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
김명인
죽방에 갇히면서도 은근슬쩍 수작 건네는
지족 햇살들, 하오의 허리춤 잡고
비벼대는 물비늘의 육감이며 음탕한 촉수까지
저릿한 욕정 자아올리는 그 바다에
못 가본지 오래되었다, 거기서 나고 자란
나문재는 여전히 뿌리로나 건들거리는 거지
묻힌 것들을 파헤치는 발굴은
언제나 남쪽에서 벌어진다지만
다 파내고 나서도 여전한 유구의 편애에
발바닥은 곪고 곪았다, 그러니
하루 종일 놀다 가려는 햇살의 등 밀어내며
방축에서 물미로 지우는 해안선에는
어둑하게 해송들 늘어서 있어야 한다
부러진 칼자루 감춘 채
앵강으로 벋는 마음은 뱃고동보다 짙은 해무
장대 끝에 물고기 대신 까마귀를 매달아
우짖게 하는 길 따라가본 사람은 안다, 닿지 않을 듯
어느새 지나쳐버리는 지족 이정(里程)을
-시집 『여행자 나무』(문학과지성사, 2013)
..................................................................................................
몇 번이나 갔을까?
지족엘
남쪽으로 가는 길은
그냥 좋고 좋았다
그 풍경이....
영산휴게소에만 닿아도
마음은 벌써 삼천포를 빠졌었지
면사무소 건너편에서 멸치쌈밥을 소주 몇 잔 곁들여 먹고는
마실 구경에 나섰다가
방금 전 낚시로 건져올려 막 썰어낸 도다리 회를
사람들 몇이서 먹고 가라고 했다
배도 부르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싫어서 그냥 갈려는데
자꾸만 오라고 했다
그 마음을 뿌리칠 수가 없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던가
그렇게 싱싱한 회는 처음이었다
거기서도 소주 몇 잔은 기본으로 깔았고
꿈틀대는 몇 점 얻어먹고는 일어섰는데
바닥의 나무 가시가 여기 저기 박혀버렸다
대충 가시를 털어냈지만
손바닥에 박혀버린 가시는 아려서 빼내야만 했다
궁리를 하다가 동네 작은 문방구를 찾아냈다
할머니가 계셨다
바늘이 있느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오래전 내 할머니처럼
앉아서 손 내밀어보라고 하셨다
감사해서 야쿠르트 몇 개를 드렸던가
연필 몇 자루를 사줬던가
아무튼 가물거리지만
지족마을의 따스함을 등뒤로 돌려놓고
남해로 향했던 작년 어느 봄날의 추억을
이 시를 읽으면서 다시 꺼내본다
다음에는
나문재를 가르쳐 준
아무데나 털썩 앉지마라는 잔소리대마왕과
앵강만에 빠져보고 싶다.
첫댓글 남해 지족항
가서 보고 싶습니다.
뱃고동보다 더 짙은 해무 속 해송처럼 요지부동하고 싶습니다.
온몸에은분을뒤집어쓰고
한마리멸치인양죽방에문득
갇혀버리고싶었던어느봄날
봄도다리
그달달한봄맛을잊지못하네
낮술은불콰해지고
물살은한사코그물을비켜흐르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