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미학과 인간미
유한근
1. 수필은 인간에 대한 이해
수필은 영어로 ‘에세이(essay)’이다. 불어로는 ‘에세(essai)’로 시도(試圖)·시험(試驗)이라는 뜻이 있다. 이 말은 라틴어의 ‘엑시게레(exigere)'에 그 어원을 둔다. ‘엑시게레(exigere)'는 계량하다 혹은 음미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고 할 때 그 어원으로 보면 에세이는 비평적 기능과 맞잡게 된다. 그리고 불어에서 어원의 의미를 되새기며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도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에 ’에세이(essay)를 ‘수필’로 번역해서 쓰지 말고, ‘시론(試論)’라고 번역해서 장르 명칭을 변경해서 쓰자고 역설한 적이 있으나 기존의 벽이 높아 반영(?)되지 않은 적이 있다.
우리 고전문학 중 산문의 장르 명칭으로 ‘~론(論)’ ‘~부(賦)’ ‘~설(說)’등의 수필 류의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남송 때 홍매의 《용재수필(容齋隨筆)》과 우리고전문학인 박지원의 연경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일신수필(日新隨筆)’이라는 것에서 수필이라는 명칭이 따온 것에 대한 전통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날마다 새롭게 붓을 따라 가는 글’에서 수필의 어원을 찾을 때 수필은 우리 삶과 인간과 가장 가까운 문학 장르임을 입증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수필 이론 부재를 많은 이들이 말한다. 시론이나 소설론 그리고 희곡론처럼 수필론은 독립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에서도 수필론 강좌는 개설되어 있지 않고 평생교육원이나 사회교육원에서 수필창작강의로 개설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수필의 이론을 강의할 기회가 생기면, 혹은 문학개론에서 수필문학 부분을 언급할 때 일반적으로 수필의 어원과 특성을 통해서 수필의 장르적 특성을 강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필의 교과서적 특성은 ①붓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이다. ② 무형식의 형식, ③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가능성, ④위트와 유머의 문학 ➄인품의 문학이라는 다섯 가지 특성을 빠지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작가 혹은 강의자의 특별한 견해를 따라 수필의 특성을 ⑥체험의 문학이다. ⑦사유의 문학이다 등등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수필 특성을 종합할 때 수필은 ‘인간의 문학’, ‘가장 인간적인 문학’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자기 구현의 기능이라는 문학의 기능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장르는 수필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어떤 문학 장르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직접적이고 간명하게 드러나는 문학 장르이다. 수필은 문학의 어떤 장르보다 작가의 삶의 모습이나 내면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문학장르이다. 시는 시적 상상력으로 시인의 내적 모습이 은유나 상징이라는 표현구조로 시인의 내면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시인의 인간됨이 은폐된다. 그리고 소설은 허구라는 상상력으로 소설 속에 만들어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꾸며나가기 때문에 작가의 인간미나 삶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수필은 문학 장르적 특성 때문에 비유적인 표현구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작가의 사람됨과 사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로 인해 수필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다.
2. 수필적 상상력의 힘
수필의 상상력은 허구(Fiction)의 문제와는 별개이다. 수필은 허구의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필은 허구를 용납하지 않는다. 허구는 소설의 용어이지 수필의 영역에 속하는 문학적인 용어에서는 제외되어야 한다. 하지만 수필에서도 상상력의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문학의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필 상상력은 허구 문제를 극복하는 혹은 대체되는 요소이다.
상상력(Imagination)은 체험에서 나온다. 현실적인 체험에서 나오지 않은 상(想)은 이른바 ‘환상’이라고 말한다. 코올리지는 사상과 사물과의 조우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를 상상력에서 찾았다. 즉 정신과 자연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력을 ‘무한한 존재의 영원한 창조행위를 유한한 정신 속에서 반복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신이 혼돈(Caos)으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여, 그 혼돈된 세계에 질서와 형태를 부여했듯이 유한한 정신‘인 인간의 정신도 신이 그랬듯이 질서와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이 신의 정신을 원형의 삼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창조적인데, 그 창조적인 힘이 문학에 있어 상상력이다.
수필에서 상상력(Imagination)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담론은 그동안 간과되었던 것으로 안다. 수필과 상상력은 관계없다는 지배적인 생각 때문일 것이다. 상상력이 허구를 낳기 때문에 체험의 문학인 수필하고는 관계가 없다는 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이 문제는 수필계의 키워드가 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 고백의 문학 혹은 자기 체험을 토로하는 문학 장르로 굳어가고 있는 수필계의 반성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필계는 상상력 결여의 신변잡기적인 글이 대세이다. 수필계에서도 르네상스 이전처럼 상상력은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이상 심리로 취급해서일까? 그리고, 상상력은 허구이고 환상 혹은 몽상적인 심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품위를 지켜야 하는 수필 문학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수필은 문학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인가? 시인 블레이크가 ‘상상은 영혼의 감각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수필은 시와 달리 영혼과 무관하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일까? 우리의 무의미한 체험들을 하나의 형상으로 통일시켜 우리를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주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게 하는 상상력을 왜 우리는 그동안 멸시해온 것일까?
그동안의 동서 문학의 흐름을 상기할 때, 상상에 대한 우주론적 또는 초월론적인 주장은 현대의 자연과학주의, 특히 정신분석학적 조명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쪽에서는 상상력을 일종의 백일몽으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로만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상상력(Imagination)보다는 심상(Image)에 관심을 보여 왔다. 심상을 중시하면서 상상력의 문제는 다분히 시 문학 장르에 주요 담론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 수필이나 소설의 상상력 담론을 제한시킨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체험은 상상력을 낳고, 상상력을 통해 이미지가 만들어지며, 그 이미지들의 무리가 이미저리임을 감안할 때, 체험을 간과할 수 없는 문학 장르인 수필 또한 상상력, 이미지, 이미저리와 결코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시적 상상력과 산문적 상상력 또는 수필적 상상력이 다르지만 수필의 창조적 상상력은 수필이 문학이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됨은 의심할 수 없다.
3. 휴머니즘과 인간미
인간에 대한 관심은 신본주의의 반발로 시작된 르네상스 이후 휴머니즘에서부터 그 관심이 시작되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르네상스는 인간성의 해방과 인간의 재발견, 그리고 합리적인 사유와 생활태도를 신봉하는 인문주의와 같은 의미이다.
휴머니즘은 ‘보다 인간다움’을 뜻하는 라틴어 후마니오르(humanior)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다움(humanitas)’이란 말을 맨 처음 사용한 것은 로마시대의 철학가이며 수사학자인 키케로라고 한다. 그는 이 말을 인간성의 이상의 전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아함’ 정도의 뜻이었다. 이렇듯이 본디 휴머니즘은 풍속·습관·사상이 자기와 같은 부류 인간만을 인간다운 인간이라 생각하고, 그 밖의 이방인은 모두 인간의 규범에서 벗어난 존재라고 생각하는 독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로마인이 쓰는 ‘인간다운 인간’은 본디 ‘이방인’이라는 말과 상대적인 의미에서 쓴 말이라는 것이 그 하나의 예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자리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간미’라는 것도 시공간에 따라서 다르게 규정될 것이다. 이 시대의 한국인으로서의 인간다움의 정의도 각자 다른 이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니체는 인간의 성향을 아폴론적인 성향과 디오니소스적인 성향으로 나누었다. 전자는 이성적인 성향을 후자는 감성적인 성향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문학의 성향도 편의상으로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에 있어서 이성과 감성은 하나일 수밖에 없는 유기적 구조로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야 인간 삶의 제 문제들을 감동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문학은 이성적 논리보다는 감성의 논리는 문제적 담론으로 대두되어 왔다. 감성은 경험에 대한 감각이나 사고나 감정에 있어서의 특징적 반응 방식을 말한다.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과 감성, 즉 타인의 고통이나 기쁨에 대한 민감한 반응성(responsiveness)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연민이나 자조적인 감성은 더욱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감성은 자연에 있어서나 예술에 있어서나 우아함의 지표로 간주되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한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감성의 논리로부터 벗어난 관련된 개념은 감상주의 같은 것이다. 감상주의는 어떤 상황에 대한 감정의 과잉이라고 생각되는 것, 즉 비애나 동정 등의 연약한 감정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절제라는 개념 혹은 절제라는 미학이 없는 감정 포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감성의 논리를 저해하는 정서이다. 따라서 감성의 논리로만으로는 독자들의 감동을 끌어내는데 한계가 있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인간을 설득하는 세 가지 요소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로 보았다. 청중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이성적으로 호소하든가 아니면 감성적으로 호소하든지 아니면 에토스, 즉 믿음이나 공신력을 가지고 설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신력은 말하는 사람의 전문성 · 인품 · 열정에서 나온다. 청중은 전문성 있는 말을 믿고, 덕망 높고, 열정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을 더 신뢰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수필과 연결시킬 때, 가장 감동적으로 독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수필은 에토스적인 수필이 될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인간미는 에토스적인 것일 것이다. 로고스적이고 파토스적인 것도 인간의 것이지만 가장 감통을 주는 인간다움은 에토스일 것이다. 그래서 수필을 인품의 문학으로 그 특성을 규정하는 것이리라. 이를 위해 수필은 어원적인 의미처럼 실험정신과 자유정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보인다.
유한근.......................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현대불교문학의 이해> <한국수필비평> <원 소스 멀티-유스, 문학이야기> <인간, 불교, 문학>, <한국수필의 전망과 지표>등 다수. 명상언어집 <별과 사막>. 시집 <사랑은 흔들리는 행복입니다> 등. 동화집 <무지개는 내 친구> 등 저서 논문 다수. 만해불교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신곡문학상 대상, 여산문학상, 동국문학상, 월산문학상 등 수상. 동국대, 명지대, 출강,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교수, 교무처장 등 역임, ⟪인간과문학⟫주간.
출처
https://cafe.daum.net/greenpine1999/6ybI/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