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오소서, 성령님! 갈라진 우리 민족에게 어서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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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25/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6·25 전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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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복음 18장 19ㄴ-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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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성령
올해는 남북이 정전협정을 맺은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분단의 아픔 속에서, 남과 북의 진정한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서로 용서하라는 오늘 복음 말씀이 더욱 깊이 와닿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 18,2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여기서 ‘용서’라는 뜻으로 쓰인 ‘아피에미ἀφίημι’라는 그리스어는 본래 사물이나 사람을 무엇으로부터 ‘멀리 내보낸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손해 배상이나 계약 관계에 있어서 그 책임으로부터 상대를 ‘내보내 줌’으로써, 빚을 탕감해주거나 상대를 위해 내가 가진 소유권 자체를 ‘내어놓는’ 행위를 말합니다. 나의 것을 내려놓을 때야 비로소 ‘용서’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용서’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버릴 때 얻을 수 있는 평화입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가졌던 적대감을 내려놓고, 불목했던 역사에서 우리 자신을 ‘멀리 내보내야’ 합니다. ‘용서’란 모든 죄의 사슬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용서’란 모든 죄의 집착에서 벗어나 평화를 구하는 일입니다. 비록 우리 민족이 분단된 아픔과 전쟁이라는 죄의 사슬에 묶여 있지만, 우리를 옭아매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자유롭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성령의 숨결로써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께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구하고, 용서를 통한 참평화를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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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안드레아 신부(의정부교구)
생활성서 2023년 6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