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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쓴 단편소설 하나를 찾고 있는데 컴을 아무리 뒤져도 못찾겠어요 ㅠ.ㅜ
쓸모없는 건 하나 찾았네요. 역사의 유물이 된 휴대전화 홍보소설이라 재탕불가 하여 폐기할 소설...
늙어서 다시 보니 추억이 새롭네요^^ 휴대폰으로 TV도 본다는 내용이 나와요.
이런 광고 콘티와 소설을 썼던 적이 있었던가 싶네요.
애니콜이라는 휴대전화 홍보용 감안하시고 심심하면 읽어보세요.
광고 기억하시는 분 있을 거예요.
제목: S프로젝트
-오프닝-
재벌가 후계자의 약혼식이 열리는 호텔 ‘캐슬 리전트’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을 줄 알았는데 평소보다도 인적이 드물었다. 황색 가로등 사이로 보이는 녹색 건물이 마치 어두운 사막 한가운데 떠있는 외로운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초대장이 있음에도 경비원들은 출입국 심사를 하듯 사진대조까지 꼼꼼히 마친 뒤에야 나를 복도 안으로 입장시켰다. 붉은 카펫이 깔려 있는 복도 끝에서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들려왔다. 약혼식이 이미 시작된 모양이었다.
긴 복도 끝에 활짝 열려있는 출입문 안의 분위기도 내 예상과 크게 달랐다. 약혼식에 수많은 친지들과 유명인사들이 초대되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약혼식에 초대된 하객들은 겨우 50명 남짓 되었다. 초청된 인사들보다 오히려 경호원들이 더 많아 보였다. 취재진도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다. 약혼식이 열리는 것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제한된 극소수의 사람들만을 초대한 것 같았다.
초대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예비 신랑신부와 매우 가까운 사람들인 것 같았다. 겨우 50명 정도밖에 안 되는 하객 명단에 내가 끼어 있다니 영광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예비 신랑과 내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던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남발된 초대장을 한 장 받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의아스러웠다. 혹시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비신랑은 5년 전 내가 미국에서 탐정생활을 하던 시절 알고 지내던 선배였다.
예비신랑의 나이는 나보다 일곱 살이 많은 서른아홉이었다. 반면 예비신부의 나이는 서른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서른은커녕 스물다섯이나 되었을까? 얼굴이 청순해보이고, 미인이어서 나이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약혼식임에도 불구하고 신랑신부 모두 표정이 밝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몹시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은 예물교환이 있겠습니다. 최순석군은 예물을 준비해 주십시오.”
사회자의 말에 예비 신랑이 호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들고 약혼녀를 향해 다가갔다. 예비 신랑이 작은 상자를 열자 안에 들어있던 무엇인가가 반짝 빛을 발했다. 그게 뭔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빛을 반사하는 정도로 봐서 다이아몬드가 틀림없다. 아주 큰 다이아몬드반지였다.
“잠깐만요!”
예비 신랑이 반지를 성급히 꺼내려 하자 기자 몇 명이 앞으로 나아가며 잠시 포즈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예비 신랑이 동작을 멈추고 반지케이스를 기자들 앞으로 내보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회자의 설명이 뒤따랐다.
“지금 최순석군의 손에 들려있는 8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는 최순석군이 박선영양을 위해 손수 준비한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공수해온 최고급 원석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디자이너 스미스 캐롤씨에게 맡겨 가공한 것으로 ‘영혼의 눈물’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자, 최순석군은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을 박선영양에게 맹세하며 반지를 끼워주십….”
갑자기 불이 나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예비 신랑이 예비 신부 쪽으로 반지케이스를 돌리는 그 순간 실내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실내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카메라의 불빛만이 쉬지 않고 번쩍거렸다.
“그만! 그만!”
어둠 속에서 강렬한 불빛이 망막을 향해 팍팍 터지자 예비 신랑이 팔을 들어 눈을 가리며 외쳤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멈추자 예비 신랑신부를 향하고 있던 방송용 카메라의 불빛도 하객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피아노 선율사이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이 들어온 것은 약 10초쯤 지나서였다. 갑자기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자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하객들의 표정도 덩달아 환하게 밝아졌다.
“자, 다시 계속해서 식을 진행하도록 하겠….”
“앗! 반, 반지가 사라졌다!”
사회자의 말을 끊으며 예비 신랑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이 반지케이스를 들고 있는 예비 신랑의 손끝으로 쏠렸다. 정말, 반지케이스 속에서 반짝 반짝 빛나고 있어야할 다이아몬드 반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영혼의 눈물’이 잠시 정전이 된 사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경호원들이 달려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반지케이스를 살펴보고 혹시 바닥에 떨어진 건 아닌지 카펫 위를 손으로 더듬거렸다.
“어, 어떻게 하죠? 식장을 봉쇄하고 경찰을…?”
경비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예비 신랑에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소란 떨지 마세요.”
대그룹의 후계자답게 예비 신랑의 목소리는 비교적 침착했다. 하지만 눈빛만은 속일 수 없었다. 몹시 당혹스러운 빛이 역력했다.
난처하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예비 신랑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아는 척을 한답시고 바보처럼 씩 웃으며 손을 번쩍 쳐들어 보였다. 예비 신랑신부에게 쏠려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무안해진 나는 급히 들었던 손을 내리며 마치 범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쭈뼛거렸다.
예비 신랑이 손을 들어 나에게 다가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주변을 한번 둘러봄으로서 예비 신랑이 정말 나에게 신호를 보낸 것인지 확인하고 나서야 앞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나?”
“중요한 반진데, 당장 찾아야죠. 경찰에 연락하시죠?”
“그래…. 꼭 찾아야 돼. 하지만 경찰은 좀…. 세간의 이목도 있고, 구설수에 오르는 것도 그렇고…. 자네가 날 좀 도와주면 안 되겠나, 황탐정? 아니, 황변호사…?”
그렇게 해서 나는 졸지에 반지를 찾는 탐정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 준비도 없이 갑자기 무엇을 어떻게 조사한단 말인가?
하지만 답은 아주 간단했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사람들의 몸을 꼼꼼히 수색하면 누군가의 몸에서는 틀림없이 반지가 나오리라.
그러나 예비 신랑은 나에게 그런 방법을 쓰지 못하게 했다. 모두 덕망이 있는 사람들이고 예비 신랑신부를 위해 약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인데 어떤 방법으로든 몸을 뒤지는 모욕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난처했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범인을 잡고 반지를 되찾는단 말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예비 신부의 생각을 알고 싶어 신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비 신부는 아무 표정도 없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순간 내 머리에 강렬한 느낌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범인은 그렇게 단순한 도둑놈이 아니야!’
범인의 최종 목표는 어쩌면 ‘영혼의 눈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름다운 예비 신부의 눈빛을 보는 순간 강하게 일었다. 최고급 다이아몬드 ‘영혼의 눈물’이 20억 원을 호가한다지만 범인은 반지를 노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영혼의 눈물보다도 몇 배나 더 아름다운 예비 신부의 눈망울을 훔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범인은…?
“자, 여러분! 가지고 계신 휴대폰을 꺼내 이 피아노 위에 올려놔 주십시오.”
갑작스런 내 요구에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자, 한사람도 빠짐없이, 협조 부탁드립니다.”
내가 먼저 내 휴대폰을 꺼내 피아노 위에 올려놓자 잠시 망설이던 하객들이 호주머니나 핸드백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피아노 위에 차례로 늘어놨다.
피아노 위에 널려있던 휴대폰들을 가지런히 정렬해놓고 잠시 살피던 나는 세 개의 휴대폰을 골라 집어 들었다.
“이거하고 이거, 그리고 이것! 주인이 누구시죠? 앞으로 좀 나와 주시겠습니까.”
범인은 단순 절도범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스타일이 모든 것을 말해줄 터였다.
-이효리 편-
피아노 위에 있던 세 개의 휴대폰 중에 내가 제일 먼저 집어든 것은 아주 가볍고 얇은 슬라이드 슬림폰이었다. 그 휴대폰의 주인 역시 휴대폰만큼이나 날씬하고 잘빠진 아가씨였다. 어디서 한번쯤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 봤더라…? 아, 그랬다! 며칠 전 신문에 ‘천재 무용가 이효리’ 어쩌구 저쩌구, 바로 신문에서 봤던 무용수였다. 그녀는 예술에 문외한인 내가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멋진 폰이군요. 얇아도 있을 건 다 있군. 카메라 기능도 있고…. 뭐가 저장되어 있는지 내용 좀 살펴봐도 될까요?”
나는 날씬하게 잘빠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이효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왜죠?”
“누구나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비밀이 있는 법이에요….”
“그건 그렇죠. 좋습니다. 다음, 카메라처럼 생긴 이건 누구 핸드폰이죠?”
내가 다시 이효리양을 찾아 나선 것은 며칠 뒤였다.
이효리양은 검은 옷을 입은 채 연습실에서 혼자 무용연습을 하고 있었다. 모델 같은 몸매의 아름다운 여자였다.
“초청자 명단을 살펴보니 당신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더군요?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죠?”
“후훗! 신은 늘 한쪽 틈을 열어두시죠.”
나는 이미 그녀가 어떻게 경비망을 뚫고 약혼식장 안으로 들어갔는지 알고 있었다. 약혼식을 하던 호텔 2층 창문에서 침입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무용수라서 몸매가 늘씬하고 몸이 유연한 그녀는 검은 옷차림으로 호텔 2층의 난간을 타고 창문까지 걸어가서 조금 열려져 있던 창문 틈 안으로 휴대폰을 밀어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폰 기능을 이용해 창문 안을 살피다 경비원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재빨리 창문을 열었다. 그러나 창문은 3분의 1밖에 열리지 않는다. 20센티도 채 안 되는 창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몸이 늘씬하고 유연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남자나 뚱뚱한 여자는 불가능하다. 그날 거기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이효리 당신만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더 남아있다. 약혼식장을 찍은 비디오를 보면 그녀는 검은색 드레스, 즉, 파티장의 종업원복장을 입고 종업원 행세를 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종업원 복장으로 갈아입었던 것일까?
내가 그녀의 슬림폰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의 휴대폰에는 틀림없이 호텔 관계자 누군가의 지문이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녀가 침입한 호텔의 2층 복도 구석에 호텔 관계자들의 탈의실이 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관계자의 지문이 인쇄되어 있는 플라스틱 출입카드가 필요하다. 카드구멍 안에 지문이 인쇄되어 있는 출입카드를 밀어 넣어 인증이 되어야 문이 열린다.
그녀는 사전에 호텔 관계자 누군가의 출입카드를 휴대폰 카메라로 슬쩍 찍어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액정화면에 미리 찍어놓았던 그 출입카드의 지문을 띄워 카드구멍 안으로 밀어 넣어 인증을 받아 문을 열었을 것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액정이 달려 있는 슬림폰의 슬라이더는 호텔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카드만큼이나 얇으니까.
“그런데 이효리양, 당신은 왜 그런 방법으로 약혼식장에 들어갔죠? 무슨 볼일이 있어서…?”
“후훗! 꼭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하나요?”
“조사를 해보니 예비신랑인 최순석씨와 잘 아는 사이더군요. 미국에 있을 때 같은 학교에서 유학을 하셨죠?”
“그랬죠. 그 선배는 대학원 MBA과정이었고 나는 무용을 공부했죠.”
“복수를 하고 싶었나요?”
“복수요?”
“한때 둘이 사귀지 않았나요?”
“오호, 무슨 말씀을…? 우리는 그냥 같은 나라 출신의 선후배로 어울려 다니는 사이였을 뿐이에요.”
그녀는 정말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예비 신분인 박선영씨와도 아는 사인가요?”
“그건…. 조금요. 예술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죠.”
“껄끄러운 관계가 아니라면 초대해 달라고 했으면 초대해 줬을 텐데, 왜 그런 방법으로 들어갔죠?”
“그냥… 재밌잖아요. 예비 신랑신부도 초대받지 않은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재미있어하는 것 같던데요.”
“정전이 되었을 때 어디에 있었죠?”
“비디오 찍어 놓은 게 있으면 보시면 아시겠지만, 쟁반을 든 채 출입문 쪽에 가만히 서 있었어요. 혹시 저를 의심하는 건 아니겠죠? 정전이 되었던 시간이 한 10초쯤 되었나요? 그 시간에 내가 설마 쟁반을 받쳐 든 채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뚫고 나가 반지를 훔쳐가지고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죠?”
“그냥 한번 물어봤을 뿐입니다.”
“그러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정전의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그녀가 다시 몸을 풀려는 듯 다리를 벌려 스트레칭 자세를 잡으며 내게 물었다.
“글쎄요. 누군가 잠깐 바깥쪽에 있는 전기 스위치를 내렸다 올렸던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그게 왜 궁금하시죠?”
“그럼, 변호사님은 궁금하지 않으세요?”
-에릭 편-
‘영혼의 눈물’이 도난당하기 직전, 그러니까 약혼식장의 조명이 꺼지기 직전 반지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은 보석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 에릭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예비 신랑신부의 앞에 붙어 서서 카메라폰으로 ‘영혼의 눈물’을 향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는 ‘영혼의 눈물’을 사진기에 담는 것이 최종 목표였을까? 그가 찍은 것은 과연 영혼의 눈물뿐이었을까?
에릭이 ‘영혼의 눈물’에 접근한 방법은 기자행세였다. 경호원들은 영혼을 눈물을 찍어야만 되는 기자들을 제외하고 예비 신랑신부 가까이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제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에릭도 예비 신랑신부를 향해 다가가려다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가지고 있던 카메라폰을 디지털카메라로 변신시켰다.
에릭이 가지고 있던 카메라폰은 한쪽 면이 디지털카메라처럼 생겼고 뒤쪽도 폴더를 열어 돌리면 디지털카메라 액정화면으로 변했다. 어디를 보나 디지털 카메라였다. 뿐만 아니라 휴대폰 속에 내장되어 있는 여러 가지 기능들도 그 어떤 디지털카메라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내가 에릭의 스튜디오를 찾아갔을 때 에릭은 보석으로 치장한 모델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도 스냅사진을 약혼식장에서 사용했던 그 카메라폰으로 찍고 있었다.
“기자를 가장해 보석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 바로 당신이더군요?”
내가 질문을 던졌다.
“찍을 수 있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그는 모델들을 향해 계속 셔터를 눌러대며 태연히 대답했다. 마치 미리 준비해 놓고 있던 대답 같이 여겨졌다.
나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볼 수는 있는데 가질 수는 없는 것, 그것만큼 큰 고통도 없죠. 사랑이 그렇듯…. 에릭씨는 안 그런가요?”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가지고 싶은 것 모두를 가질 수 있다면 이렇게 열심히 셔터를 누를 필요가 없겠죠.”
“정전이 되었을 때 어디에 있었죠.”
“카메라폰을 들고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불이 들어왔을 때는요?”
“가만히 서있다 불이 들어오자 다른 하객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예비 신랑신부 중에 누구의 초대를 받았죠?”
“예전에 박선영씨를 모델로 사진을 한번 찍은 적이 있었죠. 그뿐….”
“그런데도 초대를 받았단 말입니까? 이상하군요?”
하긴, 나 같은 사람도 초대를 받았는데…. 나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영혼의 눈물보다도 예비 신부 박선영씨의 눈망울이 더 아름답던데 주얼리 사진작가의 입장에서 어떤 것이 더 탐나던가요…?”
“인간은 곧 늙기 마련이죠. 영원한 것은 보석과 사진뿐….”
-권상우 편-
늦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기압의 영향인지 피아노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꽤 구슬픈 곡이었다.
내가 우산을 짚으며 등 뒤로 다가가자 울려 퍼지던 피아노 소리가 갑자기 뚝 멈췄다. 피아니스트는 몹시 민감한 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시죠?”
권상우가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아, 영혼의 눈물 때문에….”
권상우는 예비 신랑인 최순석의 이종사촌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재벌가 사람들로, 재벌가끼리 결혼한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하지만 그는 재벌가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예비 신랑인 최순석과 예비 신부인 박선영이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듯 박선영과 권상우도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변호사님 생각에는 내가 범인 같은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예술을 위해 재벌 후계자 자리를 마다한 사람이 겨우 20억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쳤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다른 이유 때문이라면 그도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노린 것이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박선영이었다면….
“어둠 속에서도 태연하게 연주를 했다… 근사한 알리바이더군요.”
나는 농담하듯이 말을 꺼냈다.
“진실은 어둠속에서도 들리는 법이죠.”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건반 하나씩을 띵띵 누르며 대답했다.
“현장에서 찍은 비디오를 보니 악보 앞에 액정이 가로로 된 휴대폰이 놓여 있던데…?”
“액정이 가로로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액정이 돌아가는 폰이죠.”
권상우가 피아노 앞에 놓여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어 세로 액정을 가로로 돌려보였다.
“그때, 휴대폰으로 뭘 했죠?”
“피아노를 치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 제 연주회 녹화방송이 있었거든요.”
“아,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휴대폰이 있나요? 앞으로 그런 폰이 나오리란 예상은 했는데 그런 폰이 벌써 사용되고 있는 줄은 몰랐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약혼식장에서 예정에 없던 곡을 연주하셨다죠…?”
“휴대폰으로 제 연주회 장면을 보다보니 연주회 당시의 감흥이 떠올라, 방송 연주에 맞춰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고 싶더군요.”
“그러니까,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곡과 같은 곡을 연주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혹시, 그날…. 피아노를 치며 마이크를 사용했었나요?”
“마이크라…. 피아노를 치며 축가를 한곡 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마이크를 설치해 놓기는 했었지만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반지를 잃어버려 약혼식이 연기되는 바람에….”
-엔딩 편-
과연 ‘영혼의 눈물’을 훔친 범인은 누구일까?
어찌 보면 모두가 범인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모두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너무 유명한 보석이라서 국내에서는 팔아먹지도 못할 영혼의 눈물.
나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약혼식장에서 찍은 영상과 사진을 하나씩 하나씩 반복해 꼼꼼히 살폈다.
“아니, 이게 뭐야!”
사진을 확대해 들여다보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효리가 손으로 바치고 있는 쟁반 위에 놓여 있는 술잔 속에서 뭔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유리잔이 반사시키는 그런 빛하고는 강도가 달랐다. 너무나 선명하고 영롱했다. 틀림없이 ‘영혼의 눈물’이었다.
“범인은 바로 이효리였군! 그런데 어떻게 훔쳤지. 그녀의 말대로, 정전이 된 잠깐 사이 반지를 훔쳐 제자리로 돌아오기는 불가능했을 텐데 말야.”
나는 잠시 뒤 피아니스트 권상우의 피아노 위에 술잔이 하나 놓여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그 술잔 속에서도 분명 뭔가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전이 되었다 불이 들어오고 나서 얼마 있다 이효리가 그 잔을 쟁반에 올려놓는 모습이 비디오카메라에 찍혀 있었다.
“그래! 둘이 공범이었군! 권상우가 훔쳐서 술잔 속에 넣어놓은 걸 이효리가 컵 채 밖으로 빼돌린 거였어. 피아노 소리는 DMB폰에서 흘러나온 연주였고. 피아노 위에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뭔가 이상했다. 권상우가 그 잠깐 사이 보석을 훔쳐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황변호사님! 이걸 보십시오.”
사무장이 서류 한 장을 들고 사무실로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이효리, 권상우, 에릭, 세 사람이 쓰고 있는 휴대폰이 같은 대리점에서 한 날 한 시에 판매된 것이었습니다.”
“뭐야! 그럼 셋이 모두 공범이란 말입니까!”
“예. 그렇다고 봐야겠죠.”
“세 사람 지금 어딨습니까?”
“공항에 있습니다.”
나는 급히 공항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이미 비행기에 오른 뒤였다. 심증은 있었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들의 출국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나는 급히 비행기표를 끊어 세 사람을 뒤따랐다. 이탈리아에 하루 정도 늦게 도착한 나는 대사관을 통해 세 사람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하루 동안의 수소문 끝에 나는 겨우 그들이 묶고 있는 베네치아의 호텔을 찾아냈다.
세 사람이 같이 여행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자 내 머리 속에는 약혼식장에서의 상황이 영화처럼 이어졌다. 주얼리 사진작가 에릭이 ‘영혼의 눈물’을 사진 찍는 척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조명스위치를 내려 암흑이 되었고 그 틈에 영혼의 눈물을 훔쳐낸 에릭이 피아니스트 권상우에게 반지를 넘겼다. 권상우가 피아노 위에 있던 술잔 속에 반지를 넣어두자 종업원으로 변장한 이효리가 지나가며 술잔을 수거해 밖으로 빼낸 것이었다.
나는 수사를 의뢰한 예비 신랑 최순석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범인을 알아냈습니다.”
“그게 누구던가?”
최선배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에릭, 권상우, 이효리가 모두 공범입니다.”
“공모자가 그 셋뿐이던가?”
“예?”
“아, 아니야….”
“지금 베네치아에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인터폴에 연락할까요?”
“됐어. 그 약혼, 그만 두기로 했네. 그 반지는 이제 아무 의미도 없으니 그냥 돌아와.”
“예?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전화가 끊겨있었다.
내가 다시 전화를 걸려는 순간 세 사람이 호텔에서 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텔을 나선 세 사람은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나는 조금 떨어져서 조심스럽게 세 사람을 미행했다.
세 사람은 선착장에 멈춰서 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곧 배 한척이 세 사람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헉!”
배 위를 쳐다보던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예비 신부 박선영이 배의 난간에 버티고 서서 세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배가 멈추자마자 뛰어내린 박선영이 이효리의 품으로 달려들어 안겼다. 한 눈에 보기에도 네 사람은 아주 친한 친구사이였다. 그렇다면… 넷이 모두 공범?
‘그럼 어둠 속에서 반지케이스 속의 반지를 훔친 사람이 에릭이 아니라 바로 약혼 당사자인 박선영이었단 말인가? 처음에 박선영이 훔쳐서 에릭에게 건네주고 에릭이 다시….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가문끼리의 결혼으로 이어질 자신의 약혼식을 막기 위해 스스로….’
나는 천천히 걸어서 네 사람에게 다가갔다. 네 사람은 나를 발견하고도 별로 놀라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이제야 한자리에 다 모였군요.”
나는 태연한 척 네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잠시 뒤 이효리가 나를 향해 걸어오더니 나에게 뭔가를 툭 던졌다. 나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고 들여다봤다.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 ‘영혼의 눈물’이었다.
“누가 이긴 게임이죠?”
이효리가 나에게 물었다.
“글쎄요? 이렇게 되면 사랑이 이긴 셈인가?”
그 말을 듣고 난 이효리가 미소를 짓더니 막 떠나려고 하는 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배에 올라 있었다.
“잠깐만요! 약혼식장 불은 누가 끈 것이죠? 공범이 한명 더 있어야 하는데…?”
그 말에 배에 오르던 이효리가 뒤를 돌아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걸 아직도 모르세요? 그건 최순석 선배가 약혼녀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그랬던 거예요! 약혼녀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테스트해보고 만약 사랑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요.”
그 말을 듣고 난 나는 ‘영혼의 눈물’을 손에 든 채 아주 오랫동안 우두거니 서 있어야 했다.
‘최순석 선배가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나를 약혼식에 초대한 이유가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처리를 맡기기 위해서였던 거군. 그렇다면 결국 모든 걸 내가 마무리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잠시 뒤 주인 없는 약혼반지 ‘영혼의 눈물’을 베네치아 수로 속에 집어 던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때가 되면 다시 세상에 나타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손가락에 끼워지길 간절히 기원하며….
-끝-
첫댓글 가증스럽죠^^ 지금 썼다면 그 반지 내 손가락에 꼭 끼우고 바람 같이 사라졌을 텐데...여기서 나로 표현되는 광고 속 탐정이 황정민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황정민은 이미지가 낭만파라 반지를 정말 버렸을지도...^^ (저 등업되었네요^^ 기념으로 잡담을...)
아.....예전에 휴대폰 CF 찍었던....그거로군요...^0^ 이렇게 보니까 또 새롭네요.
와 신기하네요ㅋ
까르페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