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모습 - / 이동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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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Blhb4Z1YMEM
○ 국민노래 "어머니 마음" ○
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 '어머니 마음'. 불러 드릴 어머니도 계시지 않고 기억이 오래 돼 가사가
가물가물하건만, 오랫만에 들어도 여전히 가슴이 뭉클합니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넖다하리요
어머니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릴 땐 안고 업고 얼러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 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니의 마음 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이 땅에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니의 사랑은 그지 없어라"
이 노래가 3절까지 있는 줄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가사를 쓴 양주동은 5살 때 아버지를, 12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이 곡은 그가 38살 때인 1941년, 서울 경신중 국어교사 시절 음악교사 이흥렬과 함께 조선가곡
현상 모집에 응모해 당선된 작품입니다.
양주동은 경기 개성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숭실전문 동국대 연세대 교수를
지냈습니다. 문학활동도 했지만 문인으로서 보다는 향가연구 분야에서 독보적 업적이 빛납니다.
그가 향가 25수를 해독,1942년에 낸 '조선고가연구'는 지금도 후학이 뛰어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뛰어 난 인물이었던만큼 일화도 많습니다.
조선 최고의 천재로 불렸고 스스로도 조선 국보 1호라고 자칭했다고 합니다. 택시를 타면 "조선
국보가 탔으니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했고, 6.25 때는 한강을 건널 배를 바로 못구하자 발을 구르
며 "조선의 국보가 여기서 죽는다"고 탄식했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죠.
소설 '지하촌'으로 유명한 여류 소설가 강경애와의 연애, 동거, 결별도 유명하지요.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양주동은 유부남, 강경애는 여고생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박화성과 함께 여
류문학을 대표하는 강경애는 현실비판계열의 사회주의 경향파 문인이었고, 순수문학과의 절충적
입장에 섰던 양주동에게 동거를 끝내는 결별 선언을 한 것도 그녀였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어머니 날에 동요 '어머님 은혜'(1948년 윤춘병 작사 박재훈 작곡)를 불렀지요.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것 같애"
이 동요 가사 기억하실겁니다.
5월 8일 어머니날은 1956년에 정해졌고, 유신시절인 1973년에 어버이날로 바뀌었습니다. 경로사상
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https://youtu.be/vWhACMqwb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