와라를 이길 확률은 1/16 로 올라간다.
만약 고전유도 룰로 시합을 한다면 누워서 야와라를 이길 확률은 1/5 은 될 걸.
일반적인 유도시합에서는 굳히기 도중 잠시 멈추는 'そのまま(소노마마 : 그대로)'라는
규칙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그대로 '그쳐'를 선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히기에 들어가면 그치는 법이 없고 장외도 없는 이 대회에서는
빈번하게 '소노마마'가 선언된다.
'소노마마'가 선언되면 선수들은 그 상태에서 움직임을 멈추며 그 사이
심판이 선수들의 도복이나 띠를 정리해 주거나 위의 사진처럼 심판들이
직접 선수들을 끌어서 도장의 중간부분으로 옮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큰 차이는 이 대회에서는 한판승밖에 없다는 것이다.
절반을 얻어도 결국 한판을 얻어내지 못하면 그대로 무승부가 되고 만다.
따라서 아무리 많이 얻어도 승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유효와 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처음으로 연습시합을 했을때 분명 내가 건 기술이 유효는 될 것 같은데
아무런 포인트를 주지 않길래 이런 것으로도 나를 미워하나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유효 이하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끌어들이기 가능에 우세승이 없다는 사실은 체격이나 완력 차이가 크게 나는
상대에게도 노력한다면 무승부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큰 차이는 보통의 단체전이 7:7 혹은 5:5인데 비해 이 시합은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동원된다.
무려 15:15.
게다가 시합시간은 6분이며, 마지막 부장과 대장의 시합시간은 8분.
또한 이긴 사람이 계속해서 다음 상대와 승부하는 방식의 단체전이다.
그래서 한 시합이 끝나는데 보통 1시간 20~30분이 걸리고 길게는 2시간까지도 걸린다.
시합 첫째날 다른 학교의 시합이라 보기에 지루해 조금 잤다가, 다른 부원들 따라
30~40분 정도 연습했다가 돌아왔는데도 아직 한 시합이 끝나지 않았다.
인생은 마라톤.
혹은 인생은 15:15 단체전.
끝으로 이 대회는 일본내에서도 가치가 높은 대회라고 한다.
본인들은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와 함게 일본 대학 유도계를
지탱하는 양대 산맥이라고도 말한다.
일반 대학에서 운동을 하는 선수나 일반인이 들으면 웃기고 있네
할지도 모르겠지만 맞는 말인 것 같다.
이제는 전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없는 고전유도시합이 반세기가 넘도록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합을 위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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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전에서 사실상 학생들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선수들만 연기에 출전하고
정작학생들은 관광만하다오는 상황. 그렇다고 학생들과 선수들사이에 긴밀한 유대가
있는것도 아니고.... 저런식의 대학축제가 더 바람직한거 아닌가?
연고전의 모체인 와세대-게이도 대학 축제인 소케이전이 망해가고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 아닐까..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학생들 경기 당일 승부에는 관심있다 ㅋ 몇달간 경기 준비해온 선수들의 노고에 관심 없을뿐이지 ㅋ 마치 우리나라 국민들 쇼트트랙 경기 지켜보듯이 ㅋ
물론 안읽어봤지만 좋은 글 같네요~. 다음엔 세줄요약좀
뷰게인데 글 대박 많다.. 사진보다 더 많아.ㅋㅋㅋㅋㅋ
우리도 7대전 하자.... 서고연서한성중 까지...ㅎㅎㅎ
중은 왜 끼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