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 1순위' 잡았던 야당은 '헛웃음'
'학력 의혹' 자료 제출은 끝내 거부
"감사합니다…임명되게 해주세요" 너스레도
'정치 9단' 박지원이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2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예상 밖 답변으로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요리 조리 빠져나갔다. 그를 '낙마 1순위'로 잡고 심혈을 기울였던 야당 위원들이 헛웃음 짓는 장면도 여러 차례 포착됐다.
◇ "제가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신경전은 이날 오전 '학력 위조 의혹'을 둘러싸고 점화했다.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박 후보자가 지난 1965년 단국대 편입학 전형에 허위 서류를 제출했다며 광주교대 성적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 박지원> 제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대학에 말했습니다. 제가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성적을 공개할 의무도 없고, 학교 측에서도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공개하지 않는다는 법적 보장이 있기 때문에 저는 하지 않겠습니다.
◇ 하태경> 성적 가리고 주라고 했는데!
◆ 박지원> 이것은 첫째, 제 개인신상정보와 국정원이라는 특수정보기관의 사정을 감안해 주셨으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권력형 위조다' 하는 것은 제 인격도 있고 제 모교를 생각한다면 그런 말씀은 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본격적인 공방은 본 질의 시간에 이어졌다. 이때도 자료 제출 여부를 둘러싼 질의가 한참 동안 계속됐다. 박 후보자는 야당이 준비한 논리를 하나둘 퉁겨내며 끝내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 하태경> 저희들이 판단한 결과 후보자는 이미 2000년 권력의 실세였을 때 후보자의 어두운 과거를 은폐하기 위해 단국대학교를 겁박해서 다시 한번 학력을 위조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따지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후보자가 2000년에 단국대에 학력 정정신청을 한 것은 사실이죠?
◆ 박지원> 의원님, 아무리 제가 청문을 받아도 사실이 아닌 것을 '위조', '겁박' 이런 말을 하면서 저한테 '짧게 답하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까. 저는 위조한 적도, 겁박한 적도 없다는 것을 의원님이 이해하시고 질의하시면 답변하겠습니다.
◇ "제 말씀 들어보세요"
하 의원이 "질문에 답변하지 않는다"며 전해철 정보위원장에게 제지를 요청했다. 박 후보자 역시 "질문 답게 해야 답변하죠"라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 하태경> 자꾸 다른 생각 하시는 것 같은데, 국민들이 다 보고 있어요.
◆ 박지원> 저희 국민도 보고 있습니다. 55년 전이면 하 의원이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이고 그때의 사회적 개념과 21세기의 개념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분명히 광주교대를 졸업하고 성적표와 졸업증명서를 내서 단국대에 편입을 합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수강했고 졸업했습니다.
점심시간 뒤 오후에 이어진 질의에서도 박 후보자는 하 의원 측에 "의원님이 그렇게 거짓말 잘 하는 것 오늘 처음 알았다"라거나 "의원님은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공부를 잘해서 공개할 수 있겠지만, 저는 공개하지 않겠습니다"라며 서류 제출 요구를 피했다.
◇ 박지원 역공에…하태경이 해명
5년째 갚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지인에게 빌린 5천만원도 끊임 없이 거론됐다. 그러나 박 후보자는 느닷없이 해당 지인이 하태경 의원과 가깝다고 강조하면서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외려 하 의원이 해명해야 하는 입장에 몰렸다.
◆ 박지원> 개인적으로 친구고, 5천만원을 빌려서 재산신고를 다 했습니다. 제가 갚든 안 갚든 저와 제 친구 사이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솔직히 말씀 드리면 하태경 의원님하고도 잘 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념상 저는 진보이고 그분은 보수입니다. 그래서 통합당 관계자들과 더 친하기 때문에 잘 알 겁니다.
◇ 하태경> 불출석한 이 회장 그분하고 잘 안다고는 했지만, 그분은 절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
◆ 박지원> 그분이 그런 주장을 해서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 "임명되게 해주세요" 너스레
아직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도 않았는데, 박 후보자는 이날 축하 받기 바빴다. 김대중 정부 비서실장에, 4선 중진 의원 출신으로 여야 두루 연이 깊은 만큼 훈훈한 덕담도 종종 나왔다.
◇ 이철규 의원> 후보자님 이쪽 좀 보시죠? 국정원장 내정 축하드립니다.
◆ 박지원> 감사합니다.
◇ 이철규> 하지만 한편으로 위로도 드립니다. 과거에 후보자님께서도 야당의원으로 인사청문회를 할 때 부적격자를 걸러낸 공로가 있으십니다. 오늘 가혹하게 질문하더라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 박지원> 가혹행위 하지는 마십시오. 잘 아는 사이인데.
너스레는 오후까지 이어졌다.
◇ 이철규> 앞으로 어떻든간에 현 정권은 인사추천 해놓은 다음에 어떤 식으로 간에 임명은 되실 것 아닙니까?
◆ 박지원> 감사합니다. 임명되게 해주세요.
◇ "정치적 발언이었다"…주호영 머쓱
박 후보자가 자신을 기용한 문재인 대통령과 과거 '악연'이 있었다는 점도 야당 의원들의 공격 포인트 중 하나였다.
◇ 조태용 의원> "문재인 후보가 김대중 대통령을 골로 보냈다"는 말씀도 하셨고 문재인 안보관이 의심스럽다는 말씀도 하셨고 "문재인은 이중인격?" 그런데 지금은 "문재인 태풍이 분다" "이런 태풍은 나라를 위해 오래 갔으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님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겠다" "후보로 임명해주셔서 감사하다" 이런 것들을 보면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생각도 말이 바뀔 수 있다' 싶습니다. 그런데 후보자의 바뀜은 진폭이 큽니다. 후보자를 검증하면서 당연히 감안해서 검증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지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많이 비난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제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2번 뵙고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모두발언에서도 했지만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고 측근도 아닌 저를 국정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국가통치자로서 충분히 납득을 하고 이해를 했기 때문에 저에게 기대를 가지고 국정원장에 임명했기 때문입니다.
◇ 주호영> 2017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당시 문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 "아주 극좌적이어서 확장성이 없다" "안보관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죠?
◆ 박지원> 그때 당시 정치적 발언이었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2~3초간 다음 질문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질문을 바꿔 '북한이 주적인 건 틀림 없냐'고 연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