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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대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과연 살아있느냐는 것이다. 이 회장이 쓰러진 게 지난 5월 10일. 아직 죽었다는 소식이 없으니 살아있다고 보는 게 맞을 텐데 실제로 이건희 회장을 봤다는 사람은 없다. 언론 보도는 가끔 있었다.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쳤다는 TV 뉴스에 눈을 번쩍 떴다거나 병세가 호전돼서 자택으로 옮길 거라는 기사도 있었고 하루 19시간까지 깨어있고 휠체어에 앉기도 한다는 기사도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살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그런데 이 기사들은 모두 삼성그룹 홍보실에서 흘러나온 걸 받아쓴 것일 뿐 기자들 가운데 누구도 이 회장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사람은 없다. 그나마 홍보실에서도 이 회장이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홈런 소식에 눈을 뜰까. 의식이 없다는데 어떻게 휠체어에 앉을까. 정확하게 말하면 휠체어에 앉은 게 아니라 앉힌 거겠지.
미스터리한 일은 또 있다. 인터넷 신문 아시아엔이 5월 16일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삼성은 몇 차례 아시아엔에 공문을 보내 정정보도를 요청했으나 아시아엔은 아직 정정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이상기 아시아엔 대표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삼성 내부를 잘 아는 믿을만한 취재원에게 제보를 받아 취재했고 지금도 팩트에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미디어오늘 19년 사상 최다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회장이 이미 죽었는데 그 사실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을까. 일단 알 수 없는 일이다. 살아있으면 사진이라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건 알 권리 따위와 무관한 지나친 오지랖이다. 다만 추론을 할 수는 있을 텐데, 살아는 있되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식물인간에 가까운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재벌 문제를 오래 취재해 온 한겨레 곽정수 기자는 “경영자로서 수명은 이미 끝났고 건강을 회복하더라도 경영 복귀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첫째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이혼 소식이 알려지기도 했다. 집안일이야 알 바 아니지만, 이 회장이 살아있다면(식물인간 상태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회장이 첫째 딸을 각별히 아꼈기 때문에 한때 이부진 사장이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던 때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이혼 때문에 눈 밖에 난) 이재용 부회장이 은근히 동생의 파경을 반기고 있다는 루머도 떠돌았다.
삼성이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하는 이유들좀 더 추론을 해보자면 삼성이 이 회장의 죽음을 숨기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설령 이 회장이 식물인간 상태라고 하더라도 당장은 아들이나 딸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유병언은 살아있는데 죽은 척을 하고 이건희는 죽었는데 살아있는 척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그만큼 일반 국민들 사이에도 의심이 쌓여있다는 이야기다.
사람의 목숨을 두고 이런 이야기하는 게 마음이 무겁지만 실제로 삼성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 회장이 살아있어야만 하는 이유 또는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아직 상속을 받을 준비가 안 돼 있고 둘째, 그룹 경영권을 넘겨받을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둘 다 같은 말 같지만, 상속은 상속이고 경영권은 경영권이다. 둘 다 통째로 넘겨 받으려다 보니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워낙 복잡한 이슈라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기는 곤란하지만, 극단적으로 요약을 하자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인데 정작 이 회장 일가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4.7%밖에 안 된다. 그래서 이 회장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우회적 지배구조를 이루고 있다. 사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생명 보험 가입자들의 위탁 자산이다. 언젠가 돌려줘야 할 돈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금융산업 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처분하거나 의결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금산분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하다. 국회에는 더욱 무시무시한 보험업법 개정안도 계류돼 있다. 만약 아무런 대책 없이 상속을 받았다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연결고리가 끊기면 이재용 부회장 등의 지배력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된다. 자칫 그룹이 반 토막이 나고 산산조각으로 분해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이재용 삼 남매가 아버지의 재산을 다 물려받는다면 내야 할 상속세는 6조 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상속세를 다 내고 경영권을 그대로 넘겨받는 두 가지 미션을 모두 수행하려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분을 그대로 넘겨받아야 한다.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될 제일모직 지분도 그대로 넘겨받아야 한다. 결국, 팔 수 있는 지분은 삼성SDS 정도밖에 없는데 삼 남매의 보유 지분을 모두 내다 팔면 최대 6조 원까지 현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주가는 최대한 더 떨어지는 게 좋고(그래서 최대한 싸게 물려받고 상속세를 적게 내는 게 좋고) 삼성SDS 주가는 최대한 오르는 게 좋다(비싸게 내다 팔아 현금을 마련해야 하니까). 삼성전자가 몇 년째 배당을 안 주고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대한 주가를 낮췄다가 상속이 시작되고 나면 그때 가서 배당을 풀 가능성이 크다.
상속세는 여기저기서 끌어다 해결한다 치더라도 지배구조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둘 다 가져가려면 유일한 대안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도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나누고 지주회사를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등의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지만 역시 삼성생명을 계열 분리하지 않으려면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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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중간금융지주회사라는 게 아직 법적으로 허용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제일모직 밑에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회사로 두고 삼성생명이 계열사로 편입되는 방안이지만 결국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지금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지주회사 전환을 밀어붙일 수도 없고 그냥 버틸 수도 없는 처지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삼성 특혜라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지주회사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상속이 개시된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떠밀리듯 지배구조 개편에 착수해야 한다. 최악에는 삼성생명을 계열 분리하고 계열사 상당 부분을 정리해야 할 수도 있다. 이재용 후계 구도와 관련한 수많은 시나리오가 나돌지만 어떤 시나리오도 지배력 축소는 불가피하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상속이 시작되는 게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민감한 상황에서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가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이 회장의 유언장이 없다면 이 회장의 상속 자산은 부인과 삼 남매가 1.5:1:1:1로 나눠 갖게 된다. 몽땅 물려받아도 지배력 유지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가뜩이나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집안이 내분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척이 득세할 가능성도 있고 만약 우물쭈물하다 개정 상속법이 통과되면 홍 여사의 상속 비율이 66.7%까지 올라가게 된다.
해결되지 못한 걸림돌,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선왕조선 시대를 돌아보면 왕이 죽기 전까지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 왕이 쓰러져 병석에 누워 있어도 마찬가지다. 모든 권력은 왕에게 집중돼 있고 왕세자는 왕의 살아생전에 2인자도 될 수 없다. 왕의 존엄과 권위를 탐하는 것은 설령 왕세자라고 하더라도 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고 반역이기 때문이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왕, 설령 그 왕이 식물인간이 돼서 누워있더라도 왕은 왕이고 왕세자는 왕의 그림자조차도 밟을 수 없다.
삼성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살았거나 죽었거나 분명한 건 경영 공백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재용 부회장이 언젠가 그 자리를 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왕조 체제에서는 아들이 왕이 되는 게 당연하지만, 왕이 무능하면 백성들이 고통을 겪게 된다. 삼성 같은 수직적 지배구조에서는 무능한 회장이 고집을 부리면 그룹 전체가 위기를 맞거나 아예 망하고 무너질 수도 있다.
삼성그룹이 이건희 이후를 20년 가까이 준비해 왔고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몇 가지 걸림돌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건희 회장은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상태다. 숱하게 많은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지만, 또 한 차례 초법적 특혜가 아니면 이재용 왕국은 오지 않거나 아버지 시절의 영화를 되살릴 수 없다.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어쨌거나 지금은 안 된다. 아들의 간절한 바람이 아버지의 목숨을 지탱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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