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냥 수필공부 하나만 배워도 나에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사실 소설이나 시 꽁트 까지
닥치는 대로 다 건들어보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배워본 경험도 없을뿐더러 가방끈도 짧은데다 무식하기까지 해서 엄두도 못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70세로 보이는 노인분이 내게로 다가오시며 시 창작교실로 가보라고 하셨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해본 소리겠거니 생각하고 흘려버렸는데....
그다음주 문창반 수업이 있던날
그분은 내게 "멀리 앞을 보고 달려라" 친필이 들어있는 자서전을 선물로 주시면서
사실 책한권만으로도 나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는데 또 한번 말씀 하셨다
"시 창작반 교실에 찾아가라고...." 그순간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제일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겨우 치마자락을 허리까지 올리고 고쟁이 주머니에서 돈 만원을 꺼내며
47세의 늙어가는 딸의손에 꼭 쥐어 주시던 우리엄마의 속곳 주머니가 생각났다
노인이 주시는 돈은 단돈 천원 일지라도 아무 생각없이 그저 주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로 떠올랐던 생각은?
기회가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기회를 저버린다는 속담이다
이 말은 기회를 잡으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시 창작반에도 가고 싶어졌다
5일후...
막상 교실문앞까지 찾아오긴 했지만
왜 일케 머릿속으로 생각할것이 많은지 선뜻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어린아이처럼 연봉화 선생님께 전화를 걸고 말았다
어찌나 차근차근 설명을 잘 해주시는지 마음이 놓이는데다
멀리서 가현님까지 교실로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큰 맘먹고 가현님을 따라서 교실까지 들어가긴 했는데
막상 한번도 본적없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또다시
죄인처럼 가슴이 두근 거렸다
가현님이 선생님께 나를 소개하고 또 선생님께서는 나보고 학생분들께
인사를 하라는데 긴장해서 겨우 내 이름 석자만 소개하고 자리로 와서 앉았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기분이 좋아지려고 했다
첫수업이 끝난후
난....또다시 집으로 갈 것인가? 따라갈것인가? 를 심각하게 갈등 하고 있는데
빨간색 코트를 입은 예쁜여인이 내게로 다가와 속삭였다
"저두...청강생이에요...그러니 너무 기죽지 마시구요 우리 같이가요"
아,다행이다!..
오늘따라 하늘은 청명하고,따뜻한 가을햇살에 기분이 정말 상쾌해졌다
더구나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말을 들었다
십년을 살아도 한번도 가족들을 집에 초대해서 식사 대접을 안한다는 요즘세상에
오늘의 수업까지 결석해가면서 선생님외 수강생 전체를 위하여,
더군다나 집안에 행사가 있는것도 아닌데 점심식사를 직접 준비하신다는 말을 듣고
얼굴도 모르는 그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벌써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이번에 쓰는 일기는 맛있는 과자를 아껴먹듯이
매일 조금씩 글을 다듬어서 맛나게 잘 써서 올리려고 했었는데
그렇게 뜸만 들이고 있다가는 섬뜩한 겨울이 닥쳐와
동화같은 가을의 이 모습을 놓치고 후회할것 같아서
그냥 습작삼아 올려보지만 왠지 엄청 길어질것 같다
제 몸 힘든줄도 모르고 자기몸도 아끼지 않고,
20여명의 식사를 직접 준비했다는 바보천사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선 순간 나는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 - 이라는 시와 맞닥뜨렸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은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자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안하게 햐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나는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이 어쩌면 이곳이 아닐까?그 주인공이 혹여 이집에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바보천사의 얼굴을 보는순간에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나에게 소설같은 일이 벌어졌지만 발그스레진 얼굴을 숙이고 그 여자네 집안으로 여럿의 사람들에게 묻혀서 들어갔다
아직 보글보글 끓고있는 된장국과 몇가지의 반찬들이 상위에 올라오기도 전이다
이 많은 음식들은 물론이고 몇천평에 아주 여러가지를 직접 재배하고 있다고 했다
쌀밥이 우리입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며 그녀와 그녀남편의 수고로움과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들을 가까이서 보여지는 이 풍경에 파르르....손끝이 떨리도록 가슴뭉클했지만
나는 끝내 한마디 말도 안하고 살포시 눈을 내리깔고 우아하게 한숟가락 뜨려는데....
그 녀가 성큼 성큼 내게로 다가와 내 어깨를 툭치며 "아는척 안할꼬야!!" 한다
나는 그제서야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드렸다
사람들이 없었다면 까르륵 숨넘어갈듯 큰소리로 반가움의 의사를 표현 했을텐데..
나는 천성이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여자라 생략한다 이궁 ㅎㅎ
유리알처럼 맑은 가을하늘 아래에서 은행나무와 마주하는
전원의 풍경속에서 점심을 즐기시던 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는 사이입니까?"
내가 엄마,아버지와 함께 살았을때
아니 울 오빠집에 301호에 살았을때
천사언니는 201호에 살으셨다
지금도...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나는 독립해서 나왔고...
그러니까 천사언니는 시내의 아파트에 살면서 공무원인 아저씨가 은퇴를 하시면서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으니 내가 여기를 알턱이 없었다
천사언니는
우리 부모님을 친 부모님처럼 잘 해주셨다
그렇게 이웃으로 함께한 세월이 20여년이다
이런 우연이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리고 남의집 열쇠를 탐내본 것도 처음이다
원두막 그 작은방에 누워서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고싶다
김용택 처럼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다
은행잎이 바나나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가을도 장관이지만
예쁜꽃이 만발한 봄의 정원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정말 기대 이상으로 집이 너무 너무 아름답고 다양한 꽃들도 많았다
그냥 발걸음 닿는대로 내 집처럼 들락거리고 싶단 생각밖에 안들었다
일단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접쑤 ㅎㅎ
선생님과 수강생이 모두 돌아가고
나는 언니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반짝반짝 들어오는 가을햇살과
눈싸움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시간이 오후5시....
언니는 친청언니처럼 맛있는 음식을 이것저것 담아주셨는데
내가 밭에서 직접 따온 가지가 특별히 사랑스럽다
사과처럼 예쁘진 않지만,오이처럼 청순해 보이지도 않지만
한입 베어물면 오이에는 없는 단물이 뿜어져 나온다
직접 농사 지은 것이라 그런지 확실히 맛도 달랐다
마무리...
어디선가 읽었던 글인데...
모든것은 연결이 되어 있어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기는 것도
과거의 어딘가에 그 계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이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오늘의 일기
- 끝 - .
첫댓글 움추린 마음에
따뜻한 불씨를 넣어 주셔서
훈훈한 하루를 보낼수 있을것 같네요..
자주부탁 드립니다...^^
들려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산산님 네...자주 놀러올게요 ^^
사진 보니 입에 침이 고이네요. 그나저나
문예창작반에 가서 연세들이 많은 분들이 글 쓰시려고 노력하는 것 보면 대단하신 분들이 많다고 생각돼요.
시도 배우시고, 연극도 하시고 두루 두루 바쁘시겠어요.
그래서 연극은 그만두었어요...
연극은 아직 때가 안된것 같아서요...
전번주에..왜에..국수먹으러 가자고 했을때요
그때도 너무 재밌었는데...대장님이 안오셔서 쬐끔 서운했어요...^^
섬세한 감성을 가지고 아지트만 찾으셨었지요.감성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기 쉽지요.
세상밖으로 나오신 듯 합니다. 글감도 더욱 풍부해 지시겠어요.
아지트는 지금도 찾아다녀요 ^^ 늘 격려도 해주시고 고맙습니다 ^^
흰빛님 글만 보게되면 제 가슴은 왜이리 뛰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말숙이님 닉네임만봐도 가슴이 뛰는데 ㅎㅎ
온라인에서만 이리 길게알고지내는것도 말숙이님이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실물은 언제 보여주실건가요?ㅎㅎ
그럼 이 집 주인이 지금 우리집 아래층에 살고 계시는 그 분?
응 맞어...근데 남들이 보면 웃겠당...오빠와 여동생이 나란히...카페에 ㅎㅎ
머,전에 등산도 같이 갔었자나 오빠 남동생 올케언니 ㅎㅎ
이왕이믄 글공부도 같이 다닐까?풉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