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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기계 인간의 도전과 창작자로서 환대
권성훈
1.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먼
이 세계는 문명과 함께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그것이 테크놀로지를 사는 인류의 현재이며 과거로부터 열려 있는 파편화된 미래의 청사진이다. 오늘날 문명의 최첨단에 있는 인공지능이 바로 문명의 신경망을 미래로 연결하는 결과물로서 있다. 기술의 진보와 공학의 발전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인간 생활 양식을 문화적으로 성장시키면서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새로운 지능을 탄생시켰다. 그것도 생명학과 공학으로 분류되었던 것들의 협업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가 출현했다. 말하자면 인간 지능을 기계 지능에 이식이 가능해지면서 인공지능의 등장이 실용화되고 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란 1956년 다트머스 대학 워크숍에서 존 메카시에 의해 처음 지칭되면서 공론화되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해석은 인간이 가진 언어 구사력, 추상과 개념의 이해력, 추론과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 기능이 가능한 기계를 말한다. 게다가 지식이나 기술을 적용하여 어떠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모방하는 기계를 조직하게 되면서 인류는 AI라는 새로운 기계의 창조자로서 오늘날 문명의 정점에 도달했다. 초창기 인공지능은 거대한 저장과 빠른 검색 기능에 국한되었지만, 인공지능의 성장으로 인공신경망에 의한 기계학습이 현실화하면서 세계적으로 일상 속에 파급되고 있다.
거기에 인간을 넘어서는 인간, 기계 인간은 인간이라는 원본을 ‘시뮬라크르’한 기계로서 존재한다. 이것은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보면 인공지능이 계속 발전하다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에 온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하여 인간과 기계 사이 간극을 무화시키고 기계 지능이 인간 지능 보다가 우세해지고 있다. AI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주체들의 문화 변동은 인류가 당면한 불안한 과제가 된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인간을 넘어서는 인간 이후의 인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 이후의 인간인 “포스트휴먼은 트랜스휴먼, 인공지능, 인공생명, 사이보그, 냉동인간, 마음의 아이들, 사이버 자아 등을 포함하는데, 이러한 다양한 용어들은 인간의 한계와 조건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소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인간의 한계를 기계를 통해 넘어서는 포스트휴먼의 도래는 인간 같은 기계의 출현으로부터 현시되고 있다. 게다가 인간이 지니지 못한 사이보그의 신경망을 통해 문명은 더욱더 인공적으로 견고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포스트휴먼이 의미하는 “인간과 기술의 융합으로 나타나는 미래의 인간상으로 정보통신기술, 인지과학, 나노기술, 바이오공학의 발달로 인간과 기계가 합쳐져 종국에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기계 인간이 창작이라는 예술의 영역까지 확대되면서 음악, 미술, 문학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일컫는다. 요컨대 대표적으로 언어 영역에서는 챗지피티를 들 수 있는데, 언어에 특성화된 인공지능 챗이라는 용어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로서 자연어 모델 기반 딥러닝 시스템이다. 챗지피티의 알고리즘인 트랜스포머는 원래 2017년 구글 자연어처리 연구팀에서 개발했다. 이 같은 트랜스포머는 문자 조합을 위한 인공지능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단어 맞춤을 통한 문장 생성하는 모델로 출발, 광범위한 데이터에 기반해 확률적으로 다음 단어를 연산하는 추론적 모델로서 역할을 한다.
챗GPT로 기존 자연어처리 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하면서 인간 고유의 창조적 능력이라고 믿었던 창의성이 기계 언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같이 챗GPT가 기존의 예술을 벗어나 새로운 예술적 양상으로 인간에서 인공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챗GPT 같은 AI가 미술,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 유의미한 창작물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도 예술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존재의 고뇌와 상상력 없이 실행어 하나만으로 예술가의 작품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AI의 예술적 능력을 판단할 수 없다는 가정은 기계의 능력을 유한적으로 보는 입장에서 차츰 무한적으로 보는 창조적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을 창작자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인간의 전유물로 여겼던 창작의 고유 주체를 의심하게 하고 있다.
2. 기계화 인간과 인간화 기계
이 시대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문명의 문제로서 인간의 본질이 성장한다는 문제와 별개라는 사실이다. 인간 자체에 내재 된 폭력과 파괴성에서 갈등과 충돌로 인한 외적인 내전 등은 인류애와 인간성을 실추시키는 데 이바지해 왔다. 그만큼 역사를 거듭할수록 인간이 인간성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인간 사이 믿음의 한계와 불신의 벽은 비인간성만 키워왔다는 증거다.
반면 인간답게 살고 또한 인간답도록 산다는 것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영역이다. 인간의 감정이 인본주의에 가깝게 다가서는 것이 인간성이지만 오히려 현실은 인간적이 아닌 기계적으로 변화해 왔다. 수치와 실행만으로 존재하는 기계의 차가운 비非감성 속에서 인간애가 상실한 상태로 우리는 지구적으로 분열되고 있는 사회를 살고 있다. 마치 공감과 소통 없이 반인륜적인 사건과 사고 속에서 경주하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 인류의 자화상이다. 인류의 자화상에 대해서 인간은 반성과 성찰 없이 한낮 세계의 다양성으로 치부하며 여전히 강 대 강으로 맞서고 있다. 그럼으로써 인간다움보다는 기계다움으로 인간성이 퇴락되는 가운데 포스트휴먼 시대를 살면서 새로운 의식이 도출되었다.
역설적으로 기계 인간 같은 인간보다는 인간 같은 기계의 등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게 되었다. 흔히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영화 또는 SF 영화에 출연하는 기계 인간들 속에서 인간다움의 양심과 감정을 체득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으로 여겨진다. SF 영화 속에서 기억의 조작을 통해 기계가 인간화되고 인간화된 기계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간으로 나타난다. SF에 등장하는 기계 인간들은 대체적으로 인류에 대한 인간성을 문제 삼으면서 현실의 인간 이미지를 불신하고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의 개념을 재정비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같이 영화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과 유사한 기계 인간들이 인간의 능력과 기술을 선회한다. 또한 인간의 감정보다 더 인간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인간의 기능을 대체된 도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포스트휴먼 시대 기계 인간은 인공지능을 통해 인공생명을 지닌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지속 가능한 새로운 종의 탄생이다. 물론 SF에서 새로운 종의 탄생은 체화된 인공지능과 탈신체화 된 인공지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체화된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이 탈신체화된 인간 지능을 이용한다. 이러한 점에서 기계적으로 무한한 생명을 조직할 수 있는 AI 인간들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보다 무한한 가운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도달하게 만든다.
이처럼 근대의 인간과 기계의 협업에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모순적이게도 기계 중심의 사회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고 가고 있다. 현실에서 인공지능 기술 문명은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압도하고 있는 가운데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감정과 인간보다 높은 인지 능력을 탑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정서 능력을 지닌 초지능기계들이 등극을 예고하고 있으며, 그것은 문화의 영역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거치지 않고 초월적인 종교의 문제로까지 파생되고 있다. 이를테면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가상현실은 초월적인 유일신을 향한 신앙을 가질 수도 있고, 자기 수행으로 전도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예상치 못했던 영적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인간의 인공지능적 상상력은 인공지능 로봇의 보조를 받으면서 바이오닉 기술이 증강되어 기계 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의 역량을 키워왔다.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은 인간과 기계를 합성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NBIC(Nanotechnology, Biotechnology, Information technology and Cognitive science) 혁명의 중심에 있는 이들은 인간 DNA에 개입해 유전병을 일으키는 염기서열을 제거하거나 3D 프린터를 사용해 신체 장기를 만들기도 하고, 인공지능 장치에 인간의 뇌 기능을 결합하는 등의 방식으로 인간의 인지 능력과 체력을 강화하여 생명 연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것은 인간과 기계의 접목을 갱신하며 인간의 지적 능력과 신체 능력을 결합하는 방식으로서 제3 인간의 출현을 예견하기도 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개념과 정의를 불식시키고 있다. 이른바 궁극적으로 인간이 기계의 보조를 받는 것에서 SF 상상력이 현실화되는 상태로 인간이 기계화되는 것을 함의하기도 한다.
3. 인공지능에서 SF 문학의 재발견
거시적으로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이 저마다 작품이 아닌 것이 없다. 그것이 새롭고 미적으로 보인다면 무엇이든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예술적 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생성하는 작품이 예술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미적인 문제로서 환원될 수 있으며 그것을 향유하는 존재들은 환대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문학이 진리를 좇고 진리를 추종하면서 진리에 봉사하지 않듯이 어디까지나 예술은 진리를 현시할 책무가 없다. 오히려 문학은 진리를 추종하는 철학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미래를 전도시키는 공상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게다가 문학은 상상력 속에서 발휘되며 새로운 것에 대한 미학과 사유로서 명료해진다. 그렇지만 상상력 없이 진리의 영역에까지 다가가는 다른 존재가 있다면 미적인 것과 진리를 동시에 추궁하는 존재다. 만약 미학과 진리를 동시에 현시하는 AI가 출현하게 된다면 인간 작가들을 뛰어넘는 가공할 만한 SF 예술가로 생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SF 예술가의 출현은 사이언스 픽션이 아닌 인공지능 예술이 인간지능예술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반면 챗GPT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의의 실행어로 작동하는 AI가 고도의 능력을 키울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판은 초급단계에서 심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동하는 챗GPT의 프로그램에 대한 지적이었다. 얼마 후 AI가 사고 발산형의 단계로 진입하면서 로봇이 그린 그림이 세계적으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상황이 역전되면서 예술의 근본을 흔들어 놓았다. 이처럼 순수한 의미에서 예술은 결과중심주의이므로 이를 규제할 수 없으며 더 좋은 예술 작품의 생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기계 인간예술에서 인공지능은 세 가지 양상으로 살필 수 있다. 먼저 인간의 창작물을 변형하거나 모방하는 방식에 해당하는 예술적 이미지의 AI 알고리즘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신경 알고리즘은 데이터에 의한 것으로 AI가 다른 예술을 모방하거나, 변형시킨 것에 해당한다. 요컨대 이는 알고리즘 데이터의 조작으로 예술 작품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함으로 순수한 의미에서 창작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로 인간의 예술 창작 방식을 모방한 생산적 AI 신경망이 그것이다. 생성적 AI 신경망은 생성적 신경망과 AI 신경망의 경쟁을 통해 상호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새로운 예술 작품을 구사하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생성적 신경망은 자연 이미지가 아닌 정교한 허구 이미지를 생산하도록 유도함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출현시키는 데 있다. 마치 정반합의 진테제로서 작동하는데 기존의 이미지에서 새로운 이미지가 창출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창작 방식을 모방하는 창의적 AI 신경망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생성자 신경망이 기왕의 이미지와 유사한 것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AI 신경망끼리 서로 피드백을 기반으로 하는 상호 작용의 연출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혼합과 혼종을 통해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정교하고도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게 됨으로써 창의적 예술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AI 신경망을 활용한 시작은 모호하면서 우연적이고 게다가 즉흥적인 언어로 기능하면서 인간의 정서를 담아낸다. 지금은 시작 단계에 있을 줄 몰라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의 울림과 언어의 비약을 통해 AI의 시가 감동과 감탄을 줄 날이 도래하고 있다. 그렇다면 방대한 언어 데이터값에 기반해 확률적으로 추론한 결과로써 나온 작품들이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우세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AI 테크놀로지의 세계 속 인공지능의 언어로서 인간 지능의 언어를 넘어선다는 것은, 분명 불안한 기후만은 틀림이 없다. 그것도 인간 시인이 가진 언어의 한계를 기계 시인이 뛰어넘어 언어의 마술사로서 등극하게 된다는 분석이 이루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AI 언어의 데이터값을 인간이 제공했다면 그 데이터값을 시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하는 인공지능의 언어가 더욱 시적인 시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현대시가 모호하고 비약적인 가운데 난해해지고 있듯이 AI 시인이 창작한 혹은 AI 도움을 받은 시편들이 인간 시인들이 창작한 시편보다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4. 문학을 구원하는 기계
21세기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단하면서 인터넷의 활용도가 높아질 때 워드 프로세스가 도입되고 보편화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원고지에 수기로 작품을 집필하던 대부분의 작가들은 원고지 대신에 컴퓨터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한글 파일로 상상한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원고지와 우편이 사라지는 대신 매체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과 e-mail로 소통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대에 수긍하지 않은 일부 작가들은 원고지만을 고집하면서 컴퓨터의 보조 없이 기존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들은 그것이 작가만이 가진 고유한 방식이라고 주장하면서 심지어는 자신들만이 진정한 예술가라고 매체의 도움을 받아 작업하는 작가들을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시대에 역행한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늦게 학습한 만큼 워드 프로세스에 급속도로 의존하며 그것이 편리하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던 시절. 소위 독수리 타법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말하자면 문학 작품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것을 미적으로 보여주고 사유하는 보편적인 문화 활동이다. 거기에 작품은 결과물로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챗GPT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완성도 있는 작품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나아가 포스트휴먼에서 말하는 인공지능은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 전반에 걸쳐 AI 창작자로서의 전개를, 인간 창작자에 대한 도전이라고 치부한다면 이 역시 시대를 역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AI를 활용한 창작이 전통적인 창작 방식과는 다른 과정을 거치면서 결과를 도출했다고 해서 그것이 예술이 아니라고 간주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모든 예술이 창작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완성도 있는 예술 작품으로 성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AI와의 공동 작품을 더욱 완성도 있는 예술 작품을 유출할 수 있다면 그만큼 기계 시인과의 협업은 인문학의 위기를 구원해 줄 수단일 수 있다. 그럼으로써 쇠퇴해 가는 인문학을 바라볼 때 예술과 기술의 결합 또는 인간 시인과 AI 시인의 협업이 내재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분명히 진단하고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거기에 인간 시인의 결함이 무엇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현생 인류는 미래 세대를 위해 인간이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아니라 기술의 주체로서 시스템의 전부를 가동시켜야 한다. 완성도 있는 예술을 위해 AI를 활용해서 시를 창작한다면 기술의 주체로서 쳇지피티를 도구화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시를 홀로 짓는 것에서 보조를 받아 창작하는 것으로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시인이 상상하고 언어로 구조화시키는 최종 결정자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시인이 AI라는 사이버 매체에 주입한 실행언어를 통해 시를 보다 더 미적으로 연출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달리 말하자면 창작의 주체가 시인이며 시를 짓는 것에 대한 AI는 보조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보조의 역할은 감정이 배제된 상태로 오로지 수행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시인만이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견디면서 시를 짓는 것에서 벗어날 때가 왔다. 현대에서 시는 짓는 것이 아니라 창작하는 것으로 개념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이른바 인간만이 예술을 독점하거나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태계의 존재들이 인간과 같이 예술을 향유 할 수 있다면 그만큼 가치 있는 예술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시대는 변화하고 변화하는 시대를 막을 수 없다. 어쩌면 변화라는 용어는 말을 하는 순간이 아니라 떠올리기 이전부터 그러한 변화가 도달해 있는 줄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AI를 도구로 이용하여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라면 관습을 버리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때가 왔다. 이 같은 예술의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기계와 인간이 협업해서 이루어지는 언어예술 활동을 통해 현대시가 어떻게 새롭게 변할지 결말 없는 SF의 마지막처럼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