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23. 큐티
시편 118: 22 ~ 29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관찰 :
1) 건축자가 버린 돌
- 22절.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 “건축가가 버린 돌”은 많은 건축자들이 하나의 돌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버려진 돌이 건축물에 사용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버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비유적으로 어떤 목적에 적합하지 않아 거절당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은 문맥상으로는 시편 기자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은 대적의 에워싸임과 곤경에 있던 시편 기자가 구원함을 받아 중요하고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이 본문은 신약에서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제사장들이나 사두개인 그리고 바리새인들에게 배척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구원의 방주이며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머릿돌”은 네모로 다듬어 건물 벽의 기초를 삼기 위해 집 모퉁이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건물 벽의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두 방향으로부터 오는 건물의 무게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크고 단단한 돌이어야 했습니다. 과거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져 버림받고 멸시받았던 재료인 돌이 이제는 건축물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전격적인 반전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멸시받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겨졌으나 이제 그 상황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 23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 버려진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것은 놀라운 반전입니다. 그와 같은 반전이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여호와에 의해서 되어진 것임을 고백하는내용입니다. 대반전이 일어난 이유는 오직 여호와께서 행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눈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제까지 1인칭 단수의 시점에서 1인칭 복수의 시점으로 바뀐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시편 기자의 눈에만이 아니라 이를 목격한 다른 모든 사람이 볼 때에도 놀라운 일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 24절.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 “이 날”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놀라운 변화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여호와의 구원의 사건이 일어난 날을 가리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수행함으로 성도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종말의 그 날을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건축자들의 버린 돌과 같은 신세가 될지라도 여호와께서 행하시게 될 그 날에는 다른 날들과 달리 모든 고통과 슬픔은 사라지고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구원과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날이 성도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의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 25절.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정하신 날에 누릴 즐거움과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구원과 형통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구원과 형통을 허락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종말의 날에 완성될 구원과 형통을 소망하며 예언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해 주셔야 한다는 간곡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 26절.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는 우선적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 즉 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왕”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세워지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의 통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왕 뿐만 아니라 선지자나 제사장도 왕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임명되었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의 사역을 행했습니다. 이와 같이 왕, 선지자, 제사장 모두를 만족시키는 존재는 메시야이십니다. 그렇기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무리들에 의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로 표현되었습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적용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는 그렇기에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장차 메시야께서 도래하실 것과 그에게 복이 있을 것임을 예언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라는 말은 장차 종말의 날에 메시야의 통치 아래 있는 의인들을 향한 축복 선언이 되는 것입니다.
3) 여호와께 감사하라
- 27절.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는 여호와만이 진정한 하나님이시며 그분만이 예배의 대상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여호와의 개입하심으로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 죽음과 곤경에서 구원을 얻고 회복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은 여호와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어둠과 곤경의 날에 여호와께서 빛을 주시듯 구원을 베추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여호와는 진정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입증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드려질 제물을 가지고 와서 희생 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어둠과 곤경 가운데서 빛을 비추시며 참되고 온전한 구원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 28절.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 시편 기자는 주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주께 감사 돌릴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27절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에서 본절에서는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함으로 하나님과의 더욱 깊고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겠다는 시편 기자의 다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 29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1절의 반복입니다. 수미쌍관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적 완성도를 높이고 본 절이 본 시편의 주제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지금까지 ‘고통 중에 부르짖었더니 응답하신 하나님’(4절), ‘내 편이 되어 주신 하나님’(6, 7절), ‘나를 에워싼 원수들 중에서 나를 도우심 하나님’(10-13절), ‘죽음에서 조차 살리신 하나님’(18절), ‘건축자들의 버린 돌 같았던 자신을 들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을 삼우신 하나님’(22절)을 간증하며 찬양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다시 한 번 묵상하며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시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다시금 묵상해볼 때 도저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건축자의 버린 돌이 건물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전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놀라운 반전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2)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형통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날이 임하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그 날”은 카이로스이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그 날”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되는 날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날마다 “그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날”을 고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3) 본 시편 118편은 제1할렐시편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큰 구원을 체험한 시편 기자가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간증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게다가 이 시편을 읽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그 은혜에 동참하여 찬양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편은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구원을 체험한 모든 사람들,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은 경험이 있고 대적들에게 에워싸인 경험이 있는 사람, 죽음의 문턱에서 살리심을 받아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선포하며 살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본 시편에서 시편 기자가 경험한 “낮아짐”의 체험은 신약에서 메시야의 ‘비하’와 연결됩니다. 즉 본 시편은 그리스도와 신약의 저자들이 여러 번 인용한 시편이며, 그리스도의 메시야 사역을 잘 보여주는 메시야 예언시인 것입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과 같이 되는 메시야의 비하와 신약 교회의 초석이 되는 메시야의 승귀 및 메시야의 구원 사역으로 인한 성도의 구원과 축복을 노래하는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는 기쁨의 찬양을 부르는 노래가 된 것입니다.
적용 :
1)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께서 건축자의 버린 돌이 건물의 가장 중요한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도 그렇게 역사하실 수 있으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게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들어서 존귀하게 만드시고 중요한 일에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2) 주님이 형통하게 하시는 그 날이 바로 지금 임하게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믿음으로 열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그 순간 임하게 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나의 중심이 주님의 은혜로 그렇게 연결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3) 주님의 구원으로 인해 나 역시 주님을 찬양하며 춤을 추게 될 것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