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독립운동가 만오 홍진의 묘지 표지석을 세우자
▲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
필자는 2019년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태극기를 가방에 넣고, 중국에 있는 임시정부 유적지가 있는 상해, 광주, 중경을 방문하는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여정 속에서, 조용하지만 강한 한 인물을 깊이 마주하게 되었다. 그분은 바로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냈고, 국회 격인 임시의정원의 의장을 세 차례나 맡았던 인물, 바로 만오(晩悟) 홍진 선생이다.
홍진 선생은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법관양성소를 졸업한 후 검사로 일하다 일제의 강압적 합병에 항거하며 변호사로 전향하였고,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선 법조인이다. 그는 우리 민족의 거대한 독립 요구인 3·1운동 직후, 독립운동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전국 13도 대표자들을 규합해 인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회의를 주도했다. 이 회의는 한성정부가 훗날 상해임시정부와 통합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그렇다면 인천은 단순히 통과지점이 아니었다. 인천은 임시정부 수립의 시작점이자 핵심 거점이었고, 바로 그 중심에 홍진 선생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해방 후에도 제헌헌법 제정에 영향을 미치고 의회 설립에 기초를 마련하는 등 대한민국 정치 제도의 기반을 닦는 데 힘썼다. 생의 마지막까지 대한민국의 건국을 위해 애쓰다가 1946년 타계하였고, 인천 미추홀구 문학동 선산에 묻혔다. 그러나 지금 문학동 백석초등학교 인근에 있던 그의 묘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천 시민들조차 그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시립박물관에 옮겨 보관된 묘지석만 남아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만오 홍진을 기리기 위해 최근 지역 학계 및 시민단체를 통하여 만오홍진선생기념사업회가 만들어져서 홍진 선생을 추모하는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허우범, 신영담 교수와 인천일보 만오홍진특별취재팀이 수년간 홍진 선생의 흔적을 찾아서 정리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만오 홍진>이라는 책도 출판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인천시민들은 홍진 선생을 잘 알지 못하고 있어 홍진 선생을 제대로 알고 기억하는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할 때이다.
그래서 필자는 3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문학동 옛 홍진의 묘지 터에 ‘홍진 선생 묘지 표지석’을 세우자는 제안을 드린다. 시민 누구나 그곳에 서서 “이곳이 독립운동가 홍진 선생의 마지막 안식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자유공원에 있는 ‘13도 대표자 회의 표지석’ 옆에 홍진 선생의 동상을 세우기를 제안한다. 홍진 선생은 그 회의를 실질적으로 조직한 주도자였고,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의 초석을 놓은 중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셋째, 장기적으로는 인천에서 활동한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법조인인 홍진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홍진 기념관’ 설립을 논의하자. 특히 인천지방변호사회와 인천의 법조계, 교육계가 힘을 모아 홍진 선생을 후대에 전하는 일에 동참해야 할 것을 제안한다.
분열된 독립운동을 하나로 묶기 위해 평생을 통합과 협력을 강조했던 법률가 홍진. 그를 기리는 일은 과거의 업적을 되새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나아가야 할 방향을 되짚는 일이기도 하다.
인천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출발지였음은 우리 인천의 자부심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흐름의 시작과 마지막에 있었던 사람, 홍진을 인천에서 다시 불러내야 한다. 묘지 표지석으로 시작된 기억의 회복이 독립유공자 선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이자, 다음 세대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값진 교훈이 될 것이다.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
첫댓글 조용주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책도 두 권 펴내시고 독립운동가 만오 홍진 선생의 업적을 길이 보준함이 옳습니다