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 4]
샤넬의 디자인 모티브들은 곳곳에 널려 있었다.
경마장에서 소년 마부에게 빌려 입은 스웨터도 그녀의 스타일로 재탄생했고, 어부들이 입은 세일러복도 디자인 모티브가 되었다. 코트에 벨트를 매는 스타일도 남자들의 스타일을 샤넬이 여성을 위해 재창조한 실용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이다. 샤넬은 자신이 만든 옷을 먼저 입어 보고 판단했으며, 완성된 옷을 자신이 입고 다녔다. 그녀 자체가 브랜드의 광고판이었다.
샤넬의 독창성은 디자인뿐 아니라 소재에서도 돋보였다.
신축성이 좋고 야들야들한 저지 천은 상류층은 절대 쓰지 않는 싸구려 옷감이었다.
하지만 샤넬은 과감히 이 옷감을 대량으로 사들여 검은색 저지 드레스를 만들고 투피스를 제작해 판매했다. 지금은 샤넬의 상징이 된 어마어마한 가격의 트위드 재킷의 소재와 양모도 이전에는 비싼 옷에는 쓰이지 않는 소재들이었다.
이 하잖고 새로운 소재에 여성들이 열광한 것은 편안함과 활동의 자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순하지만 세련된 디자인에서 오는 우아한 매력 때문이었다. 디자이너로 점점 명성을 얻어 가고 있을 때, 샤넬의 연인인 카펠은 휴양 도시인 도빌에도 매장을 열어 주었다. 단순히 그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업가적 판단으로 샤넬 스타일이 더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디 때문이었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샤넬은 파리에서와 같은 화려하고 갑갑한 옷이 아닌 휴양지에 걸맞은, 여가를 즐기기 위한 옷을 디자인했다. 세일러 복, 얇은 재킷, 마지물 스커트, 실크블라우스, 간절기 외투, 장신구 등을 만들어 상점에 진열했다. 그녀가 직접 입고 다니는 이 의상들은 반응이 매우 좋았고, 온 좋게 부유한 남작부인의 눈에 들어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친구들에게도 소개되어 샤넬의 상점은 날로 번창해갔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프랑스와 가까웠던 독일과의 관계가 험악해지고, 전선 상황이 어려워지자 샤넬은 가게를 계속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사업 감각이 있고 고급 정보를 알고 있는 카펠의 조언 덕분에 샤넬의 사업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더욱 번창했다. 카펠은 샤넬에게 철수하지 말고 그대로 기다리라고 말했고, 샤넬은 그 말에 따라 전쟁 통에 고객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가게문을 닫지 않았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파리가 안전하지 않다고 여긴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긴 노르망디 지역의 도빌로 몰려든 것이다. 남자들은 대부분 전장으로 나갔기 때문에 여성들이 대다수였고, 특히 그들은 입을 옷을 다 싸 올 여유가 없어서 옷이 별로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도빌에 문을 연 의상실은 샤넬 모드 한 곳뿐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남성 대신 활동할 일이 많아진 여성들에게 샤넬의 참신한 디자인의 옷들은 안성맞춤이었다. 세련되었으면서도 편안한 긴 저지 재킷과 슬림한 니트 스커트, 벨트를 매는 넉넉한 스웨터는 전시 상황과 딱 맞아떨어져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샤넬이 파리의 캉봉 거리로 돌아온 후에도 도빌에서 생긴 그녀의 고객들이 파리에서도 그녀를 찾아가 옷을 맞췄다.
샤넬은 전쟁이라는 위기를 딛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참고서적
세상을 바꾼 질문들, 김경민 저, 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