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10년 대역사(大役事) 끝에 고속철도가 첫 굉음을 울린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바뀌고, 높기만 하던 서울·지방간 벽도 허물어진다. 바야흐로 우리 육상교통이 ‘아날로그 시대’를 접고 ‘디지털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교통혁명은 생활·문화분야에서도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3회에 걸쳐 고속철이 바꿔놓을 세상을 미리 들여다본다.
프랑스에 사는 교포 황정원씨(41·여)는 파리에서 100㎞쯤 떨어진 노르망디에서 250년 역사의 라센도(LA THAINE D’OR) 호텔을 운영한다. 4·6살 난 두 아이를 둔 그는 호텔 일로 바빠 아이를 돌볼 수 없을 때면 500㎞ 떨어진 동부 주라지방 돌시(市)에 사는 시댁을 찾는다.
아침 6시쯤 노르망디를 출발, 1시간 뒤 파리에서 고속철 테제베(TGV)에 오르면 2시간 만에 돌에 도착한다. 시댁에 아이를 맡긴 뒤 TGV를 이용, 오후 1시에 호텔에 도착해 일을 할 수 있다. 일과를 마친 뒤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데까지도 하루면 족하다.
TGV가 바꿔놓은 프랑스인의 일상을 오는 4월이면 우리가 접할 수 있다. 우리 기술로 만든 한국형 고속전철(KTX)이 시속 300㎞로 전국을 달리기 때문이다.
KTX의 등장은 전 국토가 반으로 줄어듦을 의미한다. 경부고속도로 4개를 건설하는 효과와 비견되는 고속철 건설로 4시간10분이 걸리던 서울~부산간이 2시간40분이면 가능해진다. 특히 대구~경주~울산~부산구간이 고속철 신선으로 깔리는 2단계 공사가 끝나는 2010년이면 1시간56분이면 족하다. 서울~천안(76.8㎞)은 불과 34분이면 넉넉하다. 대전까지도 49분, 동대구는 1시간39분이면 도착한다. 광주·목포도 각각 2시간38분, 2시간58분이면 갈 수 있다.
서울과 지방간 산업격차도 크게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차역을 중심으로 산·학·연 집적단지가 들어서고,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되면서 지방은 급속한 도시화로 부산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파리에서 180㎞ 떨어진 지방 소도시 벤돔(VENDOME)은 TGV가 정차하면서 2시간20분 걸리던 파리~벤돔간이 42분으로 줄어들면서 첨단산업도시로 성장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혼슈의 끝 아오모리현 역시 2002년 신칸센 개통과 함께 유동인구가 1.5배 이상 늘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고속철 정차역 주변에 분양될 아파트·주상복합건물만 1만1천여가구에 이른다. 부산·대전시, 전북 익산·경북 경주시, 충남 천안시 등 정차역을 낀 각 지자체들은 역세권 개발계획을 수립중이다.
국토연구원은 고속철이 개통되면 정차역 주변도시 일자리와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업무통행 및 1일 여행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국 1,000개 기업에 대한 조사에서는 82개 응답회사 중 43개 회사가 “고속철 역이 있는 지방도시로 정부부처가 이전하면 회사를 옮기겠다”고 답했다. 이동시간이 절약되면서 업무생산성과 효율 역시 2배 이상 증가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물류 흐름도 빨라진다. 고속철 개통으로 서울~부산간 여객수송능력은 하루 18만명에서 52만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한다. 이는 기존 철도의 여객수송 부담률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화물수송능력을 높이게 된다. 철도청은 당장 4월부터 하루 2,300대분의 화물트럭 수송량을 철도로 흡수할 계획이다. 운송시간도 서울~부산진까지 8시간에서 6시간으로 단축할 계획이다.
국내 레저산업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프랑스의 경우 TGV가 개통되면서 당일 여행객이 하루 26%에서 54%까지 늘어났다. 일본 역시 정차역 주변 관광단지를 테마파크로 개발, 폭증한 레저인구를 수용하고 있다. 국내여행업계 관계자는 “고속철 개통에 맞춰 정차역을 중심으로 한 여행상품을 내놓겠다”며 “하루 여행코스를 중심으로 중부 이남권까지 여행지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항공업계와 고속버스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항공업계는 서울~대구, 서울~부산노선 등의 운항횟수를 대폭 감축할 방침이다. 고속버스도 장거리 노선 이용승객 30~40%가 고속철로 흡수될 것으로 보여, 이를 정차역 연결버스로 운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