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XY 염색체를 지닌 알제리 여자 복서의 잽을 거듭해 맞아보니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현타'가 왔다. 해서 그녀는 손을 번쩍 들어 경기를 그만하고 싶다는 의사를 주심에게 전달했다.
파리올림픽 경기 엿새째인 1일(현지시간) 복싱 여자 66kg급 16강전에 나선 이탈리아 대표 안젤라 카리니(25)는 1라운드 46초 만에 기권패한 뒤 기자회견에 나서 20분 동안 "이건 스포츠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야후! 스포츠가 전했다. 카리니의 상대는 지난해 세계선수권 젠더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출전이 금지된 이마네 켈리프(26, 알제리)였다.
카리니는 코치 에마뉘엘 렌치니에게 코를 많이 다쳐 경기를 뛸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코치는 1라운드를 끝내고 더 얘기하자고 강권했다. 하지만 카리니는 켈리프의 펀치를 한 대 더 맞자 곧바로 다시 손을 들어 경기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눈물 가득한 카리니는 “그녀는 너무 강했다"는 말로 회견을 시작했다. 조국에 송구하다는 뜻을 밝힌 뒤 자신이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렇게 빨리 끝낸 데 대해 자책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난 싸우려고 링 안에 들어갔다"면서 이탈리아로 "난 포기하지 않았지만 펀치 한 방으로도 너무 다쳐 충분하다고 말했다. 난 (코피가 흐를까봐) 머리를 높이 하고 링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켈리프가 이날 보여준 압도적인 경기력은 그녀와 린위팅(28, 타이완)이 파리올림픽에 출전하도록 허용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인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는 켈리프가 금메달 결정전에 나서기 몇 시간 전에 실격 조치했다. 국제복싱연맹(IBA)이 XY 염색체를 지닌 선수들은 여성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고 뒤늦게 결정했기 때문이다. IBA는 린유팅이 동메달 결정전에 나서기 전에 마찬가지로 실격 조치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그 뒤 장기적인 거버넌스 문제와 판정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IBA의 글로벌 가버닝 기구 지위를 박탈했다. 이에 따라 파리올림픽 복싱은 IOC 직할로 운영되고 있어 IBA보다 완화된 규정을 적용하고 켈리프와 린유팅의 지난해 젠더 적격성 심사 결과를 따르지 않기로 했다.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은 이날 켈리프와 린유팅 사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들은 여권에 기재된 대로 여성들"이라며 "이들은 많은 해에 많은 시간 출전했다. 그들은 갑자기 여기에 이른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IBA는 전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두 선수에 대한 두 차례 젠더 적격성 검사는 "심사숙고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2022년 튀르키예 이스탄불 세계선수권, 두 번째는 지난해 세계선수권이었다. 아울러 올림픽을 비롯한 다른 종목 기구들이 갖고 있는 기준과 다른 점들에 우려하고 있으며, IOC 입장은 경쟁의 공정성과 선수 안전에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켈리프는 경기 뒤 입을 열지 않았다. 코치는 취재진과 만나지 못하도록 에스코트했다. 전날 알제리올림픽위원회는 해외 매체들이 “비윤리적인 좌표를 설정해 헐뜯는다"며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
켈리프는 알제리 서부 농촌에서 자라났다. 여성에게 스포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인 곳이었다. 심지어 아버지조차 복싱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이전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았다. 복싱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가장 가까운 복싱 체육관에 가기 위해 매일 버스로 10km를 이동해야 했다. 버스비를 모으려고 고철을 수집했고 어머니는 알제리 전통 곡물음식인 쿠스쿠스를 팔아야 했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켈리프는 빼어난 기량을 선보여 3년 전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라이트급 5위를 차지했다. 2022년 아프리카선수권대회 라이트급 금메달에 이어 같은 해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켈리프의 주먹 위력은 2022년 12월 브리안다 타마라(멕시코)와의 대결 동영상이 선풍적인 관심을 끌며 부각됐다. 타마라는 지난해 엑스(X, 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싸울 때 보니 내 팔끝을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더라”면서 “그녀의 주먹 세례는 날 너무 상처 냈다. 복서로 13년을 지냈는데, 심지어 남자들과 스파링을 할 때도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신이 보우하사 그날 난 링을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혀를 내둘렀다.
켈리프가 젠더 평등 검사 결과로 의구심을 산 첫 선수는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중장거리 육상 대표 카스터 세메냐는 두 차례 올림픽 챔피언이었는데 10년 넘게 이 문제와 관련해 달갑지 않은 대표 사례로 언급됐다.
그런데 복싱 선수들은 안전 문제가 결부되기 때문에 켈리프와 린유팅의 적격성은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세메냐가 800m를 빨리 달린다고 해서 다른 선수 몸에 위해가 가해지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카리니에게 이번 대회는 올림픽 2회 연속 출전인데 너무 아쉽게 됐다. 도쿄올림픽 첫 경기를 앞둔 전날 아버지를 여의었다. 렌치니 코치는 "그 뒤 2년 동안 복싱을 하지 않았다. 8개월 전 내게 와 '다시 훈련하고 싶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린위팅이 2일 여자 57kg급 경기에 나서 시토라 투르디베코바(우즈베키스탄)와 주먹을 주고받으면 또다시 같은 이슈가 입길에 오를 것이다. 켈리프는 다음날 여자 66kg급 준준결승에 나선다. 켈리프와 린유팅의 싸움은 계속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