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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겨울을 넘나들다 – 망월대,황석산,거망산
1. 황석산(黃石山, 1,192.5m)
백두대간상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갈라진 지맥이 월봉산을 지난 큰목재에서 함양시내로 뻗어 내려가면서 연달
아 크게 솟구친 산이 거망산과 황석산이다. 이 두 산의 동쪽에는 금원산과 기백산이 더 높게 솟아 있고, 서편은 남덕
유산 ㆍ 육십령 ㆍ 영취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흘러내리고 있다. 수량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계곡에는 용추폭
포 ㆍ 용소 ㆍ 거연정 ㆍ 동호정 ㆍ 농월정 등 시인 묵객들이 노닐던 명소가 곳곳에 있다.
두 산은 극히 대조적인데 거망산은 말등같이 매끈하면서 넓고, 긴 능선에 키를 넘는 억새밭이 장관이고, 가을철
황석산 암봉을 배경으로 나부끼는 억새꽃은 정말 아름답다. 황석산 정상부는 암릉으로 이어지고 중간지점에서 우뚝
솟아 쌍립한 암봉미가 일품인데 설악산 용아릉에 비유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이다.
―― 김형수, 『韓國400山行記』(2002, 깊은솔), ‘황석산(黃石山) ㆍ 거망산(擧網山)’ 개관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3월 9일(토), 맑음
▶ 산행코스 : 유동마을,망월대,황석산,북봉,1,255.1m봉,거망산,지장골,용추사,용추사 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 12.1km
▶ 산행시간 : 6시간 26분(10 : 18 ~ 16 : 44)
▶ 교 통 편 : 다음매일산악회 버스(27명)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0 – 양재역 1번 출구 200m 전방 스타벅스 앞
08 : 55 – 인삼랜드휴게소( ~ 09 : 15)
10 : 18 – 유동마을, 산행시작
10 : 35 – 능선 진입
10 : 30 – 906m봉
11 : 04 – 965m봉
12 : 05 – 망월대(1,115m)
12 : 30 – 황석산(黃石山, 1,192.5m)
12 : 40 – 안부, 점심( ~ 13 : 00)
14 : 10 – 1,201m봉
14 : 32 – 1,217m봉
14 : 42 – 1,255.1m봉
15 : 04 – 거망산(擧網山, 1,184.0m)
16 : 00 - 선녀폭포
16 : 14 – 지장골 입구
16 : 26 – 용추사(龍湫寺)
16 : 44 – 용추사 입구, 주차장, 산행종료(17 : 13 – 버스 출발)
18 : 45 – 신탄진휴게소
20 : 23 – 양재역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거창 ㆍ 함양 1/25,000)
▶ 망월대(1,115m), 황석산(黃石山, 1,192.5m)
지우천(智雨川) 오른쪽은 기백산(箕白山, 1330.8m)과 금원산(金猿山, 1,352.5m)이, 왼쪽은 황석산(黃石山,
1,192.5m)과 거망산(擧網山, 1,184.0m)이 고산준봉이다. 높이 1,000m를 훌쩍 넘은 이 4좌를 종주하려면(도상 약
24km이다) 무박이라야 하는데 요즘은 그런 산행이 뜸하다. 대개 당일로 지우천 한쪽 산을 간다. 오늘 산행은 어디
로 갈 것인지 각자 자유로이 선택하시라고 했는데 27명 모두 황석산을 가겠다고 한다.
황석산 들머리인 유동마을이 조용하다. 마을 주민도 개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등산객은 우리 산악회뿐이다.
국토정보플랫폼 지명사전에 따르면 유동마을은 우리나라 남한에 30개가 있다. 이 유동마을 대부분은 버드나무와 관
련된 유동(柳洞)인데 이곳 유동마을은 놋쇠 유(鍮)자를 쓴 유동(鍮洞)이다. 옛날 이곳에 놋점이 있었다 하여 놋전골
또는 유동이라 한다. 유동마을 동구에 ‘100대 명산 황석산 등산로 안내도’가 있다.
이 안내도에는 황석산 들머리로 5곳을 소개한다. 황암사 기점 5.1km, 우전 기점 4.4km, 탁현 기점 4.4km, 장자벌
기점 5.4km, 우리가 가는 유동 기점이 그중 가장 짧은 4.0km이다. 사과나무 과수원 농로 따라 오른다. 연촌마을을
오르며 뒤돌아보는 기백산이 웅장하다. 기백산의 옛 이름은 지우산(智雨山)이라고 한다. 우리가 건넌 지우천은 아마
지우산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한다. 연촌마을은 산막(山幕)이 차차 늘어나서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연니막 또는
연촌이라 한다.
연촌마을 위쪽 산허리 돌아 작은김작골로 간다. 너덜지대 마른 계류를 잡목 헤치며 건너갔다 건너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등로가 흐릿해진다. 내 앞에 젊은이가 홀로 간다. 아무런 의심 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혹시 등로를 잘못 들지
는 않았나 하고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그랬다. 골짜기 양쪽으로 등로가 있는데 그만 지나치고 말았다. 어느 쪽 등로
를 택할까 잠시 망설이다. 왼쪽 능선을 오르기로 한다. 왼쪽이 0.3km 더 길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0.3km는 먼 거리다.
모처럼 오지본능이 발동한다. 혼자다. 갈림길로 뒤돌아 내리지 않고 곧바로 왼쪽 생사면에 달라붙는다. 되게 가파르
다. 눈은 없지만 낙엽 깔린 사면이 땡땡 얼어 있어 미끄럽다. 달달 긴다. 진땀난다. 옅은 수적(獸跡)을 쫓기도 하지만
갈 길이 서로 다르다. 수적은 직등하다 말고 산허리를 돌아가곤 한다. 깔딱하는 가쁜 숨 모아 능선에 오른다. 숲속
등로가 뚜렷하다. 유동마을에서 황석산 정상까지 2시간 30분을 견적했다. 잰걸음 한다.
더러 눈길이 나온다. 눈 온 뒤로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이다. 등로 살짝 벗어난 절벽 위 암반에 다가간다. 거침없는
조망이 트인다. 미세먼지로 원경은 흐릿하다. 그래도 가야산, 비계산, 두무산, 오도산, 박유산, 황매산, 웅석봉, 지리
산 연릉 연봉 등을 알아볼 수 있다. 반갑다. 손맛 다시며 조망을 찾다보니 뜀바위를 내리기도 한다. 오를 수 없는
암벽과 마주치고 오른쪽 사면을 돌아 얕은 골짜기를 오른다. 눈길이다.
설벽을 오른다. 넙데데한 사면이 온통 설벽으로 변했다. 일보 전진하려다 열보 후퇴하기도 한다. 성긴 잡목이 홀더
다. 클라이밍 볼더링 흉내한다. 눈이 없으면 퍽 심심했을 오르막이 대단한 험로로 변했다. 마침내 906m봉 정상이
다. 다 오르고 나니 설벽이 아쉽다. 906m봉은 암봉이다. 사방 훤히 트이는 일대 경점이다. 약간 내렸다가 길게 오른
다. 봄과 겨울을 넘나든다. 왼발은 봄을, 오른발은 겨울을 간다. 965m봉. 연촌마을 작은김작골에서 오른쪽 사면을
치고 오른 선두 일행과 만난다.
3. 연촌마을 오르는 농로에서 뒤돌아본 기백산
4. 멀리 가운데 왼쪽은 비계산, 오른쪽은 오도산, 그 가운데 뾰쪽한 박유산이 보인다.
5. 왼쪽은 금원산, 오른쪽은 기백산
6. 멀리 왼쪽은 황매산
7. 지리산 천왕봉, 미세먼지로 흐릿하다
8. 멀리 가운데 왼쪽은 비계산, 오른쪽은 오도산
9. 멀리 가운데는 황매산
10.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지리산 천왕봉
11. 황석산, 왼쪽은 남봉
12. 앞 오른쪽은 황석산 남봉, 멀리 왼쪽 뒤는 대봉산(괘관산)
965m봉 내리면서 올려다보는 망월대가 위압적인 첨봉으로 보인다. 방금 전의 오르막은 예행연습이었다. 다가간다.
암릉 바로 옆으로 등로가 났다. 곳곳이 빙판이다. 고정밧줄이 달려 있다. 고정밧줄에 매달려 오른다. 유격훈련의 외
줄 잡고 오르기 다름이 아니다. 어깨 죽지가 뻐근하다. 망월대 수 미터 전의 암반에 올라선다. 저절로 아! 하는 탄성
이 나온다.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함양 거창 합천 산청 뭇 산들이 내 발아래에 있다.
망월대는 숲속 길을 좀 더 가면 오른쪽으로 약간 등로를 벗어났다. 한 피치 가파른 오르막이다. 당연히 들른다. 되똑
한 암봉이다. 과연 망월(望月)하기 좋은 경점이다. 황석산의 동벽 암벽에는 아직 빙화가 지지 않았다. 남덕유산에서
향적봉에 이르는 연봉과 금원산에서 기백산에 이르는 장릉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망월대를 올라 온 길을 뒤돌아
내리고 황석산 오름길에 든다. 여기도 빙화(氷花) 아닌 빙화(氷禍)로 수많은 나무들이 꺾였다.
부러지고 꺾인 나무들이 등로를 가로 막아 납작 엎드려 기어가거나 멀찍이 돌아간다. 황석산성 동문을 들어간다.
황석산성 안내판이 있다. 황석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유재란(1597) 때 이곳에서 왜적과
격전을 벌여 500여 명이 순국한 곳이라고 한다. 황석산에 대한 옛날 자료를 살펴보면 산에 대한 찬미는 찾아볼 수
없고 정유재란 때의 처절한 기록뿐이다. 그중 『국조보감(國朝寶鑑)』의 정유년(1597년) 기록 중 일부를 든다. 『국조
보감(國朝寶鑑)』은 조선 세조 때 후대 왕들의 감계(鑑戒)를 목적으로 실록, 사초, 『승정원일기』 등에서 기사를 발췌
하여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다.
“8월. 적이 안음(安陰, 지금의 안의 安義)의 황석산성(黃石山城)을 함락시켰다. 현감 곽준(郭䞭)과 전 함양 군수(咸
陽郡守) 조종도(趙宗道)가 전사하였다. 처음에 체찰사 이원익은 황석산성이 호남과 영남의 요충지이므로 적이 반드
시 빼앗고자 할 것으로 여겨서 세 고을의 군사를 예속시키어 곽준에게 지키도록 명하였다.
적이 쳐들어오자, 곽준은 밤낮으로 독전(督戰)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곽준이 태연한 기색
으로 호상(胡床)에 걸터앉아서 끝내 해를 당하였는데, 그의 두 아들 이상(履常)과 이후(履厚)가 시체를 부둥켜안고
적을 꾸짖으니, 적이 함께 죽였다. 준의 딸은 유문호(柳文虎)에게 시집을 갔는데, 문호가 적에게 사로잡히자 곽씨가
이미 성을 빠져 나왔다가 그 말은 듣고는 여종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나 같이 죽지 않은 것은 남편이 있었기 때
문인데, 이제 남편도 사로잡혔으니 내가 어찌 차마 홀로 살아 있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매어 죽고 말았다.”
“조종도(趙宗道)는 전에 함양 군수(咸陽郡守)를 지내고 집에 있었는데, 항상 말하기를 "나는 녹을 먹은 사람이니,
도망하는 무리와 들판에서 함께 죽을 수는 없다. 죽을 때는 분명하게 죽어야 한다.” 하고는 처자를 거느리고 성으로
들어가,
공동산 밖의 생활도 즐거웠지만 崆峒山外生猶喜
장순ㆍ허원처럼 성을 지키다 죽는 것도 영광일세 巡遠城中死亦榮
라는 시를 지었는데, 마침내 곽준과 함께 전사하였다.”
공동산은 중국의 황제(黃帝)가 광성자(廣成子)에게 도를 물은 곳인데, 그곳과 같이 도를 즐길 수 있는 곳에선 사는
것이 오히려 좋다는 뜻이고, 순원은 당 현종(唐玄宗)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에 지방의 성읍(城邑)을 지키다가 순절
한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을 가리킨다. 당시 조종도는 중국 역사에도 조예가 깊었다. 지금 어느 학자가 이만큼
중국 고사를 알까 궁금하다.
황석산 정상을 오른다. 데크계단을 설치했다. 예전에 짜릿한 손맛을 보며 오른 바위 슬랩이 그립다. 가장 높은 바위
에 올라 천지 한 번 둘러보고 내린다. 황석산 북릉 암릉은 위험하다며 막았기도 했고, 오늘은 더하여 설벽 또는 빙벽
이라 언감생심이다. 망설이지 않고 뒤돌아 내린다. 눈이 제법 깊다. 사면 길게 돌아 북쪽 성곽에 오르고 양지바른
암벽 아래 자리 잡고 늦은 점심밥 먹는다. 일부러 탁주를 가져오지 않았다. 반주가 없으니 확실히 밥맛이 없다.
13. 금원산과 기백산
14. 멀리 가운데 왼쪽은 지리산 천왕봉, 맨 오른쪽에 반야봉도 보인다
15. 왼쪽 수망령 뒤는 무룡산
16. 황석산 북릉
17. 황석산 동벽, 바위에도 빙화가 피었다
18. 서래산
19. 왼쪽은 황석산 북봉, 앞은 황석산 북벽, 멀리는 덕유산 향적봉
20. 황석산 북봉, 멀리는 지리산 천왕봉, 왼쪽은 웅석봉
21. 앞은 황석산 북봉
22. 왼쪽은 무룡산,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향적봉
▶ 거망산(擧網山, 1,184.0m)
오룩스 맵을 보면 황석산 북봉은 능선마루인 성곽과 이어지는 암릉으로 갈 수 있는데 등로는 그 왼쪽 사면으로 잘
났다. 등로 따르다 보니 암봉인 북봉 정상을 돌아 넘는다. 북봉 내리는 길이 의외로 까다롭다. 설벽으로 변한 긴 슬
랩을 고정밧줄 잡고 레펠 하강하듯 내린다. 고정밧줄이 없다면 설벽구간을 어떻게 지나야 할지 난감했을 뻔했다. 그
다음 눈 깊은 사면을 길게 지나 능선에 오른다. 능선도 지나기 만만하지 않다. 열 걸음에 다섯 걸음은 빙화로 꺾인
나무들을 비켜가야 한다.
내 앞에 젊은이 한 사람이 갔다. 그 사람이 우리 일행 향도다. 그 사람이 낸 발자국을 쫓는다. 번번이 눈길 사면을
돌아 오르곤 하는데 정확하고 다른 수가 없는 발걸음이다. 봉봉을 넘는다. 등로는 직등하도록 났다. 1,154m봉 넘고
┣자 갈림길을 지난다. 오른쪽은 불당골 지나 장자벌로 간다. 황석산 2.45km, 거망산 1.75km,장자벌 입구 3.14km
이다. 내 앞에 가던 젊은이가 왼쪽 바위 아래 양지바른 사면에서 휴식한다. 이제 내가 눈길을 뚫는다.
오붓한 눈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살펴 걷는다. 내 뒤에 오는 일행을 위해서다. 1,255.1m봉도 절벽 끄트
머리에 다가가면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김형수는 그의 『韓國400山行記』에서 황석산과 거망산 능선 중 가장 높
은 이 1,255.1m봉을 거망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여기서 주릉 따라 0.75km를 더 간
1,184.0m봉을 거망산이라 한다. 1,255.1m봉 북쪽 능선은 눈길이 아니라도 아무도 간 적이 없는 암릉이라 등로는
그 왼쪽 사면으로 났다. 지능선을 오르내리며 넘는다.
키 큰 산죽 숲 지나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로 오른쪽이 지장골 입구 3.31km다. 거망산 정상은 직진 0.14km다.
내쳐 오른다. 거망산 정상 너른 공터에는 따스한 햇볕이 가득하다. 정상 표지석 기단에 걸터앉아 휴식한다. 무엇보
다 탁주가 없으니 손과 입이 심심하고 할 일이 없다. 하산. 지장골 내리는 길도 여간 사납지 않다. 가파르고 울퉁불
퉁하니 파인 돌길 등로에 많은 나무들이 꺾이고 쓰러져 있어서다. 산행 마감시간 17시가 그리 넉넉하지 않을 것 같다.
지장골에 다다르기 전에 사면을 돌고 돌고 지계곡을 건너고 건넌다. 그러다 다시 돌길을 내리 쏟고 다시 사면을
돌고 다시 지계곡을 건넌다. 지장골 계류에 내려선다. 겨울잠을 깬 계류는 우렁차게 온 산을 울리는 봄의 교향악을
연주한다. 한여름 장마철처럼 계류가 불었다. 계류를 건너갔다가 건너오기를 반복한다. 곡예한다. 뭇 산행 표지기들
이 떼로 그 길을 안내한다. 포말 이는 크고 작은 폭포들이 볼만하다. 그중 선녀폭포가 이름에 걸맞게 단정하고 곱다.
23. 황석산 남봉
24. 황석산
26. 황석산 북릉, 눈이 꽤 깊다
27. 앞 왼쪽은 기백산, 멀리 가운데는 단지봉, 맨 오른쪽은 좌대곡령
28. 앞 왼쪽은 현성산, 멀리 왼쪽부터 단지봉, 좌대곡령, 가야산
29. 황석산 연봉
30. 덕유산 향적봉
31. 앞 안부 바로 위는 거망산, 중간 가운데는 월봉산, 맨 왼쪽은 남덕유산, 맨 오른쪽은 무룡산
32. 왼쪽은 황석산,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오도산
너른 개활지가 나오고 대천인 용추계곡 계류를 징검다리로 건너면 대로다. 용추사가 가깝다. 용추계곡 무지개다리
건너고 돌담 돌면 용추사다. 적막하다. 용추폭포 법문하는 소리가 멀리서 낭랑히 들려 더욱 적막하다. 커다란 돌
수조에 파이프 타고 졸졸 흐르는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목 축인다. 감로수다. 돌 수조 옆의 입석에 새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네
버릴 것은 오직 간택뿐
밉다 곱다는 마음 없으면
탁 트이어 명백하리라
善海
선해(善海, 1956 ~ )는 2012년 해인사 주지로 가기 전 이 절의 주지 스님이었다.
선해 스님이 새긴 글귀는 중국 수나라 때 승려로 선종의 제3대 조사인 승찬대사(僧璨大師, ? ~ 606)가 쓴 신심명(信
心銘)의 맨 앞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자로는 다음과 같다.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이 4언절구의 해석은 사람마다 다른데 그중 다음의 해석이 이해하기 쉽다.
도에 이르는 길은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구별)하는 마음을 내지 마라.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모든 것이 막힘없이 명백하리라
절집을 나와 용추폭포를 보러간다. 우리나라 여러 용추폭포 중 이곳 용추폭포가 가장 장대하다고 하다. 용추(龍湫)
는 ‘폭포수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있는 깊은 웅덩이’를 말한다. 지장골, 용추계곡의 절정이다. 골골의 계류를 한데
모아 쏟아지니 뭉툭한 게 멋이 없다. 1926.08.29.자 동아일보는 ‘巡廻探訪(四十九) 咸陽地方大觀<3>’에서 다음과
같이 용추폭포를 소개한다. 오늘은 나 혼자 관폭한다.
“龍湫瀑布 咸陽郡 大知面에 잇는데 飛流直下 百餘尺이나 됨으로 그 壯絶한 瀑布는 實로 日本 日光瀑을 부러하지
안 할 만하며 其上頂에는 距今 千百七十年前 中國 人覺然師의 所建 龍湫寺가 잇는데 亦是 咸陽의 名所로써 年年穀
雨의 節에는 探勝客이 實로 數千에 達하야 常時는 人海를 보인다.”
용추사 입구 바로 위쪽의 공터에 홀로 남은 ‘德裕山長水寺曹溪門’ 일주문이 산골 해거름에 한층 쓸쓸하다. 너른 주
차장에는 우리 버스만 남았다. 일행 모두가 산행을 마치는 데는 마감시간 17시를 약간 넘긴다. 거망산까지 간 사람
은 27명 중 4명이라고 한다. 대부분 불당골 장자벌로 내려왔다. 그런데 남자 한 사람이 아직 산중에 있다. 그가 도착
하려면 적게 잡아 1시간은 걸릴 거라고 한다. 일행 다수가 음식점 한 곳 없는 이 산골에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한다. 한 사람을 산에 두고 간다.
33. 남덕유산
34. 멀리 맨 오른쪽은 남덕유산, 맨 오른쪽은 향적봉
35. 백두대간 할미봉과 남덕유산
36. 오른쪽이 황석 거망 능선에서 가장 높은 1,255.1m봉, 북사면에는 빙화가 아직 남아 있다
37. 지장골 무명폭
38. 지장골 선녀폭포
39. 지장골 무명폭
40. 용추계곡
42. 용추폭포. 용추계곡의 절정이다
첫댓글 이번에도 저의 고향 거창을 가셨네요.
거창에는 정말 아름다운 산들이 참 많습니다.
겨울과 봄 사이의 거창 산들은 또 색다른 맛이 있네요.
마지막 폭포와 계곡 사진들이 시원시원합니다.
구경 잘 했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황석 거망 금원 기백은 갈 때마다 조망이 좋았습니다.
언제 가도 아름다운 산들입니다.^^
사진으로 멋진 겨울풍경을 즐기고, 글을 읽으며 맘을 설레어봅니다.ㅎ
언젠가 용아장성길을 오랜만에 좇아갔다가 저 때문에 반시간 이상 버스가 출발하지 못했던 씁쓸한 추억이 떠오르네요.ㅋ
그럴 때는 휴게소에서 일행들에게 음류수 한 병씩 돌리더군요.^^
@악수 다들 고단했는지 꿀잠들을 자더군요.ㅋ
황석,거망,금원,기백, 오지에서도 여러번 갔었는데그때마다 조망이 좋았던거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건 산인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곳 산들은 갈 때마다 환상적이었습니다.^^
산에서는 하얀 설원속에 시원한 조망이 눈을 맑게 하고, 수량이 많은 계류덕분에 귀도 시원해지는 산행이셨네요^^...홀로 남은 그 사람은 무사하겠지요?
뉴스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별 일이 없었나 봅니다.
서울 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ㅠㅠ
역시 설경이 좋네요. 이번에는 곡차를 안 가져가셨군요. 황석산 북릉은 겨울에 좀 위험하지요.
마시지 않으면 잊혀지고,
마시면 싫어지고 했으면 좋겠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황석산 북릉과 북봉을 오르내렸는데 이제는 세월의 무게로 겁이 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