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촌 강가로
추석을 하루 앞둔 팔월 열나흘 새벽이었다. 귀성은 오후에 하기로 하고 온천장으로 길을 나섰다. 여름 지나면서 한동안 온천장에 들리지 않았다. 엊그제도 칠북 음달봉 산행 후 온천장을 지나쳐 왔지만 온천수에 몸은 담그지 않았다. 내가 온천장에 드는 경우는 아주 이른 새벽이어야 한다. 업주가 물을 갈긴 해도 목욕을 다녀간 손님이 적은 이른 시각은 대중탕 온천수가 더 깨끗해서다.
아침을 일찍 먹고 시내버스 첫차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5번을 타고 동정동에서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하기에 집을 나서 온천장에 닿으니 집을 나선지 한 시간 가량 걸렸다. 대중탕에 드니 내보나 먼저 온 사람이 더러 있었다. 십여 분 온천수에 맘을 담그고 나와 때수건으로 몸을 밀었다. 팔뚝에서는 생각보다 때가 좀 나왔다.
내가 온천장에 들리면 발바닥 굳은살 제거에 신경을 많이 쓴다. 가져간 문구용 가위로 조심스럽게 발바닥 각질을 갉아냈다. 굳은살이 많은 붙는 것이 남들보다 많이 걸어서인지, 체질인지, 노화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나는 여름철을 제외한 계절엔 발바닥 굳은살이 잘 달라붙어 대중탕을 주기적으로 찾아 벗겨내야 한다. 이 정도야 생활에서 불편함으로 여기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대중탕에 든 지 사십여 분 걸려 목욕을 끝내고 바깥으로 나왔다. 얼마 전 추분이 지나 밤이 조금씩 길어지는지라 이제야 아침 해가 솟아오는 즈음이었다. 오전 반나절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언젠가 같은 아파트 사는 초등학교 동기가 나한테 한 가지 요청이 있었다. 내가 자연에서 이런저런 걸 채집해 오는 줄 아는 친구다. 날보고 야관문을 구해 줄 수 있냐고 해 흔쾌히 수락했다.
온천장을 나온 나는 집으로 가는 방향과는 반대로 북면 낙동강 강가로 걸었다. 벼가 익어가는 들녘을 한참 걸어 북면 수변생태공원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도 계속 걸어 명촌마을 앞까지 갔다. 4대강 사업으로 둔치 경작지는 공원으로 꾸며 놓은 데다. 야구장도 있고 여러 체육시실을 갖추어 놓았다만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았다. 휴일에는 간혹 들리는데 명절 연휴여선지 인적이 끊겼다.
여러해살이 풀인 비수리를 야관문이라고 한다. 몇 해 전 종편에서 중년 이후 남성에 효험 있다는 방송을 탄 모양이었다. 아마도 방송에 참여한 패널이 체험담을 소개하고 한의사가 검정하였지 않나 싶다. 산과 들에 흔하게 자생하는 풀이다. 청정지역에서 채집한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낙동강 강둑에서도 흔히 자란다. 내가 찾아간 명촌마을 앞은 찻길과도 떨어졌고 한적한 경변이었다.
강 건너는 부곡 임해진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창녕함안보가 있다. 창녕함안보를 빠져나온 강물을 임해진을 앞둔 벼랑에 부딪혀 명촌마을 앞으로 휘감아 흘렀다. 나는 가져간 가위로 강둑에 절로 자라는 야관문을 잘라 배낭에도 담고 자루에도 담았다. 듣기에 약성이 좋은 채집 시기는 야관문에서 꽃이 저문 때라고 했다. 바야흐로 야관문에서 보라색 꽃은 저물고 씨앗이 여물어갔다.
언젠가 주남저수지 인근 국수집에 드니 계산대 근처 야관문 담금주를 여러 병 진열해 놓았더랬다. 식당을 찾은 손님에게 팔려는 담금주 병이었다. 야관문은 술로 담가 먹고 차로도 끓여 먹는 모양인데 난 관심 종목이 아니었다. 가까운 친구가 필요로 한다니 나는 어렵지 않게 청정지역에서 야관문을 넉넉히 마련했다. 배낭은 짊어지고 자루는 한 손에 들고 둑을 넘어 마을 앞으로 갔다.
하루 몇 차례 시내에서 명촌마을을 종점까지 다니는 버스가 대기 중이었다. 출발 시각이 되니 버스는 시동을 걸어 강둑을 달려 바깥 신천을 지나니 온천장이었다. 시내로 들어와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 집 근처로 왔다. 이웃 동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금세 내려왔다. 야관문이 담긴 자루를 안겨주었다. 추석 잘 쇠고 언제 틈이 날 때 다시 얼굴을 한 번 보자고 했다. 17.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