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 폰보다 더 좋고, 유튜브 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제목으로 2026년 2월 넷째 주일에 하날새에서 하늘빵을 올려드립니다.
요즘에는 문자를 많이 주고받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단체 톡..., 이름하여 '단톡'이라 하여 제 같은 경우에는 목사회와 은퇴목사회 이렇게 두개의 단톡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와 상관없는 단톡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아파트 주민회 단톡'과 '경로회 단톡'과 '복지관에서 배우고 있는 '켈리그라피 단톡' 등에 가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와 관련 있는 단톡에서 "기원합니다"라든지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보게 되면,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교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톡에서, 그것도 그분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기원합니다" 또는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볼 때면, 이 사람이 '누구에게 기도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대상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기도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기도할 때 반드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불러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은, 우리 기도의 대상이 누구시며, 그분과 나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를 기도할 때, 염두에 두고 기도하도록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우리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이 땅에 속하여, 이 땅의 지배를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이 땅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러하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녀만큼 가까운 관계는 없습니다. 이 부자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부자의 관계는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관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낳아주시므로 된 관계입니다. 자녀가 먼저 만든 관계가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신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낳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관계입니다. 우리는 이런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쉬지 않고 교통하고 교제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심장입니다. 심장은 심지어 우리가 잠자는 동안도 뛰고 있습니다. 전신마취하여 수술을 하는 동안도 심장을 뛰게 하면서 수술을 합니다. 심장은 내가 무엇을 하든 뛰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심장도 쉬지 말고 뛰어야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게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기도드릴 때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고 항상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데에는 저만의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태어나서 불과 몇 개월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저는 '아버지 !' 하고, 아버지를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나에게도,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는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저는 기도할 때면 항상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먼저 하나님 아버지를 부릅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도 "아버지 하나님" 하고 잘 부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니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하신 하나님을 두고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두고 다른 무엇을 붙잡고 기도한다는 것은 정신이 잘못되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기도 이야기를, 마태복음 21장의 말씀에서 찾아서 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였습니다. 성전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자 성 밖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다가 이른 아침에 다시 성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베다니에서 아침을 들지 못하신 예수님은 시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 길가에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무화과나무는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시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렸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예수님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궁금하였던 것은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대답은 '열매가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열매에 대한 말씀은 전혀 하시지 않으시고 믿음과 기도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참으로 찾고 싶은 것은 실제의 무화과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잎은 무성하지만, 정작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더 잘 믿으려 한다는 생각에서 온갖 관습을 만들고, 온갖 규례와 법도를 만들어 하나님을 섬겼지만, 그것들은 무화과나무 잎사귀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잎은 무성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지 않으면 열매가 없는 것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잎만 무성했습니다. 정작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삶이 될 때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말씀 순종으로 맺어지는 열매가 아니라면 그것은 잎사귀에 불과합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라" 하여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실제적으로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믿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게 한 제자는 없었습니다.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진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으시다는 믿음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 하실 수가 있으시다는 것을 믿는 믿음..., 하나님께 우리들이 제한을 두고서, 하나님을 우리 생각대로 만들어내는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산을 들려 바다에 빠지는 일은 엄청난 지진이 아니고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말씀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또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하고 제자들이 물었을 때, 그 대답의 연장선에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라" 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 믿고 구하면 됩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면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도를 부담스럽게 생각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기도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을 만날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 앞에까지 올라가 있는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사람은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이는 마치 백악관이나 청와대에 대통령이 불러서 가게 되면, 대통령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과 같은 수준에서 대접하게 되듯이 말입니다.
스바냐 일장 6절 말씀에.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배반하는 것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한 것과 여호와께 구하지도 않는 것을 같이 취급하고 있음을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기도는 참 좋은 것입니다. 기도가 왜 좋을까하는 것은 기도해 보면 알게될 것입니다. 감히 스마트폰과 유튜브와 비교해서 않되겠지만 현대인들은, 아이, 어른, 노인 할것 없이 스마트폰과 함께 눈뜨고 스마트폰과 함께 잠들고, 어디서나 유튜브를 보느라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걸어갈 정도로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빠져삽니다만, 기도는 '스마트 폰' 보다 좋습니다 기도는 '유튜브' 보다 더 좋습니다. 아멘
🔔 '하날새에서 드리는 ‘하늘빵'은 '하나님이 늘 주시는 일용할 빵'의 줄임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