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진 곳만 가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곳, 별로 잘 알려진 곳을 가는 것도 의외의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이번 만주여행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만주여행을 앞두고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운영비 문제로 너무 힘들었던 데다가 이것저것 스트레스 받는 것도 많아서 일단 머리도 식힐겸 용정과 훈춘을 들를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상황봐서 시간이 된다면 하얼빈까지 그냥 다녀오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갔던 여행이 의외로 길어질줄은 나도 몰랐었다.
하얼빈은 이번 겨울에 센터로 오는 단기봉사자들이 ‘리더십교육’이란 이름으로 역사탐방 및 관광을 하게 되는데 그때 핵심적으로 보게될 곳이었다. 이곳 연변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곳이 백두산이다. 그 외에는 일송적이 있다는 용정, 북한을 바라볼수 있는 도문대교, 러시아 중국 북한의 삼각을 모두 볼 수 있는 방천삼각지가 있는 훈춘 정도가 알려진 상태인데 나 개인적으로는 안중근의사의의거가있었던하얼빈을더보고싶었다. 하얼빈을 가려면 원래는 빙등제가 시작되는 겨울철에 가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어차피 단기봉사자들이 오게 되면 그때 같이 가면 비용상으로 절감이 되기 때문에 하얼빈은 지금 당장 갈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는 머리도 복잡하고 해서 그냥 용정 희망원을 방문해 그들과 협력관계를 논의하고 훈춘에 가서 그곳의 부동산가격과 거리를 좀 볼 생각이었다.
센터를 나서서 장거리버스가 다니는 연길역으로 나갔다. 거기에 가서 용정이나 훈춘중에서 먼저 있는 차를 타려고 마음먹었다.
조그만 봉고차 같은 것에 훈춘이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그것은 그 봉고차가 훈춘까지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봉고차 안에는 대략 10명 정도가 앉아 있었는데 내가 다가서자 버스 안내양 역할을 하는 사내가 내가 와서 뭐라 뭐라 한다. 난 그냥 ‘팅부동’하고서는 조금 생각하다가 그냥 훌쩍 훈춘으로 가기로 했다. 훈춘은 러시아와 가까운 거리로 북한이 개방되면 큰 발전이 예상되는 지역이었다. 나는 이곳이 장기적으로 발전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훈춘의 부동산 동향을 조금 보고 싶었고 거리를 잘 살펴본 후 발전가능성을 엿보고 싶었다. 중국에서 부동산을 산다면 이곳 훈춘이나 단둥 정도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훈춘행 버스는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20위안(한화 1500원)정도였는데 훈춘의 버스터미널까지 직행으로 가는 차였다. 훈춘은 기차가 없는 도시다. 기차선은 있지만 실제로는 운행하지 않고 버스만 다니는 상황이다. 기차는 훈춘앞에 있는 도문까지만 가고 훈춘은 소외된 곳이다. 중국의 최 동측이며 러시아의 접경지라서 기차가 들어왔을 경우 다시 나갈 곳이 없는 모양새라서 그런 모양이다.
2007년 10월 10일 아침 11시훈춘행버스로여행은시작됬다.
훈춘행 버스길은 너무 아름다웠다. 옛날 군산과 전주 사이의 길이 너무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었는데 훈춘행 버스길도 그에 못지 않게 아름다웠다. 길가에 높게 줄서 있는 나무들과 길 우편에 보이는 도문강(두만강)이 그림 같은 경치를 발현했다. 경치만 좋은 것이 아니라 그 경치가운데 있는 의미도 남달랐다. 도문강 우편에는 바로 북한이었다. 그 북한의 산천을 그대로 보면서 오는 길은 참 감회가 새로웠다. 이 북한을 보는 것 만으로도 이 길은 한번 올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훈춘은 2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중간중간에 도로공사를 하는 통에 조금 늦어졌는데 앞으로 도로가 완성된다면 1시간 반이면 올 수 있단다.
훈춘버스터미널은 보잘 것 없었다. 버스터미널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의 고속버스터미널처럼 많은 차량들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버스표 판매소만 있고 버스는 길거리의 여기저기 흩어져서 버스앞에 간판을 붙인채로 사람들을 모집하는 모습이었다. 이 버스들이 정식으로 인가를 받고 가는 버스인지 아니면 그냥 버스주인이 임의로 운행하는것인지 구별할 수는 없었다. 훈춘에서 나는 먼저 거리를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연길지도에는 훈춘시내 지도까지 같이 나와있었는데 거리가 크지 않기에 지도만 보고 거리를 조금 걷다보면 모든 거리를 다 걸을 수 있게 된다. 약 3-4시간을 걸으면 훈춘시내는 다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첫날 훈춘을 속속들이 알겠다는 욕심에 8시간 가량을 걸어다녔다. 내가 신었던 신발은 스니커즈 가죽이었는데 조금 바닥이 딱딱해서 바닥이 아팠지만 그냥 버티고 걸었다. 신발이 새것인데 버리고 다른걸 사자니 아까웠고 그렇다고 신발을 들고 여행을 할 수는 없었기 떄문이다.
훈춘시내는 연길과 마찬가지로 한글간판이 병행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를 파악하기는 쉬웠다. 연변지역(연길, 훈춘, 용정, 도문, 왕청, 돈화)은 간판에 한글을 먼저 쓰도록 되어있다. 그것인 이곳이 조선족 자치주이므로 중국정부에서 소수족 우대책에 의해 그렇게 방침을 정해놓은 것이다. 덕분에 연변지역을 여행하는 한국사람들은 뭘 사거나 파악할 때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향후 한국과 연변지역에 큰 메리트가 될 수 있는 조건이다.
내가 이곳 연변을 좋게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이 언어가 통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처음 중국에 갔을때는 2000년도 상하이로 갔던 것이었다. 그때 상하이에서는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고 영어도 통하지 않아 통역이 없을 경우 어떤 것도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 연변에서는 통역없이도 그냥 혼자다니고 심지어는 비즈니스미팅까지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므로 내가 일을 처리하는데 엄청나게 효율적일 수 있었다. 통역이 언제나 따라가야만 일이 된다면 너무 갑갑해서 일을 내 뜻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튼 훈춘시내 파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첫날 거리를 걷다가 지난번 아리랑 단체를 방문했을 때 훈춘시내의 오리집을 갔던 기억이 났다. 그 오리집 맛이 너무 기억이 남아서 다시 한번 가보았더니 1인분은 팔지 않는다고 하여 그 옆의 동방불고기에 가서 2인분을 구워먹었다. 동방불고기 맛은 연길이 훈춘보다 더 나았던 것 같다. 다만 가격은 훈춘이 훨씬 쌌다. 1인분이 15원 정도인데 연길에서는 25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훈춘 시내는 연길보다더 더 값이 쌌다. 거리도 깨끗해서 향후 이곳에서 아파트나 부동산을 샀을 때 어떤 결과가 날 것인가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나를 실망시키는 점이 있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자 주거지 부근에서 엄청난 매연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거리가 모두 그 매연으로 덮일 정도였다. 각 집들에서 석탄을 때기 때문에 그 매연이 고스란히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흡사 3월의 강력한 황사바람이 불었을때처럼 거리는 숨쉬기도 힘들정도로 매연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곳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다녔지만 나는 이런 매연속에서는 조금도 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매연이 심하다면 이곳의 부동산을 사는 것은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미래에는 환경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조건이 될터인데 이런 매연은 분명 훈춘의 부동산 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나는 조금 실망스런 모습으로 훈춘시내를 계속 걸었다. 거리의 가로수와 보도블럭은 생각보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차량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매연만 없다면 정말 좋은 여건이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갈지 생각하지 시작했다.
‘그냥 원래 계획했던대로 용정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하얼빈이나 다른 곳으로 갈것인가?’
일단 버스터미널 앞으로 가 보기로 했다. 저녁 7시정도였는데이곳에서는이미어두워져서한국에서는 10시 정도되는 느낌이었다. (중국에 와서 느낀것인데 중국에서는 아침일찍 일어나게 된다. 이게 갑자기 부지런해져서 그런게 아니라 이곳에서는 해가 일찍뜨고 일찍지기 때문에 햇볕이 내리쬐는 시각이 아침 6시부터시작되므로눈이빨리떠지는것이다.)
버스는 한대 있었는데 연길이나 다른 곳으로 가는 버스는 아니고 도문에 가는 버스란다. 나는 그냥 돌아서서 훈춘에서 잠을 자고 연길이나 용정으로 갈 생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조금 가다 생각해보니 ‘도문이라구? 그렇다면 도문도 한번 가보면 되지뭐.. 어차피 내가 지금 당장 급할일도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급히 발걸음을 되돌려 버스터미널로 돌아와보니 아뿔싸! 그 사이에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그 버스가 막차로 더 이상 도문이나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는 없단다. 그냥 무허가 택시를 타고 도문이나 다른 도시로 갈 수는 있었는데 100위안정도를 내야 하고 또 위험성도 조금 있어서 나는 그냥 그날 하루 편히 쉬고 다음날 도문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여행을 가장 저렴하게 할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찜질방이다. 중국에도 한국처럼 사우나와 찜질방이 발달되어 있어서 그곳에서 잠을 자면 충분히 쉴 수 있었다. 비용도 엄청저렴할뿐만 아니라 여행에서 쌓인 피로가 말끔히 없어지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나게 된다. 나는 중국여행자들의 경우 굳이 비싼 호텔에서 잘 것이 아니라 찜질방을 이용해서 한번 여행을 해볼것을 추천한다. 좋은 찜질방은 한국 못지않은 시설을 자랑할뿐만 아니라 아침식사, 심지어는 세탁서비스까지 해주므로 가벼운 홀로 여행자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나는 첫날밤을 훈춘의 찜질방에서 보냈다.
다음날 개운하게 깨어났다. 아침에 도문에 가서 도문시내를 조금 본 후에 하얼빈으로 갈 예정이었다. 어떻게 갈지는 도문에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는 다는 생각이었다.
10월 11일 아침 11시나는도문으로출발했다. 도문까지는 멀지 않아서 불과 1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도문에 도착한 후 시내를 조금 걸어다니자 별로 볼 것이 없었다. 도문다리의 경우는 볼만한 것이었지만 지난번 오픈식때 한번 와봤었기에 이번에 또 가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냥 도문시내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내버스를 탔다. 시내버스를 타고 한바퀴를 돌아도 시내가 좁기 때문에 20분이면 시내전체를 완주하게 된다. 그러면 대략 시내가 어떻게 구성되어있으며 어느정도 규모인지가 대략적으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번에 중국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또 한가지 노하우는 시내버스를 관광할 때 이용하는 것이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경우는 버스 한번 타면 종점에서 종점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지루하고 힘들지만 중국의 소도시들의 경우는 버스들이 계속 순환할뿐아니라 한번 순환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몇십분 걸리지 않기 때문에 거리를 한번에 조망하고 느끼기에 더할나위없는 좋은 방법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물론 거리를 직접 두발로 다 걸어다니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너무 체력적으로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 짧은 시간에 관광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다. 이에 반해서 시내버스로 한바퀴 도는 방법은 시간이 적게 걸리므로 도시를 느끼는데 좋은 방법이다.
도문시내는 별로 볼것이 없는 작은 도시였다. 그래서 그냥 빨리 다음도시로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버스터미널에 왔다. 도문에서 어디를 갈까 생각중이었는데 도문에서 하얼빈까지는 차가 있기는 하지만 저녁때 출발이고 너무 오랜 시간 버스를 타기 때문에 별로 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 보다는 지금처럼 도시에서 도시로 조금씩 움직이면서 다 보는 것이 제일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한번에 하얼빈가는 차를 타기보다는 중간중간에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잘시간이 되면 찜질방에서 자고..
그래서 결정한 것이 다음도시인 왕청으로 가는 것이었다. 왕청까지는 1시간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버스가 수시로 있었다. 왕청은 어떤 곳인지 몰라서 중국지도를 하나 샀다. (이 지도를 나는 잘 써먹었는데 아깝게도 하얼빈의 정우지애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왕청은 도문보다더 더 작은 도시였다. 그러나 이런 작은 도시에도 대형 찜질방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숙박을 저렴하게 편하게 찜질방에서 할 수 있었다.
왕청에는 11일 저녁 4시에도착했는데거리는조금색달랐다. 시내에 다니는 버스가 봉고차처럼 생긴 합승버스가 있었는데 이곳 왕청에서만 운행을 했다. 버스가격에 1위안이었고 원하는 곳은 편하게 데려다 주었다. 왕청 거리는 단순한 모습이다. 큰 직선의 도로가 하나 있고 그 주변에 많은 상가들이 모여있는 옛날 시가지의 모습이므로 이런식의 순환택시가 운행할 수 있는 것이다. 버스와 택시의 중간형태인 왕청의 택시는 내게 중국의 다양함과 지역별로 차이가 있음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이날 거리를 걷다가 피씨방에 가서 왕청 이후에 어느 도시를 갈 것인지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다 좋은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목단강의 아름다음과 경백호의 우아함을 말하는 글이었다. ‘목단강이라..’
나는 지금껏 목단강은 그냥 강이름인줄 알았는데 강이름을 딴 큰 도시였다. 인구가 75만명이나 되는 도시로 내가 거주하고 있는 연길의 4배가 넘는 규모를 가진 도시였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그저 중국 동북부 여행하면 백두산, 연변, 하얼빈 정도만 생각했지 목단강이나 경백호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 중국에서는 경백호와 목단강을 더 중시하는 여행지로 친다.
인터넷을 보다가 목단강을 여행했던 한 문학가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 글을 보자 나도 그 사람과 같은 경로를 걸으며 하얼빈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중간에 경백호와 동경성을 들르고 싶은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경백호는 아름다운 폭포가 있는 동북아의 유명한 호수로 백두산이 남성적이라면 경백호는 여성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꼭 가봐야할 명소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동경성은 과거 국사 교과서에서 본적이 있던 ‘발해의 수도’로서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래된 도시였고 발해 유적지가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의의를 갖게 되는 명소였다.
나는 고민했다. 여기서 이대로 그냥 목단강까지만 갈것인가? 아니면 동경성과 경백호를 다 보고 갈 것인가? 나는 고민끝에 이번엔 그냥 목단강까지 직행을 하고 동경성과 경백호는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생각했다.
경백호나 동경성은 교통편이 불편해서 왕청에서 그곳까지 가는 직행차는 없을 뿐아니라 그야말로 시내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야 하므로 이동에 불편함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목단강 도착후에 더 북쪽으로 가고픈 생각이 어렴풋이 있었기 때문에 경백호를 생략하고 말았다. 목단강 더 북쪽에 있는 도시는 ‘자무시’라고 하는 도시로 시베리아와 가깝게 있는 목단강에서 5시간 정도 걸리는 도시이다. 이곳 이상으로 가게 되면 이제부터는 여행이라기보다는 ‘탐험’의 개념을 띄게 될 정도로 이제는 오지로 접어든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번에 온 김에 갈수 있는 한 최대한 오지까지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목단강으로 직행하고 경백호와 동경성은 생략하기로 하였다.
아마도 왕청이 아닌 대도시에서 출발하게 되었다면 동경성과 경백호를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청현에서 출발하였기에 버스가 마땅치 않아서 그냥 목단강 가는 버스를 타고 말았다. 10월 12일 아침7시20분차로 목단강으로 출발하였다. 기차를 타고 가려면 아침 5시에일어나야했는데그러면피로가쌓일것같아서충분히수면을취하고버스로가기로하였다. 기차를 타고 싶었던 이유는 이 기차가 그 유명한 만주국에서 강제로 조선사람들을 구인해서 만들었다는 만주국철도회사 즉, 만철인 것이다. 만철을 한번 타보는 것은 내게도 의미있는 경험인 것이다. 목단강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한국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도시이기에 나는 작은 도시라고 생각했었는데 인구가 125만이나 되는 우리나라의 대구 정도되는 도시였다. 역 앞에는 대형 쇼핑센터와 높은 빌딩들이 늘어서 있어서 중국이란 나라의 광활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외곽의 도시들도 이렇게 발전했다니 참 큰 발전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발전적인 모습의 중국을 보며 이런 광활한 중국이 계속 이런 식으로 발전해 나간다면 얼마나 커질지 미래에 대해 두려움마저 느끼게 되었다.
중국은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목단강에서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만 체류했다. 도착한 그날 거리를 조금 보다가 7시 출발하는 하얼빈행 열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하얼빈행 도로를 아주 깨끗하고 좋아서 불과 4시간만에 하얼빈까지 도착하였다. 12일 10시 30분에 하얼빈에 도착했는데 나는 그날 도문과 하얼빈까지 10시간 넘게 버스 여행을 한 것이다.
하얼빈에서도 그냥 찜질방에 가서 자려고 했는데 밤이 되니 너무 추워서 빨리 들어가려고 아무 찜질방이나 찾아가다가 그만 바가지를 쓰고 말았다. 다른 지역에서는 20원 정도 하던 찜질방을 이곳에서는 150원 이나 주고 만 것이다. 불필요한 좋은 가운과 각종 수건들을 사고 말았다.
그래도 하얼빈은 한번쯤은 올만한 도시였다. 하얼빈은 큰 도시로 인구가 250만 정도되지만 주변의 작은 농촌들까지 모두 합칠 경우 약 750만이 주목하는 대도시인 것이다. 거리는 밝고 깨끗했으며 생각보다 많은 볼거리들이 있었다.
다행이 인터넷에는 하얼빈에 대한 많은 좋은 정보가 나와있어서 나는 하얼빈에 대해 쉽게 갈곳을 정할 수 있었다.
내가 가려고 마음먹은 곳은 다음과 같다. 중앙대가, 조린지애, 정우지애, 731부대, 소피아성당, 가가린거리, 러시아 거리 등이다. 이 외에 조금 먼 곳으로 가면 야부리 스키장, 원묘(공자묘) 등등 갈만한 곳들이 많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조금 시간이 많이 걸렸으므로 나는 최대한 이곳에서 많이 보고 가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단 이곳에서 피씨방을 찾는데 주력했다. 피씨방을 찾아야 이곳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지 그냥 마구잡이로 다니기에는 너무 큰 도시이기 때문이다. 왕청, 도문, 훈춘 등 작은 도시들만 보다가 이렇게 큰 도시를 보다보니 거리를 걷는데도 다소 착오가 있었다. 작은 도시들의 경우는 지도만 보고 걸어다니다보면 도시를 다 걸을 수있어 참 좋은데 하얼빈 같은 큰 도시에서 걷다가는 엄청나게 걸어도 길이 가 끝나지 않아서 당황하는 일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13일 오전, 찜질방에서 깨어난 뒤 피씨방에 가서 하얼빈 관련 정보를 찾고 가장 볼만하다는 중앙대가를 가기로 했다. 그리고 중앙대가에서 조린공원과 정우지애가 가까운 거리이기에 그곳을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중앙대가는 듣던대로 볼만한 곳이었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놓은 이 보행도로는 도로 좌우측에 쇼핑센터와 음식점, 상가 등이 늘어서 있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보행하고 있었고 도로의 끝에는 ______ 강이 보여서 저녁에는 강에서 비춰주는 불꽃놀이와 조명쇼를 볼 수 있었다. 그 도로끝에는 월마트 등과 같은 대형 쇼핑센터가 있어서 주변 도시의 사람들까지도 이곳으로 쇼핑하러 올 수 있도록 편리한 시설이 다 갖춰져 있었다.
중앙대가에는 또한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이 있었다. 첫날 나는 이곳에서 그냥 한국입맛에 맞는 한국음식점을 가고 말았는데 충분히 알았다면 더 좋은 러시아 음식점들을 갔을 것이다.
중앙대가의 경우 걷기에는 딱 적당한 거리였지만 중앙대가에서 조린공원까지는 생각보다 멀었다. 그리고 조린공원에서 정우공원까지 이어지는 정우지애는 정말로 먼 거리였다. 나는 이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착각으로 하고 걸어서 다니려다가 그만 지쳐버리고 말았다. 왕청에서 신발을 새 운동화로 바꿨기 다행이지 그냥 그대로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면 발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정우지애는 볼만한 거리였다. 이 거리는 오래된 거리로 하얼빈의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제시대 만들어진 건물들이 그냥 남아있어서 아주 오래된 거리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났다. 정우지애 좌우로 오래된 건물들과 오래된 사람들이 계속 보여지는 가운데 회족들이 모여사는 이슬람 성당도 보였다.
그리고 정우지애 끝에는 정우공원이 있었는데 이 공원은 중국 인민영웅인 조정우를추모하기위한공원이었다. 이 공원 앞에는 우리나라 황학동과 같은 오래된 고물들을 내다 파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그 고물들이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있어서 재미를 주었다. 길에서 버린 듯한 볼펜 껍데기까지 판매한다고 나와있어서 우리나라의 고물상의 물건 같으면 아주 신제품처럼 보일 정도였다.
중국의 빈민들의 삶이 그대로 나타나는 거리였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 같이 나도 이런 모습들을 보며 조금은 흥미를 조금은 충격을 받았다.
하얼빈에서도 버스를 타고 다니며 시내를 익히려고 마음먹었다. 시내버스를 타다보니 하얼빈의 시내가 한눈에 느껴졌는데 거리 정비나 도로망이 생각보다 잘 되어 있었고 규모가 큰 도시였다. 나는 하얼빈이 도대체 이렇게 커진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천진이나 상하이의 경우는 무역 등으로 거래처가 많이 있었기에 커질 수 있었고 심천이나 광주, 항주 등도 홍콩, 대만 등과 연결된 무역처가 있었기에 도시가 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하얼빈은 중국 북부 내륙으로 완전히 들어와서 무역이나 공업등이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아 보이는데도 이렇게 크고 발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런 내륙의 변방도시들까지 이렇게 발전하게 되었다면 중국의 나머지 수많은 도시들도 다 이 정도는 발전했을 터인데 너무나도 많은 발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진 셈이다.
나는 연길에 처음 을 때 연길 도로가의 보도 블럭이 깨끗하게 정비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중국의 소외된 작은 도시의 보도 블럭도 이렇게 깨끗하게 정비되어있다면 중국은 이미 어느정도 성장궤도에 들어섰단 말인데 그렇다면 향후 20년간 중국의 발전은 우리나라의 80년대의 발전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다. 그 이전과 이후에 우리나라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달랐던 것처럼 중국도 우리와 동일하게 그런 발전과정을 겪을 것이다.
중국이 향후 세계경제를 지배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는 이미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앞으로 더욱더 발전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이 이렇게 발전할 것이라고 보는 또 한가지 근거는 ‘교육열’이다. 중국은 과거 산아제한으로 인해서 각 가정에 자녀가 1명뿐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조금 버릇없이 자라는 경향은 있지만 부모들의 교육열은 우리나라의 경우를 뺨친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과거 자신들을 희생해서 자녀들이 잘되도록 키워냈다면 지금 중국의 학부모들이 그런 생각으로 자녀교육을 한다. 그저 자신은 이제 자녀가 잘되는 것을 보는 것이 최고 기쁨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어쩌면 우리보다 더한지도 모른다.
나는 중국에 세계청년봉사단 센터장으로 와서 센터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초등학생 교육을 하게 되었다. ‘등학생들의 교육열은 아무래도 한국이 더하겠지’ 하는게 솔직한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기와서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여기의 중산층 가정 평균 수입은 50만원정도 된다. 그 이상이면 꽤 잘사는 편에 속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달 20만원 가까이를 아이교육에 투자하는 모습들이다.
초등학교, 심지어는 중학교 앞에서도 학부모들이 줄지어서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리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내가 초등학교때만 해도 모든 학생들이 스스로 집에 왔는데 여기서는 부모님들이 다 데려다주는 것이다.
이런 교육열을 볼 때 중국은 향후 더 발전할 것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최소한 우리나라의 경우만큼은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하얼빈거리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정우지애의 끝까지 다다랐다. 정우지애의 끝에서는 조그만 골동품 판매상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펼쳐놓고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골동품들 사이사이로 중고물품들도 파는데 너무나 열악해보이는 것들도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저히 우리나라에서는 쓰지 않을 것 같은 물품들까지도 판매하는 것을 봐서는 이곳의 실상을 조금은 알수 있었다. 황학동의 고물들은 여기에 오면 완전히 명품취급을 받을 것이며 심지어는 한국에서 버려지는 고급물품들도 여기서는 우량한 판매품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중국은 한편으로는 발전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빈민들이 사는, 두 얼굴의 나라라는 것을 여기서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재미있게 보다가 문득 떠올려보니 내가 지도를 들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저기 보는 가운데 지도를 떨어뜨린 모양이다. 아니면 누군가가 훔쳐갔든지… 왕청의 허름한 버스터미널에서 산 그 18위안짜리 지도는 이번 여행에서 참 유용한 노릇을 해주었는데 조금 아쉬운 노릇이다. 희안한 것은 여기에 있는 큰 서점에 가도 그와 동일한 지도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내 구미에 딱 맞도록 중국어와 영어가 병기되어 있는 그 지도는 내가 향후 중국을 전부 탐험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것이었는데 조금 아쉽게 되었다.
지도를 잃어버린 나는 지도를 새로 사려고 알아봤지만 도저히 찾기가 힘들어서 그냥 관광을 하다가 나중에 사기로 했다.
지도를 찾느라고 정우지애를 두번이나 왕복하다보니 조금 지쳐서 근처 피씨방에 가서 하얼빈에 갈만한 곳을 다시 한번 알아보았다. 하얼빈에는 아직 갈만한 곳이 많았다. 나는 기존에 많이 알려진 731부대나 원묘 등보다는 실제로 하얼빈 시민들을 삶을 볼 수 있는 길거리를 더 많이 보기 원했다.
그래서 멀리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 731부대는 가지 않고 그냥 시내에 있는 유명한 거리들을 계속해서 보기로 했다. 하얼빈은 오래된 도시답게 거리 하나하나가 다 특색이 있었다. 러시아전통거리와 소피아성당이 붙어 있는 과과리지애(여기서 지애는 가街의 중국발음이다), 일제시대 건물들이 지금까지 서 있는 정우지애, 큰 쇼핑센터와 기념건물등이 있는 조린지애, 도보전용도로로 하얼빈의 최대 번화가인 중앙따지애 등등 어느 거리 하나하나 가볍게 볼 수 없는 재미가 있었다.
이 여행에서 나는 주요한 목적중 하나가 동북아의 역사탐방과 과거를 살펴본다는 것이었는데 하얼빈은 러시아와 오랫동안 거래해왔던 도시답게 러시아의 풍물과 전통이 많이 남아 있었고 일본시대의 잔재도 적지 않게 있었다.
이러저리 걷다가 시내버스를 타고 거리를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시내 지도를 새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얼빈 시내가 그려져 있는 작은 지도를 샀는데 그 지도에는 하얼빈 시내의 곳곳이 정확히 나와 있었다. 내가 저녁식사를 한 포트만 식당에서 과과리지애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인터넷에 보면 과과리지애는 러시아의 전통모습들이 잘나타나 있고 소피아성당도 붙어있다고 했다. 나는 식사 후 과과리지애까지 걸아가서 드디어 그 유명한 러시아거리를 걷게 되었다.
과연…거리의 야경은 멋있었다. 건물 곳곳을 조명으로 장식해 놓았으며 특히 러시아 전통거리의 경우는 강물과 어울려서 그 멋진 모습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과과리지애에서 길거리의 한 모자가 누워서 동냥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는 어린애에게 주먹에 든 밥을 먹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웬지 잊혀지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실례가 될까지 차마 찍겠다는 얘기를 못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과과리지애에서 너무 감명을 받은 나는 일단 시내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다녀보기로 했다. 여기와서 느낀 거지만 참 희안한 것은 내가 가다보면 꼭 필요한 곳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피씨방을 꼭 필요로 할 때 모퉁이를 돌자 피씨방이 나타나고, 중앙지애를 꼭 봤으면 했는데 마침 중앙지애가 나타나곤 하니 말이다. 버스를 타고 무작정 갔는데도 마침 정확히 내가 원하던 중앙지애로 버스는 나를 데리고 갔다. 중앙지애의 끝에 있는 강가의 전적기념탑에 서서 강가에서 하는 불꽃놀이와 조명쇼를 보았다. 정말 애인과 함께 왔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명을 조금 보다가 추워지기 시작하자 나는 하얼빈에서 좋은 겨울옷들을 판다는 생각이 났다. 여기서 옷을 사서 이번겨울을 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중앙지애에는 많은 쇼핑센터가 있었는데 그중에 제일 번화해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여기의 패션은 정말 한국을 뺨칠정도였다. 중국이라고 해서 조금 무시했었는데 이곳의 패션은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었다. 다만 내가 사려는 스타일의 옷은 있지 않았고 몇 개 있는 것이 너무 비싸서 이번에 한국 들어가면 그때 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월마트가 있기에 한국에서도 안가보던 월마트를 한번 가보고는 그냥 그 앞에 있는 찜질방에 들어가서 잠을 자기로 했다. 이곳의 찜질방은 먼저번처럼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해 처음 들어갈때부터 철저히 얼마인지를 물어보았다.
여기서는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무조건 돈이 많은 줄알기 때문에 바가지를 조금은 씌우려고 한다. 내게 별 필요도 없는 고급 찜질방옷을 사라고 한다든지 손톱깍기나 음료수를 사라고 권하는 등 조금 귀찮게 생각될 때도 있다. 아무튼 먼저번에 바가지를 썼으므로 여기서는 절대 필요한 것만 사기로 하고 다른 것은 일체 구입하지 않았다.
14일 오전에 찜질방에서 나와 일단 피씨방에 가서 하얼빈 관련정보를 조금 더 알아본 후 나는 안가봤던 조린지애를 가보기로 했다. 전날 과과리지애와 정우지애가 너무 좋았기에 나는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조린지애는 내 생각과 달리 너무 작고 볼것이 없는 거리였다.(나중에 알고보니 조린지애는 꽤 긴 길이어서 그곳을 지나서 걸아가야 제대로 된 거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걷다가 그냥 버스를 타고 전날처럼 시내를 총괄해서 보기로 했다.
차를 다고 가다보니 우연인듯 우연이 아닌듯 내가 원하던 관광지들이 저절로 내앞에 나타난다.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했던 곳으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어본 곳이다. 안타까운것은 이곳에 안중근을기리는어떤푯말도없었다는것인데여기에그를기리는기념물을세운다면한국사람들이더많이올수있다는생각이다.
하얼빈역에서 기차시간을 알아보니 낮이든 밤이든 원하는 날 떠날 수 있다고 판단되어서 여유가 좀 생겼다. 작은 도시들은 하루에 한번밖에 떠나는 기차가 없는데 여기는 큰 도시라 하루에도 여러 번 출발하는 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어떤 루트를 통해서 돌아갈지를 정하지 않았다. 원래 생각은 장춘을 거쳐서 길림, 돈화로 해서 연길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인터넷을 보니 장춘에서 길림시로 가는 철도가 웅장한 만주벌판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해서 그 모습을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시간상 들르지 못한 자무시를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도시들은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다. 그러나 변방의 구석도시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 올 수 없을지 모른다. 목단강의 위쪽에 있는 자무시는 내게 이상한 호감을 주는 도시였다. 러시아풍의 도시이며 변방느낌이 있는 도시라는데 나로서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고 기회가 된다면 그 위쪽으로도 탐험을 해보고 싶었다. 더 추워지면 그 위쪽으로는 갈 수 없을 것이다.
일단 오늘 당장은 어디를 갈지 결정하지 않고 그냥 도시 자체를 만끽하기로 했다.
하얼빈은 이것저것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그 규모에서 다른 도시들을 압도하지만 하얼빈의 이국적인 면은 그에 못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서울이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엄청난 오랜시간이 지난 도시의 연륜이 배어있는 하얼빈의 거리들은 그에 필적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이다. 하일빈이 이정도로 성장한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스터리다. 중국내륙의, 별로 뚜렷한 성장구조가 없는 도시로서 어떻게 이런 규모와 발전을 이루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정말 중국 자체적으로 이정도 도시를 발전시킬 역량이 벌써 있었단 말이다. 주변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발전한 심천, 광주, 상하이, 동북삼성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발전해서 이정도로 성장했단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미래는 정말 엄청날 수 밖에 없다.
하얼빈역에서 출발시간만 체크한 후에 나는 다시 역앞에 있는 시내버스를 탔다. 시내버스는 마침 또 내가 가보길 원하던 흑룡강대 앞으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어느 도시나 대학가는 발전하기 마련이다. 하얼빈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이곳은 엄청난 인파로 발디딜틈 없을 정도였다.
이곳을 여기저기 지나가보니 아무래도 대학가로 젊은 학생들이 많이 보였고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학교앞 거리에서 판매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여기서 일단 1원짜리 볼펜을 하나 사고 늘 필요로 하던 열쇠고리형 손톱깍기를 하나 샀다.(값은 5위안) 그리고 조금 걷다보니 전자사전을 파는 상가가 나타났다. 나는 혹여나 하고 누리안 사전이 있는지 보려고 상가를 올라가서 보다보니 처음 문을 들어서자 마자 내가 원하던 누리안이 눈에 띄었다. 나는 너무 기뻤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넌지시 가격을 물어보았다. 가격은 한국에서 판매하는 것보다는 10%정도 비싼 가격이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홀로 하는 여행에 사전에 꼭 필요한 상황이었으므로 누리안을 살 생각으로 가격을 최대한 깍은 다음 여기서 돈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나는 교통은행에서 만든 현금카드를 갖고 있었는데 여기 있는 공상은행에서는 어떨때는 되고 어떨때는 안되는 상황인데 내가 마침 찾으려고 할때는 돈을 찾아지지 않앗다. (왜 어떨때는 되고 어떨때는 안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돈을 찾기 어렵다보니 내일 살 수 밖에 없어서 일단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돌아서서 가다보니 여기서 사는것보다 어차피 한번은 한국에 들어가게 되니 그때 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는 것을 보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올 때 어쩌면 정춘을 들렀다 올지 모르므로 장춘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내일 한번 와보고 그때와서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흑룡강대 앞에는 엄청난 번화가여서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구숫자로만 따지면 여기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거리를 보다가 버스를 타고 시내있는 쪽으로 나가기로 하였다. 버스를 타고 지도를 보면서 가니 내가 어느 거리를 다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어 그게 참 좋았다. 서울의 경우는 너무 커서 지도만 보고서는 거리를 한눈에 볼 수 없는데 중국의 소도시는 지도를 들고 버스를 타면서 다니면 거리곳곳이 금방 눈에 들어오게 되고 지역 파악이 쉽게 된다.
여기서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지역이 좁다보니 아무런 버스를 타고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아무 버스나 탔는데도 결국 내가 원하는 하얼빈 공대까지 왔으니 말이다. 하얼빈 공대가 마침 나타나서 나는 내려서 전자상가가 발달했다는 하얼빈공대앞 전자상가에 가보았다. 흑룡강대 앞에서 팔던 누리안이 여기서는 더 쌀까 해서 였다. 그러나 누리안이 여기서는 보이지 않았고 아마도 흑룡강대 앞에서 팔던 것은 거기서 공부하는 수많은 한국 학생들을 겨냥해서 마련해 놓은 것 같았다. 인터넷상에서 보면 중국대리점으로 하얼빈은 없었으니 말이다.
저녁식사때가 되어 나는 포트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그곳가는 버스를 탔다. 내가 어떻게 버스 노선을 알까마는 그냥 버스를 타고 포트만 레스토랑이 있는 길로는 가기 때문에 그냥 아무거나 탄 것이다. 조금 아래에 있는 곳에서 내려서 포트만 레스토랑까지 가서 거기서 프랑스 요리를 시켜먹었다. 여기 중국에 와서 프랑스요리를 먹다니 세계는 과연 좁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 식사후에 어제와 같은 짜릿한 경험을 기대하며 거리를 나섰다.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거닐다가 멋진 성당을 발견했다.
‘어제 분명히 소피아성당을 봤는데…’
이곳은 어제본 소피아 성당보다 더 크고 더 성당다워서 나는 어제 다른곳을 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하얼빈 예술기념관으로 소피아성당보다 더 크고 더 웅장하게 지어졌다. 이 거리는 조린지애로 인터넷상에서 가볼만하다던 그 거리였다. 나는 어제 조린지애의 첫부분만 보구서 그냥 별것없다고 생각해서 버스를 타고 다른곳으로 가고 말았는데 조린지애의 참맛은 이런곳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린지애의 중심가는 다른곳들보다 더 큰 쇼핑센터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중심에는 큰 광장과 예술기념관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린지애에서 중앙대가까지는 지도상으로 별로 멀어보이지 않아서 나는 걸어서 중앙대가까지 가기로 했다. 중앙대가에 있는 피씨방에 가서 조금 더 하얼빈 정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인터넷 네이버에는 하얼빈리 라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에는 정말 하얼빈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있어서 나로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희한한 것이 여러 번 갔던 그 피씨방이 오늘 찾아보니 정말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데 분명히 어제 있던 곳이었는데 도무지 나타나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나는 찾다찾다 못찾아서 그냥 그 앞의 사우나에 가서 쉬기로 했다. 다행히 사우나는 그 앞에 그대로 있었다.
찜질방에서 참 좋았던 것이 여기서 밥도 주고 잠도자고 피씨방까지 운영하는것이었는데 한가지 더 좋은데 세탁서비스까지 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돈을 조금 줘야 하지만 여행에 찌든 내 옷가지를 전부 빨아주는데에는 그 30위안이 아깝지 않았다.
15일 아침 9시에일어나서밥도못먹고버스를타고이곳저곳가다하얼빈공대앞에가서카메라를충전해달라고하였다. 혹시나 해서 해본것인데 의외로 흔쾌히 소니 카메라의 밧데리를 충전해준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안되는 것도 없었다.
나는 여기에 카메라를 충전시켜 놓고 어제 사려다 못한 누리안을 보러 다시 흑룡강대앞에 가보았다. 흑대앞에 있는 그 누리안은 정말 내가 꼭 원하던 것이었는데 결정적으로 보조밧데리를 주지 않는다고 하여 나는 그냥 한국에서 사거나 장춘에서 사기로 하고 발걸음을 되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다시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았다. 센터를 너무 많이 비워놓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조금 할일도 생기고 해서 빨리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얼빈에서는 의외로 대부분 기차를 이용해서 타 도시로 이동을 한다. 다른 곳에서는 버스도 많이 타는데 여기는 버스보다는 기차가 발달된 것 같다.
나는 인터넷에서 봤던대로 하얼빈에서 길림으로 가는 기차를 타보기로 했다. 그 기차를 타면 광활한 만주벌판을 볼 수 있다던데 그 만주를 꼭 보고 싶었다.
거기서 서정주의 시 ‘만주에서’를 다시본다면 그 시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연변과 연길, 길림을 굉장히 혼동하곤 한다.
나도 많이 혼동했던 것인데 길림성이 가장 큰 것이고 그 길림성 앞에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고 그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수도가 연길인 것이다. 길림시는 길림성 안에 있는 도시이름이다. 길림시는 그러므로 길림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혼동해서는 안된다.
길림시는 길림성에서 장춘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인데 인구는 약 50만정도 된다고 한다. 길림은 별로 볼것이 없는 도시라는 생각에 나는 바로 이동을 해서 연길로 오려고 했는데 저녁시간이라 차도 없고 해서 그냥 그날밤을 길림에서 자기로 마음먹었다.
역앞의 신문판매대에서 ‘찜질방’을 찾으니 지도상에 어디어디를 길게 죽 그어준다. 나는 찜질방을 찾았던 것인데 이 아저씨가 잘못 이해했는줄 알고 그냥 돌아섰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저씨가 죽 그어준 그 도로 전체가 찜질방과 사우나로 가득차 있었다. 숙박에는 사우나가 가장 싸다는 것을 깨우친 나는 이번에도 사우나에서 잠을 자기로 하고 일단 역앞에서 먹을만한 곳을 찾았다.
일본식당이 있었는데 조금 색다른걸 먹어보고 싶었던 나는 일본식당에서 라면과 버섯꼬치를 먹고 그날은 쉬기로 하였다. 하룻밤 28원에 사우나에서 취침을 하였다.
16일 아침 나는 거리를 나서서 어젯밤 식사를 했던 일본식당으로 다시 갔다. 너무 만족스러웠으며 국물을 먹을 수 있었기에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 따뜻한 라면을 먹고 만두를 먹으니 속이 든든했다. 역앞에 가서 연길가는 차를 찾으니 의외로 연길가는 차는 많지가 않았다.
기차로 연길가는 것은 몇 개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너무많이 줄을 서 있어서 그들을 모두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버스를 타기로 하고 역앞에 있는 장거리 버스들에 가보았다. 그런데 한곳에서는 100위안에 준다고 타라고 하는데 버스가 아닌 승용차로 간다고 하여 조금 위험할 것 같아서 타지 않고 정식 버스터미널로 가서 거기서 버스를 타고자 마음먹었다.
근데 그게 오히려 더 실수였다. 버스정류장 매표소 앞에서도 불법적인 암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사려고 하니 오늘 저녁때 출발하는 차만 있다고 하며 자기의 차를 타면 4시30분이면 연길에 도착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차가 버스인지를 확인하고 버스이면 탄다고 하였더니 나를 데리고 조금 떨어진 어느 곳으로 버스를 타러 가야한단다. 나는 빨리 가려는 마음에 그냥 그 남자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는데 그 사람은 버스가 오자 거기서 나에게 185위안을 내라는 것이다. 아까는 분명히 85위안이고 다른 요금은 없다고 하였는데 이제와서 185위안이라니… 내가 강력히 항의해보았지만 일단 출발해서 연길로 빨리가고픈 마음에 그냥 양보를 하고 말았다.
타고서는 조금 찝찝한 기분이었다.
버스는 꽤 훌룡했다. 연길로 가는 고속버스로 넒직했고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우등고속쯤 될 것 같았다.
오는 도중에 보이는 만주벌판은 보고보고 또 보아도 가슴이 뭉클했다. 이렇게 큰 땅덩어리에 우리들의 선조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이 만주를 잊고 있지만 여기에는 우리의 흔적이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있어서 그냥 잊고 지나치기엔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번 만주여행은 내게 큰 시야를 가져다주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도시에서 도시로 비행기를 타고 관광지만 보는 여행이었는데 이번 만주여행은 내가 직접 시내버스와 고속버스로 중국서민과 동일하게 먹고 자고 하면서 천천히 걸어왔던 것으로 다른 여행들보다 훨씬 더 중국을 잘 파악할 수 있었으며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우리 센터에서 리더십 프로그램을 할 때 내가 왔던 그 코스로 만주여행을 한다면 분명히 감동적인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다음에 시간이 있다면 단동과 대련으로 하는 요녕성을 한번 더 가보고 내년여름에는 이번에 가보지 못했던 동경성과 겅박호, 자무시와 그 위쪽 시베리아를 가보고 싶다. 그곳에는 태곳적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보아왔던 그 무언가가 있을것만 같다.
첫댓글 장문의 좋은 글.... 참 잘 읽었습니다... 자주 좀 올려주세요~^^*
저두 산동 덕주산동 에 온지도 2개월쨰 접어듭니다...훗훗 나름대로 재미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인회와 한인상공회모임에서 지난주에체육대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양고기로 배를 채우는 기쁨을 누렸답니다..물질적으로 풍부하지않지만 맘(정신)은 하늘을 날아갈것같은기분 매일매일 느끼고 산답니다. 산동에서 정성근
재밌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
언젠가 하얼빈을 꼭 가고싶었는데... 고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겨울 하얼빈 정말 추웠다...
정말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중국상품이 많이 나와있어 들렀는데,,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