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시를 보았다.
계절꽃인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을 그렸다.
나는 아래처럼 댓글 달면서 고향집을 떠올렸다.
텅 빈 시골집 바깥마당에는 가을꽃들이 피어 있을 터.
코스모스 피는 계절인가요?
위 시를 읽으면서 저도 서해안 고향집 바깥마당을 떠올렸습니다.
지난 8월 말. 산소 벌초하려고 다녀왔던 시골집이지요.
동백나무 아래 자갈마당에는 코스모스 씨앗이 떨어져서 마구잡이로 싹 트고 컸대요.
지금쯤 여러 빛깔로 꽃 피어서 가을바람에 산들거리겠군요.
할말이 있어서 → 할 말이 있어서
물비늘 처럼 → 물비늘처럼
갈 나비 나래위에 → 가을나비 나래 위에
바깥마당에는 키 큰 은행나무, 배롱나무 등이 있고...
그 아래에는 여러 종류의 화초를 심었지요. 다년생으로..
그래도 바람에 날아오는 풀씨, 꽃씨앗이 싹 터서..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위 시에 빙그레 웃었습니다.
오늘은 9월 20일.
서울 잠실 하늘은 흐리다.
아침 날씨도 서늘하고.
마음은 서해안 산골마을로 내려가 있다.
텃밭 세 자리에도 가을빛이 내려앉아서 많은 나무와 화초에도 잎사귀가 퇴색하고 있을 게다.
여름 한철이 지나가고 이제는 열매가 익고 씨앗이 영글어서 이를 거둬들여야 할 시기가 다가오는 초가을.
나뭇잎사귀 풀잎도 많이도 변색하고 퇴색하고 있을 게다.
가을들녘에는 벼이삭이 노릇노릇 물들어 가고,
텃밭 가생이에는 누런 호박이 뒹글뒹글 가을햇볕을 쐬겠다.
가을바람에 가을나비(나방이류)도 나폴나폴 날아다닐 게다.
1.
어떤 시를 보았다.
몇 해 전까지 고향집 앞뜰 들판을 내려다보면서 살았던 나.
어머니 돌아가신 뒤 그참 서울로 되돌아온 나한테도 초가을의 정경이 떠오르게 한다.
내가 아랫처럼 댓글 달았고, 여기에도 옮겼다.
벼 틀이 출렁출렁 춤추고
초가집 지붕
유년시절
산이 많은 우리나라 농촌, 산골마을의 정경과 가을풍광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제가 살았던 마을은 산골이라서 밭은 많고 논은 적었지요. 논이라야 다랑이논. 구부렁거리는 계단식 논.
가을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올 때면 노릇노릇 익어가는 벼이삭이 흔들거렸지요.
들판 들녘에는 참새가 찾아들고, 훠이 훠이 소리 내질러 새떼를 쫒아내는 아낙네, 아이들도 있었고요.
풍요로운 가을 들판에는 짝을 지어 알을 까고는 이제는 먼 곳으로 떠나야 할 곤충들이 마지막처럼 톡톡 튀겠군요.
초가지붕,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글에 나도 빙그레 웃었습니다.
나는 20일 전인 올 8월 말경에 시골집에 며칠간 있었다.
서낭당 앞산에 있는 선산묘지에서 금초(벌초)하려고 내려갔던 고향.
아쉽게도 내 고향 앞뜰은 지금 몽땅 사라졌다.
논은 이제는 마을 뒷편으로 조금만 남았고, 산고라당(산골짜기의 지방 방언)의 다랑이논만 남았다.
앞뜰이 사라진 고향...
2017년부터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으로 앞산과 앞뜰이 모두 토지수용되어서 산을 깎아내린 흙으로 지대가 낮은 논을 메꿨다.
이제는 고라당(낮은 지대) 논의 높이가 이제는 606지방도로보다 더 높아졌다.
산을 깎아서 들판을 메꾼 뒤에는 모두 공장지대로 변했다.
내 어린시절, 청년이었을 때를 떠올린다.
산골짜기 다랑이논에도 홍수가 지면... 흙뚝이 무너지면 논은 빗물로 휩쓸렸다.
허리까지 잠기는 흙탕물인데도, 물바다가 논에 들어가 벼를 세워야 했다. 흙탕물에 벼잎을 흔들어서 이물질을 떼어내고는 볏짚으로 한 묶음씩 묶어서 벼를 엇비슷하게나 바로 세워야 했다.
풍년이 들어도 걱정거리는 또 있었다.
가을바람에 날라오는 참새떼들.
다랑이 논둑에 대나무 장대를 박아 세우고, 장대에 긴 줄을 매어서 늘어뜨리고, 그 줄에 빈 깡통을 매달았다. 이따금 빈 깡통을 막대기로 마구 때려서 깡통소리를 냈다.
훠이 훠이 ~ 목청껏 소리를 질러서 참새떼를 쫒아야 했다.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를 전혀 무서워 하지 않았던 참새들.
수십 년이 지난 뒤에서야 참새를 이해한다.
사실은 말이다.
참새도 벼이삭을 쪼아서 먹을 권리, 권한이 있다고.
참새는 잎을 갉아먹는 벌레를 무척이나 많이 잡아 먹기에 벼농사에는 소중한 일꾼이다.
그런데도 가을 벼이삭이 익어갈 때면 참새들은 억울하게도 미움이나 받는다.
참새떼가 많았던 시절을 떠올리면 그래도 그때, 그곳이 나한테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다랑이논, 구부렁거리는 물논, 산골이나 농촌인 마을에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이 살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는 아이 울음소리도 그쳤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없고, 젊은이도 구경하기 힘들고...
그저 등허리 굽은 할아버지, 지팡이를 든 할머니가이나 어기적거린다.
빈 집이 늘어나고, 사람이 산다고 해도 혼자이거나 늙은 내외 두 사람이나 겨우 산다.
이제는 새떼를 쫒는 사람도 없거니와 들판에도 농사 짓는 농사꾼도 별로 없다.
커다란 중장비인 기계가 혼자서 벼를 베고, 그 자리에서 벼를 거두고, 볏짚을 치운다.
기계 혼자서 일한다. 아니 한 사람이 있기는 하다. 농기계를 운전하는 기사가 있다고.
이것마저도 2016년 이후에는 다 끝났다.
일반산업단지 부지가 되어서 앞뜰의 논이 사라졌기에...
서해안 내 산골마을에는, 이제는 지방도로 뒷편, 또 마을 뒷산 아래에서나 작은 논들이 조금 남았다.
지방도로 뒷편은 토지수용되지 않았기에 마을 뒷편, 뒷산 아래 고라당이 펼쳐지는 다랑이 논이나 남았다. 아쉽게도 이제는 농사를 짓지 않기에 잡목과 잡초만 가득 찬 논들도 있다.
잠시 쉬자...
첫댓글 가을이 깊어 갑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좋은 글 동감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그냥.. 다다닥한 글이기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내 나이 만70.
1950년대, 60년대를 기억하는 나한테는 정말로 많은 것들이 변했대요.
또 앞으로는 얼마나 빠르게 자주 바뀔까요?
마을의 역사인데도 누가 기억할까요?
잠깐이라도 고향의 뒷면을 그려 보았습니다.
@최윤환 최선생님 늘 댓글을 주고
받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김일제 예...
저한테는 그냥 아무 것이나 다 글감이지요.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의 차이일 뿐...
우리 한글로 쓰니까 그냥 쉽게 다다닥합니다.
이만큼 우리 말, 우리 글이 아주 쉽고도 우수한데도
왜들 한자, 한자어로 글 쓰려고 끙끙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