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자리를 찾아가는 밀양+청도 주민들의 72시간 송년회 둘째날 소식>

1. 밀양과 청도 주민들이 하룻밤을 보낸 강원도 홍천 골프장 투쟁 마을은 간밤에 내린 폭설로 설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미끌미끌한 은빛의 길을 걸어 버스에 올라탄 순례단은 길고 긴 하루의 여정을 달렸습니다.
2. 한 팀은 41일간의 단식 끝에 병원으로 실려간 최일배 위원장이 자리를 비운 과천 코오롱 본사 앞 농성장에서 남아있는 해고노동자들에게 목도리를 걸어주면서 지지의 글귀들을 남겼습니다. “이웅렬 회장은 돈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옷을 만들라”고 주민 한분이 일갈했습니다.
3. 평택 쌍용차 공장으로 옮겨간 순례단은 굴뚝 위로 올라간 김정욱 이창근 두 해고노동자를 바라보며‘우리가 밥해서 올리주꾸마, 기운내서 이겨내거래이’라고 외쳤습니다. 그 마음이 지상의 노동자들의 마음을 타고 고공에까지 전해졌습니다.
4. 다른 한 팀은 충북 청주로 옮겨가서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각자의 절박한 사정으로 싸우는 청주 지역의 노동자들을 만났고, 곧 이어 영동 유성기업 공장 안으로 버스를 타고 들어가 점심시간을 맞아 노조 사무실에 모인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할머니들 한 분 한분이 걸어주는 빨간 목도리와 지지의 메시지를 받아 든 노동자들의 얼굴이 금세 상기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온갖 노조파괴 공작에 폭력을 견디며 ‘돈도 안 되는’ 민주노조를 지키는 그들의 이유를 되새기는 자리였다고 한 노동자가 전해주었습니다.
5. 주민 한 분이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는 것이 세상을 얼마나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가고 있는지는 우리도 모르지만, 세상 일은 모른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끝내 세상이 바뀔 거라고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6. 그리고, 순례단은 오후 4시에 세월호 안산 분향소에서 만났습니다. ‘깎아놓은 밤톨같’이 예쁜, 손주 같은 수백명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할머니들은 다들 눈가가 빨개지도록 눈물을 흘렸습니다.세월호 가족대책위 사무실에서 할머니들은 유가족들과 다들 서로 부둥켜안고 또한번 울었습니다. 밀양 촛불집회에 세월호 국민간담회 연사로 다녀간 준형 엄마는 “밀양 갔을 때, 할머니들이 친정 엄마처럼 안아주셔서 오늘 이 재회의 날을 설레며 기다렸다”며 할머니들을 맞아주었습니다.
7.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어르신들은 모두 뭔가 어두운 얼굴들이었습니다. 식사도 대부분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밥을 남기셨습니다. 안산에서 만난 세월호 아이들의 영정과 유가족들의 잔상이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8.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이번 순례의 하이라이트 ‘고난받는 이들과의 특별한 송년회’는 영하 13도에다 찬바람까지 불었지만, 200명이 넘는 참가자들과 순례단 어르신들의 만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습니다. 11개 투쟁사업장이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고, 11개 사업장이 서로를 격려하는 감동적인 영상메시지를 보았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큰 절을 올렸습니다.
9. 지난 이틀간 저희들은 수많은 고난받는 이들의 손을 잡고 얼싸안았습니다. 이 순례는 밀양과 청도의 주민들이 송전을 눈앞에 두고 괴롭고 헛헛한 마음들을 다잡고자 하는 뜻과, 이 추운 날씨에 굴뚝에서 노숙 농성에 단식으로 지새야 하는 우리보다 더 힘든 누군가를 만나 다독여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되었고, 그 소박한 시작보다 훨씬 더 큰 우정으로 진하게 연대하게 되었습니다.
10. 오늘 밀양과 청도의 주민들은 이제 스스로의 일을 위해 전라남도 나주로 출발합니다. 한국전력은 광주전남지역에서 제일 높고 큰 최신식의 청사로 이전하는 개관식을 갖습니다. 국무총리와 장관과 국회의원들이 참석하는 큰 자리가 된다고 합니다.
11. 그 호화로운 최신식 건물에는 밀양과 청도만이 아니라 한전이 그동안 온갖 파행과 술수로써 쌓아올린 주민들의 피와 땀이 그 높이만큼 쌓여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한국전력에게 당당하게 항의하고, 그동안 저지른 죄과에 대해 한국전력 사장에게 사죄를 요구할 것입니다.
12. 오후 1시 30분, 나주시 한전 신사옥 앞에서 진행되는 밀양과 청도 주민들, 연대 시민들이함께 준비한‘한전 집들이’ 집회에 동참과 취재를 요청드립니다.
2014년 12월 17일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
<고난의 자리를 찾아가는 밀양+청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72시간 송년회 첫날 소식과 이후 일정>
(자세한 순례 소식은 이곳을 참조하세요 https://www.facebook.com/my765kVOUT)
1. 12월 15일 아침, 밀양과 청도 송전탑 반대 주민 23명과 활동가 14명, 미디어활동가, 언론사 취재팀, 사진 작가, 기록노동자 등 45명이 버스 한 대를 꽉 채워 2박3일의 순례길을 떠났습니다.
2. 첫 번째 방문지는 해고노동자인 차광호 님이 회사 측의 일방적인 폐업과 정리해고에 맞서 204일째 굴뚝 농성중인 구미 스타케미컬이었습니다. 할머니들은 80미터가 넘는 굴뚝 꼭대기에서 손을 흔드는 차광호님을 올려다보자마자 눈물부터 흘렸습니다. 어제가 생일이었다고 하여 생일케잌을 준비해서 즉석 생일잔치를 했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 11명이 남아 폐쇄된 공장 앞에서 수개월째 천막 농성을 이어가는 스타케미컬 해고노동자들과 구조고도화라는 이름으로 회사 부지를 투기 수단으로 악용하는 자본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KEC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스무살에 입사해서 청춘을 바쳤으나, 끝내 해고자가 된 마흔 두 살의 노동자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붉어져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밀양과 청도에서 준비해온 풋고추, 김장김치, 쌀, 감말랭이, 사과, 막걸리, 대추를 선물로 전달하고, 준비해간 빨간 목도리를 걸어주면서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4. 다시 버스는 달리고 달려 강원도 홍천으로 갔습니다. 길게는 11년, 짧게는 7년씩 골프장 건설에 맞서 싸우는 동막리, 구만리, 군자리 마을을 돌며, 하루아침에 토지를 공익사업이라는 이름으로(세상에 골프장이 공익사업이라니요) 빼앗기고, 행정소송 22번을 모두 패소하고, 수백일씩 노숙농성을 이어온 가슴아픈 사연들을 만났습니다.
5. 그리고 저녁 식사후에는 홍천군 동면감리교회에 강원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 골프장 반대 주민들과 함께 모여, 판소리 가락도 듣고, 흥겨운 노래도 부르고, 선물도 교환하고, 또 준비한 목도리를 걸어주며 서로 얼싸안았습니다. 밀양과 청도, 홍천이, 송전탑과 골프장 반대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6. 홍천에는 폭설이 내려 거북이걸음으로 겨우 숙소로 돌아와 고단한 몸을 뉘었습니다. 오늘은 순례단이 둘로 나뉘어져서, 한 팀은 과천 코오롱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과 쌍용자동차 굴뚝농성장으로, 다른 한 팀은 청주지역 투쟁사업장들과 영동 유성기업으로 순례한 후 다시 오후에 안산 세월호 분향소에서 합류하여 유가족들을 만나고, 다시 저녁 7시 30분에는 광화문에서 서울지역의 고난받는 이들이 모여서 송년회를 진행합니다.
7. 그리고, 내일 17일 오후 1시 30분부터는 한전 나주 본사 개관식에 즈음하여 밀양과 청도 주민들의 요구안을 전달하는 '한전 집들이' 행사가 나주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진행됩니다.
8. 많은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지는 않지만, 멀리 떨어진 수많은 지역들이 서로 만나고 만나 얼싸안으며 이 험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픔을, 그리고 고난받는 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따뜻하고 진한 공감을 나누어 갑니다. 많이 알려주시고, 시간되실 때 함께 해 주세요. 그리고 후원도 부탁드립니다.http://socialfunch.org/for72hours 감사합니다.
밀양송전탑 반대 대책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