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라이딩 코스는 수락산 석림사로 2010년 9월 5일 창단 4주년 기념으로 다녀온 곳이지만 스머프 차를 고려하여 다시 선정하였다. 그러나 바이크 손대장과 스머프 차 달랑 2명만이 참가하였다. 나머지 대원은 일신상의 이유와 집안사정으로 참석을 못하였다. 고희를 넘은 시점에 뜻하지 않는 변수가 생겨 라이딩을 함께 하지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건강은 항상 변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스머프 차는 지난 3월에 기관지 천식으로 1개월간 라이딩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정상적으로 호흡하면서 건강하게 걷는 사람을 보면 매우 부러웠으며,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왜냐하면 호흡이 거칠고 기침,가래가 끊이질 않아 매우 고통스런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쇄도우수와 콘닥은 하루속히 완쾌되어 라이딩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수락산 석림사 코스에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서계 박세당의 고택과 그의 아들 박태보를 기리는 노강서원이 있다. 학창시절에 두 인물에 대한 배운 지식이 가물가물하여 이번에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살곶이 다리를 건너 동편 중랑천 자전거길로 접어들고 쉬엄쉬엄 내달렸다. 상도교를 지나 다락천 합수부에서 수상교를 건너 계단을 오르내리고 비포장길로 가면 동일로가 나온다.
동일로를 건너서 장암역 방향으로 가다보면 박세당 고택, 노강서원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대로 따라가면 박세당 고택, 노강서원, 석림사순으로 지나가게 된다. 박세당 고택은 동일로에서 얼마 떨어지지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서계(西溪) 박세당(1629-1703)은 평생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학문으로 혼란한 세상을 건질 뜻을 품었지만 당쟁에 혐오를 느껴 불혹의 나이에 관료생활을 포기하고 지금의 의정부시 장암동에 칩거하면서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학문연구와 제자 양성에 매진하였다. 서계 박세당은 이달의 문화인물에 선정될 정도로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에 박세당의 사랑채에 들려 차 한 잔 마시고 쉬어갔다고 한다. 박세당 고택은 넓은 정원과 아름드리나무에 둘러싸여있어 고즈넉한 분위기에 운치가 한결 돋보였다. 문이 굳게 닫혀있어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어 아쉬웠다. 박세당의 묘소는 수락산 중턱에 있는 석림사 옆에 자리하고 있다. 노강서원(鷺江書阮)은 숙종 때 문신인 박세당의 둘째 아들 박태보(朴泰輔)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위해 세운 사원이다. 박태보는 비리를 보면 참지 못하고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겼던 인물이었다.
박태보(1654-1689)는 조선 후기 숙종 때 후궁인 장희빈의 감언이설로 중전마마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죄없는 왕후를 폐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거듭 충간하였으나 숙종은 이를 무시하고 피와 살이 벗겨지는 모진 고문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박태보는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으며, 결국 전남 진도로 유배 명을 받고 떠나는 도중에 노량진에서 36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노강서원은 원래 사육신의 묘 옆에 있었다. 노강은 노량진에서 따온 명칭이다. 인현왕후가 복위된 이후에 숙종은 충신에 대한 예우로 정려를 세우고 영의정 벼슬을 추증한 후 노량진에 풍계사를 세워 고인을 배향하였으며, 숙종 27년(1701) '노강(鷺江)' 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박태보가 매월당 김시습을 모시는 사당인 청절사(淸節祠)를 세웠던 자리에 1968년 노강서원이 들어섰다. 노강서원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석림사(石林寺)가 나온다. 석림사는 1676년 조선 현종 12년에 석현화상과 그의 제자 치흠이 석천동(현재 장암동)에 석림암을 창립하였고, 당시 이 암명은 서계 박세당이 지었으며 이는 현존하는 문집인 서계집에 기록되어 있다. 영조 21년에 석림사라 개칭하였다. 박세당과 그의 아들 박태보에 대한 역사인식이 문외한이었지만 이번 기회에 알게되어 감명받았다. 이른 시간이지만 수락산 숯불 닭갈비 식당에서 닭곰탕(7,000원)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국물맛과 고기맛이 진수로 별미였다. 오후로 접어들어 기온이 32도까지 오르내리는 불볕더위였다. 복귀하는 도중에 무리하지않고 자주 쉬면서 내달렸다. 달리는 도중 내내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이 화끈하고 온 몸에는 땀으로 홍건히 적셔 마치 찜질방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시원한 게토레이와 아이스크림으로 목을 축이지만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휴대한 물은 햇볕을 받아 더운물로 변하여 있었다. 오후들어 라이더들이 눈에 띄는 빈도가 가물에 콩나듯 발길이 뜸해졌다.
중랑천은 교량이 많아 시원한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물새들은 더위에 아랑곳없이 물가의 바위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면서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쉬는 빈도가 잦다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45km를 주파하는데 8시간이 걸린 것이다. 지기지우(知己之友)들과 함께 라이딩을 하지못해 못내 아쉬웠다. 다음주 7월1일 라이딩은 우이천 라이딩으로 결정하였다.
박세당 고택의 아름드리 나무와 정원
박세당 고택 굳게 닫힌 정문에서
박태보의 업적을 기리는 노강서원
반남박씨 종친회에서 노강서원 관리
수락산 석림사 일주문에서
수락산 숯불 닭갈비 식당
닭곰탕(7,000원)
참새방앗간에서 신창록의 기타를 치는 바이크 손대장
첫댓글 박세당 박태보 석림사에 얽힌 역사 공부잘했네 고맙네 닭곰탕맛은 잊을수없네 불폭타이 떨어지는 속의 라이딩 죽는줄 알았네
손대장은 차성근사무총장이 없었으면 어쩔번 했어요 하여간 둘이서도 즐겁고 라이딩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니 보기 좋아요 계속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