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의 중압감 때문에 자살하는 피의자들!
명훈 아빠 심영성은 조사를 마친 다음, 검찰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초조하고 미칠 것 같았다. 그 때 어떤 사람이 검찰 수사를 받고 나서 밖에 나와 건물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보도를 보고 깊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어떤 현역 국회의원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아파트에서 투신해서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명훈 아빠는 우리 사회에서 왜 저런 비극적인 자살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하거나, 한강에서 투신하거나,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수사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대기업 회장이 자살하고, 도지사도 자살하고, 공무원도 자살하고, 경찰관도 자살했다.’는 뉴스를 들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수사를 받으니까 힘이 들테고, 징역 갈까봐 자살한 것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냥 징역을 살면 되지, 자살하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하고, 운영하던 회사는 어떻게 하나? 무책임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오죽 했으면 죽고 싶었을까? 검찰 수사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사건 관계인들에 대한 배신감, 증오심 때문에 견딜 수 없었을 거야?'
수사 대상이 되면 공황상태에 빠진다.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다. 세상이 모두 까많게 보이고, 사람들이 무섭게 보인다. 한없이 작은 존재로 전락하고,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자신도 없고 용기도 없어진다.
주변에서 아무리 힘을 내라고 응원해도 소용없다. 그것은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멀리 떨어진 뭍에 서서 ‘힘을 내요. 빨리 이곳으로 와요. 당신은 절대로 죽지 않으니까 염려 말아요.“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과 같다.
생각하면 할수록 부정적으로만 생각한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단정한다. 징역을 몇 년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나이 들어 징역을 살 건강도 없고 용기도 없다. 젊었을 때는 멋도 모르고 군대도 갔다 왔고, 고생도 했다. 하지만 나이 들어 오랫동안 편하게 살다가 뒤늦게 징역을 산다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옥이다.
이런 깊은 절망과 두려움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술이나 담배를 계속하면 아주 병약한 상태가 된다. 이때 악령이 영혼에 침투한다. 그러면 그 악령이 속삭인다.
‘앞으로 희망은 없어. 고통만 가중될 거야. 아무런 해결 방법도 없잖아. 그렇게 고통을 받을 바에야 차라리 스스로 평안함, 영원한 안식을 찾는 게 나을 거야. 내 말을 들어. 지금 스스로 모든 것을 차단해 버려.’
이런 악령의 명령, 유혹을 거역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간단한 유서 한 장을 남긴 채, 그토록 한 많은 이승을 떠난다. ‘그동안 제대로 못해줘서 미안해요. 아이들하고 잘 살아요.’ 그리고 한가지 사항을 덧붙인다. ‘나는 아무 죄가 없어요. 너무 억울합니다.’
TV 채널을 돌리니 개그 프로를 하고 있었다. 전에는 제일 많이 본 프로가 개그였다. 개그 프로를 보면 정말 재미 있고, 그들의 순간적인 재치와 은유가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 어떻게 저렇게 재미있는 개그를 만들 수 있을까 감탄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도대체 저런 것을 보고 무엇이 재미있다고 웃고 있는 것일까? 너무 유치하다.’ 개그를 하는 사람들은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상식에 맞지 않았다. 그런 개그를 보려고 일부러 추운 날씨에 방송국까지 가서 재미있어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웃고 있는 사람들도 이상해 보였다.
‘세상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데, 저런 말장난이나 하고들 있을까? 그걸 보러 녹화현장까지 가서 앉아 있을까?’
화까지 날 정도였다. 다른 채널을 돌리니 프로 골프 시합을 중계방송하고 있었다. 속이 상했다. 지금 이런 사건만 아니었으면, 경치 좋은 곳에 가서 ‘Nice Shot!'을 날리고, 끝나면 사우나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젊은 파트너들과 술 마시고 노래방까지 갈 수 있을 텐데, 너무 억울했다.
명훈 아빠는 남다른 운동신경이 있어서 그런지 레슨을 많이 받지 않았어도 오래 전부터 싱글이었다. 필드에 나가면 눈에 띄는 황태자였다. 돈을 잘 쓰고 인심이 좋고, 팁을 잘 주니까 캐디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명훈 아빠를 맡으려고 애썼다.
골프 매너도 좋아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신사였다. 골프채는 매년 바꿨다. 골프채가 좋아야 핸디를 줄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골프고 나발이고, 모든 것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채널을 돌리니, 격투기를 하고 있었다. 백인 선수가 흑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흑인은 백인을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탄 채 계속해서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꽂고, 팔꿈치로 내리찍었다. 백인은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서 피가 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코뼈가 부러지지 않고, 이빨이 부러지지 않고, 뇌진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관중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백인이 그 체급의 참피온인데, 도전자에게 신나게 얻어터지니까 모두들 흥분해 있었다. 명훈 아빠도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의 사건은 그렇고, 일단 지금 저렇게 힘이 있는 사람이 무자비하게 때리고 폭행을 가하고, 상해를 가하고 있으니까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창과 칼로 싸우다가 죽어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검투사들은 노예 출신이거나 죄수 신분이었다. 그들이 검투사로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강제명령에 의해 동원된 투사들이었다.
거기에는 일정한 게임의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상대를 죽여야 자신이 사는 전투였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여야 하는’ 비극이었다. 현대판 격투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때려눕혀야 하는’ 현실은 로마시대 검투와 똑 같다.
상대를 KO시켜야, 챔피언이 된다. 그래야 자신이 산다. 물론 KO를 당한 선수는 사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살인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
TV를 껐다. 시끄러운 소음이 멈추니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진다. 악마가 머릿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성경을 펼쳤다. 그동안 바빠서 교회에 거의 나가지 못했다. 부인은 주일성수하고 독실했기 때문에 집에는 언제나 성경책이 있었다.
사업이 잘 되고, 인생의 좋은 시절을 보낼 때는 성경을 보지 않았다. 성경을 봐야 늘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선지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돌판에 받아왔다는 십계명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첫 번째부터 네 번째 계명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에게 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며,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십계명에 이런 네 가지 사항이 있는 것을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인데, 어렸을 때 부모에게 불효를 많이 했고,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으니, 지금은 이 계명도 해당사항이 없었다. 여섯 번째,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도, 자신의 성격상 싸움을 했어도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할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왜 성경에다 굳이 살인금지명령을 넣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덟 번째는 도둑질하지 말라. 아홉 번째는 위증죄를 범하지 말라. 열 번째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이런 계명도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너무나도 추상적인 것이었다.
다만, 일곱번째 계명, ‘간음하지 말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슴이 뜨끔했다. 지금까지 명훈 아빠가 관계 했던 여자는 부인을 빼고 모두 39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명은 몇천년 전에 있었던 과거의 역사적인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성이 개방되고, 프리 섹스가 대세인데, 어떻게 간음하지 않고,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인 이외의 다른 여자를 ‘눈으로나, 마음으로도’ 간음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성직자도 지키지 않는 계명 같았다. 아무리 따지고 봐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명훈 아빠는 십계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성경을 들춰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 구절은 그야말로 명훈 아빠의 지금 처지에 아주 정확하게 들어맞는 말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헛되고 헛된 것이다.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힘들게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모든 것이 허망하고 무상한데, 고행으로 가득찬 몇십년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말인가?’
작은 운명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