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폐 (肺)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갑자기 악화되어 영어 이야기를 더이상 쓰지 못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던 날 꿈에 '영어적 계시 (?)'를 받았다. 분명하고 뚜렷한 글자로 'redemption'을 봤다.
처음에는 "이 죄인도 죽기 전에 '구원의 확신'이라는희망찬 글자를 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막내 여동생이 말하기를 "속히 회복해서 redemption 을 주제로 글을 쓰도록 노력하세요,'하지 않는가..?! 그 제안 (?)에 그냥 고개는 끄덕였지만 이런 부정적 생각도 나의 뇌를 스쳐갔다. "911 (한국에서는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있는 내가 글을 다시 쓸 수 있을까..?! It's beyond REDEMPTION for me to write English Story again. 내가 영어 이야기를 다시 쓰는 것은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양로병원에 laptop computer 를 가져다가 ~ ) 그것도 redemption 이라는 심오한 뜻을 가지 낱말을 주제로 말이다. 마치 Martin Luther 가 "Even if I knew that tomorrow the world go to pieces, I will plant my apple tree." "비록 내일 이 세상이 산산조각이 날 것을 안다해도 나는 내 사과 나무를 심을 것이다."
Martin Luther 의 사과나무 심기를 내가 이렇게 인용하는 실례를 했다. Even if I meet the time of REDEMPTION in consciousness tomorrow I will write English Story. 내가 비록 내일 의식이 있을 때 '속량의 시간'을 맞는다 해도 나는 영어 이야기를 쓸 것이다.
redemption 이라는 낱말을 보면 '빠삐용 (papillon / 프랑스어로 butterfly)' 영화 생각이 나며 'The Shawshank REDEMPTION'isanotherstory aboutaprisonescape 쇼생크 탈출은 죄수 도망애 대한 또 다른 이야기이다.
redemption 의 최고 얘기는 구약의 사랑의 이야기 룻 (Ruth)에게셔 나타난다. 이스라엘 땅에 흉년이 들어 '국내재산'을 포기하고 와국으로 이민을 떠난 '나오미'는 두 아들을 그 땅애 묻고 며느리인 Ruth 을 데리고 귀국했다. 귀국한 두 과부를 본 옛 이웃들이 그들을 참 불쌍하게 여겼으나 이방여인인 Ruth 의 희생적 시어머니 사랑이 결실해서 일타 쌍피 (아니 두 光)을 얻는 happy ending 을 경험했다 다름 사람에게 등기 이전된 시부모의 토지를 보아스라는 부자와 결혼하면서 되찾는 상환 (相換)의 기쁨과 귀한 가정을 둥시에 얻은 것이다. “I will REDEEM it." 내가 그것 (Ruth 의 시부모의 땅)은 상환할 것이다.
내가 뻔뻔하게 (?) 욕심을 부린다. 세상을 떠나면서 구원 (救援)의 확신을 가짐은 물론 몸이 많이 아파서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고 포기하다가 희망적 상환 (相換)을 경험한다 그런 이중의 복을 double blessing 이라고 하는데 구체적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I am blessed to bless. The first blessing is receiving, but it doesn't end there. The second blessing is giving it away! That's the double blessing. 나는 앞으로 복을 복을 받았다. 첫번 째 복을 받고 있는 중인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두번 째 복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이중의 복이다. (Mark Patterson 의 The Double Bles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