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귀비는 명나라 9대 헌종 성화제(제위 1464 - 1487)의 후궁입니다.
만귀비는 이름이 만 정아로 산동성 출신입니다.
그녀의 부친 만귀는 현의 낮은 관리였는데 후에 죄를 지어 패주로 좇겨갔습니다.
만씨가 4세때 집안이 사정이 어려워지자 그녀의 부친은 만씨를 궁녀로 보냅니다.
궁으로 들어간 만씨는 태황태후 손씨의 신임을 얻었고 손태후 사망후에는 동궁으로 가서 황태자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황태자는 풍만한 몸매와 백옥같이 흰 피부를 가진 만씨에게 홀딱 빠졌는데 그때 태자는 10대 초반, 만씨는 태자보다 18살이 연상이었습니다.
만씨는 당시 30이 넘었으나 10대 후반같은 미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즉 엄청난 동안이었습니다.
1464년 18세의 태자가 제위를 계승하자 만씨는 자신이 황후가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태황후의 강요로 오씨가 황후가 됩니다.
그러나 성화제는 황후에게는 별관심이 없었고 만씨를 계속 총애합니다.
성화 2년(1466년) 만씨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성화제는 너무 기뻐서 만씨를 황귀비로 봉합니다.
하지만 아들은 1년 10개월만에 사망하고 40을 목전에 둔 만씨는 더이상 임신 가능성이 없어집니다.
그러자 만귀비의 질투심은 극에 달하여 성화제의 후궁이 임신을 하면, 성화제 몰래 강제로 낙태약을 먹이거나 임산부에게 잔인한 고문을 합니다.
또 황후인 오씨까지도 폐위시킵니다.
성화 5년(1469년) 4월, 현비 백씨가 아들을 낳았고, 2년후에 태자로 책봉되었느나 4달후에 급사합니다.
태자가 급사한 후 얼마 후, 후궁 기씨가 임신을 하자 만귀비는 기씨에게 강제로 낙태약을 먹이고 안락당에 감금합니다.
하지만 낙태약은 효과가 없었고, 성화 6년(1470년) 기씨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기씨는 만귀비가 두려워 몰래 태감 장민에게 아들을 물에 빠뜨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태감은 아이를 죽이지 않고 몰래 다른 마을로 데리고 가서 키웁니다.
성화 11년(1775년) 여름 태감 장민이 성화제의 머리를 빗겨 주다가 성화제는 한숨을 쉬며 자신에게 아들이 없음을 한탄합니다.
그러자 장민은 기씨의 이야기를 했고, 성화제는 마을로 가서 아들을 만납니다.
성화제는 아들을 궁궐로 데리고 와서 중신들에게 보이고 이 사실을 안 만귀비는 얼마후 감금되어 있던 기씨를 독살합니다.
또 왕자를 숨긴 장민을 억지로 자결시킵니다.
성화제는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으나 만귀비에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4달 후 기씨의 아들은 황태자로 봉해지고, 성화제는 아들을 자신의 생모인 주태후에게 보내 키우게 합니다.
만귀비는 그 후에도 황태자를 여러차레 죽이려 하였으나 죽이지 못했고, 성화제에게 황태자의 폐위를 강요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만귀비는 울화병으로 성화 23년(1487년) 1월 10일 59세로 사망합니다.
만귀비가 그렇게 지독한 일을 했는데도 성화제는 만귀비를 계속 사랑했습니다.
만귀비가 죽자 성화제는 굉장히 슬퍼했으며 계속 만귀비를 그리워하다가 7개월후 성화제는 41세로 우울증으로 사망합니다.
성화제의 뒤를 이어 황태자가 제위에 오르니 그가 명나라 최대 명군으로 알려진 효종 홍치제(제위 1487 - 1505년) 입니다.
참조 : 장위성 지음 허유성 옮김, 중국황제 어떻게 살았나, 지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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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지독한 사랑.. -_-;; (중국 명나라 만귀비 이야기..)
번키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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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8.14 01:3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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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허허.. 진짜 지독한 사랑일세~~
죽을때까지 사랑받은건 부럽네요
사랑이야기는 아니지만 서태후 -_- 그..... 중국에 이화원의..... 인공호수 최강이었음!!
인공호수때문에 옆에 산도 생기고.........그것에 돈을 억수로 퍼다붓고 외세의 침략에 굴하고...
그것때문에 청일전쟁에서 졌잖아요.. -_- 그거 알고나서 역시 중국은 삽질도 참 스케일 크게 한다는 생각을 했음.
ㅋㅋㅋㅋㅋㅋ..레드핀님 땜에 웃어요..^^
만귀비 너무 독함....저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님....남자 못됬다- 무능했을것 같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