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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기도
주님 앞에서 나의 가는 길이 멀고 험해도 난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나 비록 주님을 배역하여 주의 심판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 심판은 공의의 주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기쁨으로 받겠나이다.
나를 심판하소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살아나는 나의 옛 사람을 오늘도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박아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살기 원하나이다.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하게 하소서.
간절히 구하오니 나를 주의 피로 덮으소서.
주님만이 나의 생명이오니 나를 구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시 9:1-20
제목 :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만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17.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 나의 묵상
다윗은 기이한 일들을 행하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하며 찬양한다.
그 일을 행하신 주를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그의 이름을 찬송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기이한 일이란 원수들이 그 앞에서 물러갈 때에 넘어져 망한 일이며, 주님께서 다윗의 의를 기억하시며 그가 억울함 가운데 있을 때에 친히 변호하셔서 그를 높은 보좌에 앉혀 주시는 일과 그를 대적하는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악인을 멸하셔서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워버리고, 그 원수들이 다 멸망하여 이제 더 이상 그들이 사는 성읍들조차 기억할 수 없음을 찬양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정의와 공의로 하시기에 결코 억울함이나 지나침이 없으시다.
그래서 만민이 그 심판 앞에서 겸손히 머리를 조아릴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에게 압제를 당하는 자들의 숨을 바위가 되시며 환난 때에 피할 요새가 되신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그분께 의지하는데 이는 주님께 의지하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며 죽이는 자들을 찾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고통당한 자를 기억하시며 또한 그들의 부르짖음과 신음을 잊지 않으신다.
이방 나라들은 자기들이 판 웅덩이 빠져 허우적거리며 그들이 몰래 친 그물에 자기들의 발이 걸려 넘어진다.
하나님은 당신을 드러내셔서 심판을 하시기에 악인은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고 넘어질 수밖에 ㅇ벗다.
그래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악행을 행하는 악인들은 지옥과 같은 무덤으로 들어갈 것이다.
궁핍하고 가난한 자들, 고통당하는 자들이 실망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생을 의지하는 자들은 승리를 얻지 못하며 그런 이방 나라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간구하기를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의지할 수도 없는 이방 나라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렵게 여기도록 할 것이며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결국 허망한 인생뿐임을 알게 해 달라고 한다.
다윗의 인생은 결코 순탄한 일만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인생 전반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울의 후임으로 사무엘에게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이후에는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끝까지 쫓아다니면서 위협하였다.
그는 한 시도 마음을 놓고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광야를 자기의 집으로 삼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청년 시절 사울에게 쫓긴 세월이 무려 15년이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또 그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쫓겨나 또다시 광야를 처소삼고 살아가야만 했다.
이런 일들을 제외하고라도 그의 주변에는 그를 대적하고 위협하는 위험요소들이 항상 잔재해 있었다.
이방 나라들은 다윗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항상 전쟁을 준비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런 전쟁에 패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군사의 숫자로 싸움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여 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에서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저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작은 일에도 주님의 뜻을 구하는 자였으며, 동일한 상황이 반복될지라도 매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였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 묻는다.
(삼하 6:19)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이 블레셋은 전열을 가다듬어 동일한 장소로 다시 공격하여 들어온다.
그러면 불과 얼마 전에 블레셋과 전쟁을 하여서 이겼기 때문에 그 때의 경험을 살려 전쟁하면 될 것이었다.
그리고 분명 그 때 하나님께서는 나가서 싸우라고 말씀도 하셨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또다시 하나님께 묻는다.
(삼하 6:23-25)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다윗은 결코 자신의 뜻이나 생각대로 행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명령대로 행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에게 묻는 다윗에게 동일한 방법으로 싸움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다른 방법을 주시며 무엇보다 하나님 당신이 먼저 앞서 나가 그 전쟁을 승리케 해 주시겠다고 하신다.
이는 다윗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예수님 역시 당신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셨다.
오직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셨고 그 명령대로 순종하셨다.
그 명령이 곧 영생이다.
(요 6:38-40)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이처럼 아버지의 명령과 계명 그리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할 때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었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주님의 계명을 지켜 복종하는 것이 무겁고 부담스러운 것 같으나 이렇게 복종할 때 그 안에 주님의 사랑이 임하며, 그 사랑 안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임하게 된다.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이요, 이 하늘의 기쁨은 세상의 고통을 넉넉히 수용하며 또한 삼키는 능력이 있다.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주님께 의지할 때에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영원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
내가 비록 연약하여 힘이 없어서 강한 대적들에게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자, 곧 의인이 부르짖는 소리에 하나님은 신실하게 응답하신다.
부르짖음만 아니라 그들의 약한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그들이 애굽의 감독자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며 그들의 근심을 알고 계셨다.
또한 애굽 사람들이 행하는 학대로 하나님께서는 친히 보셨다.
(출 3:7,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출 6: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부르짖는 소리 뿐 아니라 그들의 신음까지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찬양)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나에게 있어 하나님은 언제나 멀리 계신 분이셨다.
가끔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기는 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나의 기도에 응답이 없으신 그런 하나님이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는 자였으나 사실 믿음이 아니라 그저 교회를 놀이터 삼아 살았던 자이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내 마음대로 오해하고 괴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며, 때로는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겨왔던 자가 바로 나이다.
참 하나님이신 주님을 나는 우상으로 섬겨온 자였다.
나의 뜻을 구하는데 필요하면 주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였다.
나의 요구를 들어주셔야만 하는 분이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이었다.
나의 욕심과 욕구를 채워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셨다.
좋은 대학에 붙여주셔야 했고, 좋은 직장이나 또는 사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항상 내 편이 되어서 나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분이셔야만 했다.
나는 그런 하나님을 믿었다.
그런데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나의 요구와 뜻을 철저하게 외면하셨다.
때론 한 번씩 응답해 주시기는 하지만, 대부분 나의 뜻과 나의 생각과는 전혀 딴판으로 나를 이끌어 가셨다.
아니 내가 요구하는 기도는 철저히 외면하셨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나는 내 믿음이 약해서 응답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더 열심히 기도하며 주님을 섬겼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윗은 그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
심지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건널 때에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신을 인도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다.
그런데 나는 전혀 그런 믿음이 없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건널 때면 왜 나만 이런 고난을 겪게 하시느냐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을 쏟아 부을지언정 그 고난 속에서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믿는 자로써 고난 당하는 내가 오히려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드러내지도 못하는 그런 자였다.
나는 철저히 하나님을 나의 우상으로 전락시켜 믿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다.
복음을 알고 나서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새롭게 알았다.
오히려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밀어넣어 참 하나님을 알고 깨닫도록 하시는 분임을 알게 된 것이다.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이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인 영생이야 말로 정말 나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알고 나는 하나님 앞에서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다윗의 감사 찬송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아버지께 복종하신 그 쉐마가 나의 쉐마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영생의 하루를 시작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시나이다.
나의 생명이요 나를 주의 나라로 이끄시는 영생이십니다.
나는 우매하게도 그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알지도 못하고 그저 원망과 불평 속에서 얼마나 많은 날들을 지내왔는지 모릅니다.
내 뜻과 내 생각, 그리고 나의 욕구와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주님을 이용하고 말씀을 이용하는 아주 파렴치한이었습니다.
그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나 그런 나를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임마누엘로 동행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사망의 세력이 나를 끌어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주셨으며 그 안에서 주의 소유로 삼으셨나이다.
주님...
주님의 언약은 끝까지 신실하며 어김이 없나이다.
오늘도 그 언약을 붙들고 주님의 약속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그 나라와 의를 구하나이다.
이 종이 비록 연약하여 넘어지나 다시금 담대히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오니 이 종을 붙드소서.
주의 영광의 빛을 비추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