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토요일 양일간에 걸쳐 단양/영월지역에 탐방차 다녀왔다.
간만에 행하는 가을 나들이라서 설레는 마음이 마치 학동시절의 소풍가는 날의 전날밤에 겪었던 것과 별반 다름이 없다.
이런 기분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동일하리라 본다.
양재역서 출말하여 단양지역의 유명한 8경을 구경하고 숙소에 가 자고 다음날에 영월지역으로 갔다.
제목대로 우린 그 어린 임금의 애사를 잘 알고 있다.
학창시절의 국사 시간에 졸지 않으면서 단종에 얽힌 구슬픈 사연 듣고 그 나름대로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막상 그 역사의 현장에 오니 감회가 서린다.
표를 끊고 내려가 배를 타고 청령포에 도착하여 내려서 자갈밭을 지나 어소에 오니 다행히도 관광해설사를 만나 그 분의
요약되고 절제된 이 곳의 유배지에 관한 다양한 설명을 듣게 되니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니 그 주변일대 걸으면서 역사
현장 체험을 똑똑히 하는 느낌이 든다.
주변지역 돌고는 다시 올 때처럼 갈 때도 그 배를 타고 육지에 도착했다.
참으로 그 옛날에도 이런 지역에 어린 임금을 유배시킨 그 시절의 권자들의 혜안(?)에 감탄할 뿐이다.
그 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이 청령포는 그야말로 육지안의 섬 형국이다. 거기로 가려면 오로지 교통수단이라고는 배밖에 없는 현실에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야욕에 넘치는 숙부의 권욕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군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도 그 시절의 심경이 되어 나름대로 생각에 사고를 더 하지만 뭐 뾰쪽한 대수가 없다. 그냥 현실의 권력이 동하는 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다는 처연한 현실의 벽 앞에서 그 어린 군주는 얼마나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겠지.
궁궐서 쫓겨난 동쪽으로 천리 길의 유배길을 보니 참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이 생긴다.
약관 20대 미만의 어린 군주이기에 이런 고행스러운 길을 어찌 참고 여기에 도착했는지 신기할 뿐이다.
참으로 더럽고 더러운 조선왕조의 비극사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놈의 옥좌가 무엇이라고 여리고 여린 조카를 축출시키고도 그것도 부족해서 이 청령포로 유배시켜야 했던 그 권자들의 욕망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무어라 평해야 하나?
단 한 가지는 존재한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이 권력욕에서 영구히 해방될수 없다는 것만 확실하다고 하겠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이들은 관계는 숙질(叔姪)사이이고 공적으로 보면 신하이고 임금 사이가 아닌가?
그럼에도 그 숙부는 권욕에 눈이 멀어 어린 군주를 자리에서 끌어내고는 자신이 보좌를 차지하는 생각밖의 행동으로 조선왕조의 초기를 왕조의 찬란한 왕권을 스스로 똥칠하는 역사적인 우를 서슴치 않고 행한다.
어찌보면 그 당사자인 수양대군은 나름대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한(?)자기 옹호를 할 수 있겠지만 이를 역사적으로 온당한 짓이라고 찬동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다 이게 우리가 성군이라고 우러러 보는 세종대왕의 일가가 빚어내는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서 후대에게도 많은 교훈과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라 본다.
난 역사학자도 아니고 일개의 재야의 민초로서 그 장소에 가니 내도 모르게 약간 역사적인 회한이라는 감정적인 소용돌이를 겪었다고 토한다. 이런 행위가 후대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
그 권력 앞에서는 세상에 제일로 친하다는 부자관계도 적이 될 수 있기에 하물며 숙질 관계에 있어도 권력을 탐하는 욕망을 제어하라고 했어도 통제가 되겠는가?
눈 앞에 둘도 없는 왕좌가 있는데 사소한(?)인척관계가 제대로 보이겠는가? 그냥 그 자리가 내자리인 것만 보이지.
언제나 권력은 피를 부르게 된다. 단종애사도 결국엔 제명에 살지 못하는 어린 나이에 세상과 작별했다.
이게 권력이라는 위치가 늘 갖고 있는 이면에는 피란 거 요구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현실이다.
그 자리에 서서 작금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된다. 어째서는 인간은 권력을 탐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눈물겨운 권력투쟁이라는 생명마저도 내놓고 건곤일척(乾坤一擲)권력 게임에 열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는 풍경이다.오늘이나 그 시절이나 다들 권좌 차지하기 위한 욕망의 대결은 쉼없이 전개되는 거 보니 인간 본능에는 아마
권욕이라는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한다.
한없는 생각을 접고 매표소를 지나 전세버스에 몸을 싣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차는 달린다.
아픈 역사의 상처가 진하게 남은 곳을 떠난다고 해도 어째 마음이 무거움을 내려놓지 못하고 차창에 보이는 자연의 만추란
배경에 눈이 간다.
첫댓글 가슴 아픈 슬픈 역사
의 현장입니다.
지난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당사자들
에게는 처참한 악업이
네유.
가슴 아픕니다.
편안한 여행이 되시기
바랍니다.
쉬어 갑니다.
청령포 보고 나 버스 향하는 걸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요?
강원도 영월군 청량포에 들렀군요.
세종대왕(조선조 4대) 손자인 단종(조선조 6대)은 15살인 1455년에 숙부인 수양대군한테 왕위를 빼앗기고,
17살에 위 서강 청령포에 유배되어 2달간 금표(사방 200자, 66m)에 갇혔다가..
홍수로 인해서 객사인 관풍헌으로 옮겼고 2개월 뒤
한양에서 내려온 급부도사 왕방연은 차마 약사발을 건네지 못하였고...그 곳에서 공생한테 목졸림 교살당했고(1457년), 시신은 강물에 내던졌고...
호장인 엄홍도가 몰래 수습하여 자기네 선산에 묻고는 도망치고.. 단종 사후 59년 만에 시신을 수습하여(1516년), 노산군으로 승격하여, 시신은 장릉으로 이장하고...
사육신, 생육신 이야기도 한참 더 있어야..
해설자 말과도 동일하네요.
역사에 대한 조예가 깊어...
단양은 지난주에 옆지기랑 다녀왔지만
영월은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단종 어린나이에 왕이되고 쫓겨나고~
문종이 오래 살았으면 그런 비극은 없었을텐데
그냥 평민의 삶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왕가에 태어난 업보(?)인지도 모르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산수가 좋아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