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윤주연
“앞으로 머리카락 자르는 걸 무서워하지 마요! 왜? 어차피 자랄 거니까!”
헤어커트 선생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사삭사삭 가위질 소리 사이로 지나간다. 나를 포함해서 헤어 가위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두 명밖에 없다. 나머지는 초급반을 여러 번 수강한 사람들이다. 선생님 말씀을 찰떡같이 이해하는 이들의 책상 위에는 틴닝가위(숱가위), 빗이 달린 바리캉 등이 반짝이는 옷을 입고 각자의 위엄을 뽐내듯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들은 엄지와 약지를 가위 손잡이 구멍에 넣고 손목을 약간 뒤로 젖힌 채 능숙하게 가위질한다.
문화센터에서 하는 홈헤어커트 수업 시간이다. 수강생들은 선생님이 오기 전 일찍 도착해서 책상에 고정 거치대를 손나사로 조여 설치한다. 거치대 끝 원뿔 모양의 정상에 대머리 마네킹 얼굴을 끼워 넣는다. 마네킹 얼굴의 이마 꼭대기에는 힘차게 날아오르는 갈매기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그 갈매기 선과 통가발의 이마 끝을 맞추어 덮어씌워야 한다. 빡빡해서 온 힘을 다해 중심선을 맞추어야 하니 시작부터 난관이다.
내 옆자리 수강생은 바리캉으로 본인의 머리를 민다는 남자 수강생이다. 그분이 사물함에서 마네킹을 꺼내갈 때는 마네킹 두 개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이따금 흠칫 놀랜다. 삶은 달걀과 두상이 똑 닮았다. 따발총처럼 발사되면 멈추기 힘든 나의 웃음 총이 작동하지 않도록 그 수강생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황금색 옷을 입은 선생님은 털이 긴 고양이 같다. 우리가 실습하는 동안 거울을 바라보며 수시로 자신의 상한 머리끝을 잘라낸다. 중간중간 가위를 한두 바퀴씩 돌리며 자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생경해서 실습하며 힐끔힐끔 쳐다봤다. 털 관리를 끝낸 후 거울 속 자기와 흡족한 눈인사를 나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생님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회원님, 손빗을 사용하면 안 되죠. 빗을 써요!”
“아, 이어라인부터 다시 탈게요.”
“욕심이 피를 부릅니다. 가위 조심!”
“악!”
선생님의 주의 사항을 무시했다가 피를 봤다. 왼손으로 잡은 머리카락을 한 번에 다 자르려 하면 안 된다. 가위 끝부분이 왼손 손바닥과 맞닿아서 다칠 수 있다. 절반만 자르고, 머리카락을 놓는다. 자르지 않은 나머지를 손가락 끝부분으로 다시 잡아야 한다. 안전하게 헤어커트를 할 수 있는 팁이다. 머리가 복잡한 상황에서는 이 수칙을 실천하기 어렵다. 쉽고 빠르게 결과물을 내려 하면 더더욱 그렇다. 선생님이 나누어 준 유인물 속 브로킹(컷을 하기 쉽도록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누는 것)까지 생각하면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지만, 현재에 집중하는 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머리카락은 어차피 또 자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작품으로 탄생한다.
노인복지관 봉사를 다니다가 헤어커트 봉사자 수가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주로 학원에서 헤어커트를 배우는 학생들이 의무 봉사로 온다. 복지관에서 헤어컷을 받고 싶다고 신청하는 분들이 훨씬 많아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다. 요즘 미용실 헤어커트 비용이 제법 비싸다. 가격이 매년 오르기 때문에 신청자가 더 많아지는 듯하다. 문화센터에서 12주 과정만 수강해도 남성 커트는 가능하다고 하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문화센터 수업을 들으면서 언젠가 남편의 머리를 잘라주겠다는 말을 한 이후로 남편은 예전보다 미용실에 가는 주기가 짧아졌다. 자기 뒷머리에 땜빵이 생기거나 옆머리에 계단이 생길까 봐 두려운 모양이다. 타란툴라 거미 같은 두 개의 층이 될까봐? 아니면 본인의 머리를 도화지로 쓸 것 같아서? 누구에게나 서툰 시기는 있는 법 아닌가. 통가발 여러 개를 이용해서라도 그 시기를 잘 지나가 보리라. 왼손으로 잡은 키친 타올 한 장을 허공에 두고 일직선으로 자르기를 한다. 무한 반복하니 점점 가위질이 익숙해진다. 그와 더불어 팔꿈치가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사람들은 때때로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큰 결심을 할 때 머리를 자른다. 최근에 머리 복잡한 일이 많았던 나도 십 년 넘게 유지한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퍼머를 한 것도 아닌데, 나를 괴롭혔던 복잡한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닌데 기분이 새롭다. 마음속 언저리에 숨어 있던 용기가 꿈틀거리기도 한다. 머리카락이 잘려 나갈 때마다, 챙챙 가윗날이 맞부딪치는 금속성이 날 때마다 근심 걱정도 함께 사라졌다. 내 얼굴형에는 긴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확신에 늘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는데, 주변의 반응을 보니 편견이었다. 복잡한 일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에도 편견이 깊게 깔려 있어 더 힘들었다.
삶에서 처음 보는 징검다리를 건너가야 할 순간에 다다랐을 때, 문화센터에서 배웠던 헤어컷 수업 내용이 떠오른다.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을 하던 딸이 국제학교나 대안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그랬다. 당황스러운 속에서도 헤어컷 선생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선생님이 질문했다.
“실수로 친구의 정수리 부분을 약간 짧게 잘랐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강생들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른 헤어스타일로 바꾸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오른손 검지를 흔들며 말하셨다.
“뒤는 본인이 보기 힘들어요. 앞머리보다 빨리 자라고요. 굳이 말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친구에게 층을 내는 허쉬컷을 해줬는데 양쪽 길이와 모발 끝 질감 처리가 엉망이에요. 어떻게 해야 하죠?”
앞자리에 앉아 있는 수강생이 대답했다.
“중단발로 바꾸는 건 어떠냐고 물어봐요.”
고개를 흔들며 선생님이 말했다.
“헤어컷 값도 받지 않고, 그날 밥을 한 끼 사줍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세상일이 좀 더 쉽게 해결되는 거 아시죠. 그리고 머리카락은 또 자랄 거니까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금 내가 잘라야 하는 머리카락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자식을 남과 다른 길인 ‘대안학교’에 보내려 하냐는 시선에 신경 쓰는 것보다 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우선으로 고려하려 한다. 세상을 살아갈 때 꼭 다수에 속할 필요는 없지만, 외로운 소수의 길을 선택했을 땐 당당함을 좀 더 겸비해야 한다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교육청 인정 대안학교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서 직접 발로 뛰며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머리는 어차피 또 자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처럼, 어떠한 형태로든 각자 원하는 방향의 삶을 살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의 인생 작품을 잘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위질할 때 좀 더 자연스러워진 팔꿈치를 기대하면서.
시대에 필요한 담론을 꾸준히 쓰는
작가가 되고파
언제 처음으로 마음속 이야기를 글로 써보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에 대해, 나 자신에게 궁금한 것이 많던 때였습니다. 몸이 아팠고, 긴 치료 기간이 필요했고, 수업일수가 부족하여 중학교 1년을 휴학했습니다. 인생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막다른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가족들은 병원에 입원한 저를 바라보며 대신 아파해 주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죠. 가족들의 격려와 보살핌이 있어도 제가 혼자 감내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때부터 나 자신과 소소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학교에 가 있을 시간에 검사받을 일 없는 진짜 일기를 썼습니다. 울적한 마음이 들 때마다 쓰고 또 썼습니다. 글 속에서 상상 속 인물이 되어 현실과 전혀 다른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글과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습니다. 주변이 온통 흑백으로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꿈이라면 이 꿈에서 영원히 깨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인생 그래프가 포물선을 그리며 위아래로 요동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면, ‘작가’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작가의 경험과 생각을 엿보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는 ‘나’를 느꼈으니까요. 꿈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지요. 내가 경험한 일, 그 일을 통해 사유한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혼자만의 글이 아닌 독자와 함께하는 글은 또 달랐습니다. 처음 내딛는 한 걸음은 자그마하고 보잘것없었지만, 희망을 한 손에 붙들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썼습니다.
제 수필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님들, 시와산문사 장병환 이사장님, 편집장님을 비롯한 관계자분들께 두 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수필의 세계로 이끌어 주시고, 늘 빈틈없는 수업을 해주신 이현호 선생님, 흔쾌히 글쓰기 모임 ‘글요일’ 수업 장소를 제공해 주신 서점 마그앤그래 대표 이소영 작가님,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함께 성장한, 당선 소식을 듣고 저보다 더 기뻐해 준 글요일 회원 곽민주, 노윤영, 시윤정, 이영실, 임정명, 정지연, 최윤정, 한진희 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남편, 딸, 부모님, 그리고 글 좀 읽게 빨리 쓰라고 재촉하며 나를 격려한 친구 세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생태, 동물권, 장애인 차별 문제와 같은, 스스로 아픔을 오롯이 고백하기 힘든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대적인 고민을 담고 있는,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작가의 시선은 우리 사회가 가진 현실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고마운 분들께 꾸준함으로 답하겠습니다. 계속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