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단편 시리즈 - 카산드라Cassandra 병원(1)
작성자 TIRPITZ
이상하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내 발밑에 있는 물체를 내려다보았다.
사람 손, 사람 머리, 사람 몸뚱이, 사람 다리, 사람.....
세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 물체는 서로 하나로 뭉쳐 있었고 그 세포들이 살아서 움직이고 말하고 먹고 생각하고 웃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세시간 동안 이 사람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것일까?
"싸이코 메트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통해 시도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어느세 내 옆에 다가온 [빌]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싸이코 메트리를 쓴다고 해도 달리 얻어낼 자료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뭔가를 기억속에 담기도 전에 살해된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아뇨, 이 사람은 단서가 될만한 무언가를 보고 기억하기도 전에 당한 것이 분명합니다."
단정짓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좋다. 왜나하면 그래야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내게 관철시키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 뒷통수를 치고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과연 그럴까요? 싸이코 메트리는 피해자 입장에서만 보는 기술은 아니에요."
가끔... 예외적인 사람도 1백명에 한명꼴로 있지. 내가 돌아봤을 때 그곳에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있었다. 여자다. 이런 상황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설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흔한 설정일수록 현실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주술사만큼 특별한 능력이라고 할 정도의 수준을 가진 싸이코 메트리어(*주)는 98% 이상이 여성이다. 그 이유는 잘 모른다. 하지만 뭔지 모르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심리적인 파동을 잘 감지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배웠을 뿐.
"싸이코메트리를 한다고 해도 범인이 누군지는 잡아내지 못합니다. 범인이 범죄 순간에 자기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을 계속 인식하고 있지 않는 한 말입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말했다.
사물에 담긴 사념은 말 그대로 그때 그 주인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 묻어있는 물체일 뿐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이며 지금 현재는 그 주인이 어떤 모습이든 어떤 생활을 하든 상관없는 것에 불과하다. 단지 과거의 그 순간에 있었던 주인공의 머릿속을 훔쳐보는 것 뿐이다.
"범인에 대한 단서를 잡는 것은 큰 증거물이나, 특징으로 잡아내는 게 아니죠. 그랬다면 지금쯤 경찰들은 실업자가 되었게요?"
어허... 잘났구료. 나는 속으로 은근히 빈정거렸다. 물론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녀는 한쪽 구석에 드리운 그림자에서부터 내게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어둠속에서 짐작은 했지만 막상 빛 아래로 나오는 것을 본 순간은 나도 놀랄 정도였다.
편견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차마 남의 사념을 훔쳐보는 싸이코 메트리어라고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여리여리한 몸에 얼굴 또한 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앞머리를 살짝 내린 연갈색 웨이브 머리카락 사이로 바다보다도 진한 코발트 빛의 강렬한 기가 느껴지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그녀와 손을 잡았을 때 나는 벽난로에 가까이 있었던 그녀의 강렬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리사 메트 노블로스키입니다."
"노블로스키....."
"아시는군요."
[노블로스키]양은 연한 핑크빛이 도는 입술에 미소를 흘렸다. 그 단어를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서 반갑다는 듯이. 그렇다면 이건 그녀에겐 정말로?
나는 러시아어에는 영 꽝이지만 노블로스키는 최근 러시아에서 급속히 부상한 신흥 부유계층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지난 30년 가까이 구소련 정권이 무너진 틈을 타 석유, 무역업을 독점하고 러시아에서 3%밖에 되지 않는 막강한 부유층으로 성장했다. 이 노블로스키들의 영향력은 실로 커서 노르웨이와 핀란드는 그들의 경제에 투자하는 노블로스키들이 빠져나가면 경제가 흔들릴거라는 웃지못할 농담까지 도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노블로스키입니까?"
"다들 그러죠. 그리고 저는 '예스'라고 답해요."
노블로스키 양은 코발트 빛 눈동자를 여전히 반짝이며 당돌하게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처음에 그녀의 손목에 찬 시계로 눈이 갔다. 2007년 최신판 롤렉스 시계를 본 순간 뭐 그럴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계를 다시 본 순간 그녀가 진짜 노블로스키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계는 얼마 전 델로스(주-섬 이름)를 통제하는 컴퓨터들을 기념하기 위해 롤렉스에서 전세계적으로 33체만을 한정 판매한 것으로 시계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그 숫자가 귀족의 순위권이라고 불릴 정도니 말이다.
언젠가 프라하에서 시계 박람회가 열렸을 때 이 시계가 전시된 것을 보고 유심히 보았던 내 눈은 이곳에서도 익숙한 것을 보자 금방 반응했다. 그녀는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손목을 슬쩍 흔들며 말했다.
"진짜 성이 노블로스키에요. 어쩌다가 요즘은 우연히 같은 말이 되었지만."
"후훗.... 하지만 아가씨에겐 어울리는 성이로군요. "
"당신이 [정원]인가요?"
노블로스키 양은 내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듯 말을 다시 꺼냈고 나는 그제서야 내가 내 소개를 잊고 있었다라는 것을 알았다.
"숙녀분께 실례했습니다. 아가씨 말대로 제 이름은 정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제겐 귀족같은 성은 없답니다."
노블로스키양은 이 말에 재밌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노블로스키보다도 유명한 사람이라면서요?"
"네?"
"이미 들었어요. 전 세계에서 3위권 안에 들어가는 주술사라는 소릴요."
"네? 풋.... 어쩌다가 부풀려진 건지 모르겠....."
"전세계에서 3위 안에 들어가는 비밀스런 과거를 가진 주술사라는데요?"
아 그래. 실력이 아니라 비밀이란 말이지. 나는 내 표정을 감추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나저나 이 여자...... 노블로스키양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마치 우리 둘의 이야기를 남이 듣는 것이 신경쓰이는 듯 말이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가까운 창가로 다가갔다. 다행이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의도대로 자기들 일과 사건에 열띤 토론을 할 뿐. 이쪽은 별로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을 본 그녀는 미소짓는 눈동자를 나를 향해 돌렸다.
".... 그 이야기는 [유진]에게서 들었어요."
"[유진]?"
아니, 그 이름을 이 여자 입을 통해 듣게 될 줄이야. 노블로스키는 내가 궁금해할 거라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일전에 우연하게 그 사람이 탄 비행기에 간 적이 있었거든요."
나도 그랬지.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였지만.
"그러다가 공격을 받았어요. 처음에 전 심한 난기류거나 무슨 사고일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아니였어요. 그건 우리 정체를 감지한 공격이었던 거에요. 그때 유진이 튀어나왔어요. 제겐 놀랄 일이었죠. 이 상황에서 조종사가 자리를 뜨다니,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그는 주술사였던 거에요."
그 1급 비밀을 알다니 당신 목숨이 이때까지 붙어있는 게 궁금하군요.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유진을 알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가 아가씨 앞에서 마술이라도 부리덥니까?"
"네에~ 멋진 노을빛 오로라를 일으키면서 그들을 몰아내버렸어요."
상상이 가는군. 하지만 납득하기 힘들어. 유진은 남 앞에선 좀처럼 마법이나 주술을 쓰지 않는데.... 예외인 경우가 있다면 한가지....
"그와 그렇게 알게되고나서 이야기하다가 당신 이름이 나오더군요."
혼자 비밀이 탄로나기 싫다 이거지.
"어쨌든 당신더러 대단한 주술사라고 했어요."
그것만큼은 마음에 드는군. 유진.
"제가 싸이코메트리를 하면 도와줄거라고 해서요."
망할 녀석.
"그래서 잘 부탁드려요."
노블로스키양은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한번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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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란,
시계나 사진등 특정인의 소유물에 손을 대어, 소유자에 관한 정보를 읽어내는 심령적 행위로 미국의 과학자 버캐넌이 처음으로 제창했다.
한 실험결과에 의하면 남자는 10명중 1명, 여자는 4명중 1명이 이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이 능력은 투시의 일종인데 이전에 존재했던 인간의 기억이 냄새처럼 주위의 사물에 남는다는 초심리학적 가설이다.
영국, 미국에서는 이 능력을 범죄수사에 이용하는 실험을 하고있다.여기까지는 두산백과에 있는 내용이다.
언듯들으면 말도 안되는 내용일수도 있으나 과학적으로 어느정도는 설명이 된다.
사이코메트러(사이코메트리능력을 가진사람)는 일반인들보다 사물에서 느끼는 소유자의 파장(소유자의기억, 특징등)을 강하게 느낄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눈앞에 투시되는 것처럼 사물의 기억이 전해지는 것이다.
- 엠파스 출처 -
작가의 설정에서 싸이코메트리어.
무언가에 접촉했던 사물을 통해 그 접촉한 사람의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그곳에 담긴 정신을 읽어내는 사람들로 강렬한 것일수록 더욱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그들이 어떻게 싸이코 메트리를 할 수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신의 직감으로 사물 고유의 파동을 찾아내 연결해 읽어낸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소설란에서도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에 글틀을 쓰려고하니 서투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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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단편 말머리가 붙여져 있어서 옮겨왔는데, 어찌하여야 하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