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꼴로 목욕을 하고 이 주일마다 이발을 한다. 목욕탕 탈의실 안에는 칸을 내서 꾸민 이발소가 있다.
목욕만 하는 날은 30분정도 걸리고 이발까지 하면 넉넉잡아 한 시간 걸린다. 정해진 요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외출을 해야 하는 날에는 목욕과 이발을 같이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깔끔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목욕탕에는 늘 새벽에 간다. 원래 일찍 일어나기도 하거니와 욕조에 새로 채운 물은 비교적 깨끗해서 좋다.
며칠 전에는 이발과 목욕을 같이 했다. 보통 이발을 하고 나서 탕으로 들어가는데 이발소 쪽을 흘끗 보니 이미 선객이 있었다. 다행히 끝나가고 있는 눈치다. 알몸으로 이발의자에 앉아 머리를 깎는 게 싫어서 옷을 벗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이발사는 머리를 털어주고 가운을 벗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알몸의 선객은 가운을 벗겨주기가 무섭게 내게로 한껏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엉거주춤 서있는 내 두 손을 덥석 맞잡으며 허리를 반으로 꺾었다.
"저, 이번에 구의원으로 입후보한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예, 예 그러시군요."
"허허 이거 벗은 몸으로 인사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는 내게 앞뒤로 빽빽하게 인쇄가 되어있는 명함을 내게 주고는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새벽에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입후보자에게 인사를 받기는 처음이다. 이십분쯤 후에 나도 이발을 끝내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입후보자는 탕 속에서 입구 쪽을 바라보며 느긋한 자세로 몸을 담그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저 친구를 어떻게 하면 내 편으로 끌어 오지? 그 생각뿐이었으리라. 정치도 싫고 정치하는 사람도 싫은 내가 탕 안에까지 들어가 그의 요리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나는 바로 샤워기를 틀고 머리를 감고 나서 증기탕으로 들어가 모래시계를 엎어 놓았다. 그러나 입후보자는 집요했다. 증기탕까지 따라 들어왔다. 그가 정치미소를 흘리며 물었다.
"사업은 잘 되시죠? 그런데 어디 사세요? 저는 저어기 S아파트에 사는데"
그 질문에 번쩍하고 떠오른 것은 '맞아 내 주민등록지가 여기가 아니지.'였다.
"아, 예. 저, 저는 일은 여기서 하지만 주민등록은 하남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구시렁대다가 나갔다. 그의 머리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샜나?
나는 다시 모래시계를 엎었다.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 후보도 여기에 글좀 올리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ㅋㅋ
이 글 밑에 다셨군요. 염치도 좋지.
일상적인 이야기를 이토록 맛깔스럽게 표현하시는 님, 최고예요
Ditto~!! ^^
ㅎㅎ 감사. 늘 맛깔스러운것은 맛도 못 보는데...
왜그러셨어요. 유권자 한 명이라도 만나려고 새벽같이 일어나신 분인디...좀 악수도 하시고 한 표 찍어준다고 하시지. 저라면 그랬을 텐데. 왜냐면 제가 좀 착하거든요.
그래도 다 듣고 나서 '저 하남에 사는디유' 하는 것 보다 낫죠. 얼마나 김 새겠어요. 수고를 덜어주는게 백번 낫지.
즐거운 외출을 방해한 죄...아주 큰죄입니다. 잘하셨어요~
발가벗고 모른 사람에게 악수라,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군요. ㅎㅎㅎㅎㅎㅎ
희한한 입후보자도 있네요.^^ 목욕탕에서도?
수선회 회장이 목욕탕에서 근일스님을 만나자 벌거벗은 채로 큰 절을 드렸다는 에피소드를 알고 있습니다. 하하...
어느 동네나 그 놈이 그놈입니다. 뽑기는 뽑아야 하겠는데 일이나 제대로 할 지 걱정입니다. 목욕탕까지 오는 걸 보면 급하기는 급한 모양인데--- 여탕에 안 가는 걸 보면 제 정신인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김새껏시유. ㅎㅎㅎ
아직 우리동네는 다행히 목욕탕까지는...ㅎㅎㅎ^^
선거 이야기 나오니 제가 괜히 찔리네요. 선거 나온 사람들 예쁘게 봐주세요. 그 중에도 좋은 사람들 많으니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찔리실게 뭐 있어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거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정치발전이 있겠지요...김샘 언급한 사람보다 더한,다양한 군상들이 나서는데..,그 놈이 그 놈이다 라기보다는, 그래도 도토리 키재기라도 해야함니다.
얼마나 궁했으면 목욕탕에서까지 그랬을까 참 딱하다는 생각이. 허지만 유권자의 아랫도리를 보면서 그리하면 유권자가 더 진솔해 질 것이라고 생각햇을까? 그런 머리로 구청장 하겠다면?? ㅎㅎ 공직자가 되려면 ...뭔가 다른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여? 참 생각하는 것들이 쫌스럽다는 느낌이~깜이 아닌 느낌이네요.
어휴,, 우찌 하면 에이스 고시원에 이득이 될 일 있으려나 머리를 팽팽 돌리시고 콩고물이나 밥이나 용돈을 구걸하실 일이징..ㅋㅋㅋ^^
정치하는 인간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