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람되게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을 꿈꿨던 적이 있었다. 선인들이 일찍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높이 간다’는 보보고(步步高)를 비롯해 ‘높이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함’ 즉 등고자비(登高自卑)라고 일렀다. 그 외에도 ‘천리 길도 발밑에서 시작된다’는 천리지행 시어족하(千里之行 始於足下)나 행원자이(行遠自邇)라고 경고했음에도 주제 넘는 생각을 했었다. 이는 ‘감히 바랄 수도 없는’ 언감생심(焉感生心)으로 ‘어이가 없어 말하려 해도 말할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며 ‘말이 사리에 맞지 않는’ 어불성설(語不成說)로서 지나친 탐욕의 소치이었다. 나름대로 열성을 기울였지만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쓿고, 정으로 쪼며, 숫돌에 가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정성을 쏟지 않은 때문인지 ‘손에 쥔 것 없는 상태’인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일터에서 내려섰다. 그랬더니 ‘남의 도움을 받을 데가 전혀 없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곤고함에 무척 허전하고 쓸쓸하다. 그래도 인생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며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이르는 말을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끌어다 붙여 위안 삼아도 되는 걸까?
삶에서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의 추우강남(追友江南) 처지를 겨우 벗어나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지일미지이(知一未知二)인 상태에서 지나친 언행도 숱하게 범했을 게다. 미욱했던 까닭에 공연히 여기저기 아무데나 참견하려 기웃거리면서 ‘남의 제사에 대추(棗) 놔라 감(柹) 놔라’라는 식으로 타인지제왈리왈시(他人之祭曰梨曰柿)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 때문에 ‘견문이 좁아 세상일을 모르고 저 혼자 득의 양양’한 즉 요동지시(遼東之豕)의 꼴을 꽤나 범했으리라. 이런 행동은 ‘무능함에도 실력이나 재능이 있는 체’하는 남우충수(濫竽充數)처럼 보이고픈 지극히 속물적인 근성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생의 거의 전부를 ‘학문을 합네’ 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살아왔다. 학문이야말로 ‘콩 심은데 콩이 난다’는 뜻의 종두득두(種豆得豆)를 부정할 수 없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학문에서 제대로 성공하려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반딧불이나 눈빛으로 공부를 하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의 자세로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신념으로 무장해야 한다. 여기에다가 우직하게 ‘(책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함의를 본받아 ‘읽고 또 읽으면 뜻을 자연히 깨우친다’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일깨움을 제대로 깨우쳐야 했다. 한편 ‘책을 읽음으로써 옛 현인들과 벗이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독서상우(讀書尙友)의 참뜻을 되새겨야 했다. 여기에 더하여 ‘지위나 나이를 비롯해 학식 따위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즉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열린 자세와 태도가 선결되어야 했다. 그럼에도 진부한 핑계를 앞세우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며 ‘이 쪽 저 쪽을 넘보는’ 지동지서(指東指西)를 거듭하면서 우왕좌왕했었다. 한데도 ‘겸허하게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에 이르렀던 현명한 대처는 없었다. 이 같은 소회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의 후회로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격으로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실우치구(失牛治廐) ‧ 망우보뢰(亡牛補牢)인 꼴일 따름이다.
생의 이모작이라도 찰지고 품위 있게 지어보고 싶다는 욕심에서 겁 없이 글쓰기에 뛰어 들었다. 그렇다고 ‘나라를 빛낸 뛰어난 글’인 화국문장(華國文章)을 비롯해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완전무결해 흠잡을 데 없는 글’인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글을 쓰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아울러 나 자신을 잘 알기에 ‘세인들로부터 존경받는’ 태산북부(泰山北斗)를 위시하여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처럼 빛나는 기라성(綺羅星) 같은 글쟁이를 감히 꿈꿀 수 없었다. 또한 그동안 ‘끼니를 잊을 정도로 글쓰기에 몰입하는 노력’ 즉 발분망식(發憤忘食)에 이르렀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예로부터 ‘서당 개(狗)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면서 당구풍월(堂狗風月)이라고 일렀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제대로 된 글 한편 건지지 못한 채 어느 결에게 덧없는 세월이 스무 성상을 훌쩍 넘긴지 오래다. 못난 주제에 이따금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찾는 격’의 연목구어(緣木求魚)를 꿈꾸기도 했다. 한편 타고난 성품이 대차지 못해 ‘갈고 닦으며 오랫동안 준비’하는 연마장양(鍊磨長養)의 자세로 ‘쉬지 않고 힘써 도전하는’ 불면불휴(不眠不休)의 자세를 유지했던 적이 없는 때문일 게다. 글쓰기를 하면서도 ‘어렴풋이 깨우친 설익은 지식 나부랭이로 감히 문학 전체에 대해 운운하는 좁은 소견’인 맹인모상(盲人模象)의 수준에서 머무르는 부족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랴. ‘지나간 일을 다시 생각해야 소용없는’ 즉 ‘죽은 자식 나이 세기’에 지나지 않을 망자계치(亡子計齒) 같은 후회일 뿐이다.
세상은 나름대로 전문가들의 계층이 톱니바퀴처럼 촘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이다.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배움의 많고 적음 또는 양천(良賤)을 막론하고 따지고 보면 각자가 맡은 역할은 극히 세분된 전문가 영역이다. 그런데 연로한 노인이나 하찮은 힘이라도 거머쥔 이들은 전문가를 무시하고 자기 구미에 맞게 좌지우지(左之右之)하려고 좌충우돌(左衝右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를 들면 적지 않은 노인들은 시대에 뒤져 씨알도 먹히지 않는 구닥다리 지식이나 경험을 보도(寶刀)의 검(劍)처럼 내세우며 자기주장을 실현시키려는 경우가 숱하다. 또한 지배 계층의 권력자들은 경험이나 지식이 전혀 없는 분야에 대해서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며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관철시키려는 무리 때문에 사회문제가 야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농사일은 사내종에게 묻고’ 즉 경당문노(耕當問奴), ‘베를 짜는 일은 계집종에게 물어야 한다’는 직당문비(織當問婢)라는 경구(警句)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일깨움이며 경고이다. 아무리 시답잖은 일일지라도 그 담당자는 전문가이다. 그들 모두가 상응하는 대접을 받아야 건강한 사회임을 간과하는 오만은 없어야겠다. 한동안 우리사회에 캠페인 구호를 등장했던 “약은 약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구호가 전문가의 당위성을 웅변하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해가 거듭될수록 시력 ‧ 청력 ‧ 기력은 이전과 견줄 때 사뭇 다르다. 백세시대를 맞이하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담아 덕담처럼 건넨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세상은 멈추지 않고 변한다’라는 뜻에서 변동불거(變動不居)라고 이른다. 이런 관점에서 ‘과실이 있으면 즉시 고치는데 주저하지 말라’는 뜻의 개과불린(改過不吝)이라는 충고를 받들어 ‘썩은 것은 바꾸고 낡은 것은 고치’는 환부역조(換腐易糟)의 대응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울러 세상사에 대해 줏대 없이 ‘동쪽이라도 좋고 서쪽이라도 좋다’는 가동가서(可東可西)식의 그릇된 가치관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 혹시라도 옳고 그름을 명확히 하고 ‘사람을 대할 때 지위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는’ 가고가하(可高可下)하여 ‘곱고 덕스럽게 늙음’인 맥구읍인(麥丘邑人) 대접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그럴 경우 자기 스스로 ‘세상일에 어두운 늙은이가 자기를 낮춰 이르는 말’인 우수(迂叟)라고 칭해도 손가락질 받지 않을 터이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면 대부분 옹고집쟁이로 변해 포용력이나 변화를 두려워하며 구각(舊殼) 속으로 숨어들어 높은 담을 쌓는 안타까운 경우가 숱하다. 늙을수록 풍부한 연륜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옛 것을 본 받아 새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한결 보람되고 축복 받을 결실을 기대할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버리고 내려놓아야 할 구습(舊習)의 볼모로 되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처해도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참뜻을 제대로 깨우칠 수 없다. 세상 이치가 이럴진대 내 삶의 자세와 생각은 변화를 수용하도록 전향적으로 열려있는 걸까?
(한판암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