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풍 '파타'가 서울 상공까지 오나 싶다.
서울 송파구 잠실 하늘이 자꾸만 어둬지고, 흐리다.
내 마음도 울울하고.
오늘 아침에 아내는 작은딸네 아파트에서 외손자를 제 어미한테 넘기고는 잠실로 왔다.
그저께 어제 양 이틀간 어린 것을 데리고 잔 탓일까. 아내가 무척이나 피곤해 한다.
요즘 나는 왠지 모르게 그냥 지쳐서 방안에서만 머물렀다.
나 혼자서 여러 차례 밥 먹었다. 된장국에 물을 더 부어서 멀건하게 밥 말아먹었다.
끼니 때마다 냄비 안에 든 된장국을 가스렌지로 끓여서(덥혀서) 맛이 시지 않도록 주의했다.
오늘 점심 뒤 간식이 먹고 싶어서 주방 뒷편으로 나가서 사과 한 알을 꺼내서 물로 씼었다.
지난 8월 추석 때 차례 지내려고 사 왔던 사과는 채 익지도 않은 풋사과.
작은 칼로 반 자르는데도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반으로 자른 뒤에 다시 반씩 잘라 껍질을 깎아서 한 쪽은 아내한테 주고 나도 한 쪽을 먹었다.
깎은 껍질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내다버리려고 뚜껑을 여니 된장국 건더기가 잔뜩 눈에 띄였다.
아내가 국물은 수채구멍에 따라내버리고 건더기는 음식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뜻.
뭐야, 나는 어제에도 오늘 아침에도 그 된장국에 밥 말아먹었는데?
기분이 다소 불쾌해서 아내한테 왜 버렸느냐의 투로 물었다.
아무런 대답도 듣지 않았어도 아내가 쓰레기통에 버린 이유를 알 것 같았기에 내가 한 마디 했다.
'맛이 실까 봐 매번 덥혔어(끓였어).'
다 끝난 일. 내가 잔소리해야 아무 소용이 없을 터.
아내는 이따금 만든지 오래된 음식물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게 나한테는 불만이다.
나는 그 어떤 음식물이던지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서 다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녔다.
오래된 음식물이라도 맛이 갔다고 해도 나는 다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녔다.
아내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맛이 시었다는 기분이 들면 음식물을 쓰레기통에 붓고. 아내가 자란 배경과 내가 자란 배경이 사뭇 달라서일까?
전남 광양 골약면의 시골 부잣집 막내딸이라서 그럴까?
나는 서해안 산골마을의 촌아이 출신이라서 먹는 것에 아직도 미련을 갖는 것일까 하는 생각조차도 들었다.
나는 어린시절에도 배 곯지는 않았다. 억척스러운 어머니였기에 쌍둥이 형제인 나는 굶주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어린 시절 대전에서 남의 눈치밥을 먹고 자라야 했던 기억이 남은 탓일까? 아무 음식이라도 끝까지 다 먹어야 했기에.
오늘은 가을하늘이 울울하다.
추석(9월 13일) 쇤 지 일주일째이니 날씨는 자꾸만 서늘해진다.
특히나 오늘처럼 구름이 가득 낀 날에는 내 마음은 더욱 울울하다.
내가 퇴직한 지도 벌써 만11년이 더 넘었다.
내 연금통장이 어떻게 생겼나도 모른다. 아내가 알아서 살림하고 쓰고.
내 용돈은 내 통장에서 꺼내서 쓰는데 이게 11년이 넘다보니 지갑 두께가 자꾸만 얊아간다.
자식 셋(딸 둘, 아들 하나) 결혼시켰고, 늙은 어머니를 봉양했고, 어머니의 병원비, 장례비, 재산 상속비 등을 어떻게 내가 감당했는지 꿈만 같다.
아내의 씀씀이와 남편인 나의 씀씀이는 차이가 있을 터.
뭐라고 지정구를 할 수도 없다. 쓰레기 통에 버린 음식물을 돈으로 환산하면 지극히 값싼 것에 불과할 터.
그런데도 나는 아깝다.
'또 어찌 되겠지'라는 낙천적, 낙관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나 싶다. 나도...
어쩌면 무책임한 생각일 수도 있고.
무계획적인 낙관주의일 게다.
둘째사위.
성동구 답십리 하늘병원에서 며칠 째 무릎 치료를 받는다. 운동하다가 무릎인대가 끊겨져서... 수술을 받았다.
그의 부모가 충남 태안읍에서 화요일에 올라오셨고, 나흘째인 오늘 금요일에도 병실에 머물러서 하나뿐인 자식을 돌보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더 늙은 부모한테서 수발받아야 하는 자식의 마음은 어떨까 싶다.
사위가 다소 낙천적인 성격이기는 하나...
나는 광합성 동물인가?
이렇게 흐린 날에는 내 기운은 짭친다. 맥이 떨어져서 그냥 지친다.
기분이 울울하기만 하고.
나는 어린시절부터 뜨거운 태양의 계절인 여름을 좋아했다.
살갗이 남보다도 훨씬 얊아서 햇볕에 금세 타서 살갗 허물이 벗겨지기를 여러 번이나 해도 땡볕 아래에서 뛰어다니기를 좋아했다.
특히나 여름철에는 무챙이갯바다(무창포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수영 팬티 하나만 걸치고는 땡볕에서 신나게 놀기만 했다.
이런 특질이 몸에 배었을까?
날씨가 흐린 날에는 기분이 짭친다.
만나이 70살이 넘어서 아주 늙었는데도 아직껏 햇볕을 받아야 하는 광합성 동물인가 싶다,.
일전의 일이다.
나는 병원 복도에서 태안사돈을 만났다.
오랜만에 사돈끼리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중년 때에 축구를 좋아해서 현역 장교들과 축구를 하다가 신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오른쪽 무릎이 꺾이는 듯하게 아팠고, 중년일 때에는 통증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나이 든 노년인 지금은 무릎뼈가 은근히 아프다고 말했다. 바깥사둔은 지방 교회의 목사답게 내 무릎에 왼손을 가만히 얹고는 속으로 기도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분의 행동거지가 무엇인지를 짐작했기에 가만히 있었고, 바깥사둔의 손바닥에서 다소 열기를 느꼈다. 손바닥에서 어떤 느낌이 있다고 내가 말씀 드리니 그 분은 이번에는 오른 손바닥을 댔다.
나는 오른손바닥에서는 별 느낌이 없다고 말했다.
그 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치 자신의 왼손바닥에 어떤 기운이 서려 있는 것처럼 확신했다.
바깥사둔은 '이제 많이 나아졌을 겁니다'라고 확신했다.
나는 '일시적인 심리작용이겠지요'라고 덧붙였다.
무척이나 황당하다. 지방교회 목사의 손에 어떤 기독교의 영적 기운이 전달되었을까?
신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 나로서는 고개를 가로 내저었다.
신이 존재하면 애초부터 그 어떤 누구라도 다치지 않아야 했다.
오늘처럼 흐린 날씨에는 공연히 기운까지 짭쳐서 무릎 통증이 은근히 뻐근해지는 것 같다.
1.
일전 중장년 카페에서 글 하나를 보았다.
노야(老爺)이라는 제목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처음 보는 낱말이기에.
인터넷 어학사전으로 검색했다.
'늙은 남자'
정말로 한심하다. 그냥 쉬운 우리 말로
늙은 남자를 뜻하는 노옹(老翁)도 있다.
'늙은 남자' 또는 '할아버지'라고 말하면 안 되나 싶다.
늙은 여자를 뜻하는 '노파(老婆)도 있다.
※ 노수( 老수) : 늙은 남자 /인터넷 어학사전(한자)로는 뜨지 않는다.
어떤 카페에서 '노서(老鼠)'라는 글을 보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늙은 쥐'.
이 따위 단어를 검색하려면 욕이 나온다.
우리나라 말과 우리 글이 있는데도 중국사람이나 쓰는 한자, 한자어로 문자생활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한자말에 무식한 나를 탓해야 하는지...
우리나라(남한)은 아직도 중국의 속국(屬國)인가? 大國을 숭배하는 小國인가 싶다.
한자 病에 찌든 文學人을 혐오한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