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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나비(נָבִיא, 복수형 느비임נְבִיאִים)에 대한 우리말 번역인 ‘예언자(豫言者)’ 혹은 ‘선지자(先知者)는 나중에 벌어질 일을 미리 알아 그 미래를 말해주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의미의 핵심은 “미래”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나비(נָבִיא)는 미래를 예언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어원적으로 ‘부르다(to call)’라는 뜻의 아카드어 나부(nabû)와 연결되어 있어, 그 의미는 “(신의)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미래를 예언하는 것과 그리 관련이 없는 단어라는 것은 성경의 예시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각기 한번씩 쓰이는데, 아브라함(창20:7)과 아론(출7:1)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아브라함과 아론이 언제 미래를 예언한 적이 있었나요?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요엘, 아모스 등이 나비(נָבִיא)라 불려지는 성경적 근거는 단 하나입니다.
렘1:2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호1:1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욜1:1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암1:3, 6, 9, 11, 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에게 임했다”라는 구절이 바로 ‘나비(נָבִי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다시 요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만약 요나가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실패한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라는 나비(נָבִיא)의 정체성에 정확히 부합합니다.
욘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욘3:1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나비(נָבִיא)를 ‘미래를 예언하는 자’로 볼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로 볼 것이냐는 성경의 예언서/선지서를 어떠한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가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잣대입니다.
대표적인 예언서/선지서인 이사야를 예로 들자면, 이사야서를 “미래”에 초점을 두고 읽는다면, 이스라엘의 회복과 메시야의 도래를 예언하는 책으로 읽혀집니다. 이럴 경우 여기에 해당하는 이사야의 구절은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이사야서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동안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잘못 서 있었는지를 지적하는 ‘과거’의 이야기와, 지금 그 행실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잡으라는 ‘현재’의 이야기, 그리고 행실을 바로 잡을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 벌어지는 ‘미래’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즉, 이사야서는 이사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책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과거에 대한 것이면 과거를, 현재에 대한 것이면 현재를, 미래에 대한 것이면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 미래에만 관심을 두는 책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구약(Old Testament)은 4분할로 되어 있습니다.
1) 모세5경(창출레민신)
2) 역사서(수삿룻삼왕대스느에)
3) 시가서(욥시잠전아)
4) 선지서(사렘애겔단호욜암옵욘미나함습학슥말).
그러나 유대교의 경전(Hebrew Bible)은 3분할로 되어 있습니다.
1) 토라(תּוֹרָה): 창출레민신
2) 느비임(נְבִיאִים): 수삿삼왕+사렘겔+12소예언서(호-말)
3) 케투빔(כְּתוּבִים): 시잠욥아룻애전에단스느대
기독교성경에서 예레미야애가와 다니엘은 선지서에 속해 있는데, 유대경전에는 케투빔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왜 예레미야애가와 다니엘이 느비임이 아닌가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애가와 다니엘서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에게 임했다"는 구절이 없기 때문입니다. 애가와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책이 아니기에 느비임에 속하지 못합니다. 반면, 여호수아와 사사기, 사무엘과 열왕기 등 기독교의 "역사서"는 유대경전에서는 느비임에 속합니다. 이유는 마찬가지로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에게 임했다"는 구절이 이 책들에게는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분할의 차이는 성경의 각 권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차이를 만듭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를 역사서로 읽으면 가나안 정복전쟁 이야기, 즉 어떻게 여리고성이 무너졌는지, 아이성이 어떻게 함락되었는지 등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나비(נָבִיא)의 한 사람으로, 처음부터 여호수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수1: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리고 마지막장까지 여호수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수24: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여호수아서를 역사서가 아니라 느비임으로 읽게 되면, 그 책의 핵심 내용은 (가나안 정복 전쟁이 아니라) 여호수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인가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여호수아서를 역사 이야기로 이해한다면 여호수아서의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대표적인 “역사서”인 “열왕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의 이름을 “열왕기(Book of Kings)”라고 부르는 순간 이 책의 주인공은 왕들이 됩니다. 솔로몬, 아합, 히스기야가 무슨 일을 했는지가 관심거리입니다. 그러나 유대경전처럼 이 책을 “느비임”으로 읽게 되면, 이러한 왕들의 역사 속에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나비(נָבִי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임했는지가 관건입니다. 즉,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공이 됩니다.
이름은 잘 지어야 합니다. 이름을 짓는 것은 어떤 특정한 관점으로 그 대상을 바라보게 하니까요 (Naming is framing). 히브리어 단어 하나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히브리어 나비(נָבִיא)를 “예언자” 혹은 “선지자”로 번역하면서 우리의 관심은 “미래”를 향하게 됩니다. 현재 기독교계에 미래를 예언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아지게 된 것에는 이 번역어가 한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비(נָבִיא)는 이사야나 예레미야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모세, 여호수아 같이, 각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그분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대언자(代言者)’라는 번역어가 더 나아 보입니다.
하지만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성경에 나타나는 나비(נָבִיא)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수동적으로 전달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정중히 사양하기도 하고(모세), 하나님께 반항하기도 하고(요나), 하나님과 협상을 하고(아브라함), 심지어 하나님을 설득하여 그 뜻을 바꾸기까지 합니다(모세). 따라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자’라는 것이 보다 성경적인 나비(נָבִיא)의 정의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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