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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따-라라 라, 따라, 따, 라라~!
중국발 모드! 아시아 유니버셜스 고려 연대기 시작합니다!!!!
키아! 정말 대륙스러운 로딩화면이로군요! 중국인들이 이런 일러스트를 좋아하죠! 확실히 가까운 나라에서도 약간의 심미적인 차이가 약간 있는 듯 합니다. 참고로 저 일러스트와 함께 요리왕 비룡 BGM이 흘러 나옵니다;;
때는 서기 1449년...
몽고족의 원나라를 몰아내고 중원을 통일했던 주원장의 명나라는 주원장의 폭정과 숙청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원장이 급사하자 2대를 가지 못하고 천명을 잃어버리며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중원에선 다시끔 전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한편 동방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인 고려는 이성계와 정도전의 일파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고
정도전은 고려의 왕족인 왕씨들이 다시 권좌를 차지 하지 못하기 위해 왕씨들을 전부 잔인하게 죽이게 된다.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이된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 왕요는 왕씨의 고려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이성계에게 굴욕적으로 왕위를 양위하고 강원도에 유배 시켰다.
곧 이성계의 조선은 왕요에게 반역죄로 몰아 가족들과 함께 교살시켰다.
그러나 한명의 폐세자가 살아남았다.
3번째 왕자 왕곤,
공양왕 일가는 이성계 일파가 자신들을 죽일 것이란 것을 미리 눈치체고 오늘날의 고양 땅까지 탈출하였으나 정도전이 보낸 추격자에 참살 당했다. 왕곤은 가신들과 먼저 길을 정탐하러 나갔다가 변을 피할 수 있었다.
왕곤은 전주이씨와 정도전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이방원이 이성계가 세운 어린 세자를 죽이고 스스로 왕에 오르자, 이성계는 조사의를 지원해 함흥에서 난을 일으켰고 왕곤의 군세도 이때 평양에서 봉기하게 된다. 그리고 이방원이 직접 친정에 나가자 이방원이 숙청한 정도전 일파가 한양에 봉기해 신라국을 건국했고 남방에선 호족인 서온조가 스스로 부여씨를 칭하며 백제를 세운다. 왕곤은 이성계와 이방원, 전주이씨의 반도의 무리들을 소탕하지만 평안도의 남쪽으론 이미 고려가 지배하는 영역은 없었다.
원나라와 명나라로 인해 천하가 갈리고 500년의 고려 왕조는 천하에서 가장 유구하며 오래된 왕조가 되었다. 그리고 전주이씨 일파를 물리친 1449년... 고려는 다시끔 옛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왕곤은 매우 뛰어난 장군이고 군주였지만 백성들에게 훌륭한 통치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 다시끔 권좌를 되찾게 도와준 구 권문세가 귀족들에겐 매우 훌륭한 군주였다. 한 세대 동안의 전주이씨의 통치와 두번에 걸친 왕좌를 둘려싼 혼란은 고려의 본래의 주인이었던 왕씨의 권위를 떨어트렸으며 권문세가들의 권위 또한 떨어졌다. 왕곤은 자신의 권위와 고려왕실을 지지할 세력으로 권문세가를 선택했다.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정책아래 권문세가들은 빠르게 옛 권리를 되찾았고 왕곤을 지지했다.
굳이 왕곤이 권문세가와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나에 대해선 공주인 왕은비를 차기 고려왕으로 삼기 위한 계책이기도 하였다. 유학에 입각한 사대부들은 옛 국사에나 나올 법한 여왕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반대할게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왕곤은 복수를 끝내고 왕조를 안정화 시킨 후에 늦게 본 공주가 자신이 생산할 마지막 아이라는 걸 어렴풋이 예상했고 전주이씨의 왕씨몰살에 제대로 남은 왕위계승권자가 그녀 밖에 없다는 걸 인식했다.
결국 왕곤은 손을 잡고 공주를 세자로 만들었으며 권문세가는 그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왕곤의 전주이씨와 정도전에 대한 복수심은 고려의 본래의 영토를 암묵적으로 포기할 정도였다. 이방원이 친정을 간 사이에 한양에서 거병한 정도전 일파의 박혁거를 견제하기 위해 남방의 부여온조에게 백제번왕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부여온조의 여식과 결혼한 후 동맹한 것이다. 부여온조는 본래 옛 백제의 왕가였던 부여서씨였지만 본거지인 부여에서 거병하면서 옛 성인 부여로 성을 고쳤다. 부여온조는 남방을 차지하는 것은 성공했으나 신라에 가로 막혀 본거지인 충남을 빼앗겼다. 이 결혼과 동맹으로 백제는 사실상 고려에게 하나의 독립세력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었고 함께 신라를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왕곤의 눈은 바로 신라로 향하지 않았다. 신라는 사실상 고려보다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방원, 이성계, 고려간의 북방에서의 3파전은 현재의 고려 땅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지만 정도전의 계획도시이자 전주이씨가 마지막으로 식량과 제물을 옮긴 한양과 그 일대는 오곡이 풍성한 땅이었다. 고려와 백제는 함께 신라를 이길 수 있었지만 반대로 고려나 백제 혼자선 신라를 이길 수 없었다. 왕곤은 백제와의 동맹을 통해 백제와 신라를 동시에 묶어 버렸다. 신라는 고려와 백제가 동맹이면 먼저 공격을 할 수 없으며 백제도 고려의 공조 없이는 먼저 공격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이 고려는 다른 곳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요동이었다.
요동과 만주, 전주이씨들의 잔당들이 마지막으로 도망간 곳이다. 요동국은 건국초기에 있어서 필요한 인재들을 전주이씨에 충성하던 사대부들로 부터 얻었으며 이성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건주여진 같은 경우엔 고려의 많은 이주민들이 전주이씨 잔당을 따라가 폐허가 된 본국보다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왕곤은 정도전 일파도 증오하지만 전주이씨의 잔당들은 더욱 증오했으며 마침 북방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요동의 동맹인 해서여진은 코친족에게 무너져 힘을 못쓰고 있었으며 또 다른 동맹인 야인여진은 건주여진과 팽팽한 힘겨루기 중에 있었다. 요동의 군사들도 북방 저 멀리 있기에 왕곤은 이때를 노려 요동을 기습공격한다.
요동을 공격하기에 앞써 고려의 군제를 복원했다. 2군 6위에서 2군을 복위했는데 2군 중, 용호군은 고려왕실의 병사와 권신들의 병사들이 응양군은 지방의 권문세가들의 사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군은 5개의 천인대로 이루어졌는대 이 제도는 일부 원나라의 군제를 참고 했다.
용호군
0 친위대 _ 맹호
1 천인대 - 전진
2 천인대 - 노도
3 천인대 - 백골
5 천인대 - 열쇠
응양군
06 천인대 _ 청성
07 천인대 _ 칠성
08 천인대 _ 오뚝이
09 천인대 _ 백마
11 천인대 _ 화랑
고려군은 빠르게 빈 요동을 점령해 나갔지만 그로인해 군사가 분산되었다. 고려의 갑작스런 기습에 놀란 요동은 건주여진과의 전쟁을 종결시키고 야인여진과 함께 남하하여 분산된 군세를 격파한다. 요동의 또다른 동맹인 해서여진은 전의 전쟁의 피해가 큰 나머지 요동에 어떠한 원군을 보내지 않는 대신 요동군과 야인군이 갈 길을 터주었다.
결국 고려군은 분산된 군세로 두 군대와 싸워 패배해 본국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승리는 승자를 자만하게 만드는 법, 고려군이 패한 이유와 똑같이 연합군은 분산되기 시작한다. 요동군은 요동군 나름대로 요동에 남은 고려의 패잔병과 점령된 영토를 되찾기 위해 요동반도로 군세를 돌렸고 야인여진은 고려영토로 약탈을 하기 위해 압록강을 도하하지만 자신의 땅을 지킬려는 권문세가들의 반발로 이도저도 못할 상황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그들이 약탈을 하러 온 땅은 지난 전쟁으로 이미 폐허가 된 땅이었다.
왕곤은 분산된 연합군을 격파할 수 있었다. 야인여진족들이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후퇴를 시작해 압록강을 도하할때 여진족으로부터 대승을 거두었고 역시 나뉘어져 요동에 낙오된 고려병들을 사냥하던 요동군은 더욱 쉽게 이길 수 있었다.
결국 야인여진의 추장들을 사로잡은 왕곤은 그들로 부터 약간의 조공품을 받아내고 요동을 합병한다. 요동을 합병하자 새로운 이웃이 생겼다. 바로 옛 명나라의 호화스러운 궁전에 거주하고 있는 모용씨 일족의 연나라, 왕곤은 이 새로운 이웃과 별 다툼이 없이지내면서 평생의 숙원인 전주이씨의 일당을 공격하고 싶어했고 연나라도 '중원'이 아닌 땅을 가진 고려에 별 다른 관심은 없었고 중원의 다른 국가들을 견제하고 싶어했다. 곧 왕곤은 연나라에 외교관을 파견했고 곧 연나라에선 동맹의 서신을 보내온다.
요동이 고려에 손에 들어가자 건주여진족은 긴장 상태에 빠진다. 게다가 그 고려왕이 전주이씨 일파처단이란 명목으로 요동을 공격했으니 자신들의 땅에서 새로 터전을 일구고 농사를 지어주는 고려인들을 빌미로 공격해 올 수 있단 생각을 한 것이다.
고려가 요동을 합병하자 모두가 생각한 것처럼 전주이씨에 충성을 한 고려인 사대부에 대해 피의 숙청은 없었다. 다만 몇몇 운나쁘고 늙은 책임자만 교수당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을 관리로 이용했으며 요동 땅에 정착해 있던 이들을 통해 쉽게 요동을 통치해 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동맹인 연나라로 부터 들어오는 문물들은 고려에 짧은 문화적 황금기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늘 좋은 법은 없는 법, 동맹인 백제가 고려와의 공조 없이 신라를 공격한 것이다. 고려의 요동정복을 보고 위협을 느낀 것이겠지만 신라는 고려와 마찬가지로 연나라를 동맹으로 하고 있었다. 연나라의 호화롭고 거대한 궁전을 생각한 고려의 조정에선 백제 혼자서라면 안 그래도 힘든데 연나라까지 있다면 필시 패할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신라를 공격? 그렇다면 연나라는 동맹이 공격 당하므로 고려를 공격하게 된다. 하지만 고려는 동맹인 연나라와 관계를 파탄내긴 싫다. 하지만 그냥 납두면 백제는 필히 피할 것이다! 왕곤은 한가지 꾀를 생각하는데 바로 백제에게 고려의 용병부대를 고용하게 하는 것이다. 연나라와의 관계는 살짝 어긋나겠지만 고려자체는 참전하지 않는 것이면서 백제를 도울 수 있게 된다. 이들의 목표는 백제가 신라를 정복하게 돕는 게 아니다. 어느 누구도 확실한 승리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왕곤은 요동전쟁에서 얻은 노하우로 군제를 다시 개편한 뒤 용병 부대를 참전 시킨다.
하지만 인생은 원하는대로 되지도 않는 법, 남부에선 신라군이 백제 땅을 점령하게 못하게 방해하는것에 성공했지만 곧 연나라의 부대와 싸워야 했고 전열도 제대로 가다듬지 않은 상태에서 신라군의 명장 손선의 공격에 왕곤이 참여시킨 용호군은 마냥 도망만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손선이 마지막 한방을 노리기 위해 요하로 용호군을 몰아 넣은 뒤 공격을 하기 직전에 왕곤은 제빨리 용병계약을 철회시킨다.
군사적으론 막대한 패배였지만 국가제정엔 꾀나 도움이 되었게 되었다. 일본열도와 중원사이를 중계무역으로 돈을 벌던 백제를 상대로 용병놀음을 한 결과 짥은 기간안에 많은 금액을 모을 수 있게 해주었고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전쟁이 무승부로 끝나게 만들려던 전략도 성공했다. 왕곤은 이 재미에 또 다시 용병을 중원전쟁에 참여 시킨다. 분명 연나라는 진나라를 향해 승리하고 있었으며 이번엔 약탈을 통한 즐거움이 가득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은 쉬웠다. 진나라의 패잔병을 공격했고 진나라를 구원하러 달려온 여진족들을 무리로 부터 승리했다.
하지만 인생은 원하는대로 흐르지 않는 법.
노나라를 점령한 산동의 제나라가 연나라에 선전포고 했다. 왕곤은 남부초원과 자금성과 하북의 북부를 통치하는 연나라가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제나라는 강했으며 곧 제나라의 군세가 고려의 강역까지 넘어 들어왔다. 어느새 군비를 충당할 수 없던 연나라는 용병계약을 끊었으며 자신의 군비도 걱정하고 있었다. 고려 안으로 적의 군세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던 압록강의 요새와 도시들이 함락되었으며 중원에선 제나라와 연나라의 합전에서 제나라가 승리했다.
결국 연나라의 모용씨는 그들의 선조가 그랬던 것 처럼 초원으로 돌아간다.
고려에서는 왕곤이 눈을 감았다. 말년에 잊다른 군사적 실패와 서서히 늘어나는 권문세가의 권세에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다. 고려엔 왕곤이 준비한 여왕이 즉위한다. 왕은비은 젊은 나이, 아니 어린 나이인 18살에 여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굳게 믿던 동맹인 연나라는 초원의 유목민이 되어버렸고 중원의 전쟁에서 군사의 태반을 잃었지만 얻은 것은 없었다. 여진족들은 고려의 요동진출에 경계하고 있었으며 신라는 남부에서 고려를 봐라보고 있었다.
과연 고려의 운명은!?
연대기라는 게 쓰는게 보통힘든게 아니군요; 평소에 글을 안 쓰니 어떻게 써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스압이나 가독성이나 등등을 신경쓰니 힘들지만 재미있네요!
PS) 후핫! 여왕이라니! 여왕이라니! 그것도 이름이 은비야!! 예쁘고 아청하잖아!!! 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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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뚝이!
아, 오뚝이 한자로 뭔지 아시네요?ㅋㅋㅋㅋㅋㅋ 뭔가 한자로 쓰고 싶었는데 오뚝이란게 순 우리말이라;
마지막에 필자의 상태가...
부대 이름이 익숙..
말머리 달아주세요
고려는 국기도 예쁘고 국가색도 예쁘고...!
중원이 크긴큽니다.. 고려만한 나라가 몇개야 도대체;;
한글 모드는 적응 안되나요?
음; 한글모드는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저 모드자체의 이벤트와 지명 등등이 안나오거나 살짝 문제가 생길 뿐.. 애초에 모드 설명에서 이거말고 다른 모드키지 말라고 해서 안키고 하고 있습니다. 굳이 해보실려면 로케이션 폴더에서 관련 지명폴더 제거하고 한번 해보면 지명 깨지는 건 안나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