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의 대한민국 대통령 영화 아내와 함께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 동안 내가 무심했던 탓인지, 아니면 임신한 아내와 함께 볼 만한 영화가 없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꽤 오랜만에 함께 한 극장 나들이.
개봉 소식을 듣자마자 영화를 꼭 보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아내는 기꺼워 했고, 감독이 장진이라는 사실에 나 역시 기대에 들떠 있었다. 대통령이 사회 이슈를 독점하는 이 민감한 시기에 시대의 이야기 꾼 장진이 그 화려한 출연진과 함께 어떤 대통령을 이야기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 굿모닝 프레지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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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장진
출연 이순재,장동건,고두심,임하룡,한채영
개봉 2009.10.22 한국, 1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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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이 누구인가. 아무리 평범한 사건일지라도 그 마다의 특색을 찾아 내어 자신만의 화법으로 관객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이끌어 내는 재담 꾼 아니던가.
그런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건국 60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해피 엔딩으로 끝난 적 없고, 현재도 그 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그린다고 하니 궁금할 수 밖에.
과연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어떻게 그려 내려는 것일까? 과연 그가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대통령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꿈꾸는 대통령의 모습 영화는 연 이은 세 명의 대통령을 묘사한다.
아버지와 같이 자상하고 청렴 결백하며 인간적인 모습의 김정호 대통령부터 젊고 패기 있으며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한 모습의 차지욱 대통령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대차고 강직하지만 한 편으로는 따뜻한 감성의 한경자 대통령까지.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첫 번째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대통령 임기 내 매력적인 모습도 모습이었지만 그보다는 임기가 끝난 후 편안하게 범인의 일상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그 어떤 직업보다도 뒷 마무리가 가장 힘들다는 대통령.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우리는 임기를 끝내고 평범한 범인이 되어도 어색하지 않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국민들에 의해 쫓겨 나서 머나먼 이국에서 쓸쓸히 삶을 거두고, 심복에게 총살을 당하며, 퇴임 후 쿠데타의 죄를 물어 감방 살이를 했던 대통령.
군사 독재가 끝났어도 IMF 외환 위기를 막지 못해 국민들 손가락 질을 받고, 뇌물 스캔들로 자살을 택하며, 심지어는 죽어서도 빨갱이 딱지를 떼지 못해 혹자들이 무덤 파겠다고 덤비는 대한민국 대통령.
물론 그 모든 것이 근 100년 동안 급하게 요동쳤던 한반도 역사의 필연적인 결과일 테지만 어쨌든 그 모든 과정을 지켜 봐야 하는 국민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영화 속 대사처럼 국가의 수장 대통령이 불행하다면 그 여파가 분명히 국가, 국민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제왕적 대통령이 모든 걸 좌지 우지 하는 나라에서는 오죽하겠는가.
부디 영화에서처럼 대한민국 대통령이 퇴임 후 일상을 제발 행복하게 영위하길 바랄 뿐이다. 불행히 3년 후에도 대통령의 평화로운 일상은 요원한 일일 것 같지만 말이다.
▲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개인적인 욕망에 충실한 대통령 ⓒ 필름있수다
▲ 홀 애비 대통령 이와 같은 대통령은 언제 등장할까 ⓒ 필름있수다
▲ 영화의 끝 장면 이런 대통령이 있었으면 좋겠다 ⓒ 필름있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두 번째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영화 속 몇 장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국민을 상대로 직접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외교 관계에 있어서도 자기 할 말을 하고자 했으며, 퇴임 후에는 소박하게 자기 일상을 영위하던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올라 가면서 청와대 식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차지욱 대통령 역의 장동건의 모습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렸다. 물론 배우 장동건보다는 훨씬 못 생겼던 노무현이지만 과연 청와대에서 그처럼 맛깔나게 담배 피우는 대통령을 우리는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고 있자니 한 편으로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 영화 속의 이상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떠올릴 대통령이 고작 노무현 밖에 없던가.
재임 기간 국민들에게 너무 말이 많다고 핀잔을 들어야 했으며, 당선 후에는 오히려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을 추진하며 적지 않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던 그.
물론 그 모든 것이 자연인 아닌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이 짊어 질 수밖에 없었던 십자가라 할지라도 어쨌든 영화를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 밖에 적절하게 떠올릴 수 있는 이가 없다는 사실은 우울한 일면이었다. 너무도 척박한 우리의 역사.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는 대통령 영화에서 세 대통령은 모두 위기 아닌 위기를 맞는다.
김정호 대통령은 한 번 뱉은 말로 인해 로또 244억을 기부해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며, 차지욱 대통령은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 달라는 어느 젊은이의 간곡한 부탁에 갈등하며, 한경자 대통령은 우연하게 자신의 정책에 수혜를 본 남편 때문에 이혼을 고민한다.
▲ 국민에게 귀를 기울이는 대통령 일반 상식이 통하는 국가의 전제 ⓒ 필름있수다
대통령들이 위의 난제를 풀어가는 방식. 그들은 모두 청와대의 오래된 요리사에게서 힌트를 얻는다.
어마 어마한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깔려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정치를 잘 하기 위해서는 당장 이웃 집 아이부터 챙겨야 된다는, 불행한 대통령이 행복한 국민을 만들 수 없다는 요리사의 당연한 조언에서부터 그 실마리를 풀어 가는 것이다.
그냥 잔잔한 미소를 흘리며 넘길 수 있는 장면. 어쩌면 이는 감독이 현재의 대통령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현재 MB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요리사와 같은 평범한 이들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MB는 그 대화를 위해 시장에서 오뎅을 먹었다고 주장하겠지만 영화 속 차지욱 대통령의 말대로 그런다고 서민과 소통할 수는 없는 법.
▲ 정치는 쇼다 서민들을 위한 정책 ⓒ 필름있수다
결국 이와 같은 소통의 부재는 상식 이하의 사회를 만든다. 소통이 없이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며, 자신이 간과한 상식은 끝까지 오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절차는 위법이지만 법은 유효하다는 자기 모순적인 구절이 헌법 최고 기관에서 흘러 나오고, 정부가 대다수의 국민들이나 전문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이 오히려 하천 수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끝까지 우기는 우리의 현실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영화를 보고 난 뒤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드는 감정은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이와 같이 훈훈하고 건전한 영화를 만든 장진 감독마저도 위태롭다는 느낌. 손석희도, 김제동도 퇴출되는 이 시대에 과연 그는 무사할 수 있을까?
물론 영화와 TV는 다르겠지만 어디 현 정부가 그와 같은 여건을 참작하는 이들이었던가. 부디 장진 감독의 안녕을 바랄 뿐이다.
오마이뉴스 이희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