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지에도 성, Castle이 있다~!! 동화책에 등장하는 왕과 왕비가 사는 멋진 궁전은 중세기 유럽의 전유물만이 아닌 머나먼 남극 땅 한자락 더니든에도 있다. 비록 왕실 가족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의 성을 모델로 세워진 이 성은 출세가도와 부귀영화를 누렸던 주인이 비극적인 일생을 마감한데 대한 구구한 설들이 더욱 신비함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곳이다. 뉴지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만큼 유명한 은행가로 정치인으로 재력과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던 성 주인이 몰락과 더불어 유일하게 남긴 유산 라나크성은 복잡하게 얽힌 그의 가족사와 함께 전설처럼 회자되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삶의 교훈을 주기도 한다. 오타고 반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성으로 가는 길~ 더니든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이곳의 아름다운 전망으로 성 주인은 아들과 승마를 즐기다가 성을 짓기로 했다고 한다. 위 사진 반대쪽 방향으로 바다를 끼고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더니든 시가지가 멀리 보인다. 약 35 에이커에 달하는 고목과 수풀림으로 뒤덮인 아름답게 단장된 정원이 먼저 나오고 생각보다 작아 보이는 성이 저만치 아담하게 서 있다. 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어 가이드 투어를 신청 했는데 일행이었던 독일 연인 한 쌍과 함께 안내된 곳은 성과 회랑으로 길게 연결된 무도회장이었다. 무도회장은 성을 짓기 시작한 1871년으로부터 14년 후인 1885년 3000 square 직각으로 완성 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결혼이나 무도회 파티 행사 등으로 일반인들에게 대여 되는데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이 처음 들어온 더니든 지방 특색에 어울리게 옛 고전 분위기 그대로 살린 실내장식에 천정이나 바닥 나무들은 뉴지에서만 나는 고급 소나무인 카우리를 사용했다고 한다. 카우리는 현재 보호대상으로 지정된 나무이다. 국 내외 많은 단체나 개인 관람객들이 더니든 명소로 유명한 이곳을 찾고 있다. 두 마리의 사자가 지키는 석조계단을 올라가면 그 뒤에 독수리가 앉아 있고 입구 문이 있어 현관에 들어서기까지 무언의 위압감이 느껴진다. 첫째 주인 이후 허술하게 다루어지던 성을 현재 주인인 Barker 가문이 30년에 걸쳐 깔끔하게 다시 단장하여 지역 명소로 탈바꿈 시켰는데 레스토랑, 숙박 시설들이 생겼고 입장료는 저렴하지 않은 편이다.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는 실내로 들어가 보면~ 1871년에 시작된 공사는 3년에 걸쳐 200여명이 동원되어 외장공사를 하였고 각 분야 장인들이 12년에 걸쳐 실내 인테리어를 했다는데 고급 소나무 카우리와 리뮤로 인동덩쿨 식물을 섬세하게 조각한 천장과 기둥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뛰어난 장인의 솜씨로 자신을 나타내는 흔적인 조그맣게 조각된 뉴지 도마뱀은 가이드 설명 없이는 찾을 수 없는 기이한 곳에 있었다. 남극에 가까운 바람 많고 추운 뉴지 남쪽 도시 더니든이라 집 지을 당시에도 그것을 감안하여 이중 유리창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블벗님들의 이해를 돕고자 성 주인 침실 사진을 올린 것은 세 명의 부인이 거쳐간 불행한 자리인지라~ 첫 번째 부인을 위해 이 성을 지었다는 주인의 기구한 운명을 이야기 하자면, William James Mudie Larnach, 스코티쉬 후손으로 1833년 호주 뉴 사우즈 웨일즈에서 태어난 농부로 금광 찾아 다니던 사람이었는데 동남부 항구 도시인 멜버른 골드러시때 총과 개들이 지키는 텐트 은행을 시작으로 은행가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859년 프랑스 귀족출신 아내 Eliza Jane Guise와 결혼하여 6남매를 두었는데 1866년 뉴질랜드 오타고 반도에 금광이 발견되자 오타고 은행 매니저로 오게되어 더니든으로 이주. 부유한 은행가로 바쁘고 분주한 그와 반대로 외딴 저택에서 외로웠던 아내는 그녀 여동생을 프랑스로부터 오게하여 함께 있었는데 여섯째 아기를 낳은지 얼마되지 않아 38세로 죽었다. 갓난 아기와 다섯 아이들을 돌보던 부자였다는 이모가 자연스레 두번째 아내가 되었고 결혼 5년차에 38세로 또 요절하자, 이미 정계에 진출하여 장관과 각료로서 승승장구하던 주인은 자식들과 비슷한 연령의 세번째 부인을 맞게 되는데..... 자식들은 영국으로 보내 교육 시키고 호화스럽게 생활하던 그에게도 벌여놓은 사업들이 번번이 실패하며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으니 더니든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명성을 휘날리던 그는 사업 실패와 20세이던 첫째 딸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자신의 사랑하던 아들과 젊은 아내와의 불륜으로 좌절의 늪에서 헤메다가 1898년 정부 의사당 회의실에서 권총자살하고 말았다. 이후 유가족들은 우여곡절 끝에 1906년 성을 팔았고 무관심으로 방치 되었다가 1967년 현재 주인을 맞아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성 안 실내장식은 세계 각국에서 온 최상의 물품으로 꾸며져 볼거리가 많은데 손을 대어보면 아주 차갑고 단단한 이태리 마블로 된 블랙 화이트 벽난로를 비롯하여 유리는 프랑스와 베니스, 마루 타일은 영국, 지붕 슬레이트도 웨일즈 지방 등 심지어 여의주를 물고있는 용이 팔걸이로 조각된 중국제 의자까지 당시 부유했던 그들의 삶을 엿 볼 수 있다. 성의 아래층에는 주인 가족사와 유물 전시장, 성에 대한 상영관으로 꾸며졌고 이층은 침실들과 서재, 응접실, 식당 그리고 부인들의 의류나 장신구 등 을 전시한 전시실 삼층은 온실과 유모방,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으며 작은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성의 꼭대기가 있다. 전망대에 올라 오면 저멀리 오타고 반도의 확 트인 전경을 시원하게 즐길 수 있어 주인이 왜 이곳에 성을 지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성에서 요절한 자매인 두 아내 원혼들도 성 안에 머무르며 지금도 나타난다고 하는데 자신들의 일생 바친 이곳이 너무도 아름다워 미련이 많은 것인지....... 실제로 응접실 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성 꼭대기에서 저 멀리 불어오는 신선한 남극 바람에 심호흡하고 아래로 내려오면 아름다운 정원이 기다리고 있다. 원래 성은 중심부분 양쪽으로 하얀 창살이 아롱진 유리창이 없었는데 현재 주인이 보호차원에서 설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원을 좋아하여 정원에서 일한다는 현재 여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 하며 돌아본 정원~ 막다른 곳에 하트형 예쁜 의자가 연인을 기다리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이곳도 예식이나 웨딩 촬영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라 하는데...... 정원에서 신나게 놀다가 중세시대로 돌아가 스테인드 글라스 화려한 무늬 아래 휴식을~ 분수대를 중심으로 정면에서 찍은 라나크 성~ 화창하고 맑은 날이 아니어서 아쉽기도 했지만 성에서 바라보는 오타고 반도의 구불거리는 해안가와 섬들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부와 명예를 ?다가 세 아내와 딸을 잃고 자신마져 비참하게 무너진 인생 낙오자로 비극적 종말을 고해야 했던 불운한 한 남자 일생이 고스란히 담긴 라나크 성, 성의 관람을 통해 인생의 참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자신의 삶도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느꼈다. 라나크 성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클릭하면 이동~ |
출처: 평화로운 키위촌 원문보기 글쓴이: Veronica
첫댓글 이야기가 있는 사진, 여행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처럼 느껴집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저 함께 나누고 싶어 올리는 것입니다요~~
눈으로 오늘도 여행의 기쁨을 선물해 주시니.고맙습니다.그림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곳이 섬나라라 그런가 봅니다.
님의 이스라엘 여행기도 얼마나 좋았는데요~
잔잔한 일상 글들을 읽다가 이런 사진도 보면 재미있을거 같아서요. 하하
사진이 정말 선명하고.....사진 잘 찍으시네요.덧붙여주시는 글도 너무 좋고,좋은 재주를 가지고 계시니,정말 부럽습니다.볼 수 록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