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관련 TV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다. 좀 더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이들의 수고가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정선의 동강을 끼고 돌아가는 마을 이름도 특이하게 문희마을이다. 영월의 동 쪽이 강이라서 동강이라고 하는데 조양강이 정선 읍내를 돌아 동남천과 만나는 가수리에서 시작해 평창을 거쳐 영월읍 남쪽에서 서강과 합수하는 60여km의 물길이다. 거기서 남한강으로 이어져 조선 시대 부터 1970년 대까지 강원도에서 벌채한 목재를 서울로 운송되던 길이었다. 아우라지에서 뗏꾼들이 뗏목을 만들어 한양까지 천리길을 내려 갔다고 한다. 당시 정선 군수의 월급이 20원이었을 때 뗏꾼이 떼 한바닥 타고 서울에 갔다오면 30원을 벌었다고 한다. 떼돈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7시 양재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영월, 정선 평창을 부지런히 넘나들며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 평창 동강 민물고기 생태관에 발견이들을 내려 놓았다. 11시 생태관 앞 커다랗게 입을 벌린 송어 앞에서 단체 사진으로 일정이 시작되었다. 휘청이며 건넌 구름다리를 지나 잘 단장된 길을 따라 4km 남짓 되는 길을 투명하게 맑은 강물을 바라보며 가을 첫 입새길을 걸어들어가는 발길은 신선인 듯 선녀인 듯 그저 가볍기만하다. 예전에는 물소리, 바람 소리가 휘돌아 갔을 오솔길이 이젠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바뀌어 오지 가는 길로는 좀 아쉽다..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문희마을~ 마을에서 기르던 개 이름이 문희여서 문희 마을이 되었다는 유머와 해학이 묻어나는 마을 이름은 농박과 펜션으로 잘 정비된 관광 마을의 이름으로는 어쩐지 걷도는 느낌이 들긴 한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여배우 이름을 강아지에게 붙여 밤낮없이 불러댔을 이름 모를 그 분의 위트는 저절로 웃음을 머금게 한다. 백룡동굴을 가려면 여기서 구명조끼를 입고 장화를 신고 무장을 단단히 하고 2시간여의 래프팅을 해야 한단다. 매료소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옆을 돌아 산행길로 접어들었다. 산에 오를 때면 매번 다른 사람들은 쉽게 가는데 나는 왜 이렇게 숨이차고 힘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ㅎㅎ 구비구비 걷고 오르길 여러번 반복하며 산성터를 지나 숨차게 도착한 칠족령. 옻칠일을 하던 선비의 개가 발에 옻을 잔뜩 묻히고 산으로 달아나 그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동강의 비경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사연이 있는 곳이다.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서니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사행천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산과 물과 바위가 어느것 하나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채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그야말로 비경이었다. 감탄으로 잠시 숨을 고르고 제장마을로 가는 길~ 가파르니 조심하라는 리더 천곡님의 경고가 빈말이 아님을 온 몸으로 느끼며, 더구나 비가 온 뒤여서 미끄러운 진흙 바닥과 길 위로 드러난 나무 뿌리들은 자칫 방심하면 그대로 미끄러져 낙상하기 십상이었다. 줄을 잡고 조심조심 긴장하며 얼마난 내려 왔을까 드디어 제법 평평한 길이 나타나고 이어서 커다란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 길이 이어진다. 1박 2일을 촬영했다는 마을은 그대로 그림 같았다. 깎아 잘라낸 듯 거대한 바위벽이 마을 앞을 가로 막아 위풍 당당하게 서 있는 아래로 동강이 푸르고 맑게 흐르고 마을은 잘 가꾸어진 농지와 농박, 농원들이 에쁘게 어울린다. 고향 집에 온 듯 푸근한 점심은 덤이었지 싶다
작가의 소질이 보입니다. 글을 아주 잘 쓰셨네요. 다음 오지마을 탐방 때는 해설을 맡아 주시면 어떨까요? 앞장 서서 걷느라고 참가하신 길벗님들과 다정한 이야기도 나누질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버스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려니 곤한 잠을 깨울 수도 없고... 다음 오지마을 탐방 때는 제가 기회를 마련해 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진도 좋고...... 고맙습니다.
첫댓글 사진을 올리는 일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혹시 마음 상하신 분 계시면 죄송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걷기만바쁘고 따라가기만 바빠는데 이렇게 설명들으니~~
이글 읽고 다시걸으면더 좋을걸 같네요.한번더 구경시켜줬네요.
좋은글읽고 나물이름들 잘배워갑니다.
이제야읽ㅇ었습니다.다시갔다온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