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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영을 새롭게..... |
말씀과 함께 하루를...
9月13日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 능력 체험
하나님 능력 체험하려면(고후 13:5)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생활 속에서 성령의
임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첫째, 불신앙의 죄를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고 믿음이 약해지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감각적인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말씀에 서야 살아계신
예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할 때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둘째, 불순종의 죄를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순종하여야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셋째, 우상 숭배의 죄를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우상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돌아서서 하나님 중심으로 설 때 우리의 생애 속에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넷째, 마음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요일 4:18). 두려움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서 두려움을 몰아내야 합니다. 두려움은 마음속에 믿음이 들어오면
없어집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 10:17).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차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평안이 마음 속에
가득차게 되며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불신앙의 죄, 불순종의 죄, 우상 숭배의 죄를 회
개하고 마음속의 두려움을 말씀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화 :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는 우상 숭배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아도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들에게 벌을 내리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의 죄악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간과한 적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는 그 때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도의 4억 불교도들은 오래된 송곳니 하나를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성물이라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전 543년 석가모니의 화장터에서 얻은 것으로 800년 후 실론 섬으로 옮겨졌습니다.
지금 그 송곳니는 실론 섬 칸디에 있는 한 사찰의 황금연꽃 위에 놓여 있는데,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수십만의 불교도들이 그 송곳니를 보기 위해 찾아와 금, 은 등의 보석과 많은
예물을 그 사찰에 바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웃지 못할 일입니까?
아무런 위로나 기쁨을 주지 못하는 오래된 송곳니 하나가 수많은 불교도들에게 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상 숭배는 가장 우매한 짓으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만을 살 뿐입니다.
◇묵상 : 하나님은 어떤 분?(고후 13:1∼13)
5절 : 우리 안에 계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열매 맺으며 살아가게 하신다. 나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언제나 주인으로 인정하며
철저하게 의지하고 있는가?
11절 : 평강으로 우리를 지키는 분이시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는
환경의 요동함과 상관 없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나는 항상 하나님의 평강으로 충만한가?
오늘을 행복하게...
명절에 생각나는 일
다가오는 주일이 추석 명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겠고 모처럼의 휴가를 즐기게도 될 듯하다.
그런데 명절을 맞이하는 우리 주부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노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주부들은 인사차 들르는 손님 접대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종 증상이 생기기까지 했을까?
그러나 이런 일은 그래도 아름답고 귀여운 측면이 있다. 그래도 고향을 찾아 어른들을 뵙고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최근에는 아예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가족 공동체의 견고함이나 자녀들에게
뿌리 교육을 시키는 일 등에는 아주 관심이 없어진 사람들인 것 같아서 씁쓸하다.
우리는 명절을 보내시던 예수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명절 보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예컨대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못가를 찾으신 모습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예수님께서도
명절에 다른 사람들처럼 예루살렘에 가셨다. 예수님 시절에는 예루살렘에 오랜만에 성전 제사가
재개되어 명절이 되면 웅장한 새 성전을 구경하려는 사람들과 모처럼의 기회에 하나님께
성전 제사를 드리려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그때 예수님이 가신 곳은 성전으로 통하는 양문 곁의 베데스다 못이었다. 성경에는 이곳에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와 장애인,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천사가 물에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내려가는 사람은 고침을 받게 된다는
미신에 사로잡혀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영혼과 육신 모두가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명절날 예수님은 이곳에 가셔서 그 가운데 무려 38년을 앓고 있던 한 사람을 고쳐 주셨다.
양문이란 제사에 제물로 바칠 양들을 끌고 들어가던 문이어서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것이다. 아마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 친구들과 얼싸안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군상들로
도시 전체가 시끌시끌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화려한 성전에 있지도 않았고, 거리의 축제에 있지도 않았다.
옛 친구들이나 나사렛에서 올라온 친척들을 수소문할 생각도 않으셨다. 주님은 이 잔치의
소리를 귓가로 흘려들으면서 지치고 병든 육신을 안고 괴로운 신음을 토해내는 무리들로
가득한 베데스다 못가의 행각을 찾아가셨다. 주님의 관심은 모두가 즐기는 명절에 누구도
돌보는 이 없이 버려진 밑바닥 인생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명절은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 가족들도 모두가 즐거워야 하고 우리 사회 구성원들도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예수님처럼 우리의 관심이 우리 사회의 변두리에서
힘든 삶을 이어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베데스다 못가의 사람들 곁에 있을 수 없을까?
다른 사람들은 흥겨운 축제로 삶의 스트레스를 씻어내게 하고 우리는 베데스다의 행각으로 달려가
육신의 고통과 미신의 미혹에 빠진 형제들을 끌어안고 기도하고 사랑의 눈빛을 보낼 수 있으면
어떨까? 그래야 예수 믿고 사는 사람답다는 자기 만족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많은 돈을 낭비하며 오락에 빠지기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손달익 서문교회 목사
겨자씨
함께하는 추석
추석 명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의 추석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이웃들에게도 기쁨의
나눔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지킬 것을 당부하신
3대 명절 즉 유월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은 모두 감사의 축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땅에 와 피곤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 외국인 노무자들,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 걸었던
탈북 새터민들, 어쩔 수 없이 무한 경쟁에서 밀린 우리 사회의 연약한 자들과 함께
감사와 기쁨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 받으실 감사의 제사일 것입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라."(신 16:11)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역경의 열매...문흥수 (17)
슈바이처·간디와 같은 삶 소망
나의 사법개혁에 관한 주장은 학계, 언론,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지지를 받게 됐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대법관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됐다.
나는 다수 법관의 힘을 모아 법원 자체적으로 개혁을 이뤄나갈 것을 도모했다.
그리하여 법관 공동회의를 만들어 법관들의 여론을 수렴했다.
문제는 익명으로 의견을 모으면 80% 이상 절대다수의 법관들이 개혁 의견에 동참하지만
실명으로 의견을 모으면 동참하는 법관의 수가 10%도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개혁의 실권을
대법원이 잡고 있는데, 대법원에서 일하고 있는 법관들에게는 현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하게 돼 있기 때문에 별로 개혁할 생각을 갖지 못하게 돼 있다.
나의 이런 노력으로 국회에서는 피라미드꼴의 법관 승진제도를 폐지하고 같은 경력의 법관에
대해서 같은 처우를 해주도록 하는 법관 단일호봉제를 만들어 법으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대법원은 여전히 교묘한 방법으로 종전의 승진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장 법을 지켜야 할 대법원이 법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합의제 문제다. 대법원의 재판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4인 이상의 대법관이 합의로 재판을 하게 돼 있다. 그러나 많은 사건이 대법원으로 폭주하다
보니 주심 대법관을 정해 실질적으로는 주심 대법관이 홀로 사건을 전담하는 형태가 되고 있다.
아예 대법원은 이런 사실을 고백이라도 하는 양 대법원 판결 말미에 주심 대법관 표시를 하고 있다.
주심 대법관으로서 처리하는 사건만 매월 200건 내지 300건이니 그것도 제대로 처리될 리 없다.
이것을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속이고만 있을 것인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나를 비롯해 사법개혁을 원하는 법관들의 주장을 수용하듯 대법원과
청와대는 공동으로 사법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운용했다. 배심재판제도가 도입되고 로스쿨이
도입되는 등 성과가 없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본질적인 사법부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법원에 남아 있을 의미를 잃고 2004년 2월 법관직을 사임했다.
이임식 때 수많은 분들이 환송을 나와줬다.
나는 이임식에서 평소 내가 존경하던 두 분인 슈바이처와 간디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분들을 닮는 일에는 변호사일이 더 나을 것이란 소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지금도 나를 기억하는 수많은 법관과 직원들이 대법관 후보를 추천할 때 나를 추천하고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근본적인 사법부 개혁이 언제쯤 이뤄질 것인가, 지금도 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나는 법관직을 퇴직하고 기독 변호사들로 구성돼 있는 법무법인 로고스의 변호사로 새 출발했다.
로고스의 양인평, 전용태, 김승규 대표 변호사님들이 따뜻하게 나를 받아주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수많은 큰 사건들을 수임해 대부분 승소판결을 받아내게 됐다.
그러다 2006년부터 법무법인 민우의 대표 변호사로 옮겨 일하고 있다. 보다 자율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로펌을 운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수많은
사건을 수임해 처리하게 됐다.
로고스에 있을 때에도 어려운 사람들의 경우 무료 변론을 종종 했지만, 민우로 옮긴 뒤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오면 저렴한 수임료 내지는 무료로 변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의 사무실은 전도의 장소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장소가 되고 있다.
오늘의 말씀
(土) 복 있는 가정을 세우자
찬송 : 28장(새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묵상 : 형통한 가정과 가문을 세우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시 1:1∼6)
말씀:
오늘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복 있는 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그에 따른 축복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함을 깨닫고 형통하고 복된 가정을 세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않습니다. 악한 꾀는 멸망에 이르는 넓은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쉽게 그 길을 갑니다. 하지만 필경은 망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복 있는 자는 그 길을 피합니다.
복 있는 자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악인이 불의하고 부도덕한 자라면 죄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범하는 자입니다. 결과는 사망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은 의를 따라 선한 길로 행합니다.
복 있는 자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만은 하나님을 거스르며 업신여기는 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죄악입니다. 오만함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복 있는 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의 미덕을 쌓아 행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게 됩니다.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성도는 악한 것들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옳은 길을
향해 끊임 없이 정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2절).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만이 참되고 영원한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자는 말씀을 깊이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길잡이요 등불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일은 영적 건강과 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음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자는
진실로 복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는 '시냇가의 나무'처럼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풍성한 열매와
함께 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도
기쁜 일인데, 하물며 만왕의 왕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린 복된 가정을
세우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
온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복 있고 형통한 가문을 세워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찬송가는..공지클릭하여 들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