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란 고향 해망동은 갯벌과 어시장 선창가를 떠올리는 풍경이다.
집 앞 신작로 건너 금강 가에는 굵은 밧줄과 쇠고리에 엮여 이어진 나왕나무들이 밀물과 썰물을 따라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여름이면 우리들은 학교를 파한 후 약속이나 한 듯이 나왕나무 등허리에 모여 놀기를 시작했다. 여름이면 한 두 명은 꼭 죽어나가기에 어른들은 나왕나무 있는 곳에 가지 못하도록 말렸지만 우리는 그런 어른들의 걱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서 신나게 놀았다. 햇살이 미끄러운 물이끼에 반들거리는 나왕나무 위에서 우리들은 뜨거운 햇살에 입고간 옷이 땀에 젖을 때까지 술래잡기 놀이를 했고, 땀에 흠뻑 젖으면 우리들은 망설임 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물장구를 치다 지치면 다시 나왕나무에 기어올라 뜨거운 햇살에 젖은 몸을 말리며 대나무에 따개비를 깨서 만든 미끼를 달아 망둥이 낚시를 했다. 우리들의 엉성한 대나무 낚시에 손을 움직이는 대로 망둥이는 따라 올라왔다. 강물이 썰물을 따라 바다로 나가면 드러난 갯벌 구멍을 나와 기어다니는 독게를 잡으며 무릎까지 잠기는 갯벌을 기어다니곤 했다. 그렇게 놀다보면 시나브로 사라지는 황금빛 햇살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생선장사를 다니는 엄마를 졸라 따라간 새벽 생선시장은 비릿한 생선 냄새와 사람들의 흥청거리는 소리가 가득 찬 곳이었다. 5남매나 되는 자식을 위해 이른 새벽길을 재촉하는 엄마는 등에 업은 여동생을 어르면 생선을 사러 선창가를 한참이나 돌아다니셨고 슬슬 배가 고파 올 때쯤이면 엄마는 나를 떡장수 아줌마 옆에 앉히고는 등에 업은 여동생을 안겨주며 100원에 3개하는 따끈한 인절미를 사주셨다. 하얀 찹쌀로 만들어진 김이 나는 인절미 덩어리를 노오란 콩가루 위에 넓게 펴놓고는 하얀 플라스틱 접시로 뚝뚝 잘라 흰 설탕을 잔뜩 묻혀 호호 불어먹으면 입안 가득 번지던 그 달콤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몸빼바지와 수건 그리고 빨간 플라스틱 다라......
어린 시절 나를 키워온 그것들이 자꾸 그리워진다. 그리고 해질녘 먼지 나는 신작로 길을 플라스틱 다라를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넘어가던 황금빛 저녁놀이 자꾸 그리워진다.
이제는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사라진 갯벌,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나왕나무는 그곳에 남아 있지 않다. 그저 폐업한 낡은 어선들만이 그곳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