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위헌 소지”… 도입 철회 가능성
김명수 체제 마지막 대법관회의서
해당 안건 안 다뤄… 후임에 넘어가
李후보자 “개악 될 수 있다” 부정적
법원행정처도 무리한 추진 않기로
사진공동취재단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61·사법연수원 16기)가 김명수 현 대법원장(64·15기)이 추진해온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제도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부정적 의견을 피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는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판사가 피의자 등을 심문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검찰 등 수사기관이 강하게 반대해 왔다.
대법원은 형사소송규칙을 개정해 제도를 도입하려 했지만 24일 오전 김 대법원장이 주재한 임기 내 마지막 대법관 회의 안건에 개정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제도가 철회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 이균용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위헌 소지”
2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후보자는 평소 가까운 법조인 등에게 대법원의 형사소송규칙 개정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드러냈다고 한다.
먼저 국회 입법이 아닌 형사소송규칙 개정만으로 도입하는 것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어 보인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는 또 “판사 권한을 늘리는 내용인데, 권한 확대를 향한 개혁은 자칫 개악(改惡)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후보자는 또 미국 일본 등 해외 사례와 비교하며 “검찰 및 학계 등과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거쳐야지 대법원 안에서만 ‘짬짜미’식으로 추진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사법부와 수사기관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인 만큼 충분한 합의 절차를 거쳐야 법적 정당성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 2월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를 6월 1일부터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검경 등 수사기관이 “수사의 밀행성과 신속성을 해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법원 내부에서도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을 중심으로 “충분한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이 이어졌다.
법원행정처는 예상보다 거센 반발에 한발 물러섰고 검찰과 법원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여는 등 의견 수렴에 나섰다. 또 사전심문 대상을 수사기관으로 한정하는 등 절충안을 마련해 대법관 회의의 최종 결정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이 24일 주재한 마지막 대법관 회의 안건에서 빠지면서 도입 여부는 차기 대법원장 임기로 넘어갔다.
● 이균용 임명 시 철회 가능성
개정안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여러 차례 밝혔던 이 후보자가 국회 임명동의를 거쳐 대법원장에 임명될 경우 제도 도입이 철회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후보자는 23일 김 대법원장 예방에 앞서 취재진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깊게 생각 안 해봤다”며 선을 그었다.
법원행정처도 압수수색영장 남발을 제어할 방안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개정안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도 본인 임기 때 개정안을 마무리하기 위해 무리하지 말라는 뜻을 내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법원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 후보자 임명 이후 개정안 처리를 보류하고 국회 입법으로 공을 넘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장은지 기자, 장하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